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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레스트 산에 오르는 것을 '등산'이라 하진 않는다. 어딘가 약하고 밋밋하다. 그런 표현은 왠지 동네 야산에나 어울릴 법하다. 곳곳에 천길 크레바스에 언제 눈사태가 덮칠지 모른다. 사람의 접근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그런 신성한 영산에 '등산'이라니. '등반'이니 '등정' 따위도 모자르다. 크나 큰 결례다. 대신 우린 '도전'이란 단어를 쓰곤 한다. 에베레스트 도전. 일면 겁도 없이 대자연에 덤벼드는 듯 시건방지게도 들리지만 그게 훨씬 잘 어울린다.

아마존 정글에 갈 때도 그렇다. 거기에 여행이나 관광이란 말을 붙여 쓰진 않는다. 살인적인 무더위와 습기, 맹독을 품은 벌레들과 식인 맹수가 수시로 출몰한다. 지상에서 가장 위험천만한 지역이다. 그런 곳에 간다는데 고작 여행이나 관광 따위로 표현하는 건 모욕에 가깝다. 우린 그 대신 탐험이나 모험이라 부른다. 정글 대 탐험, 아마존으로 떠나는 아찔한 모험. 그 정도는 써줘야 예의를 갖추는 느낌이다.

그런데 그게 비단 그런 '느낌적인 느낌' 때문일 뿐일까. 아니다. 에베레스트나 아마존에 가는 걸 '도전'이나 '모험'이라 표현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우리는 그 곳에 대해 많이 아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못하다.

모르는 게 훨씬 더 많다. 여전히 미지의 세계다. 언제, 어디서, 어떤 상황이 벌어질 지 아무도 모른다. 그런 예측불가의 상황이 우리의 목숨을 앗아갈지도 모르는데도 그렇다. 그래서 우린 함부로 말 하지 못한다. 속으로는 몹시 두려워 하고 있는 거다. 도전과 모험이란 말은 그런 외경심의 표현이다.

그런 차원에서라면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건 '죽음'이다. 죽음이야말로 아무도 그 실체를 알지 못한다. 체험해 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경험해 본 사람도 없다. 그러니 예측도 전혀 불가능하다. 한번 당하면 되물릴 수도 없다. 그걸로 모든 게 끝이다. 그래서 죽음이 두려운 거다. 에베레스트나 아마존 밀림에 간다는 건 그 자체로 죽음에 한 발 더 다가서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모두가 두려워하는 곳엘 제 발로 가겠다는 거다. 이럴 때 필요한 건 뭐?

그렇다. '용기'다. 용기는 '도전'과 '모험'의 필요조건이다. 용기는 두려움에 대한 강렬한 저항의 정신이다. 두려움을 극복하려는 굳센 의지다. 그에 굴하지 않는 씩씩하고 당당한 심성이요 일관된 삶의 자세다. 두려움을 모른다는 것과는 구별된다. 그건 그냥 부나비의 만용이다. 스스로에게는 물론 남에게도 해를 입힌다. 지혜로운 용기는 오히려 두려움의 실체를 깨닫게 한다. 슬기롭게 위기를 이겨 나갈 수 있는 최선의 방도를 찾아준다. 그게 진정한 용기다.

용기는 실천을 담보한다. 자신의 뜻과 의지를 곧바로 행동에 옮기게 한다.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기꺼이 모든 것을 바친다. 거칠 것 없이 앞으로 나아간다. 이미 실패했던 일일지라도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설령 그게 마지막일지언정 분연히 다시 일어선다. 의연하게 같은 길을 나선다. 용자는 신념을 함부로 내던지지 않는다. 불의를 참지도 않는다. 공자께선 "의를 보고 행하지 않음은 용기가 없음이다"라 하셨다.

성령강림대축일에 받은 성령의 은사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로운 7가지 말씀. '지혜, '경외', '공경', '식견', '지식', '통찰', 그리고 '용기'를 우리에게 선사하신다
▲ 성령칠은 카드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로운 7가지 말씀. "지혜, "경외", "공경", "식견", "지식", "통찰", 그리고 "용기"를 우리에게 선사하신다
ⓒ 이상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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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마지막 주일 31일은 성령강림대축일이었다. 신부님은 강론을 통해 이날의 의미를 자상하게 설명해 주셨다. 그 말씀을 요약하면 이랬다.

"성령은 예수님께서 주신 약속의 선물이다. 그것이 이 땅에 오시어 그리스도께서 계획하신 일이 마침내 완성된 날이다. 그로 인하여 겁쟁이 사도들은 진정한 믿음과 용기를 갖게 되었으며 기꺼이 복음과 순교의 길로 나아갔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생명이 움텄으며 마침내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

더욱이 구약성서에는 이날 유다인들이 시나이 산에서 모세의 율법을 받은 오순절로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겹경사다. 이래저래 그리스도인들에겐 참 뜻깊은 축일이다.

평소 같으면 이날 '성령 칠은 카드' 뽑기를 했다고 한다. 교회가 7가지 은혜로운 말씀이 적힌 카드를 만들어 미사 후 신도들에게 한 장씩 뽑도록 하는 이벤트다. 7종의 카드엔 각각 '지혜', '경외', '공경', '식견', '지식', '통찰' 그리고 '용기'가 적혀 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부연설명도 함께 실려 있다. 신도들은 제 손으로 뽑은 카드에 적힌 은사의 말씀을 길이 기억하고 자신의 삶 속에 투영함으로써 신앙생활의 각오를 새삼 다진다고 한다.

그런데 올해는 그 행사가 없었다. 코로나19 때문이다. 이 독한 바이러스는 전대미문, 미사까지 중단하게 하더니 그런 소소한 신앙생활의 재미까지 빼앗아 가 버렸다. 아쉬웠다. 정말 미웠다.
 
나는 7가지 은사 중 용기를 뽑았다. 내게 꼭 필요한 말씀이었다. 어쩜 이리 나를 잘 아시는지.
▲ 용기를 잃지 마라 나는 7가지 은사 중 용기를 뽑았다. 내게 꼭 필요한 말씀이었다. 어쩜 이리 나를 잘 아시는지.
ⓒ 이상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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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 가톨릭 평화 방송(CPBC)은 '나의 성령칠은 뽑기'라는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해 무료로 배포했다. 본당에서 하던 걸 모바일로 옮긴 거다. 해당 앱에 들어가 자신의 이름이나 세례명을 입력하면 그에 맞는 카드를 한 장씩 주었다. 이른바 언텍트(untact) 카드 뽑기였다. 교리 선생님께서 그 앱을 우리 반 단톡방에 올려 주셨다. 나도 해 봤다. 대번에 '용기'를 뽑았다. 거기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용기 - 하느님을 열렬히 섬기게 하며, 죄와 유혹을 거슬러 용감히 싸울 수 있는 능력이며 순교까지 하면서 신앙을 증거 할 수 있는 은혜. 유혹이나 장애물, 고통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을 받습니다."
 
눈으로 들어와 마음에 콕콕 박히는 말씀이었다. 하나하나가 지금 내게 정말 절실하게 필요한 덕목들이었다.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어찌 그리도 지금의 내 심경을 잘 알고 계시는 건지 신기했다.

게다가 예수님은 '유혹'이란 말을 두 번이나 강조하셨다. 뜨끔했다. 내가 유난히 유혹에 약하다는 것까지 알고 계신 거였다. 그랬다. 고백하건대 나는 조금 더 편한 길, 한 방에 어찌 되길 바랐다. 그런 거 이젠 안 된다는 말씀이었다. 이 기회에 그것까지 싹 뜯어 고치라는 준엄한 명령이었다.

유혹을 이겨내고 순교의 길로

달포쯤 됐다. 공들여 추진하던 프로젝트가 무산돼 실의에 빠져 있었다. 그러다 지난 '주님 승천 대축일 미사(5월 24일)'에서 예수님께서 전해주신 약속을 믿고 다시 꿈을 꾸어 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때 예수님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와 함께 있으리라' 하셨다. 자그마치 이 세상의 '마지막 끝 날'이라셨다. 이 보다 더 든든한 말씀이 또 어디 있을까(2020년 6월2일 자, "50세 넘은 지가 언제인데 '꿈이 뭐냐'는 질문" 기사 참조).

막상 그러기로 결심까진 했는데, 솔직히 막막했다. 이 판국에 내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싶었다. 공연히 섣불리 나섰다가 또 실패할까 두렵기도 했다. 자꾸 실패만 거듭하면 무뎌진다. 그러려니 하게 된다. 점점 더 일어나기 어려워진다. 쉽게 결정할 수 없었다.

그렇게 일주일을 주저하기만 했다. 그런 속내를 어찌 아셨는지 주님께서 이번엔 덜커덕 용기까지 선물로 주신 거다, 그러니 얼마나 고맙고 감사한가. 정말 놀랍도록 크신 은혜였다.

불끈 힘을 받았다. 과감하게 칼을 빼 들었다. 오래도록 속으로만 품어왔던 계획 중 하나였다. 그토록 긴 시간 고민하고 검토했으니 이제 충분하다. 게다가 주님께서 저리 든든하게 뒤를 봐 주시는데 뭐가 무서우랴.

이렇게까지 해 주시는데 아무것도 안 하는 건 그야말로 배신, 배반이다. 대역무도에 다름 아니다. 일단 시작하고 볼 일이다. 스스로 발등 불을 떨어뜨려야 한다. 그래야 움직인다. 더 볼 거 없다. 하자, 해 보자.

다시 한 번 카드를 꺼내 읽었다. 마지막으로 용기의 의미를 되새겨 보고 싶어서였다. 그런데 처음엔 무심코 넘겼던 한 마디가 눈에 걸렸다.

'순교까지 하면서 신앙을 증거 할 수 있는 은혜'

'순, 교'다. 다른 것도 아니고 순교라 하셨다. 솔직히, 정말 솔직하게 그것까지는 자신이 없다. 그 약속만은 지키지 못할 것 같다. 맞다, 난 이토록 우유부단한 인간이다. 지금까지 계속, 쭉, 지겹도록, 지지리도 이리 살아 왔다. 정말 구제불능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더 이상은 안 된다. 이참에 그것도 확 어찌 해 봐야겠다. 그게 용기를 주신 주님의 뜻일 게다.

태그:#용기, #성령강림, #도전과 오험, #순교, #우유부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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