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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서울시장이 유명을 달리한 이후 여러 의견과 평가가 엇갈리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 김명인 인하대 교수가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필자의 동의를 얻어 싣습니다. 다양한 의견을 기다립니다.[편집자말]
 
 13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시청에서 열린 故 박원순 서울시장 영결식에서 한 시민이 운구차량에 손을  얹고 기도하고 있다. 2020.7.13/뉴스1
 13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시청에서 열린 故 박원순 서울시장 영결식에서 한 시민이 운구차량에 손을 얹고 기도하고 있다. 2020.7.13/뉴스1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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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할 수 없는 착잡함 속에서 3일을 보냈다. 박원순 전 시장의 '극단적 선택'의 소식 앞에서 나는 그의 생애에 걸친 더 나은 세상을 향한 열정과 헌신, 그리고 그 업적과 의의를 생각했다. 그리고 부천서 성고문 사건과 서울대 신 교수 성폭력 사건의 피해자 변호인이었던 그가 왜, 어쩌다가 스스로 '위력에 의한 성추행'의 가해자의 위치에 서게 되었을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은 참으로 불가사의한 모순이고 이율배반이다.

어쩌면 내가,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그 모순과 이율배반을 궁금해 하듯, 그 역시 그 모순과 이율배반에 괴로워했고, 대답을 찾지 못한 그는 모든 걸 한순간에 끝내는 방식으로 그 모순과 이율배반의 사슬을 끊은 것인지도 모른다.

스스로 목숨을 거두는 것은 고독한 것이다. 아니 그보다 한 사람이 자신의 삶을 한 순간 무화시키기로 결심하는 그 과정이 고독하다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그 고독의 무게는 다른 사람은 측량할 길이 없다. 그리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극단적 선택은 생전의 그의 고통은 물론 모든 잘못과 책임으로부터도 그를 놓여나게 하는 힘을 발휘한다. 삶에 대한 애착을 이기지 못하는 나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다. 개인적 고통 때문이건 정치적 사회적 명분과 사명의 실현을 위해서건, 나는 절대로 극단적 선택을 하지 못한다. 누가 나를 죽여 불가피하게 삶을 끝내는 건 피할 수 없겠지만, 나는 할 수만 있다면 욕된 연명을 선택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열사이건 필부이건 노인이건 청소년이건 나는 스스로 죽음을 결행한 이들에게, 그들의 절대 고독의 위력 앞에 말할 수 없는 경외감과 더불어 어쩔 수 없는 열패감을 느낀다. 박원순 전 시장의 마지막이 내게 준 것은 그 생애의 말할 수 없는 낙차가 준 충격이었지만, 동시에 이런 경외감과 열패감의 복합 감정이기도 했다.

그러나 극단적 선택에 이르는 절대고독의 무게가 아무리 큰 것이라 해도 그 무게가 곧 모든 극단적 선택을 불가침의 성역 속에 두고 보호해 주지는 않는다. 노무현 전 대통령 때도, 노회찬 전 의원 때도 같은 생각을 했지만 박 전 시장의 극단적 선택의 개인적 불가피성을 이해하면서도 나로서는 그것이 곧 그 개인적 곤혹감과 자기 분열감, 그리고 사회정치적 평판과 책임에서 해방되는 유일한 길인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나라면 우선 삶에 대한 구차한 애착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정말로 나의 행동이 타인에게 준 피해에 대해 반성하고 부끄러움과 죄의식을 느낀다면, 그리고 정말로 내 내면의 깊은 안쪽에 자리 잡은 빛과 그림자의 모순과 이율배반에 대한 답을 구하고 싶다면, 절대로 그 길을 선택하지 않을 것이다. 대신 피해자에게 사과하고 속죄하며 그에 합당한 형벌과 사회적 지탄과 온갖 모욕을 달게 받으며 차라리 이 모든 것을 다 감내하는 일개인으로서 스스로 묻고 대답하면서 질긴 고독과 싸우는 기나긴 길을 선택할 것이다. 그는 왜 마지막 남긴 유서에서조차 피해를 본 '그 사람'에게 사죄를 구하지 않았을까. 아쉬움이 남는다.

'그 사람'은 또 얼마나 힘들고 고독했을까
 
 13일 오후 서울 은평구 한국여성의전화 교육관에서 '서울시장에 의한 위력 성추행 사건 기자회견'이 열렸다. 김재련 법무법인 온-세상 대표변호사가 박원순 시장이 고소인에게 보냈다는 비밀대화방 초대문자를 공개하고 있다.
 13일 오후 서울 은평구 한국여성의전화 교육관에서 "서울시장에 의한 위력 성추행 사건 기자회견"이 열렸다. 김재련 법무법인 온-세상 대표변호사가 박원순 시장이 고소인에게 보냈다는 비밀대화방 초대문자를 공개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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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인 나는 살아오면서 도대체 어떤 종류이건 성폭력이라곤 당해 본 적이 없으니 그 사람의 고통을 이해한다고 감히 말할 수 없다. 다만 고문을 당했던 경험으로부터 내 신체가 한갓 사물로 취급되고 내 정신이 타자에 의해 마음대로 능멸당할 때의 느낌이 어떤 것인가를 유추할 수 있을 뿐이다.

아마 폭행이든 추행이든 희롱이든 여성들이 힘 있는 남성(들)로부터 신체적, 정신적 자기결정권을 침해 당하여 한갓 성적 대상으로 추락했을 때의 그 느낌은 내가 고문을 당하면서 느낀 그 치욕스러운 기분과 멀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상대가 어쩌면 자기의 삶을 좌우할 수 있는 권력을 가진 존재이고, 동시에 어쩌면 평소 존경했던 사람이라면, 무력감과 수치심에 더하여 그 사람은 인간에 대한 배신감 또한 절절하게 느꼈을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그 사람은 이를 자기 잘못으로 돌리고 한없는 자책 속에 빠져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이렇게 몇 년이 지나서야 뒤늦게 법에 대한 호소를 선택했을 리가 없다. 그 사람의 선택은 옳은 것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그 사람은 피해자임에도 평생을 마치 죄인처럼 트라우마의 늪 속에서 살았을 것이다. 누구라도 그렇게 살아야 할 이유는 없다.

그런데 그처럼 오랜 고통 끝에 자신이 피해자임을, 자신에겐 잘못이 없음을 선언하기에 이르렀는데 어떤 책임도 묻지 못하고, 어떤 사죄도 받지 못한 채 가해자가 홀연히 사라져버리는 상황에 맞닥뜨리게 되었다. 이로써 그 사람은 영원히 사죄받지도, 용서하지도 못하는 피해자가 되었다. 마치 영화 <밀양>에서 자신의 아들을 유괴해 죽인 범인이 하나님에게 잘못을 빌어 속죄를 받았다고 하는 상황에 직면한 엄마의 처지와도 같다. 오히려 그 사람은 가해자를 극단적 선택을 하도록 몰고 간 또 다른 의미의 가해자로 비난받는 지경까지 이르게 되었다.

그런 점에서 박원순 전 시장의 선택은 그 사람에게는 어떤 위로도, 어떤 속죄의 행위도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이 가해-피해의 비대칭 관계로부터 가해자인 박 시장만 홀로 빠져나감으로써 그 사람만 영원히 비대칭적 관계의 멍에를 지게 된 것이다. 이처럼 그 사람에게는 박 시장을 성대하게 추모하는 일이나 자신을 거꾸로 가해자라고 비난하는 일만이 아니라, 박 시장의 극단적 선택 자체가 가장 치명적인 폭력으로 느껴질 것이다. 박 전 시장의 선택은 그 사람에게는 가해자 측의 증거인멸 행위이며 동시에 2차 가해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목숨을 한순간에 버린 박 전 시장의 선택은 그의 마지막 '실존의 기투(표준국어대사전: 현재를 초월하여 미래로 자기를 내던지는 실존의 존재 방식- 편집자 넣음)'로서 섣부른 포폄에 맡길 일은 아니다. '그 사람'의 결단에 대해서는 더욱 그러하다. 그 두 사람이 겪은 고독과 고통은 자기 한계 내에서 각자에게는 절대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제 질문은 두 사람 자신이 아닌 제3자들에게로 향하게 된다. 박원순 시장의 죽음은 애도되고 추모될 수 있는 것인가, 과연 박 전 시장에 대한 애도와 추모는 그 사람의 사죄 받을 수도, 용서해 줄 수도 없게 된 고통과의 관계에서 무엇인가, 이 문제 앞에서 타자인 우리들은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가 남는다.

평생을 반독재운동과 민주적 시민운동에 몸 바쳐왔고, 근 10년간 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수장으로서 발군의 리더십을 보여 온 박원순 시장에 대한 애도와 추모를 가로막거나 억압하는 것은 매우 부자연스러운 일이다. 애도와 추모는 자연스럽게 우러나는 것인 한, 그것이 누구를 향한 것이든 방해받거나 비난받을 수 없다. 그리고 박원순 전 시장의 생애 대부분이 '공적인 것'으로 이루어져 있었기 때문에 그 애도와 추모가 공적 내용과 형식 위에서 이루어지는 것 역시 어느 정도는 불가피할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박 전 시장에게는 삶의 어두운 그늘 한 편에서 일어난 한갓 '추문'이겠지만 '그 사람'에게는 생애 전체에 걸친 '피해'이고 '고통'이 된 그 사건 역시, 그리고 그로부터 비롯된 박 전 시장의 죽음 역시, 개인 간의 사적인 사건이 아니라 특수한 권력관계 속에서 일어난 공적인 사건이라는 사실도 간과되어서는 안 된다.

무엇보다 안타깝게 스스로 목숨을 버렸지만 여전히 박원순 전 시장은 살아서나 죽어서나 사회적 강자이고 그 사람은 이름 없는 약자이다. 우리는 약자의 편을 들지 않을 수 없고 그것은 아이러니하지만 박 전 시장의 일관된 신념이기도 했다.

따라서 박 전 시장의 죽음에 대한 우리의 태도는 어쩔 수 없이 공적으로는 적절한 제한과 삼감을 통과한 애도와 추모가 될 수밖에 없다. 나는 우리가 박 전 시장의 죽음을 애도하는 행위는 그 사람의 고통을 함께 나누고 그 사람의 치유에 참여함으로써 완성된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나는 박 전 시장의 장례가 서울시라는 공식 기관의 '기관장'으로 치러지는 것에 문제를 제기한 사람들에게 공감한다. 가족장으로 조촐하게 치러졌다면 더 좋았을 것이며, 설사 공적 형식을 갖추더라도 다른 제3의 방법은 없었을까 아쉬움이 남는다. 그것은 그 사람의 고통에 대해 우리 사회가 고인이 된 박 전 시장을 대신해서 할 수 있는 최초의 예의가 될 것이고, 어느 경우라 해도 박 전 시장에 대한 애도와 추모의 념을 표현한다는 핵심을 해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확실히 한 시대가 저물고 있다
 
고 박원순 서울시장 영결식 13일 서울 중구 서울시청에서 열린 고 박원순 서울특별시장 영결식에서 공동장례위원장인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조사를 하고 있다.
▲ 고 박원순 서울시장 영결식 13일 서울 중구 서울시청에서 열린 고 박원순 서울특별시장 영결식에서 공동장례위원장인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조사를 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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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으로는 이렇게 말하면서도 나는 여전히 감성으로는 애통하고 참담한 기분을 좀처럼 누르지 못하겠다. 하지만 박 전 시장에 대한 이런 나의 애도는 어쩔 수 없이 '낡았다'는 것 또한 느낀다. 확실히 한 시대가 저물고 있는 것이다. 이젠 우리 사회도 어느새인가 커다란 사회적 위업을 쌓은 저명인사의 명예와 이름 없는 한 여성의 명예에 어떤 차별도 우선순위도 있을 수 없다는 인식이 확고하게 자리 잡아 가고 있다.

그리고 우리 세대나 그 윗세대에게는 매우 소중했던 구국의 위업, 경제 기적의 위업, 민주화의 위업 등 이른바 대의에 대한 투신과 희생과 헌신으로 이룬 수많은 '대문자의 위업'들이 지닌 가치는, 그 '위업'의 뒤안에 존재했던 이름 없는 '작은 존재들'의 눈물과 아픔의 가치와 엄밀히 대조되고 비정될 때에만 그 의의가 인정될 수 있는 시대가 시작되었음을 인정해야 한다.

이제 우리가 사는 세상은 더 이상 살아남기에 급급한 세상이 아니라 어떻게 사는 것이 더 중요한가를 물어야 하는 세상이 되었다. '화급한 과제'를 앞세운 가부장적 위세와 그것을 보장하는 모든 시스템들은 이제 전면적으로 성찰되고 폐기되는 수순이 밟아져야 하며, 그것은 어쩌면 이러한 '살아남기' 식의 모든 가부장적 위계 체제의 모태인 근대적 국민국가 체제와 무엇보다 자본주의 시스템 자체에 대한 근원적 문제 제기로 이어져야 할 것이다.

피해자 '그 사람'의 입장을 앞세워 박 전 시장을 한갓 성범죄자로 평가절하하는 일부의 흐름이 야속한 것이고 이를 기회로 박 전 시장을 모멸하고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의 역사를 부정하고 조롱하는 또 다른 일부의 흐름이 야비한 것이라면, 박 전 시장의 생애의 위업을 앞세워 피해자 '그 사람'을 모멸하고 또다시 가해하는 흐름은 범죄적인 것이다.

그리고 박 전 시장에 대한 애도와 추모는 투사 세대들의 후일담으로서가 아니라, 그의 삶에 어룽졌던 빛과 그림자, 그 모순과 이율배반을 성찰하며 다시는 그러한 분열이 용납되지 않는, 아니 그러한 분열이 발생하지 않는 세상을 향한 다짐으로써 행해질 때만 의미를 가질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바로 지금 박 전시장의 모순된 삶에 의해, 앞 세대의 가부장들이 누렸던 부당한 권력에 의해 전존재가 형언할 수 없는 위기에 빠져버린 바로 '그 사람'의 평범한 삶을 되돌려놓는 노력에 힘을 모으는 데서부터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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