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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럿이 모여 공부하는 모임이 있는데 마침 한 멤버의 생일이 다가오자 선물로 어떻겠냐며 모임을 이끄는 이가 추천하는 물건이 하나 단톡방에 올라왔습니다. 언뜻 보기엔 그저 시계 같은데 뉴스 검색은 물론 걸음수도 재고 수면 관리도 해주는 등 다양한 기능이 있는 아주 '핫'한 물건이었어요.

이미 그걸 사용하고 있는 몇몇이 무척 좋다며 품평을 했고요. 저를 포함한 서너 명은 '이런 물건도 있네' 하며 놀라워했습니다. 선물이라는 게 마음의 표현이고 마음을 적극 표현하는 일은 좋은 일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니 선물을 반대할 까닭이 없지요. 다만 선물이라는 걸 선택할 때 놓치지 말았으면 하는 게 떠오르더군요. 
 
세계 곳곳에 버려진 물건들의 무덤

'전화기의 무덤'이라는 제목의 사진을 본 적이 있어요. 2013년 뉴욕에 기반을 두고 활동하는 프리랜서 사진작가 데이브 블레드소(Dave Bledsoe) 작품인데요. 뉴욕 135번가와 12번가 근처의 고가 철로 아래에 공중전화부스 100여 대가 오랫동안 방치된 걸 발견하고 찍은 사진이었어요. 당시 뉴욕 곳곳에 방치된 공중전화부스가 1만여 대가 있었다고 합니다. 같은 해 영국 노팅엄셔의 뉴어크에도 빨간 전화기 부스가 쌓인 무덤이 있었어요. 2012년 런던올림픽을 개최하면서 낡은 공중전화부스를 무더기로 교체하며 내다 버린 거지요. 
 
지구 곳곳에는 다양한 종류의 무덤이 있습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무덤과 다른 게 있다면 무덤의 주인이 물건이라는 거지요. 중국 충칭 외곽에는 노란 택시 무덤이 있습니다. 더 이상 운행할 수 없이 낡은 택시는 폐차의 수순을 밟기도 하지만 그 또한 비용이 드는지라 버려지는 택시들도 상당한가 봅니다. 
 
일본의 군마현 타마무라에는 자판기의 나라답게 자판기 무덤이 있습니다. 미국의 사막 곳곳에는 비행기 무덤이 있고요. 서아프리카 모리타니의 누아디부 항구에는 버려진 배들의 무덤이 있는데요. 배 무덤만 있지 않아요. 포르투갈의 타비라 섬 바닷가에는 한때 북적이던 항구가 쇠락하면서 버려진 닻 수백 개가 꽂혀 있는 닻들의 무덤도 있어요. 이런 무덤들은 우리 문명의 그늘을 보여주는 한 단면입니다. 새 물건에는 너나없이 관심을 갖지만 버려진 물건이 어디로 흘러 들어가 어떻게 되는지에 대체 몇이나 관심이 있을까요?
  
중국 충칭 공터에 버려진 택시들의 무덤
 중국 충칭 공터에 버려진 택시들의 무덤
ⓒ P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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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간 세계 스마트폰 생산에 쓰인 전력량은 인도의 한 해 전력소비량?

난생처음 집에 전화기가 놓이던 날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어요. 까만색 다이얼 전화기는 수화기와 몸통이 꼬불거리는 줄로 연결되어 있었지요. 통화를 오래 하면 다른 전화를 못 받는다며 얼른 끊으라던 아버지 잔소리도 기억이 납니다.

그랬던 시절에서 이젠 집집마다 식구 수만큼 전화기를 갖고 삽니다. 정보통신기술이 발전하면서 전화기의 진화는 따라갈 수 없을 만큼 빠른 속도로 진일보하고 있고요. 이름도 더 이상 전화기가 아닌 스마트폰이 되었습니다. 전화기 그 이상의 기능이 다 들어있으니까요. 가끔 사람들에게 스마트폰을 몇 번이나 교체했냐는 질문을 던져보곤 합니다. 스마트폰을 몇 번 바꾸었는지 정확히 기억하는 사람은 의외로 많지 않았어요. 스마트폰의 교체 주기도 점점 짧아지고 있고요. 
 
2007년부터 10년간 전 세계 스마트폰에 관한 통계를 본 적이 있어요. 스마트폰 한 종류의 물건을 10년 동안 무려 71억 개나 만들었더군요. 이걸 제조하느라 사용된 전력량은 968테라와트시(TWh)➊로 인도의 연간 전력소비량과 맞먹는 양입니다. 71억 개의 스마트폰을 만드는 데 들어간 광물의 양은 금 231톤, 알루미늄 13만 7418톤, 텅스텐 3124톤 등이더군요. 스마트폰 하나 만드는 데 들어가는 광물의 종류는 무려 60가지가 넘습니다. 광물 하나하나를 채굴하는 일이며 정련하는 과정에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할 것이며 얼마나 많은 주변 생태계를 집어삼킬까요? 이렇게 어마어마하게 많은 전력과 광물과 에너지를 들여서 만든 스마트폰의 교체 주기가 세계 평균 2.7년입니다, 고작.
 
과잉생산 속도에 브레이크를 걸어야

선물이 하고 많은 것들 가운데 '스마트워치'라는 게 몹시 마음에 걸렸습니다. 선물을 받을 사람은 이미 스마트폰도 있고 랩탑도 있거든요. 비슷한 기능인데 좀 더 편리한 기능을 따로 떼어 만든 그 물건이 영 탐탁지 않았습니다. 기업은 계속해서 필요를 만들어 냅니다. 그렇게 만들어내는 필요에 따라 소비를 하는 동안 이 지구에는 얼마나 많은 물건의 무덤들이 생겨날까요? 얼마나 많은 생태계는 파헤쳐질까요? 
 
약정기간 끝날 때 즈음 고장이 나는데 그럼 어떡하느냐고요? 계속 모델을 바꾸며 과잉생산하는 속도에 브레이크를 걸어야지요. 고장 난 제품을 충분히 고쳐 쓸 수 있도록 제도를 바꿔야 합니다. 지구의 자원은 결코 화수분도 아니고 지구가 언제까지 우리가 쓰고 버린 쓰레기를 감당할 수도 없는 일이니까요. 이렇게 박박 긁어 쓰고 탈탈 털어 쓰고 난 뒤 다음 세대들에게 우리는 대체 어떤 세상을 넘겨줄 건가요? 서랍 어딘가에 처박아둔 스마트폰이 있다면 얼른 우체국에 가져가야 합니다. 되살려 쓸 수 있는 부품이라도 우선 순환시켜야 하니까요. 선물이 또 다른 무덤을 만드는 일에 일조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❶  전력량을 표시하는 단위의 하나. W(와트)는 1초 동안 1J(줄)의 일을 하는 일률의 단위고, 여기에 3,600초(1시간)를 곱한 것이 와트시(Wh)다. 테라와트시(TWh)는 와트시의 10의 12승에 해당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최원형 님은 환경생태작가입니다. 서울시에너지정책위원회 교육시민소통분과 위원이며 <세상은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되어 있다>, <환경과 생태 쫌 아는 10대> 등을 썼습니다. 이 글은 <월간참여사회> 2020년 6월호에 실렸습니다.


태그:#참여연대, #참여사회, #과잉생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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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연대가 1995년부터 발행한 시민사회 정론지입니다. 올바른 시민사회 여론 형성에 기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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