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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산김씨의 태 자리 평장사에 우뚝 선 소나무 한 그루. 애국가에 나오는 ‘남산 위의 저 소나무’처럼 생김새가 남다르다. 우리 국민이 유별나게 좋아하는 소나무다.
 광산김씨의 태 자리 평장사에 우뚝 선 소나무 한 그루. 애국가에 나오는 ‘남산 위의 저 소나무’처럼 생김새가 남다르다. 우리 국민이 유별나게 좋아하는 소나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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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꽃 향기가 코끝을 자극한다. 비릿하면서도 진한 내음이다. 그윽한 치자향도 코끝을 간질인다. 한낮의 햇볕이 뜨겁다. 때 이른 무더위가 찾아왔다. 6월의 더위를 피해 산간 마을로 가는 중이다.

'대나무의 고장' 전라남도 담양군 대전면의 평장마을이다. 평장마을은 한낮의 더위를 피할 수 있는 숲 그늘이 좋은 한재골의 끝자락에 자리하고 있다. 한재골은 병풍산(822m)과 불대산(720m)이 품은 계곡이다. 담양 대치(大峙·한재)와 장성 북하를 남북으로 잇는 물길이다.
  
담양 한재골 계곡. 코흘리개였던 어린 시절, 봄과 가을에 소풍을 갔던 계곡이다. 그 시절의 추억이 골골마다 아른거리고 있다.
 담양 한재골 계곡. 코흘리개였던 어린 시절, 봄과 가을에 소풍을 갔던 계곡이다. 그 시절의 추억이 골골마다 아른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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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일 현충일을 맞아 가족과 함께 한재골을 찾은 어린이들이 계곡물에서 한낮의 더위를 식히고 있다.
 지난 6일 현충일을 맞아 가족과 함께 한재골을 찾은 어린이들이 계곡물에서 한낮의 더위를 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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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흘리개였던 어린 시절, 해마다 봄과 가을에 소풍을 갔던 계곡이다. 여름엔 친구들과 함께 무더위를 식히러 찾았다. 겨울에는 아버지 어머니를 따라 땔감을 구하러 다니던 골짜기다.

그 시절 한재골은 나를 설레게 했다. 계곡이 깨끗하고 숲이 울창한 건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소풍을 가는 날, 도시락에는 삶은 달걀이 간식으로 들어있었다. 무덤자리 넓은 잔디밭에서 장기자랑을 하고, 보물찾기를 하는 것도 큰 즐거움이었다.

어떤 시인은 '나를 키운 건 8할이 바람'이었다고 했다. 누군가는 '바다'였다고 했다. 그 표현을 빌려서, 나를 키운 건 숲이었다고 자신 있게 얘기한다. 철 따라 소풍을 가고, 나무를 하러 다녔던 한재골은 지금 내 인생의 자양분이 됐다.
  
광산 김씨의 태 자리에 들어서 있는 담양 평장사. 노랗게 활짝 핀 금계국이 입구를 환하게 밝히고 있다.
 광산 김씨의 태 자리에 들어서 있는 담양 평장사. 노랗게 활짝 핀 금계국이 입구를 환하게 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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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재골 옛길의 시작점에서 본 담양 평장사 전경. 평장사는 불대산이 품고 있는 광산 김씨의 태 자리다.
 한재골 옛길의 시작점에서 본 담양 평장사 전경. 평장사는 불대산이 품고 있는 광산 김씨의 태 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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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재골 자락의 평장마을에 평장사(平章祠)가 있다. 불대산이 품고 있는 광산 김씨의 태 자리다. 입구에서 소나무 한 그루가 시선을 붙든다. 애국가에 나오는 '남산 위의 저 소나무' 같다. 세조가 충성을 기려 벼슬을 내렸다는 정이품송과도 닮았다.

사철 푸르고 곧다고, 우리 조상들이 예찬했던 나무다. 지금도 우리 국민이 가장 좋아하는 나무의 첫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멋진 소나무를 만나면 좋은 일이 생긴다는데, 마음이 밝아지고 발걸음은 경쾌해진다.

멋스러운 소나무를 키우고 있는 사당이 위용을 뽐내고 있다. 솟을대문으로 이뤄진 외삼문과 내삼문이 이른 아침임에도 활짝 열려 있다. 강학을 하고 모임공간으로도 쓰는 취사당(聚斯堂)이 있고, 제기를 보관하며 제수 음식을 준비하는 경모재(敬慕齋)가 배치돼 있다.

광산김씨의 세거지이고, 마을의 지명유래를 기록하고 있는 광산김씨유허비도 보인다. 사당의 규모와 기운에서 과연 '광김'이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옛 추억을 소환해 준 감꽃 떨어진 풍경. 평장사 앞집 담장 아래에 감꽃이 수북이 떨어져 있다.
 옛 추억을 소환해 준 감꽃 떨어진 풍경. 평장사 앞집 담장 아래에 감꽃이 수북이 떨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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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에 떨어진 감꽃. 어린 시절, 땅에 떨어진 감꽃을 하나씩 주워 실에 꿰어 목걸이로 만들었다.
 땅에 떨어진 감꽃. 어린 시절, 땅에 떨어진 감꽃을 하나씩 주워 실에 꿰어 목걸이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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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장사 앞집 담장 아래에 감꽃이 수북이 떨어져 있다. 옛 추억을 득달같이 끄집어내 주는 풍경이다. 떨어진 감꽃을 실에 꿰어 목걸이로 만들었다. 평소 마음에 둔 옆마을 미경이한테 주며, 가슴이 아슬아슬 흔들리던 기억이다. 떨어진 감꽃을 몇 개 주워 손바닥에 올려놓고, 한참을 내려다봤다. 배시시 웃음이 흘러나온다.

평장리는 고려 때의 벼슬인 평장사(平章事)가 연달아 배출된 고장이라고 '평장동(平章洞)'으로 불렸다. 지금은 대아, 화암 두 마을로 이뤄져 있다. 대아마을은 대자암(大慈庵)과 아천(雅泉)의 첫 글자를 따서 이름 붙여졌다.

화암은 앞산 바위틈과 절벽에 진달래 등 아름다운 꽃이 많이 피어 '꽃바위(花巖)', '꽃바우'로 불렸다. 인근의 전차포사격장으로 인해 수년 전까지 생활의 위협을 받기도 했던 마을이다. 지금은 전원마을로 인기를 얻고 있다.
  
대아저수지와 평장사 뒤 불대산의 반영. 한재골로 가는 길목, 대아저수지 둔치에서 본 풍경이다.
 대아저수지와 평장사 뒤 불대산의 반영. 한재골로 가는 길목, 대아저수지 둔치에서 본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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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재골 대아저수지 수변에는 음식점과 카페가 줄지어 들어서 있다. 평장사 뒤, 한재골 옛길의 입구에서 본 수변 풍경이다.
 한재골 대아저수지 수변에는 음식점과 카페가 줄지어 들어서 있다. 평장사 뒤, 한재골 옛길의 입구에서 본 수변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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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장사에서 시작되는 한재골 옛길도 잘 다듬어져 있다. 어렸을 때 부모를 따라 땔감을 하러 다니던 길이다. 조선시대에는 광주와 인근 지역에 사는 선비들이 한양으로 과거를 보러 가던 길목이다. 나무꾼의 길이고, 과거급제의 길이다.

옛길에서 만나는 대아저수지 풍경이 아름답다. 한재벌의 농사를 책임지고 있는 저수지다. 물속에 불대산이 비쳐 반영된다. 저수지 주변에 음식점과 찻집이 줄을 지어 있다. 광주사람들이 많이 찾는 음식점이고 카페다. 수변을 따라 자동차도 쉼 없이 오간다.

한재골에도 많은 사람들이 이른 더위를 피해 찾아와 있다. 어린이들은 물장난을 하며 신이 났다. 정자에 누워서 잠을 자고있는 사람들의 볼을 산들바람이 스치며 지난다. 숲 그늘 아래에서 잠든 아이의 얼굴도 천진해 보인다.

한재골 계곡도 넓고 깨끗하다. 깊지도 않아 남녀노소 누구라도 편하게 쉴 수 있다. 차가 다니는 도로에서 멀지 않은 것도 한재골의 장점이다. 화장실도 군데군데 잘 갖춰져 있다. 계곡을 거슬러 걷는데, 어린 시절 소풍날이 언뜻언뜻 뇌리를 스친다. 깨복쟁이 친구들은 다들 잘살고 있을까.
  
어린 대나무에 맺혀 있는 이슬방울. 한재골 옛길에서 만난 어린 대나무다. 갓 죽순의 단계를 넘어 대나무로 자라고 있다.
 어린 대나무에 맺혀 있는 이슬방울. 한재골 옛길에서 만난 어린 대나무다. 갓 죽순의 단계를 넘어 대나무로 자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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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재골 옛길에서 만난 산딸기. 그 붉은 유혹에 끌려 금세 몇 개를 따먹게 만든다.
 한재골 옛길에서 만난 산딸기. 그 붉은 유혹에 끌려 금세 몇 개를 따먹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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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길도 다소곳하다. 넓지 않지만, 대숲도 만난다. 대숲에선 죽순이 쑥쑥 자라고 있다. 댓잎의 끝자락이 아직껏 이슬을 머금고 있다. 계곡을 가로질러 놓인 징검다리도 정겹다. 길섶에서 산딸기가 빨간 미소를 짓고 있다. 붉은 유혹에 끌려 금세 몇 개를 따먹었다. 혀끝이 달큼하다.

숲에는 때죽나무와 산딸나무가 한창 꽃을 피우고 있다. 숲길에서 듣는 계곡 물소리가 가슴 속까지 시원하게 해준다. 찾은 발걸음이 아직은 많지 않아 숲길도 호젓하다. 도란도란 얘기 나누며 걷기에 좋다.

옛길의 끄트머리, 하늘마루정원에서 만나는 마가렛꽃도 어여쁘다. 지천이 마가렛꽃이다. 멋진 곳을 만나면 다시 찾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다. 가족과 함께,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조만간 또 찾고 싶은 집이다.
  
한재골 옛길 풍경. 옛날에 나무꾼이 오가고, 지역주민들이 오가던 길을 단장해 복원했다.
 한재골 옛길 풍경. 옛날에 나무꾼이 오가고, 지역주민들이 오가던 길을 단장해 복원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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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전남일보에도 실립니다.


태그:#평장사, #광산김씨, #한재골, #담양한재, #담양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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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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