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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무렵 어느 날, 나의 생일 축하자리에서였다.
 그 무렵 어느 날, 나의 생일 축하자리에서였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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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후배가 있었다. 그는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 온다 간다 말 한 마디 없었다. 주변 사람들은 그가 제주도로 갔다고 했다. 그러니까 적어도 그들에게는 알려주고 떠난 거였다. 그걸 나만 모르고 있었다. 그와 꽤 친했다는 내 생각은 착각이었다.

충격은 또 있었다. 그가 나에게 따로 얘기하지 않은 이유가 있었다. 이 역시 지인들의 증언을 듣고 알았다. 그 무렵 어느 날, 나의 생일 축하 자리에서였다. 그가 나에게 손목시계를 선물했다. 4만~5만 원 정도 하는 아주 평범한 브랜드였다. 약간 술기운이 있던 내가 불콰한 목소리로 그랬다(고 한다).

"야, 기왕이면 명품이지. 이게 뭐냐?"

함께 있던 다른 사람들이야 그게 농담인 걸 다 알았다. 그러나 그만은 아니었다. 당황하는가 싶더니 이내 화가 잔뜩 난 표정으로 자리를 떴다(고 했다). 나는 그 사실 자체를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그 얘길 해주는 이가 없었다. 당사자는 물론이었다. 그게 사실상 마지막이었다. 나는 잔혹한 범죄를 저지르고도 무슨 잘못을 했는지조차 몰랐던 소시오패스였다.

나는 그에게 사죄해야 했다. 그건 명백한 내 잘못이었다. 물론 전혀 그럴 의도는 없었더라도 그에게는 참 아픈 상처가 되었을 터였다. 한시라도 빨리 용서를 빌자고 마음먹었다. 그런데 생각만큼 쉽게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다. 바쁘다는 핑계였다. 바쁘긴... 소도 웃을 노릇이었다. 그렇게 10년이 흘렀다. 더 이상은 안 되지 싶었다. 갑자기 초조해졌다. 지난주에야 제주행 비행기에 올랐다.

실로 오랜만에 다시 만난 후배는 변함이 없었다. 유쾌하고 밝았다. 오히려 도시에 있을 때보다 더 좋아 보였다. 환하게 웃으며 공항에서 날 맞아 주었다. 그 순간 나는 솔직히 많이 어색했다. 죄지은 자의 불안이었다. 그는 그런 게 없었다. 당한 자의 여유였을까? 어제 만난 사람마냥 반겨 주었다. 가식도 일절 없었다. 나도 마음을 풀었다.

저녁 식사자리에서 불쑥 그때 그 얘기를 꺼냈다. 정말 미안했다고 했다. 그럴 마음은 일도 없었다고 했다. 그저 흔한 농담이었다고 했다. 너그럽게 용서해 달라고 했다. 할 말이 더 있었는데, 후배는 중간에 말을 끊었다.

"형은 농담이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그 정도였구나, 한방 세게 맞은 것 같았다. 잠시 말을 잊었다. 그 짧은 시간에 오만 생각이 다 들었다. 그의 말은 결코 부인할 수 없었다. 그건 엄연한 사실이었다. 충분히 그럴 수 있었다. 게다가 난 누구보다 말의 흉포성을 잘 안다고 자부했다. 일찍이 당해 봐서 누구보다 잘 안다. 그런 자가 그랬다는 거다. 심지어 그렇게 해 놓고도 제가 뭘 잘못했는지도 몰랐던 거다. 말이 안 됐다.

그에게 다시 진심으로 사죄했다. 내가 하는 양을 가만히 보던 후배는 대답 대신 제 손을 내밀어 주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우린 서로의 손을 꼭 잡았다. 그 사이로 그의 넉넉한 마음이 전해졌다. 정말 고마웠다.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세례를 예비하며 
  
파스카의 초 그리스도의 빛, 빛의 자녀로 살아가며 신앙에 항구하라는 사명을 일깨워주는 꺼지지 않는 빛이다.
▲ 파스카의 초 그리스도의 빛, 빛의 자녀로 살아가며 신앙에 항구하라는 사명을 일깨워주는 꺼지지 않는 빛이다.
ⓒ 이상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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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로 몇 차례 연기됐던 세례성사일이 어렵사리 결정됐다. 6월 마지막 주일(28일)이었다. 많은 것이 달라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려 하느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나는 거다. 허투루 대할 게 아니었다. 그저 거듭나는 정도가 아니었다. 완전히 새로운 탄생이었다. 이전과 이후는 분명 달라야 했다. 예수께서도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물과 성령으로 태어나지 않으면, 하느님 나라에 들어 갈 수 없다(요한 3, 3-5)."

'진실로'가 두 번이다. 그 윗 대목까지 합하면 4번이다. 그만큼 중요하고 절대적이라는 거다. 가장 위대하면서도 막중한 통과의례라는 말씀이었다. 그걸 재삼재사 강조하신 거였다.

과거의 죄를 들추어 반성하고 묵혀둔 숙제를 속히 해결해야 했다. 후배를 찾아간 건 그중 하나였다. 그는 내 마음의 숙제 3순위였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죄를 지었는지 1, 2순위는 따로 있었다. 그것까지 시시콜콜 얘기하진 않겠다. 그분들이 날 용서까지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나의 세례를 인정해 주긴 하셨다. 그것만도 정말 어렵고 힘들었다. 천만다행으로 그게 다였다. 죄 짓고 살지 말아야 할 일이다.

그것 말고도 세례 준비 차 이것저것 했다. 사후신체기증 서약도 했다. 그걸 먼저 하신 교리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난 후였다. 방탕한 생활 탓에 뭐 하나 온전한 게 있겠냐 싶었지만 그런 차원에서도 연구가치는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얼마 되지 않지만 두어 곳에 성의껏 기부도 했다. 아이들을 위하는 마음을 담아 기꺼이 드렸다. 누군가와의 채무관계는 아무런 조건 없이 법적 효력을 해제해 주었다. 갚으면 좋고 아니어도 그만이었다.

그를 비롯해 내게 잘못한 사람들을 떠올려 봤다. 몇몇 사람들이 스쳤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니 나는 그들을 미워하지 않았다. 섭섭하고 야속한 마음이야 있었지만 미움까지는 아니었다.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그랬던 이유가 있을 터다. 설사 내가 미워한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었다. 미움은 부질없다. 사실 그런 생각은 진작부터 해 왔다. 지금 그 마음이 새삼 굳어진 것이다. 그렇게 미워하질 않으니 따로 용서할 것도 없었다.

세례성사, 그 위대한 통과의례 
 
영세수 축복  예비신자와 그의 대부 대모님들이 신부님의 영세수 축복을 기다리며 서 있다. 죄의 씻김과 구원의 상징이라고 한다
▲ 영세수 축복  예비신자와 그의 대부 대모님들이 신부님의 영세수 축복을 기다리며 서 있다. 죄의 씻김과 구원의 상징이라고 한다
ⓒ 이상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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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의 내 잘못을 생각하면 턱도 없겠지만 내 딴에는 그걸 최선이라 생각하고 세례성사를 준비해 왔다. 나를 비우고 사람들을 돕고 죄의 용서를 빌었다. 그래도 두려웠다. 자격이 있는지 의문스러웠다. 몇 번을 되뇌어 물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자신이 없었다. 나중엔 도망치고픈 생각마저 들었다. 내 전매특허다. 하지만 이것까지 그럴 순 없었다. 나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돌아가신 아버지와 함께 시작한 일이었다. 흐지부지 끝낼 수는 없었다. 그래서 뭐 또 없을까, 자꾸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러다가 마침내 세례성사를 맞았다. 의식의 풍경은 여느 미사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서약은 더 비장했고 기도는 한층 엄숙했다. 간구와 참회로 의식은 시작했다. 신부님께서 목 언저리에 기름을 발라주셨다. 축성된 성유라고 했다. 비로소 하느님 나라에 들었다는 일종의 상징이었다. 그렇지 않은 사람과 구분하게 해 주는 표시였다. 썩지 않고, 상처를 치료하는 기름처럼 오래도록 건강하게 신앙생활을 이어나가라는 의미이기도 했다.

이마에 성수를 3번 부어주셨다. 온 몸이 전율했다. 모든 죄가 씻겨나는 느낌이었다. 내 안의 모든 마귀와 죄를 끊겠다고 서약했다. 나의 신앙을 고백했다. 그러고 나서 신부님은 깨끗해진 이마에 성유로 십자가를 그어 주셨다. 하느님의 자녀라는 표시(인호)가 영혼에 새겨진다는 의미라 했다. 그리고는 양 어깨 위로 흰 옷을 둘러주셨다. 죄가 없는 깨끗한 육신을 상징한다고 한다. 비로소 그리스도인으로 새로 태어나는 순간이었다.

자리를 함께해주신 대부님께서 하느님의 빛을 전달해 주셨다. 보기엔 그저 하나의 양초지만 세상 전체를 밝히는 파스카의 빛이다. 그처럼 밝고 영롱하게 세상을 비추며 살라는 당부였다. 결코 그럴만한 그릇은 아니었지만 시늉이라도 하며 살겠다고 마음을 다졌다. 첫 영성체 예절을 드렸다. 난생처음이었다. 성체와 성혈을 상징하는 빵과 포도주였다. 당신의 몸까지 내 주시는 가없는 주님의 사랑이었다. 맛은 하나도 없었다. 그래도 그 충만함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어떻게 시간이 지났는지도 모르게 의식은 끝났다. 그러는 사이 나는 하느님의 나라에 들었다. 당신의 아들이 되고 상속자가 되었다. 다시 말하지만 그건 오롯이 나의 몫이다. 지금까지의 나와 앞으로의 나는 달라야 한다. 많은 걸 포기하고 더 많은 걸 내주면서 살아야 한다. 죄를 지어서도, 말씀을 어겨서도 안 된다. 나는 그걸 약속했다. 내 이마에 새겨진 성유 십자가는 그걸 상징한다. 약속은 지키기 위한 것이다. 지키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해야 마땅하다. 멀고 험하더라도 반드시 가야 할 길이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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