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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나 코로나에 걸렸어요."

학생이 보낸 카톡을 보고 깜짝 놀랐다. 몸이 안 좋다며 지난 한국어 수업에 결석했던 학생이었다. "지금 병원이야? 몸은 괜찮아?" 나는 14살 어린 학생의 상태가 걱정되어 질문을 이어갔다. 그런데 집에서 잘 쉬고 있으니 걱정 말라는 답변을 보낸다. 내가 왜 병원에 가지 않냐고 묻자 오히려 나를 진정시키려 들었다. 

"나는 괜찮아요. 그렇게 심각한 상태가 아니에요. 그래서 병원에 가지 않아도 돼요." 

다른 수업의 학생도 몇 주간 결석했다. 그런데 오랜만에 원격 수업에 나타나서 한다는 말이 코로나에 걸려 너무 고생 했다는 거다. 60대 초반인 그 학생은 감기몸살인 줄 알았다가 뒤늦게 코로나 확진을 받았다. 꼬박 3주간 아팠지만 병원에 가지 않고 내내 집에서 지냈다는데 나는 도무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많이 아팠다면 병원에 가야 되지 않아요?" 
"나보다 더 증상이 심각한 사람도 병원에 못가고 있는데 내가 어떻게 가요."


학생의 말을 듣고서 할 말이 없어졌다. 오히려 현실이 파악되어서인지 헛웃음만 나왔다. 1177(스웨덴 24시간 의료상담 전화)에 연락을 했지만 병원에 자리도 없고 환자가 너무 많아 기다리란 말만 반복했단다. 

코로나에 걸려도 병원에 가지 않은 시민들

이들은 모두 코로나에 감염되었지만 병원에 가지 않아도 치유가 되었다. 이모가 의사라고 한 어린 학생은 확실히 완치되었고, 60대 학생도 원래의 몸 상태로 돌아왔다고는 했다(확실한 건 좀 더 지켜봐야 알 수 있는 상황인 듯하다). 

어떻게 병원에 가지 않을 수 있냐는 질문이 나올 법하다. 우선 스웨덴 사람들은 아파도 응급실에 바로 가지 않는다. 1177에 연락해서 의학적인 조언을 받고 그에 따른다. 아마도 정말로 심각한 상황의 환자라면 구급차를 불러 응급실로 실려가겠지만, 그 외의 많은 경우 우선 전화를 먼저 의학 가이드를 받는다. 

코로나 역시 마찬가지. 증상이 심각하지 않다고 생각되는 환자들은 집에서 자가격리, 치료를 한다. 이 와중에 호흡에 문제가 생기거나 증상이 나아지지 않고 심각해지면 다시 전화를 걸어 의료상담을 받는다. 전화 말고 화상으로 의사를 만나기도 한다(코로나라서 그런 게 아니고 스웨덴은 병원 가는 게 힘든 일이라, 이런 진료가 전혀 낯선 방법만은 아니다). 

이 같은 스웨덴 병원 사정을 잘 몰랐을 땐 나도 불평이 끊이질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왠만한 가벼운 증세로는 병원 갈 생각조차 안 한다. 공공의료의 현실을 경험하다 보니 치료가 꼭 필요하거나 병이 호전되지 않을 때만 찾아가게 된다. 그런데 코로나에 걸렸다는 학생들 말을 듣다 보니 어째 의료 상황이 이전보다 더 안 좋아진 것 같았다.
 
혹시 내 이름이 누락된 건 아닐까?  팔을 다쳐서 응급실에 갔을 때 찍은 사진. 내 이름을 언제 부를지 몰라 하염없이 기다려야 했다.
▲ 혹시 내 이름이 누락된 건 아닐까?  팔을 다쳐서 응급실에 갔을 때 찍은 사진. 내 이름을 언제 부를지 몰라 하염없이 기다려야 했다.
ⓒ 정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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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스웨덴에서 한 번이라도 병원에 다녀온 사람은 알 것이다. 병원에 가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올해 초 빙판길에 미끄러져 팔을 접지른 일이 생겨 급히 병원 응급실을 찾았다.

팔을 전혀 움직일 수 없는 상태라 당장 치료받고 싶었다. 빨리 의사를 만나고 싶었지만 오랜 기다림 끝에 나타난 건 간호사였다. 그는 아픈 부위를 묻고 내 팔을 빠르게 살펴보더니 오늘은 집으로 돌아가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나는 기다리겠다 했지만 그는 단호했다. 

"오늘 밤새서 기다려도 의사는 만날 수 없을 거예요. 당신 전에 온 사람들도 이미 다 돌아갔어요." 

진료 가능한 의사는 한 명인데 갑자기 늘어난 빙판길 사고 환자 때문에 병원이 일시적으로 마비되어 있었다. 그래도 병원까지 왔는데 이렇게 기다리고도 치료 받지 못하는 사실이 참 어이없었지만 현실이 그러했다. 나는 아팠지만 먼저 치료받기에는 다른 환자들보다 다친 정도가 심각하지 않았다. 그러니 우선 순위가 될 수 없었다. 

다음날 오전 8시에 다시 찾은 응급실. 오랜 기다림 끝에 의사를 만나 엑스레이를 찍어보니 인대가 파열되어 었었다. 간호사는 팔 보호장치를 해주면서 내게 물리치료 센터를 알려주었다. 진료를 마치고 병원을 나왔을 땐 오후 3시가 훌쩍 넘어 있었다. 

남편과 내가 기다린 시간은 대략 6시간 남짓. 남편은 우리가 운이 좋아서 의사를 빨리 만난 것 같다고 말한다. 예전 같았으면 그 말이 너무나 기가 막혔겠지만 지금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 주짓수하다 팔이 부러진 남편 친구는 9시간, 아들이 1개월 남짓 때 침대에서 떨어져 뇌진탕이 아닐까 울면서 응급실로 뛰쳐갔을 때 6시간을 넘게 기다렸다.

느리지만 최선을 다해주는 스웨덴 공공의료
 
 스웨덴 묀달Molndal에 위치한 종합병원 응급실 이용 안내문. 번호표를 뽑고 신분증(의사 소견서가 있다면 지참)을 들고서 이름이 호명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스웨덴 묀달Molndal에 위치한 종합병원 응급실 이용 안내문. 번호표를 뽑고 신분증(의사 소견서가 있다면 지참)을 들고서 이름이 호명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 정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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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에서는 아플 때 모두가 같은 병원을 찾게 된다. 몰리는 환자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의료진, 수시로 생겨나는 응급환자, 그렇게 늘어난 기약없는 대기시간은 내가 몰랐던 공공의료의 민낯이었다. 30년 넘게 병원을 편의시설로 생각하고 살았던 내가 스웨덴에서 가장 충격을 받았던 것도 아픈데 우선 기다리고 보라는 식의 일방적인 통보가 아니었나 싶다. 

그 불편함에 울며 짜증내며 불평하던 시간이 어느덧 지나가고 지금은 느리고 답답한 병원 응답에 최대한 나를 맞추고 있는 중이다. 무상 복지는 모두를 위해 존재하지, 나만을 생각해주는 특혜가 결코 아니었다. 

한 달 뒤에 날아온 병원비 청구서 220크로나(한화28000원). 기다림은 고역이었지만 금액을 보니 또 위로가 된다. 그러니 '마냥 답답하고 느리다며 욕하지도 못하겠네' 생각하면서도 아프면 안 되겠다 또 다짐하게 된다. 병원비 걱정이 없어 좋다가도 기다리다 제때 치료받지 못하면 어떡하나 또 다른 걱정이 앞선다. 

분명 누구나 의료비 걱정없이 살 수 있는 건 대단한 혜택이다. 갑자기 예고없이 큰 병에 걸리거나 평생 지병이나 장애를 가지고 살아야 한다면 의료 비용은 그야말로 상상을 초월하게 된다.

하지만 스웨덴에서는 그 모든 걸 국가가 부담하고 책임진다. 스웨덴의 공공의료는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건강을 돌보고 있다. 느리긴 하지만 한결같이 응답해주었다.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끝까지 보호해주고 치료해주었다. 책임이란 것이 이런 거구나 싶었다. 

코로나 환자도, 일반 환자도 모두가 어려운 상황
 
 7만건 수술 취소가 된 뉴스 화면 캡처. 자막을 해석하면 "상황은 아주 많이 심각합니다. 지금 많은 환자들이 밀려있습니다"이다.
 7만건 수술 취소가 된 뉴스 화면 캡처. 자막을 해석하면 "상황은 아주 많이 심각합니다. 지금 많은 환자들이 밀려있습니다"이다.
ⓒ 스웨덴 svt 채널 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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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지금은 그 응답이 점점 느려지고 있어 안타깝다. 언제 확답을 해줄 수 있을지 알 수 없다고 한다. 엊그제 뉴스를 통해 보도된 내용으로 현재 70,000건의 일반 수술이 연기 된 상황이라 전했다. 

더 심각한 것은 이 수술 날짜가 언제 다시 잡히게 될지 모른다는 사실이다. 응급수술 이외에 계획된 수술은 날짜를 모두 미루고 예정된 건강검진도 연기되거나 검사에 제한을 둔 상황이니 더 겁난다. 스웨덴 정부도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공공의료 시스템이 지금의 국가 비상사태에 대처하기에 너무 힘겨운 시스템인 거다.

내가 아프면 안 되겠구나 싶은 마음이 더 커진다. 불안해진다. 이제는 기존 환자까지 코로나19에게 모든 걸 내줘야 하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지금은 국가가 책임지기에 너무 많은 국민이 아픈 상태이다.

그러니 모두가 알고 있을 테다. 병원 가는 일이 더 신중해지고 힘들어졌다는 사실을. 모든 것이 안정적이었을 때도 모두의 헌신이 필요했다. 이제는 그보다 더한 희생을 치러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의 브런치에도 실렸습니다(https://brunch.co.kr/@sujij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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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예테보리 거주. 다양한 문화와 관련된 글을 씁니다. 저서<아무도 모르는 누군가의 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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