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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의사의 기본소득'이 매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동네의사'는 과거 국경없는의사회에서 활동했고, 한국 최초의 에볼라 의사이기도 합니다. '동네의사'가 진료실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 사회에서 기본소득의 필요성과 가능성을 풀어봅니다. [편집자말]
  의사로서 알고 있는 모든 지식을 동원해서 설득했지만, 그는 끝내 치료를 거부했다.
  의사로서 알고 있는 모든 지식을 동원해서 설득했지만, 그는 끝내 치료를 거부했다.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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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아르메니아라는 나라에서 다제내성 결핵 환자를 치료한 적이 있다. 아르메니아는 러시아와 중동 사이에 낀 작은 나라이다. 결핵은 참 무서운 병이다. 해마다 150만 명이 아직도 세계 곳곳에서 목숨을 잃는다. 그런데 다제내성 결핵은 더 무섭다. 중요한 항생제에 내성이 생겼기 때문에, 치료가 무척 까다롭고 환자가 견디기도 힘들다. 다행히 최근 신약이 개발되어 다제내성 결핵 치료에도 희망이 생겼다.

하지만 필자가 근무할 때만 해도, 다제내성 결핵 환자의 완치율은 50%에 불과했다. 어떤 환자들은 심각한 약 부작용 때문에 치료를 포기하기도 했다. 다른 환자는 2년이라는 긴 치료 기간을 견디지 못하고, 중간에 러시아로 떠나버렸다. 가족을 먹여 살릴 돈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의사로서 도무지 이해하기 힘든 환자들도 있었다. 처음부터 결핵 치료를 거부하는 환자들이었다.

죽음의 공포보다 강한 것
  
50대 남성 A가 다제내성 결핵으로 진단받았다. 그런데 A는 치료를 아예 거부했다. 필자는 A를 직접 만나기 위해, 아르메니아의 고원지대를 차로 한 시간 넘게 달려갔다. 그는 작은 시골 마을 들머리로 우리를 마중 나왔다. 마치 마을 입구를 지키고 있는 것 같았다.

필자는 의사로서 알고 있는 모든 지식을 동원해서 그를 설득했다. 다제내성 결핵이 얼마나 무서운 병인지, 치료를 받지 않으면 어떤 운명이 기다리고 있을지 설명했다. 하지만 환자는 입을 굳게 다물었다. 치료를 거부하는 이유조차 말해주지 않았다. 이해할 수가 없었다. 치료받지 않는다면, 그는 결국 죽을 것이다. 그뿐만 아니다. 그와 함께 사는 가족 그리고 이 작은 마을 주민들은 어떻게 한단 말인가? 무엇이 죽음의 공포보다 강할 수 있을까?

의학이 정의하는 '질병'(disease)과 환자가 경험하는 '질환'(illness)은 다르다. 그래서 환자들은 종종 의사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한다. 질병과 질환의 차이를 잘 이해하는 의사가 훌륭한 의사다. 안타깝게도 당시 필자는 그렇지 못했다. A를 이해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팀은 포기하지 않았다. 간호사, 심리치료사, 사회복지사 동료들이 집요하게 A를 만났다. 그렇게 몇 주가 지나자, A는 마침내 입을 열었다.

"내가 그런 병에 걸렸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이 마을에서 더는 살 수 없어요."

이유를 안다고 항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 팀은 여러 가지로 그를 설득했지만, A는 끝내 결핵 치료를 받지 않았다.

검사받기를 거부하는 클럽 방문자들
  
 11일 오전 코로나19 집단 감염이 발생해 클럽과 식당 등이 문을 닫은 서울 용산구 이태원 거리.
 11일 오전 코로나19 집단 감염이 발생해 클럽과 식당 등이 문을 닫은 서울 용산구 이태원 거리.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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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조금만 더 견디면 잠잠해질 것이라는 기대가 컸기 때문일까? 이런 '난리' 통에 클럽을 방문하고, 더구나 코로나바이러스를 퍼뜨린 사람들에 대한 원망이 크다. 확진자가 나온 이태원 클럽은 성소수자들이 즐겨 찾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원망은 분노와 혐오를 낳고 있다. 여전히 수천 명의 방문자가 코로나 검사를 받지 않았으며, 연락도 되지 않는다고 한다. 사람들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누군가는 말한다.

'성소수자들이 클럽에 갔다고 비난하는 것은 옳지 않다. 성소수자도 사람이다. 그들도 이성애자들처럼 욕망이 있고, 클럽에 가서 놀 수 있다. 하지만 왜 코로나 검사를 받지 않아, 다른 사람들까지 위험에 빠뜨리는가?'

필자 역시 검사를 거부하는 클럽 방문자들, 특히 성소수자들의 마음에 들어가 볼 수는 없다. 그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우리와 사회를 되돌아보는 것이다. 문득 치료받기를 거부했던 결핵 환자 A가 떠올랐다. 그가 평생 살아온 마을은 삶의 전부나 마찬가지였다. 노년기를 앞두고 있던 그로서는, 다른 지역에서 다른 삶의 가능성은 상상할 수 없었다. 마을 사람들이 그에게 등을 돌리고 손가락질한다면, 그것은 죽음과 다를 것이 없었다. 어차피 죽은 목숨인데, 마을 사람들의 안전을 생각하라는 '윤리'는 허망할 수 있다.

이렇듯 누군가에게는 눈앞의 '사회적 죽음'이 '육신의 죽음'보다 더 두렵다. 성적 정체성이나 지향이 자기 뜻과 달리 밝혀지는 것을 '아웃팅'이라고 부른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이태원 클럽 방문자'가 코로나 검사를 받으면, 성소수자로 낙인찍힐 수도 있는 상황이다.

내가 만난 성소수자 가족

필자는 2015년 아프리카 시에라리온에서 에볼라 환자들을 돌보았다. 그리고 자가격리를 위해 네덜란드의 한 교외에서 2주 동안 지냈다. 그런데 시에라리온에서 함께 근무했던 네덜란드 위생사(깨끗한 물을 공급하고 오염된 폐기물을 처리하며, 모든 직원의 방역 상태를 관리하는 업무를 맡는다) B가 저녁 식사에 초대했다.

"우리 집에 저녁 먹으러 올래? 그럼 파트너랑 내가 무척 기쁠 거야."
  
에볼라는 코로나19와 달리 잠복기에는 전파되지 않는다. 그래서 자가격리 기간에도 신체 접촉만 피한다면 사람을 만날 수 있다. 50대 여성이었던 B가 'husband' 대신 'partner'란 표현을 썼을 때, 난 묘한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기꺼이 초대에 응했다. 그녀의 집은 장난감처럼 예쁜 이층집들이 옹기종기 모인 교외 마을에 있었다. 아담한 정원과 널찍한 창문을 통해, 1층 거실이 밖에서도 훤히 들여다보였다.

B가 가족을 소개했다. 그녀의 파트너는 역시 50대 여성이었다. 그리고 10대 초반의 남자와 여자 청소년 둘을 '우리 아이들'이라고 소개했다. B의 가족, 함께 초대받은 네덜란드인 이성 커플, 그리고 아시아에서 온 나는, 소박한 저녁 식사와 대화를 즐겼다.
  
'용기'의 조건
 

며칠 전 필자가 한 코로나 선별진료소에서 일하는 동안 수백 명의 시민이 검사를 받았다. 그들에게 코로나 검사란 대개 귀찮고 번거롭거나, 아플까봐 걱정되는 일이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죽음만큼이나 강한 공포를 느낀다. 용기를 내라는 말보다는, 그들을 이해하는 것이 먼저 아닐까?

B의 가족을 떠올려 본다. B는 두려움 없이 그녀의 집과 가족을 이웃에게 열어 보일 수 있었다. B라면 코로나 검사를 그다지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이 차이를 만들고 있는 것은 바로 우리다. 동시에 사회적 죽음은 반드시 '경제적 고립'을 포함한다. 우리 사회 성 소수자들이 용기를 내는데, 기본소득이 작지만, 꼭 필요한 힘이 되기를 바란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정상훈씨는 기본소득당 당원입니다. 기본소득당은 평균나이 27세의 당원들이 만든 정당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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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기본소득당 공동위원장 (전)국경없는의사회 활동가 한국 최초 에볼라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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