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펠리컨 블러드> 스틸컷

영화 <펠리컨 블러드> 스틸컷 ⓒ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영화 <펠리컨 블러드>는 호러와 오컬트 장르를 통해 극한 상황에 처한 사람이 어떻게 자신의 앞날을 헤쳐나가는지 보여준다. 데뷔작 <치명적 믿음>으로 2013년 제66회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에 초청된 독일 여성 감독 카트린 게베의 두 번째 작품이다. 마음의 상처를 입은 아이와 그 아이를 돌보는 엄마의 헌신을 탐닉한다.

말 농장에 딸린 작은 집에서 벌어지는 세 모녀의 고군분투기는 오랜 관습을 따르던 여성이 점차 해방의 길로 나아가는 우화다.

사회가 만든 모성 신화의 굴레

양녀 니콜리나를 키우는 비프케(니나 호스)는 농장 경영자이자 유능한 말 조련사, 경주마와 경찰기동대 훈련까지 꾸리고 있는 성공한 여성이다. 최근 마음으로 낳은 니콜리나가 외롭지 않게 동생을 만들어 주려 한다. 사랑스러운 아이 라야를 입양하지만, 생각과 달리 라야가 온 뒤 세 사람은 삐걱거리기 시작한다.

라야의 이상 행동은 밤낮으로 지속된다. 비프케는 적응하는 중이라 생각하며 대수롭지 않게 여기지만 그 강도는 심각해진다. 식사 자리에서 음식과 식기를 던지는 행위는 예삿일. 방안에 죽은 동물의 사체를 모아두거나, 벽에 이상한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언니 니콜리나를 못살게 군다. 라야의 폭력적이고 기이한 행동을 참다못한 비프케는 소아 전문 병원을 찾아간다.

검사 결과, 라냐가 극심한 정서장애를 갖고 있다는 소견이 나온다. 라야는 감정을 담당하는 편도체의 이상으로 공감과 공포의 감정을 느끼지 못했다. 즉 이성은 있으나 감정이 없는, 흔히 현대의학에서 사이코패스로 불리는 상태다. 어쩌면 라야에게 비프케는 아무 의미 없는 존재로서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크다. 좋은 엄마가 되어주고 싶었던 비프케의 마음은 처참히 무너진다.
 
 영화 <펠리컨 블러드> 스틸컷

영화 <펠리컨 블러드> 스틸컷 ⓒ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아직 어린 라야가 여러 번 파양 당했던 이유가 이해 가는 상황이다. 길들여질 수 없는 야생마 같은 아이가 바로 라야인 것이다. 하지만 왜인지 비프케는 그런 라야를 포기하고 싶지 않다. 자칫 니콜리나의 정서까지 망칠 수 있는 상황이 지속되더도 말이다. 

그 후 비프케는 라야와 특별한 유대관계를 만들기 위해 온 힘을 다한다. 아이에게 엄마와 가족, 사랑의 따스함을 가르쳐 주려고 한다. 애착관계를 형성하기 위해 라야를 등에 업는 등 육체적으로 힘든 상황도 서슴지 않는다. 또 약을 복용하면서까지 다섯살 라야에게 모유 수유를 강행하려 한다. 육아가 공포가 되는 순간이다.

영화는 엄마의 갖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이의 행동이 개선되지 않는 상황을 보여주며 극심한 두려움을 유발시킨다. 비프케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라야의 상상 속 친구까지 등장한다. 이제 라야에게서 귀여운 모습은 찾을 수 없다. 비프케를 헤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악마의 모습이 오버랩 된다.

독박 육아가 공포가 될 때
 
 영화 <펠리컨 블러드> 스틸컷

영화 <펠리컨 블러드> 스틸컷 ⓒ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펠리컨 블러드'는 죽은 새끼를 위해 어미 펠리컨이 자기 가슴을 찔러 그 피를 새끼에게 먹이는 서양 고대 전설에서 유래됐다. 한계를 뛰어넘는 극한의 에너지를 쏟아붓는 숭고한 모성으로 재해석할 수 있다. 다가오는 비난의 시선에도 굴하지 않고 서로를 믿는 연대와 가족의 사랑이 뭉클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시대가 변했지만 아직까지도 출산과 육아는 엄마의 몫이다. 감독 카트린 게베는 온라인 GV를 통해 독일에서는 아이를 포기하면 사회적인 낙인과 질타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전했다. 그래서일까. 라야를 제 자식으로 품으려는 비프케의 모성이 영화에서는 거북한 공포감으로 묘사된다. 당연하다고 생각해 온 헌신과 희생의 굴레에 갇힌 여성을 보여줌으로써 '관습'을 되짚어 보게 한다.

초반 흐트러짐 없이 완벽한 외모를 보여준 비프케는 후반부로 갈수록 머리를 풀어 헤치는 등 자유로운 분위기를 연출한다. 이는 수천 년간 남성이 만든 관습이나 제도를 거스르고 오로지 자신의 직감에 따라 행동할 것임을 공표하는 선언이기도 하다. 그 한가운데 자리한 아늑한 집은 라야의 몹쓸 행동에도 무너지지 않은 단단한 고치이자, 그 안에서 변태를 거듭하는 세 여성의 성장으로 읽어낼 수 있다.

영화를 통해 관객은 비프케가 걸어가야 할 가시밭길을 보여준다. 여전히 호의적이지 않은 세상에서 신념과 용기를 갖고 살아가는 강인한 여성의 모습도 함께. 그래서 더욱 머리(이성)보다 마음(감성)이 필요하다는 말이 떠오른다.

때문에 <펠리컨 블러드>의 결말은 모든 게 해결되는 듯 보이나 결코 해피엔딩이 아닐 수 있다. 다소 불편했던 감정을 해소시켜 주지 않은 채 또다시 질문이란 바통을 넘긴다. 우리의 삶이 해피와 새드 엔딩 두 가지로만 나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펠리컨 블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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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쓰고, 읽고 쓰고, 듣고 씁니다. https://brunch.co.kr/@doona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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