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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오래전부터 '공포(公布)'라는 법률 개념이 잘못 사용되고 있다는 점을 누누이 지적해왔다. '공포'와 '관보발행일'은 각각 다른 법률 개념인데, 이를 잘못 등치시키고 있다는 주장이었다.

필자는 이 문제를 바로 잡기 위해, 학술논문을 비롯하여 오늘에 이르기까지 각종 매체에 기고문을 계속 발표해왔다. 그러나 필자의 주장은 아무런 호응도 얻지 못하고, 도리어 이 주장 때문에 필자의 근무기관에서 징계까지 받는 일까지 발생했다. 필자가 이 문제를 처음 지적한 지도 벌써 10년이 넘어가고 있다.

그런데 필자의 고독했던 주장이 마침내 지지를 받게 되었다. 바로 헌법재판소의 헌법연구관인 김동훈 연구관이었다.

김 연구관은 2019년 9월 19일자 <법률신문>에 "법률 공포에 관한 우리의 오래된 오해"라는 기고문을 발표했다. 이 기고문은 "우리는 지난 반세기 넘게 법률 공포를 오해해온 듯하다"라는 글로써 시작된다. 그가 처음 이 '공포' 개념에 주목하게 된 때는 그가 이탈리아 연수 중이었다고 한다.

"2016년 이탈리아 국외연수 중 우리 헌법과 이탈리아 헌법을 비교하다가 한 조문에 마주쳤다. '법률은 의회의 승인 후 1개월 이내에 대통령이 공포한다. … 법률은 공포 후 즉시 공고하고 … 공고 15일 후에 효력을 발생한다.'(이탈리아 헌법 제73조). 우리와 비슷한데 미묘하게 달랐다. 이탈리아에서도 대통령이 법률을 '공포'하는데, '공포'(promulgazione) 후에는 별도로 '공고'(pubblicazione)를 하도록 한 것이다. 시사점을 얻은 김에 프랑스, 스페인, 그리고 독일 등의 헌법과 관련 법률을 내쳐 찾아보았다. 모두 '공포'와 '공고'를 별개로 규정하고 있었다."

서구와 한국의 차이, 왜?

당시 김 연구관은 왜 서구는 공포와 공고를 구별하는데 우리는 구별하지 않느냐는 의문을 품었지만 풀지 못한 채 귀국했고, 그 후 주변 법률가들에게 물어보고 관련 문헌도 찾아보았으나 성과는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여기에서 새로운 전기가 발생했다. 김 연구관은 관련해 "우연히 2가지 전기를 맞게 된다. 하나는, 이탈리아 헌법 교과서를 번역해 소개하는 일본인 학자의 글에서 발견한 단서였다. 다른 하나는 한 학자가 이 문제에 관해 쓴, 한국에서 거의 유일한 논문과 기고문이었다"고 밝히고 있다.

그에 따르면, "일본 학자는 이탈리아의 입법 부분 번역에서 한 페이지에 달하는 각주를 별도로 달고 있었다. 이탈리아에서 '공포'(promulgazione)는 대통령이 법률 제정기관에 의해 제정된 법률을 확인하는 행위(일종의 재가)를 말한다. 따라서 일본에서 '공포'라고 하는 것은 '재가'와 '공고'를 포괄하는 것이다. 결국 '공포'는 대통령이 심사하여 서명한다는 '심서(審署)'라고 이해되어야 한다(岡部史郞 역, '이탈리아 헌법입문'(1969))"라고 설명한다.

이어 한국 학자에 대해서는 "다음으로, 우리나라 학자는 이 문제의 연원과 현황, 그리고 외국의 사정에 대해 풍부하게 고찰하고 있었다. 그 논의를 요약하면 이러하다. 우리의 '공포'는 일본 헌법의 '공포' 용어를 받아들인 것인데, 실은 promulgation과 publication이 구분됨에도 불구하고 이를 간과한 채 용어만을 수입했고, '널리 알린다'라는 '공포'의 일반적 어의에 끼워 맞추어 '공포'를 '관보 게재'라고 이해해온 착오를 범했다. 더구나 2008년 개정된 법령공포법은 잘못된 관행을 정당화하는 개악(改惡)까지 하고 말았다(소준섭, 각국 법률상 '공포' 개념 고찰을 통한 우리나라 '공포' 규정의 개선 방안(2011))"라고 기술하고 있다. 여기에서 말하는 한국 학자는 소준섭, 바로 필자였다.

헌법재판소 연구관의 비슷한 지적... 잘못된 '공포' 개념 쓰일 때 발생하는 결과 

김 연구관은 '공포'를 '관보 게재'라고 보면 어떤 문제가 발생하는가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상세하게 기술하고 있다.

첫째, 서구의 법적 전통에서 홀로 이탈하게 된다. 다른 길로 가기 위해선 이론적으로 충분한 근거가 있거나 특유의 사정이 존재해야 한다. 그러나 한국에선 관행이 아주 오래됐다는 점 말고는 이를 정당화할 만한 요소를 찾을 수 없다.

둘째, 대통령의 법률안 서명 실무가 뒤틀리게 된다. 현행법상 대통령은 법률안에 서명하면서 서명일 날짜 대신 관보 발행일을 예상하여 그 날짜를 '공포일'로 미리 기재한다(법령공포법 제5조). 예컨대, 대통령은 8월 15일에 법률안에 서명하면서도 그 일자는 8월 19일로 기재하는 것이다(실무상 관보 게재는 발행 3일 전까지 요청해야 함). 이는 과거의 잘못된 실무를 바로잡기 위해 2008년 개정된 법령공포법 때문인데, 이 개정 역시 새로운 오류를 만들어내고 만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과거에는 대통령이 서명 일자를 공란으로 두면 행정직원이 관보발행일에 그 날짜를 써넣었다.

셋째, 대통령 공포권은 권력분립 원칙상 일정한 의미를 가지고 헌법이 보장하는 대통령의 권한인데 그것이 제약받게 된다. 앞서본 것처럼 공포 일자를 미리 당겨 기재하게 되면, 대통령 법률안에 대한 심사 기간은 그만큼 줄어들게 된다. 공포를 요식적이고 행정적인 절차쯤으로 여겨온 우리가 이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공포권 의미는 자못 중대하다. 권력분립 원칙상 법률 제정은 국회가 하지만, 그 법률에 집행력을 부여하는 것은 대통령이다. 즉, 법률은 대통령에 의해 공포(심서)됨으로써 비로소 집행력을 부여받고 생명력을 갖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서 김 연구관은 "법률을 최종적으로 완성하는 대통령의 국법 행위로서 엄중하고 정밀하게 처리돼야 할 법률 공포가 반세기 동안 오해받아온 것이다. 국가의 뼈대인 법률을 제정하는 문제에 있어 기본적이고 원론적인 지점에서 실수하는 것은 우리의 국격(國格)을 손상하는 일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라고 이를 우려한다.

'오래된 관행'이라는 게 유일한 이유? 바로잡아야

이제 이 문제는 바로잡아야 한다. 잘못된 이 '공포' 개념은, 그가 말한 것처럼 "관행이 오래되었다는 것 이외엔 아무런 정당성도 찾을 수 없다". 김 연구관이 글 마무리에서 말한 바처럼 "최소한 말할 수 있는 것은, '공포'와 '공고'는 별개이며 대통령 공포권은 제자리를 찾아야 한다는 점이다. 대통령의 '공포'는 '서명'함으로써 완성되는 것이고, 그 후에 별도로 '관보 게재'를 통해 '공고'되는 것"이라는 데에 동의한다. 

잘못 사용되고 있는 '공포'의 법률 개념과 관련 법률의 조항들이 조속히 바로잡히기를 간절히 희망한다. 그게 김 연구관 기고문이 발표된 시일이 지났음에도 지금 다시 필자가 기고문을 인용하며 이 글을 쓴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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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푸단대학에서 국제관계학 박사를 받았고, 그간 <오마이뉴스>와 <프레시안> 등 여러 매체에 글을 기고해왔다. <변이 국회의원의 탄생>, <논어>, <도덕경>, <광주백서>, <사마천 사기 56>등 여러 권의 책을 펴냈다. 유신과 전두환정권에 반대해 수배, 구속된 바 있으며, 시민이 만들어가는 민주주의에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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