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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3학생이 코로나19 확진을 받은 서울 중랑구 원묵고등학교에서 8일 오전 학생, 교직원 600명을 대상으로 교내에 설치된 선별진료소에서 전수조사가 실시되고 있다. 학생들이 교직원의 안내를 받으며 손소독을 한 뒤 교문을 들어가고 있다.
 고3학생이 코로나19 확진을 받은 서울 중랑구 원묵고등학교에서 8일 오전 학생, 교직원 600명을 대상으로 교내에 설치된 선별진료소에서 전수조사가 실시되고 있다. 학생들이 교직원의 안내를 받으며 손소독을 한 뒤 교문을 들어가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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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방역 담당자라는 원치 않는 일이 주어진 이후 난 선생님들의 눈치를 보는 일이 잦아졌다. 교사로서 사스나 메르스를 경험해 보았지만 코로나19는 그것들과 비교조차 할 수 없었다. 그때 나는 학교 방역 담당자가 정해 준 업무를 충실히 하면 그만이었고, 나 같은 일반 교사에게 주어진 업무라고 해봐야 등교하는 아이들 발열 체크가 전부였다. 그리고 다행히 치료제가 빨리 나와 공포의 시간도 그리 길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지 메르스와 사스 때를 떠올리면 기억나는 것이 별로 없고, 힘들었다는 생각 역시 들지 않았다.

그러나 코로나19는 달랐다. 감염의 속도, 규모, 파급력 등이 모두 상상을 초월했으며 이는 사람들을 공포에 빠뜨렸다. 학교도 예외는 아니었다. 2020학년도 담당 업무를 정한 2019년 12월, 학생생활안전부장이라는 직을 떠맡을 때만해도 학교폭력 발생을 줄이고 또 원만히 처리하는 것이 학생부 업무의 90% 이상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근래 '안전' 담당 부서이니 보건교사와 함께 코로나19 방역 협의를 하고 대책을 세우라는 교장선생님의 지시를 받고 난 그야말로 멘붕이 빠졌다. 팔자를 탓할 수밖에는 없었다. 그것도 잠시 동안 밖에 허락되지 않았다.

보건교사, 교감선생님과 협의해 방역 TF팀을 만들었다. 과거의 경험에서 참고할 만한 것이 있는지 보려고 메르스, 사스 때의 학교 방역 대책 같은 것을 찾아보았지만 없었다. 그나마 다행스럽게 사립학교여서 그 당시 업무 담당자가 남아 있었다. 그분들께 어찌해야 하는지 물어보니 일단 지침을 숙지하고 업무를 최대한 공평히 나누라고 하셨다. 그리고 투덜거리는 사람에 너무 상처 받지 말라는 팁도 주었다.

코로나19의 발생 현황을 수시로 확인하며, 매일 같이 날아오는 현장성 떨어지는 지침을 당혹감에 읽다 지칠 즈음 지침은 슬쩍 '가이드'로 바뀌어 내려왔다. 학교 형편에 맞게 적용하라는 '가이드'는 담당자인 나와 보건교사 그리고 방역 TF팀의 부담을 더 가중시켰다. 의지할 대상마저 사라진 느낌이었다. 힘들었다. 그래도 학교는 학교여야 했고 대책은 촘촘히 세워야 했다.

학생 등교 준비를 하다 다시 연기하고, 그에 따른 대책을 다시 세우고... 이런 일이 반복될 때마다 선생님들은 점점 날카로워졌다. 대책을 세우고 이야기해도 또 바뀔 텐데 하며 주의 깊게 듣지 않는 분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대책을 세우고 그에 따라 업무를 나누는 일이 점점 더 힘들어졌다. 선생님들 중에는 학교에서 아이들이 감염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사명감에 불타 더 엄격한 방역 대책을 요구하시는 분도 있는 반면에 집단생활이라 어떤 대책으로도 감염을 막을 수 없는데 왜 등교시키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하시는 분도 있었다.

또 선생님들의 건강은 왜 신경 쓰지 않냐고 항의하시는 분도 있었다. 이런 분들과 소통하는 것은 그리고 그에 따라 대책을 세우고 업무를 나누는 것은 상상 이상으로 힘들었다. 급격히 난 내 한계를 드러내고야 말았다. 소통을 포기하고 되지도 않는 철저한 공평성을 내세워 업무를 나누어 통보한 것이다. 그에 대한 반발을 애써 무시했지만 나 역시 상처 받고 있었다. 선생님들을 탓했다.

나의 무례함에도 선생님들은 선생님들이었다. 학생들이 등교하자 선생님들은 불만을 접고 자신들에게 주어진 업무를 충실히 해주셨다. 난 안도했다. 그런데 곧 내가 공평함에 치우쳐 놓쳤던 일들이 드러났고, 별로 힘들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일들이 실제는 아주 힘든 일임을 알게 되었다. 어찌해야 하나 막막했다. 내 무능력과 게으름 그리고 잘난 척으로 학생들이, 선생님들이 힘들어하는 것을 보는 것이 괴로웠다. 그리고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 것이 더 힘들었다.

바로 그때 말하지도 않았는데 몇 분의 선생님이 문제의 현장에 나서 주셨다. 또 몇 분이 도울 일 없냐고 말씀하셨다. 다음 날도 또 그다음 날도 선생님들은 함께 해 주셨다. 감동이었다. 눈물이 핑 돌았다. 주어진 일도 팔자 탓을 하며 수동적으로 하는 나와 안 해도 되는 힘든 일을 스스로 하시는 분들과 클래스의 차이가 느껴졌다. 이런 분들을 믿지 않고 나 잘났다고 설친 내가 한없이 부끄러웠다.

나는 요즘 학교 여기저기를 왔다 갔다 하느라 하루 2만 보 이상을 걷고 있다. 집에 가면 나도 모르게 초저녁에 잠에 곯아떨어지는 생활을 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 나는 예전만큼 힘들지 않다. 일이 익숙해지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나에게는 문제가 생기면 힘써 줄 선생님들이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스스로 '힘듦'을 짊어진 사람들, 그분들이 있어 나는 지금 아니 앞으로도 행복할 것이다.

태그:#코로나19, #학교 방역, #감동, #도움, #업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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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소재 중학교에서 근무하고 있는 교사입니다. 또 학교에 근무하며 생각하고 느낀 바를 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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