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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남 담양 모 고등학교에서 학부모의 항의로 성교육 수업이 취소됐다.
 전남 담양 모 고등학교에서 학부모의 항의로 성교육 수업이 취소됐다.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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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돔'이 아니라 '바나나'가 문제였던 것 같아요. 어른들이 '야동'을 너무 많이 본 것 아닐까요?"


며칠 전 전남의 한 고등학교에서 벌어진 성교육 취소 해프닝에 대해 한 아이는 학부모들을 향해 이렇게 조롱했다. 그들이 학교를 찾아가 성적 수치심을 유발하고 성범죄를 조장한다며 항의했다는 것이 가짜뉴스 아니냐고 되묻기도 했다. 조선 시대도 아니고, 아무렴 그렇게 생각했겠느냐는 거다. (관련기사: '콘돔 끼우기' 시연하려던 남녀공학 교사 학부모 항의에 취소 http://omn.kr/1o86b)

개중엔 바나나에 꽂힌 경우가 몇 있긴 했다. 왜 하필 실습 도구가 바나나였냐는 거다. 실습이 끝난 뒤 콘돔 낀 바나나를 그냥 버리지 않고 서로 나눠 먹게 될 거라며 키득거렸다. 그렇다고 그것이 성적 수치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보는 건 너무 나간 주장이라고 말했다.

무엇보다 다 큰 고등학생들을 대신해 학부모가 항의하는 모양새가 우스꽝스럽다고 말했다. 정작 수업을 받는 학생들은 아무렇지도 않은데, 어른들이 나서서 수업 방식을 문제 삼는 건, 당신의 자녀들을 유치원생이나 초등학생으로 여기기 때문이라고 했다. 해당 교사가 학부모들에게 단단히 밉보인 것 아니냐는 '음모론'을 꺼내기도 했다. 그만큼 황당하다는 뜻이다.

콘돔이 어때서
 
   
 콘돔
 전남 담양 모 고등학교에서 학부모의 항의로 성교육 수업이 취소됐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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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들의 반응도 아이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굳이 바나나를 각자 준비해오라는 건 이래저래 오해의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취지에는 십분 공감하나 '디테일'이 부족했다는 거다. 자녀로부터 앞뒤 맥락 없이 전해 들었을 학부모들은 조금 난감했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바나나가 아니래도 성교육을 위한 교구는 넘쳐난다. 학교에 없다고 해도 성교육 관련 단체에 요청하면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다. 신체 기관은 물론, 실물 크기의 남녀 성기 모형까지도 준비되어 있어, 초중고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다양한 실습 교육에 활용할 수 있다.

백 보 양보해서 그렇다는 거지, 학부모들을 편드는 교사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두둔하기는커녕 그들의 성 의식이 1970~1980년대에 멈춰 버렸다며, 당신의 자녀들과 전혀 소통이 없는 꽉 막힌 '꼰대'들일 거라고 지적했다. 요즘에도 저런 사람들이 있느냐고 놀라워하는 이도 있었다.

고등학생의 학부모라면, 나이가 얼추 4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에 해당한다. 아직은 젊은 나이라지만, 학교에서 성교육을 받아본 경험이 거의 없는 연령대다. 그들의 학창 시절 성교육은 지금은 과목명조차 사라지고 없는 생물이나 가사 시간에 배운 '수험용 지식'이 사실상 전부다.

그들 중에는 수업 시간 아이들이 콘돔을 만지작거린다는 것 자체를 납득하지 못하겠다는 경우도 있다. 아직도 TV 방송에서 나오는 피임약 광고조차 아이들과 함께 보기 민망하다고 말하는 기성세대가 주변에 드물지 않다. 그들에게 콘돔과 피임약 등은 '금단의 언어'다.
  
성에 대해서만큼은 굳이 학교에서 가르치지 않아도 나이를 먹어가면서 저절로 알게 된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자신들의 살아온 경험을 근거 삼은 주장이다. 최근 'N번방' 사건에서 보듯 성에 대한 왜곡된 인식이 부실한 성교육에서 비롯됐다는 사실을 좀체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동료 교사들은 구태의연하고 형식적인 성교육을 탈피하려는 교사의 노력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20~30대 젊은 교사들조차 학창 시절 어쩌다 한 번 보건소 등에서 파견 나와 시연하는 게 전부였다고 말했다. 성교육에 관한 한 지금껏 학교가 한 건 아무것도 없다는 거다.

교사의 수업권, 사망하다 
      
 (서울=연합뉴스) 한상균 기자 = 14일 신수중학교에서 학생들이 성범죄 예방법 등을 포함한 성교육을 받고 있다. 이번 교육은 마포구가 관내 학생들을 대상으로 진행하고 있는 '이동 건강 체험관'으로 학교를 직접 방문해 금연, 금주, 영양, 운동, 성과 관련한 정보와 올바른 실천방법 등을 알려주는 프로그램이다. 2010.12.14
 학생들이 성범죄 예방법 등을 포함한 성교육을 받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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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들어 성폭력 예방 교육이 화두다. 이른바 '7대 안전교육'의 하나로 학교에서 가장 중시하는 교육이다. 성 인지 감수성을 키우기 위한 다양한 교육과 함께 실효적인 성교육을 실시하도록 교육과정에 의무화되어 있다. 하지만, 응급처치나 교통안전, 사이버 폭력 등 다른 영역에 견줘 여전히 형식적이다.

학교마다 학교안전정보센터 등이 제공하는 영상 자료를 시청하는 것으로 대신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성교육을 실시하는 담당자부터 모호한 경우도 적지 않다. 보건 교사의 고유 업무로 규정된 학교가 있는가 하면, 기술가정이나 체육 교과에서 담당하는 곳도 있다.

아이들이 궁금해하는 '진짜' 성교육은 SNS와 유튜브 등이 담당해야 할 몫으로 넘어간 지 이미 오래다. 아이들의 신체적 성장과 성 인식의 급속한 변화를 학교 교육이 따라가지 못한 탓이다. 예나 지금이나 학교의 성교육은 '인체의 신비' 강의 수준에 머물러 있다.

교사들은 이구동성 아이들이 SNS와 유튜브를 통해 성에 눈뜨게 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성교육이 '음성화'하도록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거다. 아무런 제약 없이 선정적인 장면이 노출되는 매체의 특성상 성에 대한 잘못된 성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조금은 서툴렀을지언정 이번 일은 하품만 나오는 기존의 성교육 방식에 문제를 제기한 의미 있는 시도였다고 봐요. 고등학교 수업에 학부모들이 득달같이 달려들어 감 놔라 배 놔라 간섭할 문제는 아니죠. 명명백백 교사의 수업권을 침해한 행위라고 봐요."

30대의 한 동료 교사는 학부모들의 문제 제기를 교사의 수업권을 침해한 것이라며 명토박았다. 우리 사회가 워낙 성에 민감한 탓에 해당 교사를 마치 성범죄자인 양 몰고 있지만, 따져 물을 건 물어야 한다고 말했다. 언론에까지 대서특필됐으니 유야무야 넘어가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더욱 황당한 것은 해당 학교장의 태도라고 했다. 학부모들의 항의가 온당한지 따져보지도 않고 서둘러 취소 결정을 내린 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처사라는 거다. 어이없는 학부모의 민원 하나에 교사의 수업권이 내동댕이쳐지는 현실이 같은 교사로서 절망스럽다고도 했다.

모든 학교장이 가장 두려워하는 존재는 인사권을 가진 교육감이고, 그 다음이 학부모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학교에 대한 학부모들의 민원에 민감하다는 뜻이다. 학부모들이 문제를 제기하면, 납작 엎드려 다짜고짜 사죄부터 하고 보는 학교장이 주변에 적지 않다.

이는 학부모들 앞에서 스스로 '을'임을 자인하는 꼴이며, 학교의 최종 책임자로서 교육 철학의 빈곤을 여실히 보여준다. 민원 하나에도 쩔쩔매는 그가 교사들의 교육 활동에 버팀목이 되어주기를 기대하는 건 '연목구어'(緣木求魚·나무에서 물고기를 구함)다. 그에게 교사의 수업권은 선언적 구호에 불과할 뿐이다.
  
좋은 수업이 필요하다
 

이번 사달을 접한 아이들과 교사들이 가장 많이 내뱉은 말은 '이런 것도 뉴스가 되느냐'는 것이었다. '콘돔과 바나나'를 제목으로 뽑은 선정적인 기사로, 그러잖아도 감염병의 확산으로 인해 하루하루가 긴장의 연속인 학교에 뭇매를 가하는 형국이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더욱 안타까운 건, 이번 일로 학교 교육에 대한 아이들의 신뢰에 생채기가 났다는 점이다. 해프닝을 지켜본 아이들은, 학부모의 민원 앞에 교사의 수업권 따위는 무시될 수 있고, 교사는 물론 학교장조차도 학부모 앞에 쩔쩔맨다는 걸 알아버렸다. 교육청까지 조사에 나서게 한 학부모의 위세를 아이들이 기꺼워할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한 가지 더. 이번 일로 학교의 성교육은 다시 '인체의 신비' 강의로 되돌아갈 것이다. 학부모들의 항의와 여론의 뭇매에도 굴하지 않고 소신을 펼칠 수 있는 교사는 많지 않다. 학교장도 '좋은' 수업보다 '평범한' 수업을 바랄 것이다. 물론 수업이 평범하면서도 좋기란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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