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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24일은 주님 승천 대축일이었다. 부활하신 예수께서 다시 아버지의 나라로 올라가신 날이다. 천주교는 이 날을 매우 뜻깊은 축일로 여기고 크게 기념한다. 그 날의 미사의 전체 주제는 당연히 주님의 승천이었다. 함께 읽은 성경 구절도, 입당송과 영성체송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강론에 나선 신부님의 첫마디는 다소 의외였다.

"여러분의 꿈은 무엇입니까? 어떤 희망을 갖고 계시나요?"

꿈과 희망. 참 좋은 말이다. 스스로에게는 물론 남에게도 힘을 준다. 듣는 것만으로도 불끈 주먹이 쥐어진다. 많은 성인들이 찬양해 마지 않았다. 삶의 지표요, 영혼의 양식이라고 노래했다. 꼭 간직해야 하며 절대 잃지 말라는 당부도 이어져 내려왔다. 특히 젊은이들의 용기를 북돋워 주는데 즐겨 인용되곤 한다. 흔한 자기개발서의 1장에도 자주 등장하는 그런 말이다.

평소 같으면 나도 그랬을 터다. 신부님의 말씀을 들었을 때 덩달아 가슴이 벅차올랐을 거다. 새삼 커다랗게 눈이 열리고 세상이 온통 빛으로 가득한 것처럼 보였을 거다. 그런데 그 순간은 아니었다. 아팠다. 세게 얻어맞기라도 한 것 같았다. 괜한 억하심정이 치밀었다. 할 수만 있다면 당장에라도 손을 들어 신부님께 이렇게 되묻고 싶었다.

"하필이면 왜 지금 저에게 그런 걸 물으시는 거죠?"

얼마 전 공들여 추진하던 프로젝트가 깨져서다. 1년 가까이 참 열심히 준비해 왔다. 어쩌면 내 생애 마지막일 수도 있었기에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이런저런 위기도 많았지만 슬기롭게, 묵묵히 이겨냈다. 여건도 좋았다. 느낌도 괜찮았다. 모두 낙관했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자 결과는 정반대였다. 함께 성공을 염원하고 응원해 준 분들께 면목이 없었다. 정말 죄송했다. 하지만 누구보다 아픈 건 나였다. 견디기 힘들 정도였다.

단지 아쉬워서가 아니었다. 앞으로 뭘 해야 할지 막막하고 두려워서였다. 내 남은 인생에 더 이상의 기회가 없을 것이라는 슬픈 예감도 한몫 거들었다. 정녕 내 인생이 여기서 이렇게 끝나는 구나, 말도 못하게 허무해서 더 그랬다. 

더 이상의 꿈이나 희망은 없어 보였다. 암담했다. 끝내는 이렇게 살아야 할 이유가 있을까, 불온한 생각마저 들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런 아픔은 많이 가셨지만 여운은 여전히 남아 있다. 신부님의 말씀이 아팠던 건 그래서였다. 공연히 심통이 난 거였다.

꿈과 희망은 존재의 이유
 
 1년 가까이 공들여 추진하던 프로젝트가 깨졌다. 더 이상의 꿈이나 희망은?없어 보였다. 암담했다.
 1년 가까이 공들여 추진하던 프로젝트가 깨졌다. 더 이상의 꿈이나 희망은?없어 보였다. 암담했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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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신부님의 그 질문은 내가 즐겨 써먹던 거였다. 마케팅으로 학위를 받고 짬짬이 시간강사 나갈 때였다. 강의 첫 시간이면 으레 그걸 물었다. 여러분의 궁극적인 꿈 혹은 목표는 무엇입니까? 어떤 사람이 되고 싶습니까? 대부분의 학생들은 일면 기습적이고 도발적인 질문에 당황해 했다. 똑 부러지게 대답하는 학생은 거의 없었다. 그들 중 90% 이상이 취업이나 졸업 후 진로를 걱정했다. 

기업체 특강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허공을 올려보며 그런 게 있기는 했나 하는 표정을 짓는 분들도 많았다. 별 걸 다 묻는다고 째려보는 이마저 있었다. 그래도 학생들보다는 조금 적극적이었다. 승진이나 노후 대비는 단골 메뉴였다. 인생 2막이나 은퇴 후 버킷 리스트를 준비하는 이들도 꽤 있었다. 아주 가끔 영특한 자녀 중 하나에게 희망을 거는 아빠들도 눈에 띄었다. 물론 그건 내가 기대하던 대답은 아니었다.

사실 그 질문은 마케팅의 출발점인 기업의 사명(mission)과 비전(vision)을 설명하기 위한 밑밥이었다. 그 둘은 사람의 꿈과 희망이나 같은 말이다. 내 노림수는 이랬다. 누군가 자신의 꿈과 희망을 그럴싸하게 이야기 하면 '좋습니다. 여러분들이 갖고 계신 그 아름답고 건강한 꿈과 희망은 바로 기업의 지향점인 미션과 비전으로 정의 되는 것입니다'로 받아 치는 거였다. 치밀해 보였지만 계획은 매번 수포로 돌아갔다. 바라던 대답이 나오지 않아서였다. 

세상은 변화무쌍하다. 미래는 불투명하다. 시계는 제로(0)다. 한 치 앞도 예측할 수 없다. 꿈과 희망 자체가 무의미 할지 모른다. 그냥 그때그때 상황에 맞춰, 임기응변하며 사는 것도 괜찮은 전략일 수 있다. 하지만 분명히 말하건대 그건 아니다.

명확한 지향점과 목표는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목적지 없이 무작정 길을 나서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다만 그건 고정불변한 게 아니다. 수시로 바뀔 수 있다. 시대와 사회의 흐름에 맞춰 언제든 수정이 가능해야 한다. 가장 근본적인 꿈과 희망은 있어야 한다.

말은 이리 하지만 솔직히 나는 이런 자격이 없다. 내가 꿈도 희망도 없이 마구잡이로 살아와서 그러는 건 아니다. 언제나 그건 있었다. 나 죽을 때에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지, 그걸 위해 이루어야 할 목표가 무언지는 잘 알고 있었다. 문제는 실천이었다. 나는 게을렀다. 나태하기가 이를 데 없었다. 갈 곳은 알고 있었지만 가려 들지 않았다. 어떻게 가자는 계획까지 세워 놓고도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그냥 생각만 했다. 머리만 굴렸다.

어떻게 보면 그게 더 심각한 문제다. 사람의 꿈과 희망은 그 자체보다 도전에 더 큰 의미가 있다. 멋진 꿈이 있은들 도전하지 않는다면 아무 의미가 없다. 그냥 구두선에 불과하다. 나는 그런 헛짓에 능한 사람이었다. 그러다 1년 전 참으로 오랜만에 새로운 도전에 나선 거였다. 오랜만이라 더 열심히 했다. 그런데 그만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이번이 마지막일 수도 있다는 예감은 누구보다 내가 나를 잘 알아서였다. 또 머릿속으로 헛꿈만 잔뜩 꿀 게 뻔해 보여서 그랬다.

게다가 낼 모래 예순이다. 사람의 나이와 꿈의 크기는 반비례한다. 나이를 먹을수록 꿈은 쪼그라 든다. 시야도 좁아지고 기력도 달린다. 바라는 게 줄어든다. 포기는 빨라진다. 의욕도 의지도 사그라든다. 꿈꾸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게 여겨진다. '아닌데? 내 나이 칠십인데 나는 늘 꿈을 꾸며 사는데?' 하며 펄쩍 뛰실 분도 있겠지만 사실이 그렇다. 적어도 내 경우엔 그렇다. 그 과정이 이미 시작됐다는 느낌마저 든다. 쎄하다.

이 세상 끝 날 때까지

다시 신부님께서 말씀하셨다.

"우리 신앙인들은 참 엉뚱한 욕심쟁입니다. 영원한 세상, 영원한 삶을 꿈꿉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런 꿈마저 이루어주시려 애 쓰시는 분입니다. 그런 의지를 당신의 죽음과 부활과 승천으로 몸소 보여주신 분입니다."

그러니까 신부님께선 그리스도인으로서의 꿈과 희망을 이야기 하신 거였다. 영원한 삶이란 게 현실적으론 불가능한 꿈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당신을 믿고 따르는 우리들이 꾸는 것이라면 능히 이루어주실 것이라는 말씀이었다. 하늘에 올라가신 그 모습 그대로 다시 오셔서 그 약속을 지킬 것이란 말씀이었다. 예수님은 언제나 우리곁에 머물면서 우리의 꿈과 희망을 이뤄주기 위해 고군분투하신다는 말씀이었다.

아, 그렇다면 나도 새로운 꿈을 꾸어도 되지 않을까. 희망을 가져 봐도 되지 않을까. 예수님께서 도와주신다지 않는가. 물론 지난 날처럼 꿈만 꾸고 게으름만 부린다면 아무짝에도 소용 없을 거다.

지난 1년 동안 그랬던 것 이상으로 부지런히, 열심히 뛰어야 할 일이다. 그보다 먼저 예수님을 진정으로 가슴에 모시고 당신의 충성스런 어린 양부터 되어야 한다. 그래야 아주 조금의 가능성이나마 보이지 않겠는가.

그래 한 번 그리 해보자. 벌써 다 포기하기엔 많이 이르다. 아직은 심장이 뛰고 사지는 멀쩡하다. 당신의 약속을 믿고 그에게 의지해 보는 거다. 거기에 주님은 이렇게까지 든든하게 약속 하신다. 무엇을 더 바라는가.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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