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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길 위쪽 길가에 세워져 있는 '원태우 지사 의거지' 표지석이 멀리 보이는 풍경. 사진의 표지석과 붉은 지붕 건물 사이가 철길이다.
 철길 위쪽 길가에 세워져 있는 "원태우 지사 의거지" 표지석이 멀리 보이는 풍경. 사진의 표지석과 붉은 지붕 건물 사이가 철길이다.
ⓒ 정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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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년 11월 22일, 23세 청년 원태우(元泰祐)가 이토 히로부미(아래 이토)의 얼굴을 돌로 가격했다. 원태우는 돌을 만지는 데 특출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지금도 독립기념관과 안양 평촌아트홀 수장고에는 그가 만든 돌절구와 맷돌이 각각 보관돼 있다. 이는 그의 돌 다루는 솜씨가 대단한 경지였다는 사실을 객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게 해주는 대목이다.

돌 다루는 솜씨가 남달랐던 원태우, 을사늑약에 분개하다

원태우는 을사늑약 강제 체결 소식을 듣고 분개했다. 그는 이만여(李萬汝) 등과 함께 이토를 습격해 민족의 의기를 만천하에 보여주자고 결의했다. 거사 장소는 현재 안양 육교가 세워져 있는 서리재 고개로 정했다. 오르막인 데다 철길이 굽어 있는 지점이므로 기차가 속도를 더욱 늦출 것이고, 그러면 공격을 감행할 기회가 더 많이 주어질 것으로 예측했다.

원태우는 레일에 돌을 얹어놓고서 이토가 탄 기차가 오기만 기다렸다. 돌을 들이받은 열차가 전복될 수도 있고, 그렇게 되면 이토가 죽거나 중상을 입을 수도 있다는 기대였다. 그런데 겁을 먹은 이만여가 돌을 치워버리는 사태가 발생했다.
 
 원태우 지사 의거지 표석
 원태우 지사 의거지 표석
ⓒ 정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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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기차는 시야에 들어왔다. 급해진 원태우는 주먹 크기와 어금버금해 보이는 짱돌 하나를 집어 들었다. 돌을 다듬거나 던지는 일에는 어릴 때부터 자신만만했다.

당시의 기차는 시속이 20∽30km에 지나지 않았다. 원태우는 비탈을 내려가 철로 가까이 다가섰다. 드디어 이토를 실은 기차가 눈앞에 닿았다. 만면에 웃음꽃을 피우고 있는 이토의 얼굴이 유리창 네모 틀 안에 들어왔다. 그 순간, 침착하게 호흡을 가다듬은 원태우는 이토의 얼굴을 정조준해 힘차게 돌을 던졌다.
 
 원태우 지사 의거지' 표석에 새겨져 있는 의사의 투석 장면 부조
 원태우 지사 의거지" 표석에 새겨져 있는 의사의 투석 장면 부조
ⓒ 정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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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쌩' 소리를 내며 날아간 돌은 유리창을 '쨍!' 부수고 기차 안으로 돌진했다. 그 찰나, '악!' 소리가 객실을 가득 메웠다. 그 순간, 사내 하나가 고개를 아래로 떨구었다. 이토였다. 돌은 이토의 왼쪽 눈언저리를 강타한 뒤 바닥으로 떨어졌다.

이토가 얼굴에 온통 피 칠갑을 하게 되자 일제 경찰과 수행 관리들은 처음에는 혼비백산 상태로 주변 경계에 골몰했지만, 이내 수색에 나섰다. 원태우 지사는 현장에서 체포되었고, 경찰에 끌려가서 무자비하게 구타와 고문을 당했다. 공모 일당들을 실토하라는 것이 추궁의 이유였다.

두 달 동안 감옥에 갇혀 고문당한 원태우 지사
 
 원태우 지사 표석으로 가는 방향을 안내하고 있는 작은 이정표가 안양로 599(만안구 석수동 249-6)의 도로 건너편에 세워져 있다.
 원태우 지사 표석으로 가는 방향을 안내하고 있는 작은 이정표가 안양로 599(만안구 석수동 249-6)의 도로 건너편에 세워져 있다.
ⓒ 정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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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는 감히 전직 일본 수상을 습격한 거사인데, 단독범일 리가 없다고 판단하고 있었다. 결국 이만여 등이 뒤늦게 붙잡혔지만, 이내 풀려났다. 원태우 지사 혼자만 약 두 달 동안 구금 상태로 악랄한 고문을 당했다.

안양 육교 사거리에서 남쪽으로 150m가량 내려가면, 도로변에 안양자동차학원 건물이 있다. 석수공원으로 들어가는 입구 지점이다. 안양로 599(만안구 석수동 249-6) 학원 건물을 등지고 횡단보도 앞에 서면 도로 건너편에 있는 작은 이정표에 '← 원태우 지사 표석'라는 글씨가 보인다.

이토의 얼굴을 향해 돌을 던졌던 지점에 세워져 있는 '원태우 지사 의거지 표석'은 원태우 지사의 얼굴과 투석 장면 부조 그리고 그 아래의 해설문으로 구성돼 있다. '원태우 지사 의거지 표석'은 원태우 지사가 의거를 일으킨 장소를 표시하기 위해 세운 돌이라는 뜻이다.

지사가 이토에게 돌을 던진 역사 현장의 감회

기찻길은 표석 뒤로 지나간다. 원태우 지사도 1905년 11월 22일 바로 이 자리에 서서 돌을 든 채 철길을 노려보았을 것이다. 현장에 주차 공간이 없는 등 이것저것 부족한 것은 많지만, 의열 독립투쟁 현장에 왔다는 기꺼움으로 마음의 공허를 달래본다. 해설문을 읽는다.
 
원태우 지사 의거지(元泰祐 志士 義擧址)

이곳은 안양 출신 원태우(1882-1950) 지사가 1905년 11월 22일 민족의 원흉 이토를 향해 정의의 돌을 던져 대한 남아의 기개를 만방에 떨친 역사의 현장이다.

일제에 의해 1905년 11월 17일 강제로 외교권을 빼앗긴, 이른바 을사조약(을사늑약)에 비분강개하여 단신으로 거사를 감행, 이토에게 큰 상처를 입혔다.

거사 후 원 지사는 현장에서 체포되어 모진 고문 후 이듬해 1월 풀려났으나 평생을 불구로 지내다 1950년 한국전쟁 때 69세를 일기로 운명하였다.
 
안양시 평촌대로 86 자유공원의 원태우 지사 흉상 아래에 새겨져 있는 해설도 읽어본다. 의거지의 것보다 조금 더 자세하게 이토 습격 거사를 설명하고 있다.
 
원태우 의사께서는 1882년 3월 4일 과천현 하서면 안양리 642번지(현재의 안양시 만안구 안양1동)에서 출생하셨다. 원 의사께서는 1905년 11월 22일 이토 히로부미가 수원에 사냥을 왔다가 서울로 열차를 타고 서리재 고개(현재의 안양 육교)를 지날 때 혼자의 몸으로 돌을 던져 큰 상처를 입히고 곧 일경에 체포 구금되었다.

이 의거는 민간 항일 운동의 효시가 된 거사로서 당시 대판매일신문 대한매일신문 동경매일신문 등의 언론은 물론이요, 일본이 제작한 《일로(日盧)전쟁 화보와 《속음청사(續陰晴史)》에도 그 내용이 수록된 일대 사건이었다. 원 의사께서는 1906년 1월 24일 자로 모진 고문과 악형을 받고 석방되었으나 평생 불구의 몸으로 지내시다 1950년 6월 25일 69세의 일기로 타계하셨다.  
 
원태우 지사의 거사에 대해 국가보훈처 누리집 독립유공자 공훈록에는 어떻게 기술되어 있을까? 정부의 공식 기록도 읽어볼 필요가 있다.
 
경기도 시흥 사람이다. 1905년 을사조약(일사늑약)의 강제체결에 격분한 그는 일제의 침략원흉 이등박문을 응징하여 한국인의 항일의지를 만천하에 알릴 것을 계획하였다.

그리하여 기회를 기다리던 중 1905년 11월 22일 이등박문(이토 히로부미)과 임권조가 경기도 수원에서 수렵한 뒤 경부선 철도 열차에 승차하여 오후 6시 13분경 역을 출발한 지 얼마 안 된 때에 이등박문을 목표로 투석하여 이등의 왼쪽 눈과 안면에 부상을 입혔다.

이 일로 인하여 일경에 붙잡힌 그는 1905년 11월 하순 경성 헌병사령부에서 태(笞) 100도를 받았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국가보훈처가 1975년에 펴낸 <의열투쟁사>는 "을사늑약을 만든 침략자 원흉은 일본의 이등박문이었다. 침략의 원흉 이등이야말로 국민이 모두 절치부심하는 원한의 대상이 아닐 수 없었던 것"이라면서 "이러한 원수 이등을 처단하려는 의거가 을사늑약의 변이 있은 지 5일 후인 11월 22일, 경부선 안양역 부근에서 일어났다"라고 기술하고 있다.

정의의 정신과 기백을 보여준 '정의의 돌멩이'
 
 안양 자유공원의 원태우 지사 흉상
 안양 자유공원의 원태우 지사 흉상
ⓒ 정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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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따르면, 원태우 지사가 던진 '정의의 돌멩이'가 찻간 유리창을 부수고 안으로 떨어지면서 "이등(이토)은 경상을 입고 차 안은 수라장이 되었다. 승리의 개가를 올리며 돌아가던 원흉 이등으로도 여기서는 질겁하여 넋을 잃지 않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원수를 처단하지는 못하더라도 대한 정의의 정신과 기백만이라도 보여주기 위한' 원태우 지사의 거사는 약 4년 뒤인 1909년 10월 26일 마침내 대단원의 결실을 보았다. 안중근 의사가 만주 하얼빈에서 이등을 처단한 쾌거, 바로 그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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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소설 의열단><소설 광복회><딸아, 울지 마라><백령도> 등과 역사기행서 <전국 임진왜란 유적 답사여행 총서(전 10권)>, <대구 독립운동유적 100곳 답사여행(2019 대구시 선정 '올해의 책')>, <삼국사기로 떠나는 경주여행>,<김유신과 떠나는 삼국여행> 등을 저술했고, 대구시 교육위원, 중고교 교사와 대학강사로 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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