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5일 오후 강원 원주종합체육관에서 열린 2019∼2020 프로농구 원주 DB 프로미와 울산 현대 모비스의 경기. 현대 유재학 감독이 작전 지시를 하고 있다.

유재학 감독 ⓒ 연합뉴스

 
2020-2021시즌을 준비중인 한국 프로농구 10개 구단들은 최근 사령탑 인선을 모두 마무리했다. 지난 시즌을 끝으로 계약기간이 만료된 울산 현대모비스(유재학)와 인천 전자랜드(유도훈), 서울 삼성(이상민), 원주 DB(이상범)는 각각 기존 사령탑들과 재계약했다. 한편 성적부진으로 추일승과 현주엽 감독이 물러난 고양 오리온과 창원 LG는 각각 강을준 감독과 조성원 감독을 새롭게 영입하며 분위기 전환에 나섰다.

전체적으로 구단들이 급격한 변화보다는 안정감에 더 무게를 둔 모습이다. 경험이 부족한 초보 감독이나 젊은 인물보다는, 프로무대에서 어느 정도 인지도와 경력이 검증된 인물을 선호하는 현상이 두드러진다. 최고령은 63년생 동갑내기인 유재학-전창진(KCC) 감독이다. 최연소는 72년생인 이상민(삼성) 감독이다. 프로 감독 7년차인 이상민 감독은 현주엽 전 LG 감독의 사임과 김병철 오리온 코치의 감독 승격이 불발되면서 졸지에 막내가 됐다.

유재학-유도훈 감독은 프로무대를 대표하는 '장수 감독'들이고, 강을준 감독은 무려 9년 만에 현장에 복귀했다. 조성원 감독은 남자프로농구 1군 감독은 처음이지만 이미 여자농구 KB국민은행-명지대 감독 등을 거치며 이미 지도자 경험이 풍부한 베테랑이다. 한편으로 최근 몇 년간 프로무대에 새롭게 등장한 '스타 출신 젊은 감독'들이 큰 성과를 남기지 못한 것도 '안정'에 방점을 찍은 하나의 이유가 된 것으로 보인다. 

10개 구단 감독들은 다음 시즌을 앞두고 저마다 고유의 도전의식과 뚜렷한 농구철학을 드러내며 기대감을 모으고 있다. 유재학 감독은 '프로스포츠 역대 최장수 감독 기록'에 도전한다. 유 감독은 1997년 대우 제우스 감독을 시작으로 23년째 KBL에서 한차례의 경질이나 중도 공백기 없이 개근하고 있는 감독계의 전설이다.

특히 2004년 3월 30일 전자랜드에서 지금의 모비스로 처음 자리를 옮긴 이후로만 16년째 지휘봉을 잡으며 프로농구 역사상 단일팀 최장수 감독 기록을 세웠다. 유 감독은 최근 모비스와 3년 재계약을 맺으며 2023년 5월 31일까지 지휘봉을 보장받았다. 만일 계약 기간을 모두 채운다면 19년 2개월로 김응용 전 프로야구 감독(17년 11개월)을 뛰어넘어 국내 4대 프로 스포츠를 통틀어 최장수 감독 신기록을 세우게 된다.

유 감독이 이끄는 모비스의 다음 시즌 과제는 '리빌딩'이다. 모비스는 지난 시즌 라건아와 이대성이 팀을 떠나고 간판 양동근이 은퇴하며 변화의 시기에 접어들었다. 모비스는 최근 FA시장에서 장재석, 이현민, 김민구, 기승호 등을 폭풍 영입했고 NBA 출신의 외국인 선수 숀 롱과의 계약도 확정지으며 활발하게 전력보강에 나섰다. 유 감독이 처음 모비스에 부임하며 팀재건에 나섰던 2004년과 분위기가 흡사하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양동근이 없는 모비스의 새로운 리더를 만들어내는 것과, 장재석-이종현-함지훈 등 국가대표급 빅맨들의 공존을 이끌어내는 것이 유재학 감독의 숙제다.

유도훈 전자랜드 감독과 이상민 삼성 감독도 재계약에는 성공했지만 비교적 짧은 '2년'이라는 기간만 보장받은 게 눈에 띈다. 유도훈 감독은 '무관의 명장'이라는 꼬리표를 떼어내는 게 숙제다. 유 감독은 2009년 11월 전자랜드 감독대행을 시작으로(정식 감독 취임은 2010년 4월) 지금까지 11년째 지휘봉을 잡으며 유재학 감독 이후 두 번째로 한 팀을 오래 이끈 장수 감독이 됐다. 정규리그 통산 331승으로 역대 KBL 감독 통산승수 6위에 올랐으며 이중 전자랜드에서만 292승을 올려 구단 역사상 최다승 감독이기도 하다.

유도훈 감독은 부임 기간 꾸준히 팀을 플레이오프로 이끄는 성과를 올렸으나 우승 경력이 없다는 게 아킬레스건이다. 2018-19시즌 팀을 사상 최초로 챔프전에 올렸으나 모비스에 막혀 준우승에 그쳤다. 통산 300승 이상을 거둔 감독 중 우승경력이 없는 것도 유 감독이 유일하다.

이상민 감독은 능력에 대한 신임보다는 '마지막 기회'를 한 번 더 얻었다는 인상이 강하다. 프로농구를 대표하는 '스타출신 감독'의 대명사로 꼽히지만 삼성 감독 취임 이후 성적은 7시즌간 플레이오프 진출 2회, 챔프전 1회 진출(준우승)에 그쳤고, 구단 역대 최악의 성적으로 꼴찌만 두 번이나 기록했다. 프로농구를 대표하는 명문구단 삼성의 역사상 최장수 감독 기록을 눈앞에 두고 있지만, 통산성적은 313경기 129승 184패(.412)로 승률이 5할도 되지 않을만큼 성과는 민망한 수준이다. 이번 2년간 가시적인 성과를 보여주지 못하면 다음 기회는 없을지도 모른다. 

조성원 감독은 창원 LG의 명가재건과 함께 '공격농구'의 부활을 목표로 들고 나왔다. 조 감독은 2000-01시즌 LG에서 선수로 활약하며 평균 25.7점으로 역대 국내 선수 한시즌 평균득점 1위 기록을 세웠고 MVP까지 차지한 바 있다. 당시 LG는 빠른 공수전환과 미칠듯 터지는 외곽슛을 앞세워 경기당 평균 100점대를 넘나드는 역대 최고의 공격농구를 선보였다.

이후로 KBL의 트렌드가 수비 중심으로 바뀌면서 더 이상 그 정도의 공격력을 보여준 팀은 나오지 않고 있다. 지난 시즌 국내 선수들의 득점력이나 공수전환 속도가 리그 최악이었던 LG가 조성원 감독 부임으로 얼마나 바뀔지가 관건이다. 또한 LG는 전자랜드, KT와 함께 창단 이후 아직까지 챔프전 우승이 없는 팀이기도 하다.

'작전타임의 연금술사'로 유명한 강을준 오리온 감독은 오랜 공백기와 농구스타일에 대한 선입견을 극복하는 게 과제다. 강 감독은 창원 LG 시절 팀을 매년 플레이오프로 이끌었지만 단기전에서 번번이 약한 모습을 드러냈다. '니갱망' '완빵' '성리학'등 이른바 인터넷 밈으로 더 유명해진 작전타임 어록 때문에 이미지가 과장되게 희화화되기도 했다. 

공교롭게도 튀는 개성으로 유명한 국가대표 가드 이대성이 FA로 오리온 유니폼을 입게돼 강을준 감독과의 궁합이 벌써부터 농구팬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강 감독은 역대 프로농구 감독 중에서 가장 오랜 공백기를 거쳐 복귀한 사례이기도 하다. 

프로농구계의 대표적인 '풍운아'로 꼽히는 전창진 전주 KCC 감독은 코로나 사태로 조기종료된 지난 시즌 천당과 지옥을 오갔다. 천신만고 끝에 감독으로 복귀한 첫 시즌 초반, 약체라는 예상을 딛고 국내 선수들의 활약을 앞세워 상위권에 오르며 돌풍을 일으켰지만, 라건아-이대성의 대형 트레이드를 통하여 우승후보로 기대치가 높아진 이후에는 오히려 조직력에서 문제를 드러내며 부진했다.

결과적으로 KCC는 우승이라는 꿈을 이루지 못했고 트레이드 후유증으로 김국찬과 이대성 등은 모두 팀을 떠나며 전력누수도 컸다. 라건아도 2020-2021시즌이 끝나면 다시 팀을 떠나야한다. 전 감독으로서는 다음 시즌 어떻게 팀을 재정비해 반등을 이뤄낼수 있을지가 본인의 명예회복을 위해서도 중요한 전환점이 될 전망이다.

이밖에도 지난 시즌 나란히 공동 1위를 기록한 문경은 서울 SK 감독과 이상범 원주 DB 감독은 다시 우승의 꿈에 도전한다. SK와 DB는 비시즌 일부 선수들의 은퇴와 이적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두터운 전력을 구축하고 있다는 평가다.

간판스타 오세근의 부상 공백 속에서도 안양 KGC 인삼공사를 상위권으로 견인하며 지도력을 재평가받은 김승기 감독도 비시즌 전력유출을 최소화해 상위권 진입을 기대해볼 만하다. 외국인 선수 악재로 고전했던 서동철 부산 KT 감독은 비록 FA 이대성 영입에는 실패했지만, MVP급으로 성장한 허훈과 양홍석 등을 앞세워 다음 시즌 KT를 한 단계 더 도약시킬 것을 꿈꾸고 있다.

다음 시즌 저마다의 색깔과 목표의식을 가진 프로농구 10개 구단 감독들의 생존 경쟁과 지략대결이 더욱 치열하게 전개될 것으로 보여 기대된다. 과연 1년 뒤에도 무사히 자리를 지키고 있을 감독은 몇 명이나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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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농구 KBL 농구감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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