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시절의 너> 포스터

<소년시절의 너> 포스터 ⓒ (주)영화특별시SMC

 
 
<말할 수 없는 비밀>(2008)을 필두로 중화권 로맨스는 국내에 소소하지만 확실한 열풍을 일으켰다. <청설>(2010),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2012), <나의 소녀시대>(2016), <안녕, 나의 소녀>(2018) 등의 작품이 대표적이다. 이는 충무로의 로맨스 장르 실종과 로맨스 영화를 꾸준히 원하는 관객층의 요구가 결합된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소년시절의 너>는 앞서 개봉했던 중화권 로맨스 영화들과 같은 감성을 보여줄 것으로 기대됐다. 그래서인지 도입부부터 상당히 충격적이다. 갑작스러운 소녀의 자살과 이어지는 집단 괴롭힘. 이쯤 되면 극장을 잘못 들어왔나 생각이 들 수도 있다. 그래도 자리를 뜨지 말았으면 한다. 아주 길고 따뜻한 여운을 선사할 테니 말이다.
 
이 영화는 앞서 4월에 개봉했던 중화권 영화 <아웃사이더>(2020)의 스타일과 흡사하다. <아웃사이더>는 당시 청춘 로맨스물처럼 보였지만, 로맨스와 함께 90년대 홍콩영화에서 볼 법한 거친 액션 누아르를 장착했다. 
  
친구의 죽음, 이어진 집단 괴롭힘
 
 <소년시절의 너> 스틸컷

<소년시절의 너> 스틸컷 ⓒ (주)영화특별시SMC


고등학교 3학년 첸니엔. 어느 날 그녀의 친구가 자살하고 만다. 이 문제로 경찰은 그녀에게 범인이 누구인지 알려달라고 부탁한다. 첸니엔은 진실을 알고 있지만 말하기 꺼려진다. 그녀에게는 중국 최고의 대학인 베이징 대학에 가야 할 확실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괜히 경찰과 엮여 앞날에 방해를 받고 싶지 않다. 하지만 그녀의 마음 한켠에 정의감이 꿈틀거린다.

첸니엔의 어머니는 불법 화장품 판매원으로 일한다. 어머니에게 사기를 당한 동네 사람들은 그녀의 어머니를 찾아다니고 첸니엔의 집 문을 두드리기도 한다. 어머니는 첸니엔은 학생이니 괴롭히지 않을 거라며 돈을 벌기 위해 다른 지역에서 일을 계속한다. 그녀가 좋은 대학에 가야하는 이유는 어머니와 함께 살기 위해서다. 좋은 대학에 가면 좋은 직장을 얻을 수 있고, 그러면 어머니와 행복하게 지낼 수 있다.
  
 <소년시절의 너> 스틸컷

<소년시절의 너> 스틸컷 ⓒ (주)영화특별시SMC

 
하지만 친구의 죽음을 묵인할 수 없었던 그녀는 형사에게 진실을 말한다. 문제는 그 이후다. 집단 괴롭힘의 대상이 첸니엔이 되어버린 것이다.

경찰은 범인을 잡았지만 처벌할 수 없고, 학교는 수능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과한 징계에 부담을 느낀다. 아이들은 자신들을 신고한 사람이 첸니엔이란 걸 알고 그녀를 괴롭히기 시작한다.
 
영화는 집단 괴롭힘을 소재로 과한 폭력을 보여주지만, 이 소재를 단순 흐미요소로만 소비하지 않는다. 첸니엔의 담임교사는 그녀에게 말한다. 네 용기는 의미가 있지만 때문에 너에게는 그림자가 생겼다고. 그리고 그녀는 홀로 이 괴롭힘과 마주한다.
 
그래서일까. 샤오 베이(베이)의 존재는 그녀에게 크게 다가온다. 동네 양아치인 베이는 첸니엔에게 말한다. 너와 나는 같다고. 그 말에 첸니엔은 코웃음을 친다. 그녀에게는 미래가 있지만 베이에게는 없다. 하지만 집단 괴롭힘은 첸니엔이 원하는 미래로 가는 길을 어렵게 만든다. 뒤늦게 그녀는 자신과 베이의 세상이 같다는 걸 알게 된다. 어른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두 사람은 어둠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소년시절의 너> 스틸컷

<소년시절의 너> 스틸컷 ⓒ (주)영화특별시SMC

 
첸니엔이 베이에게 도움을 요청한 순간, 두 사람의 세상은 변한다. 작품에서 베이는 첸니엔에게 말한다. "넌 세상을 지켜. 난 너를 지킬게." 이 다소 오글거리는 대사는 그들이 그리는 세상을 보여준다.

첸니엔은 좋은 대학에 가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미래를 꿈꾼다. 때문에 그녀는 그 세상을 위해 힘차게 나아간다. 베이에게 세상은 첸니엔이다. 아무도 자신을 걱정하지 않는 세상에서 베이는 처음으로 자신을 걱정해주는 첸니엔을 만났다.
 
이 영화의 유명한 삭발장면은 두 사람의 세상이 하나로 이어지는 순간을 조명한다. 작품은 유튜브 영화 소개 채널에서 첸니엔을 삭발시키는 베이의 모습이 담긴 영상으로 많은 조회 수를 조회한 바 있다. 집단 괴롭힘을 당한 첸니엔은 망가진 머리를 밀기로 결정한다. 이 순간 그녀는 자신의 노력으로는 넘어설 수 없는 사회적 벽을 실감한다.
 
베이는 그런 첸니엔에게 기둥이 되어주고자 한다. 작품에서 베이는 첸니엔이 학교에 갈 때면 항상 뒤에 선다. 같이 걷자는 첸니엔의 말에도 묵묵히 뒤에서 그녀를 바라본다. 베이는 첸니엔이 꿈꾸는 세상을 지켜주기 위해 자신이 그 세계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고 여긴다. 자신이 첸니엔의 미래에 방해가 될 것이라 여긴다. 반면 첸니엔은 자신의 세상에 베이가 필요하다 여긴다. 인간은 누군가 지켜주지 않으면 세상이란 무서운 파도를 견뎌낼 수 없기 때문이다.

중국 내 집단 괴롭힘 조명
  
 <소년시절의 너> 스틸컷

<소년시절의 너> 스틸컷 ⓒ (주)영화특별시SMC

 
작품은 중국 내 집단 괴롭힘 문제를 조명한다. 때문에 로맨스의 성격보다는 교훈적인 측면이 강하다. 하지만 두 청춘의 어두운 세상과 서로를 의지하며 이를 이겨내는 모습, 결말부의 진한 여운은 증국상 감독이 지닌 스토리텔링의 힘을 보여준다.

증국상 감독은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를 통해 완성도 높은 드라마를 선보이며 호평을 들은 바 있다. 그는 이번 작품에서도 예기치 못한 전개는 물론 두 주인공의 감정을 탄탄히 쌓아올리며 감정을 격화시킨다.
 
사회적인 문제를 담아내지만 계몽영화로 빠지는 걸 경계한다. 장르적인 매력을 보여주지만 그 재미에 함몰되어 깊이를 잃는 실수를 범하지 않는다. 여기에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에서 함께 호흡을 맞췄던 배우 주동우의 열연은 눈물샘을 자극하는 감정의 깊이를 보여준다.

풋풋한 청춘 로맨스가 아닌 거칠고 어두운 분위기의 작품이란 점에서 다소 실망할 수도 있지만, 이 영화가 그려내는 아름답고도 아픈 청춘의 세상은 큰 감동과 여운을 주기에 충분하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준모 시민기자의 블로그에도 게재됩니다.
소년시절의 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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