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스트 앤 퍼스트 맨> 영화 포스터

▲ <라스트 앤 퍼스트 맨> 영화 포스터 ⓒ Zik Zak Kvikmyndir

 
영화 <라스트 앤 퍼스트 맨>은 영국의 철학자 겸 작가인 올라프 스테이플던이 1930년 출간한 동명의 SF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올라프 스테이플던이 상대성 이론과 진화론을 비롯한 20세기 초반의 지식을 취합하여 뛰어난 상상력을 발휘한 소설 <라스트 앤 퍼스트 팬>은 현대 과학 소설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그동안 소설 <라스트 앤 퍼스트 맨>은 영화화할 수 없다고 여겨졌다. 1차 세계대전 이후의 국제 정세부터 아득히 먼 미래에 이르는 20억 년이란 시간 배경도 길거니와 다양한 인류의 출현과 초월적인 진화 과정, 세계국가의 건설과 화성인의 침공, 시간 탐험과 우주여행 등을 서술해서 묘사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사랑에 대한 모든 것>(2014),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2015), <컨택트>(2016), <맨디>(2018)의 영화음악을 맡았던 작곡가 요한 요한슨은 몇 장의 사진과 내레이션만으로 이미지가 시간, 기억과 맺는 관계성을 탐구한 <방파제>(1962)를 연상케 하는 형식을 빌려 소설 <라스크 앤 퍼스트 맨>을 영화로 옮겼다. 안타깝게도 2018년 요한 요한슨 감독이 갑자기 사망하며 <라스트 앤 퍼스트 맨>은 그의 첫 번째 장편 영화이자 마지막 작품이 되었다.
 
<라스트 앤 퍼스트 맨> 영화의 한 장면

▲ <라스트 앤 퍼스트 맨> 영화의 한 장면 ⓒ Zik Zak Kvikmyndir


<라스트 앤 퍼스트 맨>은 보통 영화들이 갖는 '서사의 경험'이 아닌, '이미지와 음악의 체험'을 제공한다. 극장의 대형 화면과 스피커, 어두운 화경과 고요한 분위기에서 이 영화를 만나야 제대로 된 몰입이 가능하다. 넷플릭스, 스마트폰으로 <라스트 앤 퍼스트 맨>이 주는 체험을 온전히 느끼긴 어렵다. 

영화는 흑백 화면을 배경으로 음악이 깔리는 가운데 거대한 건축 구조물이 등장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분명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1968)의 유명한 도입부에서 영감을 받은 연출이다. 이어서 배우 틸다 스윈튼이 내레이션을 맡은 20억 년 후에서 온 18번째 인류의 목소리가 들린다. 대사는 소설에서 발췌했다.

원작 소설 <라스트 앤 퍼스트 맨>이 미래의 역사서라면 영화 <라스트 앤 퍼스트 맨>은 미래가 과거에 보내는 메시지다. 해왕성에 거주하는 최후의 인류(라스트 맨)는 지금 지구에 사는 최초의 인류(퍼스트 맨)에게 인류가 곧 종말을 맞이할 것이라며 "우린 여러분을 도울 수 있고 또한 여러분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호소한다.
 
<라스트 앤 퍼스트 맨> 영화의 한 장면

▲ <라스트 앤 퍼스트 맨> 영화의 한 장면 ⓒ Zik Zak Kvikmyndir


영화는 태양의 팽창, 인류의 해왕성 이주, 18번째 종으로의 진화, 텔레파시로 통합된 정신체계 등 20억 년 역사를 최후의 인류가 보낸 음성을 통해 간략하게 설명한다. 그런데 함께 보여주는 영상은 이상하다. 음성의 내용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영상이 이어진다.

화면엔 사람이나 생명체(멀리 새가 날아가는 정도만 보인다)는 나오지 않는다. 그저 정체를 알 수 없는 조형물이나 구조물(영화는 구 유고슬라비아 연방공화국에 있는 2차 세계대전 참전 장병을 추모하는 기념비와 조각의 일부분을 찍었다고 한다), 황량한 풍경, 하늘과 나무 등을 정지 또는 천천히 움직이며 롱테이크로 담았을 뿐이다.

요한 요한슨이 만든 음악을 들으며 촬영감독 스툴라 브랜드쓰 그로블렌이 찍은 영상의 질감을 보노라면 20억 년 역사에 깃든 정서나 감정을 미니멀리즘 형식으로 표현한 느낌이 든다. 특히 미래의 인류가 가진 눈을 설명하는 대목에서 조각상에 한 부분을 영상으로 보여줄 땐 말과 글로 표현할 수 없는 정동이 솟구친다. 한편으로는 서사 위에 얹은 음악이 아닌, 음악을 돕는 이미지와 대사란 인상도 짙다.
 
<라스트 앤 퍼스트 맨> 영화의 한 장면

▲ <라스트 앤 퍼스트 맨> 영화의 한 장면 ⓒ Zik Zak Kvikmyndir


<라스트 앤 퍼스트 맨>은 인류의 역사를 기술적, 사회적, 정신적, 유전적, 철학적인 면 등으로 바라보며 끊임없이 사유를 시도하고 질문을 던진다. 그 과정에서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타임머신>(1960), <클라우드 아틀라스>(2012)를 능가하는, 아마도 영화사상 가장 긴 시간대를 과감히 관통한다.

인류의 역사와 종말에 관한 흥미로운 사색이자 최후의 인류가 최초의 인류에게 보낸 초현실적인 영상 에세이 <라스트 앤 퍼스트 맨>. 2020년대 가장 독창적인 SF 영화 리스트에 들어갈, 아니 꼭 넣어야만 하는 작품이다. 2020년 제70회 베를린국제영화제, 제24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초청작.
라스트 앤 퍼스트 맨 요한 요한슨 올라프 스테이플던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스툴라 브랜드쓰 그로블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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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당 24프레임의 마음으로 영화를 사랑하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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