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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노무현 대통령 추모를  위해 5월 27일 봉하마을을 찾았었다.
▲ 봉하마을(20090527) 2009년 노무현 대통령 추모를 위해 5월 27일 봉하마을을 찾았었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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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1주기(5월 23일)를 맞이했다. 세월의 무상함과 빠름을 느낀다. 

20대 이후, 개인적으로 5월은 늘 아픈 계절이었다. 대학시절에는 5월 첫날이 되면 노찾사(노래를 찾는 사람들)의 '오월의 노래'를 부르는 것으로 시작했다.

봄볕 내리는 날 뜨거운 바람 부는날 붉은 꽃잎져 흩어지고 꽃향기 머무는날 묘비없는 주검에 커다란 이름 드리오 여기 죽지 않은 목숨에 이노래 드리오 사랑이여 내 사랑이여 음. 음. 음.

그렇게 오월광주를 생각하면 너무 아파서 오월은 늘 슬펐다. 거기에 '바보대통령'의 죽음이 겹쳐졌고, 3년 전에는 아버님의 죽음도 더해졌다.
 
5월의 꽃, 씁쓰름한 향기가 일품이다.
▲ 찔레꽃 5월의 꽃, 씁쓰름한 향기가 일품이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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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봉하마을로 추모하러 가던 길, 길가에는 흙먼지를 뒤집어쓴 하얀 찔레꽃이 있었다. 추모객들이 많아 한참을 걸어 들어가야 했다. 그런 가운데 찔레꽃 향기가 더운 바람과 함께 코로 훅 밀려 들어왔다.

새벽무렵이나 비오는 날, 은은하게 퍼진 향기와는 다른 향기였다. 씁쓰름하고, 뭐라 말이나 단어로는 형언할 수 없는 그런 향기였다.
 
마치 보랏빛 수채화 물감을 품고 있는 듯 피어나는 5월의 꽃
▲ 붓꽃 마치 보랏빛 수채화 물감을 품고 있는 듯 피어나는 5월의 꽃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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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그해 5월에 바보 대통령을 보내고, 아버님도 3년 전, 노무현 대통령 추모일과 하루 간격으로 돌아가셨다.

이제 아무리 바쁜 일이 있어도 5월 이맘때면, 어머니와 함께 잠들어계신 아버님 묘지를 찾아 추모를 해야만 했다. 이런 과정에서 5월의 꽃들과 더 친해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어떤 꽃들은 가고, 어떤 꽃들은 오고, 이미 흔적도 없이 사라진 꽃들도 있다. 모두를 어찌 그리 자기의 때를 잘 알고 피어났다고, 자기의 때가 다하면 사라지는지 신비스럽다. 인간도 '자기의 때'를 아는 지혜를 자연으로부터 배웠더라면, 이 세상은 한결 아름다웠을 터인데 하는 생각을 한다.
 
낮은 곳에서 짓밟히며 피어나는 꽃, 그래도 행복하게 피어나는 꽃
▲ 토끼풀꽃 낮은 곳에서 짓밟히며 피어나는 꽃, 그래도 행복하게 피어나는 꽃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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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이란 꽃말을 가진 토기풀, 길가 낮은 곳에 피어있어 짓밟히며 자라나는 꽃인데 뭐가 그리 행복할까? 게다가 성장점이 상처를 입으면 '행운'을 상징하는 '네잎크로버'를 만든다고 하니, 천진난만하고도 행복한 꽃이다.
 
아주 오랜만에 꽃시계를 만들어 사랑하는 이에게 주었다.
▲ 꽃시계 아주 오랜만에 꽃시계를 만들어 사랑하는 이에게 주었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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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랜만에 사랑하는 이에게 꽃시계를 만들어 주었다. 너무 예쁘다며, 오래 간직하고 싶다고 했지만, 곧 시들어버리는 것이 꽃 아닌가? 사실, 꽃만 시드는 것이 아니라 사람도 그렇지 않은가?

80년대, '나이 서른에 우린'이라는 노래를 참 많이 불렀다. 나이 서른이 멀게도 느껴졌지만, 서른이 되면 뭔가 달라질 것이라는 기대 같은 것들이 있었다. 그러나 사시 '서른'이 되고 나서도 크게 달라진 것은 없었다. 그리고 어느새 서른을 넘어 마흔, 마흔을 넘어 지천명을 넘어 이순을 향해 가는데도 크게 변한 것은 없다.
 
줄기의 가시는 성성하지만, 꽃술은 부드럽기만 하다.
▲ 가시엉겅퀴 줄기의 가시는 성성하지만, 꽃술은 부드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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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많이 변했다. 역사의 진실이 너무 더디게 밝혀지기에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듯 보일뿐, 푸릇푸릇하던 청춘의 삶은 노년의 삶을 향해 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오랜 세월이 지났는데, 왜 역사의 진실을 밝히지 못하고, 당신만 늙어가느냐고 역사가 항변하는 듯하다. 그래서 오월은 또 무겁고 슬프다.
 
딸 낳으면 심어 시잡갈 때 농을 짜주었다는 오동나무의 꽃이 진다.
▲ 오동나무 딸 낳으면 심어 시잡갈 때 농을 짜주었다는 오동나무의 꽃이 진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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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일까? 오월에 피고지는 꽃들은 모두 슬프다.

떨어진 꽃들은 '금남로'를 떠올리게 하고, 피어나는 꽃들은 '다 피어나지 못한' 청춘들을 떠올리게 한다. 이것이 오월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4월과 6월로 이어지면서 슬픔의 무게를 더한다.

세월호 이후로는 봄이 와도 기쁘지 않았다. 아이들의 절규가 오버랩이 되는데다가, 여전히 유가족들은 극우세력에 매도당하고, 여전히 그들을 조롱하고 비난하는 이들이 건재하는 것을 보면서 맞이하는 봄이 기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세월호 이후로는, 5월의 꽃뿐 아니라 4월의 꽃도 슬펐던 것이다.
 
가느라다란 줄기를 벗기면 하얀 국숫발 같아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 국수나무 가느라다란 줄기를 벗기면 하얀 국숫발 같아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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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어쩔것인가? 산 사람은 살아야지.'

국수나무가 이렇게 말하는 듯 하다. 줄기를 벗기면 하얀 국숫발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데, 확인해보니 꼭 그렇지는 않다. 어쩌면, 보리가 익어갈 무렵이고, 아직은 보릿고개를 넘고 있는 중이니 조팝나무, 이팝나무처럼, 이 나무의 줄기도 국숫발처럼 보였을 터이다. 그렇게 상상하며 보릿고개를 넘었던 이들이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내게 오월은 그런 의미인 것 같다. 아직은 다 밝혀지지도 않았고, 여전히 사악한 이들이 진실을 가리고 있지만, 언젠가는 밝혀질 날이 올 것이라는 기대. 그러나 아직 현실은 아니고 기대이기에 슬픈, 그런 의미인 것이다.

그래서 오월에 피고지는 꽃들은 슬프다.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에.

태그:#노무현, #봉하마을, #5월의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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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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