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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나는 청소를 하다 말고 엄마 생각을 한다. 가만 보니 거의 매일의 일과다. 누가 들으면 대단한 효녀이거나 퍽 다정한 모녀지간인 줄 알겠지만, 모르는 소리. 생각 끝에 입밖으로 나오는 건 이런 내용이다.

"나 어릴 때, 엄마가 외출했다 들어오면 그렇게 화를 내는 거야. 집이 지저분하다면서. '니들 눈에는 저게 안 보이니?' 이게 엄마 단골 멘트였어. 동생이랑 사이좋게 잘 놀고 있는데 엄마가 난데없이 화를 내면 어찌나 억울하던지. 안 보인다고 까불었다가 맨날 된통 혼났지, 뭐."

일하랴, 살림하랴, 엄마는 늘 바쁘고 화가 나 있었다. 언니는 요령있게 화를 피해 다녔고, 동생은 어리다고 곧잘 열외가 되었지만, 나는 눈치없이 꼭 한 마디 더해 엄마의 집중 포화를 받았다. 

지천에 널린 게 코끝 찡한 사모곡 아니던가. 거기에 더하지는 못할 망정, 불혹에 접어 들고도 여태 엄마 흉이나 보고 있자니 내 스스로가 한심해서 웃음도 안 나온다. 하지만 나는 조금 더 해야겠다. 이제 시작이니 부디 내버려 두시라.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나는 엄마에게 받은 상처가 있음을, 그 상처들이 지금도 툭 튀어나와 나를 괴롭힌다는 사실을 소리 내어 말하지 못했다. 엄마는 평생 고생한 사람이니까. 늘 최선을 다했으니까. 딸인 내가 그 삶을 알아주지 못하는 것만큼 잔인한 일은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나는 내 세계에  갇혀 지냈다.

뒤돌아 흉 한 번 못 보는 딸이라니, 그렇다고 엄마에게 살갑고 따뜻했느냐 하면 결코 그렇지 않았다. 나는 늘 엄마에게 차가웠고,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고 생각했다. 스무 살이 넘고도 머리채를 휘어잡혔는데 내 어찌 따뜻할 수 있으랴. 나는 나의 냉정함을 합리화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내 입에서 봇물이 터져 나왔다. 엄마가 내게 얼마나 잔인했는지, 내 어린 날이 얼마나 공포로 물들어 있었는지, 그게 지금의 내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나는 떠들기 시작했다. 처음 한 번은 어려웠지만 하다 보니 일도 아니었다. 나는 지금도 엄마 흉을 볼 수 있다, 마음껏. 

내 이야기를 들은 누군가는 만만치 않던 제 어린 시절을 이야기했고, 누군가는 내가 너무 철이 없다고 탓했다. 또 누군가는 흔해 빠진 이야기라며 흘려 넘겼고, 다른 누군가는 내 엄마의 폭력성을 지탄했다가 도리어 나에게 욕을 먹었다. 내 엄마의 험담은 내것이지, 남에겐 허락할 수 없는 법이니까. 

그렇게 사람들은 다 각자의 반응을 보였다. 덮어놓고 위로받은 적도 있지만, 그렇지 않았던 적이 더 많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다. 서서히 마법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내 상처를 발설한 뒤부터, 나는 과거를 말하며 웃을 수 있게 되었다. 비밀처럼 쉬쉬 가두던 일들인데, 이제는 농담의 소재로 삼기도 한다. 

엄마 흉을 본 뒤로 큰 문턱을 넘었다 하면 말이 될까. 비밀이 없어진 자리에 더 단순한 감정들이 들어찼다. 엄마의 과를 말한다고 해서 그 공을 저버리는 것은 아니다. 이전의 내가 어느 것도 인정하지 못한  채 한걸음도 나가지 못했다면, 이제는 그렇지 않다. 나는 더없이 가벼워졌다. 

말하면 말할수록 가벼워지는 마법. 말할 수 없던 비밀이 말해도 되는 이야기가 되고, 어느 새 농담이 되어 버리는 이 마법, 나만 겪는 것은 아닐 터. 김설 작가의 <오늘도 나는 너의 눈치를 살핀다>를 보며 이 마법의 가루가 더 멀리 뻗쳐 나가길 바랐다. 

딸의 우울증을 세상 밖으로 꺼낸 엄마
 
 <오늘도 나는 너의 눈치를 살핀다> 책표지
 <오늘도 나는 너의 눈치를 살핀다> 책표지
ⓒ 이담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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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부제는 '딸의 우울증을 관찰한 엄마의 일기장'이다. 영재 소리를 들을 만큼 뛰어나 일찍부터 엄마의 자부심이 되었던 딸이 우울증을 앓게 되고, 저자는 인생을 돌아보게 된다. 갑상선 기능항진증과 출산우울증을 앓으면서도 억척스럽게 딸을 키웠지만, 자신의 심신도 돌보지 못한 탓에 딸의 우울증을 키워냈다는 뼈아픈 고백이 이어진다.
 
"딸아이를 덮친 우울은 딸아이의 문제가 아니라 명백히 내 문제였다. 산 넘어 산이다."(20)

스스로 권위적이고 공격적인 독재자에 변덕쟁이, 잔소리꾼, 권모술수에 능한 무자비한 엄마였다는 통렬한 자기 인식에는 놀라울 지경이다. 얼마나 많은 시간 가슴앓이를 하면 이런 말을 토해낼 수 있을까. 그녀는 엄마라는 역할에 지나치게 몰입하고 희생하며 그것을 모성으로 착각했다고 고백한다. 그것이 모두를 가두는 감옥인 줄은 몰랐다고.

그러나 이 책이 한 엄마의 자학과 반성으로 도배되어 있으리라 예상하면 큰 오산이다. 나는 남의 참회문을 보는 것이 즐겁지 않으며 더욱이 엄마의 절망이라면 절대 사절이다. 어머니여, 부디 당당하시라. 당신을 위해서도, 이왕이면 자식을 위해서도. 
 
"이제는 비탄에 빠져 있을 시간이 없다. 나의 행복을 자식에게 의지해서는 안 된다. 과거의 트라우마를 현재까지 끌어와 자신을 괴롭히는 일은 단호하게 끊어내자. 우리 두 사람의 얼굴에 드리워진 고뇌의 자국은 곧 사라질 거라고 믿고 싶다."(43)

저자는 스스로에게 분리불안이 있었음을 인정하고 다른 세상을 열어나간다. 글을 쓰고, 사람들을 만난다. 여전히 아이 때문에 울기도 하지만, 그 자리에서 멈추지 않는다. 아이의 우울을 그대로 흡수하지 않는 것. 딸에게 자기만의 방을 허락하는 것이야말로 모두를 위한 처방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살기 위해 애를 쓰는 일은 누가 대신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딸은 딸대로 나는 나대로 살기 위해 애를 쓰면 되는 일이다. 딸도 그러기를 바라고 있을 것이다."(102)

가끔은 언제쯤 회복될까 조바심도 내고, 때로는 눈치보기에도 지쳐 소리라도 지르고 싶지만, 그녀는 이제 딸의 우울증이 오히려 선물이 되었다고 말한다. 앞으로도 이 고난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고, 말할 것이라는 그녀다. 

나는 이 책을 가족 개개인의 독립 서사이자, 예상치 못한 일로 책을 출간한 저자의 계속 쓰겠다는 다짐으로 읽었다. 그러니 누구라도 그녀의 이야기에 몰입할 수 있지 않을까. 모두가 엄마는 아니지만 사연 많은 가족의 일원일 것이고, 말하고 쓰는 것으로 치유될 수 있으니.

앞서 엄마 흉을 본다고 했지만, 그것으로 끝날 리가. 나 역시 생각하고, 말하고, 쓰는 것으로, 과거를 충분히 슬퍼하고, 그 안에 갇혀 있던 엄마와 나를 흘려 보낸다. 조악한 글이 자주 부끄럽지만, 나는 이렇게 조금 더 행복해진다.
 
"내가 지금 행복을 느끼는 건 딸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아이의 우울증은 여전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나는 현재 행복하다. 이것은 상당히 중요한 문제다. 나의 행복을 전적으로 아이에게 의지하지 않았다는 뜻이고, 나만의 인생을 만드는 일에 어느 정도는 성공했다는 의미기도 하다. 매우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생각한다."(210)

오늘도 나는 너의 눈치를 살핀다 - 딸의 우울증을 관찰한 엄마의 일기장

김설 (지은이), 이담북스(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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