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이다. 아니 '팬텀 싱어' 하는 날이다. 오늘은 또 어떤 곡이 나의 한 주를 이끌게 될까 즐거운 상상을 하며 정좌했다. 나는 특별한 음악적 취향을 갖고 있지는 않다. 그런데 음악을 듣다 보면 내 귀에 쏙 들어오고 몰입할 수 있는 어떤 음악적 경향은 있는 듯했다. 부드럽고 잔잔하면서도 깊이와 넓이가 느껴지는, 인생의 희로애락이 모두 들어있는 듯한 서사시 느낌의 음악을 좋아하는 것 같았다.

전혀 들어보지 못했던 처음 듣는 노래도, 물론 가사의 도움도 받지만, 음악의 흐름만으로 서사가 느껴지는 것들에 강한 인상을 받았다. 지난주에도 영락없이 그런 음악이 나에게 다가왔다.

방송이 끝나고 나면 다음 주 새로운 방송이 시작되기 전까지 유튜브를 통해 <팬텀 싱어> 해설 방송을 본다. 지난주 방송에서 고영열의 노래가 놀라웠고, 리듬과 하모니의 조화가 기승전결이 느껴졌다. 간절하고 애틋한 호소가 마음에 닿았었지만, 앞선 경연에서 노래했던 페루의 음악과 겹쳐지는 듯한 느낌도 들어서 처음 들었던 <춘향가>나 <Tu eres la musica que no hay que retocar>를 들었을 때처럼 그들의 노래에 깊이 빠져들지를 못했었다. 오히려 그 팀과 겨루었던 팀의 <Strai Con Me>에 나는 더 깊이 빠져들었다. 결과에 대해 약간의 의문이 들기도 했다.

해설 방송에서는 고영열을 두고 완벽한 그리스의 어느 아저씨가 되어 있었다고 표현했다. 딱 그리스 아저씨라는 평을 듣고 나니 불현듯 <그리스인 조르바>가 떠올랐다. 자유로운 영혼, 사람을 사랑하고 음악을 사랑하고 신념이 강하고 자신의 목표한 바를 향해 물불 가리지 않고 달려 나가는, 책에서의 조르바의 모습이 그리스의 음악을 노래하는 그에게서 보였다. 그가 노래할 때의 자연스러운 동작이, 그의 제스처가 흡사 조르바가 술을 마시고 춤을 출 때의 몸짓처럼 느껴졌다. 그의 노래가 조르바가 연주하던 '산투르' 연주처럼 생각되었다.

내 상상이 맞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방송되었던 장면을 다시 보았다. 한국적 정서를 가진 그가, 우리의 소리꾼인 그가 완벽하게 조르바로 빙의된 것 같았다. 다시 생각해 봐도 신기한 일이었다. 책을 읽으며 조르바라는 인물이 가진 강렬한 매력의 실체를 고영열이 부르는 음악과 연주되는 상황을 통해 확인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책 속의 긴 이야기가 짧은 노래에 모두 들어있는 듯한 생경한 경험이었다. 음악의 영역이 아무리 크다고 한들 어떻게 사람까지 바꿀 수 있다는 말인가. 음악의 무궁한 확장성을 만나는 듯했다.

조르바는 작가 니코스 카잔자키스가 만난 실존인물이다. 열정과 사랑이 넘치는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그리스인의 대표성을 가진 인물이 그리스와 그리스인을 모르는 내게는 조르바가 전부인데, 고영열이 음악을 통해서 그리는 격정, 순수함, 자연의 모습은 그리스의 대자연 속의 조르바를 소환한 것 같은, 어쩌면 조르바라는 인물 자체가 그렇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인생이란 가파른 경사도 있고 내리막길도 있는 법이지요. 잘난 놈들은 모두 자기 브레이크를 씁니다. 그러나 나는 브레이크를 버린 지 오랩니다. 나는 꽈당 부딪치는 걸 두려워하지 않거든요. 기계가 선로를 이탈하는 걸 우리 기술자들은 <꽈당>이라고 한답니다. 내가 꽈당 하는 걸 조심한다면 천만의 말씀이지요. 밤이고 낮이고 나는 전속력으로 내달으며 신명 꼴리는 대로 합니다. 부딪쳐 작살이 난다면 그뿐이죠. 그래 봐야 손해 갈 게 있을까요? 없어요. 천천히 가면 거기 안가나요? 물론 가죠. 이왕 갈바에는 화끈하게 가자 이겁니다. (<그리스인 조르바>, P.217)

눈부시게 파란 바다와 뜨겁게 불러오는 바람. 태양의 빛을 받아 반짝거리는 해변. 해변에서 손뼉을 치면서 다리로 힘차게 대지를 차고 공중에 떠올랐다가 그대로 날아갈 것만 같은 그의 춤사위. 그 필사적인 조르바의 몸짓을 고영열의 끓는 듯한 구음을 통해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면 너무 큰 과장이 될까.

오늘 방송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EDM이었다. '팬텀 싱어'가 지향하는 고급스러움과 성악가, 그리고 EDM의 만남. 신기하고 낯선 경험이지만 참 좋았다. (혼자만 방송 시청 중이라서) 맘껏 볼륨을 높여 들을 수 없다는 것이 가장 큰 아쉬움이었지만 이도 많이 발전된 것이다. '팬텀 싱어'에서 들려주는 음악의 질과 깊이를 남편이 인정을 했기에 본방송을 사수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만족한다. 부족한 볼륨은 다음 날 한껏 키워 여러 번 반복해서 보고 들으면 될 테니까.  

회차가 거듭되며 연주되는 곡조를 따라 노래하는 이가 표현하는 감정에 동화되는 느낌을 갖는다. 마치 책을 읽으며 문학 작품 속 인물의 감정에 빠져드는 것처럼. 문학 작품 속 인물의 행위에 당위성을 부여하고 공감하듯, 노래하는 이들의 감정을 따라 끓어오르거나 싸늘해지거나 한다. 

네 명의 화음, 넷 혹은 그 이상의 악기의 완벽한 조합과 조화를 만들어 내는 시즌 세 번째 '팬텀 싱어'가 매주 기다려지는 이유다. 다음 주는 3 중창이 시작된다. 어떤 하모니가 나를 설레게 할까 벌써부터 기대된다.
팬텀싱어 3 시청소감 그리스인 조르바 고영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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