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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시청 팀 관계자들이 고 최숙현 철인3종 선수에게 가한 상습적 가혹행위 사건이 연일 보도되며, 많은 이들의 공분을 사고 있습니다. 조직 차원 혹은 조직 내 권력자가 신체적·정신적 괴롭힘으로 개인의 인생을 망가뜨리는 행태는 그 뿌리가 깊은데요. 이에 조선시대에 기록된 직장 내 가혹 행위를 함께 들여다보겠습니다.
 
 조선의 기본 법전인 『경국대전』
 조선의 기본 법전인 『경국대전』
ⓒ 국립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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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속인을 괴롭히는 자는 모두 장 60대에 처한다. 
- <경국대전(經國大典)> '형전(刑典)'
 
조선의 기본 법전인 <경국대전>에 의하면, '신속인(新屬人)'을 괴롭히는 자에게는 장 60대의 처벌이 내려집니다. 여기에서 신속인이란 무엇일까요? 조선시대에는 이 신속인 외에 신래(新來), 신참(新參), 신은(新恩), 신귀(新鬼) 등으로 불린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표현은 다르지만 가리키는 바는 같습니다.
 
새로 과거에 합격하거나, 선비로서 처음으로 벼슬을 얻은 자를 신래라 한다. (명종실록 8년 윤3월 11일)
 
신속인·신래·신참·신은·신귀 등은 요즘 식으로 표현하면 모두 '신입'에 해당합니다. 선진(先進) 곧 선배는 허참례(참여를 허락하는 의식), 면신례(신참을 면하는 의식), 면신벌례(신참을 면하려 한 턱 내는 의식) 등의 '신고식'을 거치지 않은 신입을 공동체의 일원으로 대우하지 않고, 심지어 한 자리에 함께 앉는 것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집단 따돌림은 한 달이 지나도 해결되지 않았기에 신래는 굴복하고 신고식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신고식의 내용은 다음과 같이 참으로 고약했습니다.
 
사헌부(현재의 검찰·감사원)가 아뢰었다..."예문관(지금의 청와대 연설 비서관)의 신래가 된 자가 논밭과 주택 등 재산을 모두 팔아서 그 비용으로 쓰고 빚을 갚지 못하고 죽자, 과부가 된 그의 아내가 눈물로 일생을 보낸 경우도 있습니다." (중종실록 35년 3월 26일)

"시궁창의 오물을 (신래의) 얼굴에 칠하고는 당향분(현재의 명품 화장품)이라고 부르는가 하면 갓과 의복을 찢고는 더러운 물속에 밀어 넣어 뒹굴게 하여, 사람이 차마 못 볼 귀신같은 형상을 만들어 몸을 상하게 하거나 병들게 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하니, 체면을 손상함이 실로 크다." (선조수정실록 2년 9월 13일)

사헌부가 아뢰었다..."신래라 부르며 멋대로 학대하는데, 온몸에 진흙을 바르고 온 낯에 오물을 칠하며, 잔치를 벌이도록 독촉하여 먹고 마시기를 거리낌 없이 합니다. 조금이라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의 몸을 괴롭히는 등 갖가지 추태를 부리고, 아랫사람들을 매질하는데 그 맷독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생명을 잃거나 고칠 수 없는 병에 걸리게 되는 사람이 있기도 하니 폐해가 또한 참혹합니다. 사대부들 사이에서 먼저 이런 풍습을 앞장섰기 때문에 변변치 않은 벼슬아치, 정1품에서 종9품 사이에 들어가지 않는 잡품, 군사, 노비와 같은 미천한 사람들까지도 모두 그렇게 하지 않는 사람이 없습니다." (중종실록 36년 12월 10일)
 
신래가 치러야 하는 신고식은 상류층·엘리트층은 물론 하층민에게까지 일반화되어, 사회에 끼치는 폐해가 대단했습니다. 한 개인이 감당해내기 힘든 규모와 내용을 보였기 때문입니다.

여러 차례에 걸쳐 거하게 대접하라는 선배들의 요구에 응하느라, 가난한 사회 초년생과 그 가족은 빚을 끌어 쓰다 재산을 탕진하고 신세를 망치기도 합니다. 또한 오물을 뒤집어쓴 채 음담패설을 쏟아내거나 온종일 우스꽝스러운 춤을 추며 스스로의 명예를 실추시켜야 합니다.

소위 '기 꺾기'를 위해 가상적 죽음으로 몰고 가는 것입니다. 아울러 신체적 죽음도 발생했는데요. 체벌 등의 신체적 가혹 행위로 인해 병을 얻거나 폐인이 되는 사람도 있습니다.
 
임금의 명을 전하였다. "일전 경연에서 이조판서(현재의 행정안전부 장관) 허굉이 신래를 괴롭히는 폐단을 말하기에, 금지하도록 이미 법사(사법업무 담당 관청)에 거듭 밝혔다. 오늘 경연관(임금의 독서토론 담당 관리) 강현이 또한 '신래 감찰(사헌부의 정6품 관리) 조한정이 괴롭힘을 당하다 기절하므로 떠메고 갔는데 죽었다'고 한다." (중종실록 21년 1월 24일)

위와 같이, 가혹 행위로 인해 목숨을 잃는 신래가 생기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죽음의 신고식'은 '고풍(古風)', 즉 전통 혹은 관행이라는 명목으로 조선 후기까지 이어집니다.
 
우의정(현재의 총리와 유사) 이행이 아뢰었다..."신래를 괴롭히는 일을 잠시도 중지하지 않는데, 고풍이라고는 하나 폐단이 적지 않습니다. 사관(역사를 기록하는 관리)은 청현직(학식·청렴·문벌·지위를 갖춘 엘리트코스)이어서 학부형들이 모두 바라는 바이지만, 피하려는 것은 잔치 비용을 마련하기 어려워서입니다." (중종실록 24년 11월 5일)

사헌부가 아뢰었다..."신래를 닦달하는 일이 고풍이라고는 하지만, 예전에는 없던 일로 더욱 가중되고 있습니다." (중종실록 35년 3월 26일)
 
요직으로 가는 길목일수록 신고식의 강도가 더욱 높기 때문에 이를 감당할 수 없는 사람은 임명되기를 피하기도 합니다. 신고식 때문에 뛰어난 인재도 사장되는 현상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정권마다 가혹한 신고식에 대해 엄한 단속을 천명하고 적발되면 처벌했지만 고풍이라는 이름으로 단절되기는커녕 점점 더 심해집니다. 심지어 임금의 의지에 반발하며 신고식을 옹호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대사간(언론기관의 수장) 최숙생..."새로 급제한 사람이 분관(인턴을 배치하여 실무를 익히게 함)되면 반드시 허참례와 면신례를 해야 하는데, 정응은 이 의식을 행하지 않고서 갑자기 홍문관 정자(임금 자문 기관의 정9품 관직)로 임명되었으니 곤란합니다." (중종실록 9년 11월 15일)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임금에게도 행실을 고치라 촉구하며 고위관리를 고발하는 등 시대의 걸림돌을 따지고 개혁을 이끌어야 할 언론기관의 수장이 신고식을 거치지 않은 자의 임명을 두고 부당하다며 문제제기합니다. 악습이 만연한 세태를 반영하는 한 사례이지요. 이들은 새로운 진입자를 상대로 기득권을 누리거나 방어하기 위해 신고식이 필요했을 것입니다. 일종의 진입장벽이었던 셈입니다.
 
사헌부가 아뢰었다..."훈련원 참군(사관학교의 정7품 군직) 이종은 모든 신래가 면신례를 할 때면 직접 그 집에 가서 '내가 최근에 임기 만료로 이직하게 되었는데, 그러면 감찰(사헌부의 정6품 관직)이 될 것이다. 내 면신에 쓸 물품을 미리 비축하여 두고자 한다. 그대는 반드시 면신에 쓸 물품을 많이 준비했을 테니, 나에게 나눠준다면 그대의 면신례도 쉽게 하도록 하겠다' 라고 하는데, 신래들이 거의 다 두려워하여 나눠줍니다." (중종실록 33년 8월 17일)

사헌부가 아뢰었다..."회자(밤에 허름한 차림으로 선배들을 찾아다님)할 때 목면(화폐로 쓰는 무명)을 가지고 가서 선배의 종에게 뇌물로 준 뒤에야 비로소 명함을 들일 수 있음은 물론, 회자하는 기간이 50일이나 되어 그 폐단이 적지 않습니다. 그리고 연회까지도 전부 신래에게 마련하여 베풀게 하는데 하루에 3∼4군데에 나누어 베풀기도 합니다. 선배들은 기생을 끼고 앉아 후한 뇌물을 요구하다가 조금이라도 마음에 차지 않으면 신래의 종을 때려서 간혹 죽이기까지도 합니다." (중종실록 35년 3월 26일)
 
선배가 '업무상 위계' 곧 상대적으로 우위인 지위를 무기로 신입을 협박하며 '삥 뜯기'를 합니다. 이처럼 신고식을 명분 삼아 후배에게 뇌물을 받거나 금품을 갈취합니다. 한 조직에 속해 매일 얼굴을 보는 이들에게 지속적으로 '왕따'를 당할 생각에 아득해진 신래는 선배의 요구에 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선배는 또 어딘가로 자리를 옮기며 새로운 부서의 신래가 되고, 따라서 호된 신고식을 치러야 할 것입니다. 곧 닥쳐올 자신의 신고식과 상납에 대비하기 위해 그는 후배에게 돈을 뜯어냅니다.

이 구조를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신래는 선배의 추천을 받아 승진하기도 합니다. 그러면 자신이 당한 것처럼 신래에게 뇌물을 받거나 금품을 갈취하겠지요. 이렇게 먹고 먹히는 관계는 끝없이 이어집니다.

여기에서 작동하는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사고방식은 나쁜 공생의 생태계를 만듭니다. 이것이야말로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현상일 테지요. 이를 거부하는 사람은 한 집단의 일원이 되지 못할 뿐더러,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도 동참하기 힘듭니다.
 
율곡이 처음 급제했을 때 승문원(외교문서를 담당하는 관청)에서 선배에게 공손하지 않다 하여 파직되었다. 퇴계가 이 소식을 듣고, "신래를 희롱함은 과연 무리한 일이다. 그러나 이미 그런 줄을 알고 그 길로 들어갔으니, 이군(율곡)인들 어찌 홀로 모면할 수가 있겠는가?"...퇴계가 손자 이안도에게 보낸 편지에서 "선배가 시키는 장난을 좇지 않을 수는 없으니 잠깐 하는 척하여 그 나무람만 모면할 뿐, 너무 난잡하고 부끄럼 모르는 행동을 하여 광대와 같이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되어서는 안 된다." 하였다...진실로 제거할 것은 제거함이 옳은 일인데, 지금까지 그렇지 못함은 힘이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성호사설(星湖僿說)> 제15권 '인사문(人事門)')
 
조선 후기에 이익이 쓴 책 <성호사설>에 의하면, 이율곡은 신고식에서 선배에게 잘못 보인 탓에 직장에서 쫓겨났습니다. 장원만 아홉 번 차지했던 수재 중의 수재도 신고식의 문턱을 넘기 힘들었던 모양입니다.

이퇴계는 손자에게 선배들이 시키는 대로 적당히 따르는 척 하라고 당부합니다. 유력한 가문의 일원도 예외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개인의 힘으로는 이 부조리를 당해낼 수 없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기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신입에 대한 집단적 학대는 조선시대에만 통용된 행태가 아닙니다. 인류학에서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관찰된다고 보는데요. 우리 역사에서의 기록은 고려로 거슬러 갑니다.
 
신우(우왕) 13년 3월에 윤취가 시험을 주관하였는데, 시험에 임한 자는 모두 권문세가의 젖비린내 나는 아이들이었다. 그때 사람들이 이들을 추하게 여기며 분홍방이라 불렀다. 아이들이 분홍 옷 입기를 좋아하기 때문이었다. (<고려사(高麗史)> 권74)

이이가 아뢰었다..."고려 말에 과거 제도가 공정하지 못하여, 급제한 자들은 입에서 젖비린내가 나는 귀한 집 자제들이었으므로, 당시 사람들이 그를 지목하여 '분홍방(粉紅榜, 분홍색 저고리를 입은 어린애)'이라고 하였는데, 세상 사람들의 마음이 격분하여 모욕을 주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선조수정실록 2년 9월 1일)

옛날에 신래를 제압한 것은 호방한 선비의 기세를 꺾고, 엄격하게 위아래를 구분하여 그들로 하여금 규칙을 지키게 하기 위함이었다.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용재총화(慵齋叢話)')
 
면신례 등의 신고식은 고려 문벌귀족 사회의 '금수저' 내지 '낙하산 인사'에 대한 당대의 저항 의식이 반영된 것이었습니다. 인류학에서 이해하는 바와 같이, 개인의 사회화를 위한 학습의 일환이기도 했고요. 그러나 이러한 통과의례가 '정신 무장' 혹은 '기강 잡기'를 가장한 기득권자의 괴롭힘으로 변질되며 사회의 폐단이 되었습니다.
 
 신입 관리 정양신(鄭暘臣)에 대한 면신례 문서. 오른쪽에 ‘신귀 신양정’, 즉 신입 정양신의 이름이 거꾸로 적혀 있고, 왼쪽에 다섯 개의 수결 곧 서명이 있다.
 신입 관리 정양신(鄭暘臣)에 대한 면신례 문서. 오른쪽에 ‘신귀 신양정’, 즉 신입 정양신의 이름이 거꾸로 적혀 있고, 왼쪽에 다섯 개의 수결 곧 서명이 있다.
ⓒ 국립민속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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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에 의하면, 고 최숙현 철인3종 선수는 경주시청팀의 감독·팀닥터(라 불린 운동처방사)·선배들로부터 약 2년간 거의 매일 폭언·폭행·갈취 등을 당했습니다. 그리고 가해자들이 동료 선수들과 차단시켜, 최 선수는 철저히 고립되었습니다.

그들의 가혹 행위는 제 나름의 핑계가 있었습니다. 최 선수는 프로답게 우수한 성적을 내야 하고, 체중을 관리해야 하며, 강한 정신력을 지녀야 하고, 훈련에 따르는 비용을 지불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생활인으로서 운동선수로서의 삶을 유지하기 위해, 이러한 부당함과 부조리를 홀로 감당해냈습니다.

그러던 끝에 최 선수 측은 지난 2월부터 6월까지, 국가인권위원회·경주시·대한체육회 스포츠인권센터·대한철인3종협회 등 외부에 최소 6회의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이들 중 어느 곳도 조치를 취하기는커녕 방관한 것으로 보입니다.

선수 생명을 담보로 한 민원·진정·고소 등이 무시되자, 최소한의 희망조차 잃은 최 선수는 물리적 생명을 스스로 내려놓았습니다.

해당 사건의 근본적 원인은 소수의 폭행자 개개인의 일탈을 넘어서, 조직원의 생존을 볼모로 잡은 '갑질 사회'에도 있습니다. 따라서 당국은 가해자들을 일벌백계하고, 피해자를 구조·예방하는 법적·사회적 장치가 정상적으로 작동하도록 점검해야 하며, 갑질 문화를 타파하기 위한 체계적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이에 대해 우리는 연대하여 분노하고 감시해야 하고요.

이번에는 최 선수였지만, 다음에는 또 누가 집단적 가혹 행위의 피해자가 될지 모릅니다. 최 선수가 겪은 사건은 단지 성적제일주의가 만연한 체육계만의 문제가 아니니까요.

우리는 이번에 조선왕조실록을 통해, 고려·조선에서도 개인에 대한 '직장 내 갑질'이 얼마나 가혹했는지 똑똑히 보았습니다. 야만적 폭력은 일시적으로 움츠리는 듯 보이다가도 이렇게 대물림되는 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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