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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붉은 페인트로 훼손된 벨기에 레오폴드 2세 국왕 동상
 붉은 페인트로 훼손된 벨기에 레오폴드 2세 국왕 동상
ⓒ EPA/OLIVIER HOSLET/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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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차별에 앞장섰거나 식민지 약탈과 관련된 재평가 작업이 활발하다. 미국 미니애폴리스에서 시작된 기념물과 동상 철거는 미국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영국과 프랑스 사회는 역사 인물 지우기를 놓고 논쟁이 뜨겁다. 철거와, 잘못된 역사도 남겨야 한다는 주장이 맞서고 있다. 조지 폴로이드 사건을 계기로 역사란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한다. 한때는 당연시됐던 일들이 재평가되는 상황에서 우리사회가 직면한 역사청산 논란을 떠올린다.

세계사에서 콜럼버스만큼 유명한 인물도 없다. 그는 신대륙을 발견한 위대한 탐험가로 자리매김해 왔다. 1492년 스페인 세빌리아 카디즈 항을 출발한 콜럼버스는 아메리카 대륙에 첫 발을 디뎠다. 이후 아메리카 대륙은 약탈과 학살, 그리고 병균에 의해 초토화됐다. 조지 폴로이드 이전에도 서양사에서 콜럼버스는 불편한 존재였다. 위대한 탐험가와 학살자라는 빛과 그림자 때문이다.

영화 <미션>은 아메리카 대륙에서 참혹한 학살을 그렸다. 영화에서 가브리엘과 멘도사 신부는 원주민들 편에서 순교한다. 그러나 이런 이들은 소수다. 대부분 학살과 약탈에 앞장섰다. 교황 바오로2세는 2000년 가톨릭교회가 인류에게 저지른 5대 과오를 사죄했다. 이 가운데 하나가 '신의 이름을 앞세운 신대륙에서 학살'이다. 2015년에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볼리비아에서 머리를 숙였다. 콜럼버스 신대륙 정복을 필두로 가톨릭교회가 저지른 범죄에 대한 용서를 구한 것이다.

사실 '신대륙 발견'이라는 말도 오만하다. 제국주의를 정당화한 기만적 언어다. 콜럼버스는 없던 땅을 발견한 게 아니다. 오랫동안 문명을 누려온 땅에 도착했을 뿐이다. 그때 시작된 재앙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스페인에서는 매년 10월 12일을 성대하게 기념한다.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한 날이다. 중남미인들 입장에선 축제가 아니라 재앙이 시작된 날이다. 그래서 '발견'이 아니라 '도착'으로 불러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중남미인들이 생각하는 역사 인식에 2004년 주 아르헨티나 스페인 영사는 불을 질렀다. 그는 반 스페인 시위대를 향해 "스페인과 영국이 아메리카 대륙을 정복하지 않고 마야, 아즈텍, 잉카 인이 그대로 지배했다면 중남미 현실은 더욱 비참했을 것이다"고 했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말이다. 틈만 나면 식민 지배를 합리화하는 일본 우익들과 판박이다. 승자의 시각은 불변하는 정의가 아니기에 역사는 순환한다.

역사 청산과 선택적 편집 사이

콜럼버스 동상 철거 또한 변화된 역사 인식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때는 위대한 발견이었을지 모르지만 원주민 학살과 인종차별이란 죄악을 간과하기 어렵다. 외신에 따르면 보스턴과 미네소타, 버지니아에 산재한 콜럼버스 동상이 잇따라 훼손됐다. 시위대는 동상 목에 밧줄을 걸어 끌어내리고, 동상 머리를 부수고, 호수에 던지기까지 했다. 시위는 버지니아, 앨라배마, 조지아 등 남북전쟁 당시 미국 남부로 번졌다.

이들 지역은 노예제도를 고집했던 남부연합 근거지다. 남부연합 기념물은 1700여개에 달한다. 제퍼슨 남부연합 대통령 동상이 먼저 철거됐다. 이어 리치몬드 주지사는 100년 넘은 남부연합군 총사령관 로버트 E, 리 동상도 빠른 시일 내에 철거하겠다고 약속했다. 또 국방부는 남부연합 장군들 이름을 딴 군사 기지 명칭을 변경하는 방안을 내놨다. 남부연합기도 퇴출 수순을 밟고 있다. 백인 우월주의자들이 애용하는 깃발이다.

남부전쟁 당시 남부가 노예제도를 옹호한 이유는 산업 특성 때문이다. 남부는 농업을 기반으로 했기에 흑인 노동력이 핵심이었다. 마가렛 미첼이 쓴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도 이런 내용이 보인다. 소설은 영화로도 성공했다. 최근 HBO맥스는 영화 스트리밍 목록에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삭제했다. 미국 판 역사 청산작업이 콜럼버스부터 남부연합, 퓰리처상 소설까지 확산되면서 우려하는 시선도 만만치 않다.

프랑스와 영국 지도자들이 대표적이다.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은 "인종차별, 반유대주의와 타협하지 않겠다"면서도 "어떤 동상도 철거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이어 "공화국 역사에서 어떤 흔적, 어떤 이름도 지우지 않겠다. 우리가 누구인지 부정하는 대신 '진실'을 목표로 아프리카와 관계를 살펴보고 우리 역사를 함께 봐야 한다"고 말했다. 보리스 존스 영국 총리도 "영국 역사를 포토샵(조작)하지 말라"며 처칠 동상 철거를 반대했다. 영국과 프랑스는 식민지를 경영한 원죄가 있다. 마크롱과 존슨은 아픈 역사도, 부끄러운 역사도 인정하자는 뜻이다.

역사를 선택적으로 편집하다보면 자칫 왜곡으로 흐를 수 있다. 우리가 일본을 손가락질하는 이유도 역사를 분칠하고 왜곡하기 때문이다. 사디크 칸 런던 시장은 "누구도 완벽하지 않으며, 있는 그대로 사실을 배울 필요가 있다"며 신중한 목소리를 냈다. 그는 파키스탄 이민자 후손이다. 백인 주류 영국 사회에서 이민자 출신 정치인이 던진 말은 역사청산 논란이 한창인 우리에게도 많은 것을 시사한다.

세빌리아 대성당에는 콜럼버스 시신이 있다. 콜럼버스를 지운다고 세빌리야 대성당을 파헤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미국에서 백인과 흑인을 차별한 '짐 크로 법'이 폐지된 해는 1965년이다. 남북전쟁이 끝난 지 100년이 지난 때다. 지금도 인종차별은 질긴 생명력을 이어가고 있다. 역사는 이렇듯 간단치 않다. 선택된 정의, 편집된 역사는 또 다른 논쟁을 촉발할 뿐이다.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는 것은 시대적 책무다. 덧붙여 긴 호흡에서 인내하고, 불편한 역사도 감내할 때 우리사회는 한걸음 나아간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국회 입법정책연구회 상임 부회장(전 국회 부대변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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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인문, 여행, 한일 근대사, 중남미, 중동문제에 관심이 많습니다. 중남미를 여러차례 다녀왔고 관련 서적도 꾸준히 읽고 있습니다. 미국과 이스라엘 중심의 편향된 중동 문제에는 하고 싶은 말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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