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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의 가장 유력한 대선후보와 당 대표가 그린벨트를 풀자고 나섰다. 참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한국 보수의 정신적 뿌리라고 할 수 있는 박정희가 그린벨트를 만들었고, 이걸 풀기 시작한 흐름이 생겨난 것은 외환위기(IMF) 이후 DJ 시절이었다. '개발제한구역 제도 개선안'을 통해서 완화시키는 흐름을 만들었다.

도시 생태라는 관점에서 진보는 그린벨트 보존, 보수는 그린벨트 해제, 그런 구도는 사람들 상상 속에서만 존재한다. 실제로는 민주당이 그린벨트를 열심히 풀었다.

그러니 역사적 흐름으로만 보면 민주당 당대표와 유력 대선 주자가 그린벨트 풀자고 하는 건 하나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지금 환경부 장관인 조명래나 LH 공사 사장인 변창흠도 그린벨트나 토건 문제에서는 그렇게 진보적인 입장은 아니다. 시민단체 시절에도 그린벨트 적당히 푸는 것에 찬성했고, 기업도시 때에는 좀 더 적극적으로 찬성하기도 했다. 어쨌든 그들은 '온건 개발주의' 정도지, 환경단체의 입장과는 좀 거리가 있다.

이해찬과 이낙연의 딜레마
 
국가안보전략 세미나 참석한 이낙연 당권 도전을 선언한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코로나19 시대 동북아 질서와 국가안보전략' 학술 세미나에 참석, 축사를 위해 발언대로 향하고 있다.
▲ 국가안보전략 세미나 참석한 이낙연 당권 도전을 선언한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코로나19 시대 동북아 질서와 국가안보전략" 학술 세미나에 참석, 축사를 위해 발언대로 향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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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민주당의 또 다른 정신적 뿌리가 노무현 시절에 생겨난다. 그게 행정수도 이전으로부터 시작된 '균형 발전'의 논리다. 세종시 만들고, 수도권에 있던 공기업을 전국으로 흩어서 내보낸 것은 지금 민주당과 집권 세력의 정신적 뿌리다.

그냥 서울에 집을 많이 지으면 해결된다는 아파트 공급론자에 대해서 민주당이 반대 입장을 가진 것은, 그들이 탈토건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환경 논리가 강해져서 그런 게 아니라 수도권과 서울을 키우면 지방이 몰락하게 되기 때문이다. 노무현 정책의 핵심이라고도 할 수 있는 균형 발전은 민주화 만큼이나 강력한 정책 틀이다.

이해찬과 이낙연의 딜레마는 뿌리가 깊다. 지금 부동산 문제에 해법을 제시하지 못하면 정권이 날아갈 것이다. 그렇다고 서울의 그린벨트를 풀면? 수많은 행정 비용을 들여서 공기업 지방 이전은 뭐 하러 했고, 수많은 혁신도시들은 왜 만들었느냐는 딜레마에 빠진다. 그냥 공사하고 싶어서 한, '토건식 공사주의'라는 비판을 만나게 된다. 공공기관과 공기업들은 내려 보내고 서울에 집은 또 짓고, 그런 일을 지금 하자는 것이다.

물론 그린벨트 중에서 실효성이 사라진 곳의 일부를 풀자는 말이 아주 허황되지만은 않다. 잘 관리되지 않고 명분만 그린벨트인 곳도 있다. 그러나 이건 논리적 명분일 뿐이다. 장기적으로는 가뜩이나 어려운 지방 도시들의 쇠락을 만들어내게 된다.

경제적 효과만 보면, 지금 민주당이 양해를 구해야 하는 것은 박원순 서울시장만이 아니라 충청도를 비롯한 비수도권 거주민들이다. 서울을 축소해서 지역을 살리는 것, 이게 노무현 정신 아니었던가?

그린벨트 해제, 그 최소한의 요건
 
 정부가 부동산 가격 안정을 위해 다주택자와 단기간 투기성 매매자에 대한 세금을 인상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사진은 5일 오전 경기도의 한 아파트 건설현장 모습. 2020.7.5
 정부가 부동산 가격 안정을 위해 다주택자와 단기간 투기성 매매자에 대한 세금을 인상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사진은 5일 오전 경기도의 한 아파트 건설현장 모습.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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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벨트를 풀기 위해서는 두 가지 요건이 갖추어져야 한다. 먼저 보존의 가치가 현저히 떨어지는 곳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흔히 환경 활동가들이 '개도맹'이라고 부르는 개구리·도롱뇽·맹꽁이, 이런 게 살고 있으면 모든 절차는 일단 정지다. 개발자들의 눈에는 별 거 아니라고 하는 곳에도 이런 개도맹이 종종 출현한다.

또 다른 요건은 공익성이다. 20년 이상 장기 거주할 수 있는 실질적인 임대주택의 비율과 공익성이 중요하다. MB가 북한산에 은평 뉴타운 개발할 때에는 임대주택 사업이라고 예비타당성 조사도 슬쩍 넘어갔다. 전례가 있으니까 절차는 속여서 넘어갈 수 있다고 하더라도, 이게 진짜로 공익적인 것인지 과감하면서도 섬세한 논의가 필요하다.

최소한 오세훈의 강남 개발보다는 더 공적이어야 한다. 지금 한참 논의되는 토지임대부 아파트, 즉 건물에 대해서만 소유권을 주고 토지 자체는 공적으로 보유하는 정도는 기본이다. 여기에 원가 공개는 물론이고 전량 후분양 등 가능한 한 모든 공익성 정책 패키지를 다 동원한다는 정도는 해야 그린벨트 해제에 대한 최소한의 명분을 가질 수 있다.

이해찬이든 이낙연이든, 박원순에게 그린벨트 풀라고 하기 전에 최소한 국토교통부 장관 해임안 정도는 들고 가는 게 예의다. 사태를 이 지경이 되도록 방치한 장관은 물론이고 경제 부총리, 청와대 정책실장, 이런 사람들에게 책임도 묻지 않고 그린벨트부터 풀자고 하는 건 노무현의 균형발전 정신에 중대한 결함을 만든다. 분노한 청년들 앞에서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이제부터는 잘 하겠습니다'는 태도는 아니라고 본다.

사태가 이 지경까지 온 데 대해서 책임질 사람은 책임을 져야 한다. 그리고 지금 아파트 논의를 주도하고 있는 김헌동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본부장을 국토부 장관으로 추천하는 것도 생각해볼 수 있다. 공익성 개발은 그가 제일 내실 있게 추진할 수 있을 것 같다. 조명래, 변창흠, 이런 온건 개발주의자들이 안을 만들 것은 아니라고 본다. 흑묘백묘라고 했다. 자기 편만 가지고는 지금 사태를 해결하지 못 한다.

이미 시작된 투기

세곡동·내곡동, 어제부터 투기가 이미 시작되었다. 유력한 대선주자인 이낙연이 하자고 했으니,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분명 다음 정권 때에는 풀릴 것이라는 게 투기꾼들의 예측이다.

몇 사람 자리에서 내려오고 정말 공익적인 방식으로 할 것이라는 분명한 시그널을 시장에 주지 않으면 이낙연발 투기 광풍이 불 것이다. 그 사람들은 세곡동이든 내곡동이든 맹꽁이가 살 만한 조그만 물웅덩이도 다 콘크리트로 몰래 메워버릴 사람들이다.

영화 <타짜>에서 "손은 눈보다 빠르다"고 했다. 현실 세계에서 투기는 정책보다 빠르다. 내년 봄에도 서울 그린벨트 안에 '개도맹'들이 살아남을 수 있을까? 환경영향평가 들어가기 전에 대학살극이 벌어질 것이다. 투기가 원래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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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문제, 환경-자원 문제에 대한 전문가. 경제학 전공. 기후변화협약 UNFCCC 기술이전 전문가그룹 아시아지역 대표 이사 현대환경연구원 연구위원, 에너지관리공단 팀장 역임 한국생태경제연구회 창립회원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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