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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재규 전중앙정보부장의 박정희암살 현장검증 장면
 김재규 전중앙정보부장의 박정희암살 현장검증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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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인단은 여러날 동안 합숙을 하면서 「상고이유서」를 작성하여 법원에 제출했으나, 당시 계엄령의 엄혹했던 상황이라 언론에서는 전혀 보도되지 않았다. 따라서 김재규의 재판은 밀폐되다시피한 공간에서 최소의 사람만이 지켜볼 수 있었을 뿐이다.

「상고이유서」의 특이점의 하나는 10ㆍ26 이후 '서울의 봄' 시기에 개헌론이 제기되고 헌법이론 중 새로 저항권이론이 등장한 것과 관련, 10ㆍ26거사를 국민저항권의 발로로 제시한 것이다.

맹자의 역성혁명론이나 플라톤의 폭군정벌론에서 보는 바와 같이 고대봉건군주정치 시절에도 국민의 자유와 재산을 침범하는 폭군은 반드시 절멸되어야 하고, 그 정벌은 도덕적 선(善)으로 평가받아 마땅하다고 하여왔고, 기원 12~13세기의 유명한 기독교 신학자인 존 솔스베리도 "참된 군왕은 신의 영상이므로 존경되고 추앙되고 또한 그에 복종하는 것이 의무이지만, 폭군은 이미 신으로부터 버림받은 사악의 영상이므로 일반적으로 피살되어야 한다. 그것은 폭정은 유독(有毒) 식물로 자라는 나무이기 때문에 잘라야 한다" 하여 폭군토벌의 신학적 정당성을 역설한 바 있으며, 근대 초기에 로크나 루소는 사회계약론의 이론에서 "누구나 간에 수임받은 범위를 넘어 법률에 의하지 아니하거나 법률을 악용하여 상대방의 권리를 침해하는 자는 폭력을 행사하는 것에 해당한다. 이러한 상태하에서는 그자와의 계약은 이미 해약되어 그 계약상 의무에서 해방되므로 모든 사람은 자기 자신을 방위하고 침략자에 저항할 권리를 갖는다. 이것은 너무나 명백한 사리이기 때문에 국왕의 권력과 신성성의 위대한 옹호자인 바클래까지도 그러한 경우는 국민이 군왕에 저항하는 것을 합법적이라고 인정 안 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하여 거듭 논의되고 일반적 인정을 받아, 드디어 저항권은 현대에 이르러 실정법으로까지 등장하게 된 것입니다.

「상고이유서」는 저항권사상의 근거로 미국독립선언과 버지니아 인권선언, 1789년 프랑스의 인권선언 등을 예시하고, 한국 헌법학자들이 제시한 저항권사상도 아울러 소개하였다. 「상고이유서」중 관련 부문이다.
 
 최후진술하는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
 최후진술하는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
ⓒ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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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컨대 오늘날 저항권은,
첫째로, 그 나라 헌법에 규정되어 있고 없음을 가림이 없이 당연한 권리고 인정되어야 한다. (이 점에 대한 참고로 1956년 8월 서독연방정부에 의한 공산당 해산 사건에 대한 독일연방공화국 헌법재판소 판결 이론 중 일부를 인용하면 "서독 헌법은 저항권의 조항을 두고 있지 않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와 같은 저항권이 이 헌법질서에서 인정될 수 있느냐 하는 문제가 애당초부터 부정적으로 대답될 것은 아니다. 특히 명백한 불법정권에 대한 저항권은 현대 법률관에 있어서는 결코 생소한 것이 아니다. 그와 같은 불법정권에 대하여 정상적인 법적 구제가 불가능하다 함은 우리가 경험을 통하여 잘 아는 바이다. 이 점에 대한 자세한 조사는 필요하지도 않다….

그리고 성문규정이 없는 경우에 굳이 성문적 근거를 찾자면 헌법의 전문. 국민주권의 원리.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보장하는 헌법의 기본권 규정의 이면해석 등이 바로 그 근거가 된다는 것도 많은 학자의 찬동을 얻고 있는 실정이고,

둘째로, 저항권은 자유민주주의의 헌법질서유지와 기본적 인권의 수호를 위해서만 허용된다. 따라서 그것을 파괴하는 행위에는 여하한 경우에도 저항권 이론은 적용될 수 없다.

셋째로, 저항권은 그 헌법질서에 의하여 보장된 모든 방법에 의한 권리구제가 되지 않을 때에 최종적으로 적용된다. 따라서 헌법위원회라든가 사법기능이 건재하고 급박하지 않을 때에는 적용될 수 없다.

넷째로, 그 형태는 수동적 저항이나 능동적 저항이나 폭력적 저항이나 비폭력적 저항이나를 가리지 않고 위 세 가지 요건만 충족하면 적법한 저항권 행사로 인정된다고 하는 것이 그 골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변호인단은 피고인의 본건행위 즉 "박정희 대통령은 유신헌법의 제정으로 자유민주주의를 말살하고 그 불법을 유지 존속시키는 유신의 핵이었으므로 자유민주주의를 회복하기 위하여 그 핵을 제거하는 수단으로 다른 선택방법이 없어 그를 살해한 행위가 위 저항권 행사에 해당한다"고 분명히 제시하였다.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인물열전] 박정희를 쏘다, 김재규장군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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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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