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전범선씨. (자료사진)
 전범선씨. (자료사진)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유재석은 바쁘다. 드럼 치랴, 라면 끓이랴, 오케스트라 연주하랴, 트로트 가수하랴, 이제는 90년대 혼성 댄스그룹까지. 바야흐로 '부캐(부 캐릭터)'의 시대다. 청년에게는 로망이다. 회사 가서 주어진 일에 허덕이다 보면 자기 취미 하나 갖기 쉽지 않다. 취준생에게 취미는 사치다. 이 마당에 전에 없던 인디 아티스트를 만났다, 전범선. 그를 보고 있자면 종잡을 수 없는 매력에 혼란스러워진다. 도대체 뭐 하는 사람인가.

조선 록밴드 '양반들'의 보컬인 전범선은 작년에 폐업 위기의 인문 책방 <풀무질>을 인수하면서 화제가 됐다. 낮에는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자유와 해방을 노래하는 동물권 운동가이자 문화예술가다. 지난 3일, 그와 만나 대화를 나눴다. 두루마기 입고 상투 틀어올린 모습으로 세상에 나타난 21세기 모던 양반의 '슬기로운 인디 생활(아래 슬인생)'을 파헤쳐 봤다. "언제 어떻게 망할지 모른다"는 아슬아슬함 속에서도 그는 아직까지 살아 있다. 그것도 꽤나 자신감 있는 태도로.  

- 무척 바쁜 하루를 보내시는 것 같은데요. 요즘 어떻게 지내시나요?
"주로 책방 '풀무질'에서 하루를 보냅니다. 책방 일을 하고, 글 쓰고, 사람 만나는 일을 해요. 저의 응접실 같은 곳이에요. 일을 마치면 해방촌에 가서 사람들도 만나고 음악 작업도 하고요. 최근엔 제 에세이를 쓰는 데 집중하느라 밴드 활동은 많이 못 하고 있어요."

​- 코로나로 인한 타격이 클 것 같은데 활동하는 데 어려움은 없나요?
​"일단 학교가 개학을 안 하니까 책방에 오는 사람이 많이 줄었죠. 코로나 때문에 공연도 멈춰서 음악 산업도 무너졌고요. 사람들이 아무래도 음악이나 예술은 사치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이런 상황에서 식당에 가는 건 문제가 안 되잖아요. 반면에 문화예술은 필수적인 게 아니라는 기본 전제가 있으니까요. 이런 고정관념이 있다는 게 아쉽죠."

[슬인생 #1] '탈코르셋'의 원조 허정숙을 다룬 첫 책을 내다
 
텀블벅 펀딩으로 진행된 두루미 출판사의 첫 책, <나의 단발과 단발 전후>











?
 텀블벅 펀딩으로 진행된 두루미 출판사의 첫 책, <나의 단발과 단발 전후> ?
ⓒ 두루미출판사

관련사진보기


- 현재 운영하는 '두루미 출판사'의 탄생기가 궁금해요.
​"시작은 군대에서였어요. 미국 로스쿨을 포기하고 음악하려고 한국으로 돌아왔죠. 바로 카투사로 군 복무를 하는데 너무 답답하더라고요. 예술가로 살겠다고 왔는데 정반대 상황에 놓였으니까요. 그러던 중 고한준이라는 친구를 만나게 됐어요. 지금 두루미 출판사 대표인데요. 저희 둘 다 역사에 관심이 많았고 뜻이 맞아서 역사책 출판을 기획하게 됐습니다. 과거에 억압받거나 절판돼서 없어진 글들이 많잖아요. 그런 것들을 현세대와 다시 연결해보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 두루미 출판사의 첫 책은 뭔가요?
"'허정숙'이라는 사회주의 여성운동가를 다룬 책이었어요. 조선 최초로 단발을 한 여성인데 국내 탈코르셋 운동의 원조라고 보면 됩니다. 1920년대 <동아일보> 최초의 여성 기자였고 <신여성>이라는 잡지의 편집장이었어요. 무척 앞서간 사상 운동가죠. 이분이 쓴 글을 보면 무척 재밌어요. '내가 머리를 잘랐는데 온 동네 양반들이 나한테 지랄한다' 이런 내용이 있어요. 지금 읽어도 충분히 공감이 가는 부분이 있죠. <나의 단발과 단발 전후>라는 제목으로 출판이 됐습니다. 한국의 젊은 페미니스트들에게는 신선한 인물이라 반응이 좋았어요. 책도 많이 팔렸고요."

​- 출판 외에도 활동하는 영역이 다양한 것 같아요.
"2019년 1월에 인문책방 <풀무질>이 폐업 위기에 처했다는 기사를 봤어요. 전 대표님이 책방을 이어갈 사람을 찾고 계셨는데 고한준 대표와 함께 인수를 했습니다. 정리하자면 주식회사 두루미를 만들고 출판사랑 책방을 같이 운영하는 형태예요. 결국엔 두루미라는 회사가 인문학을 통해서 지속 가능한 라이프스타일을 제시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혁명을 하면 좋지만 지금 혁명을 하자는 사람들이 없잖아요(웃음). 개인 삶의 방식을 바꾸자는 게 세상을 바꾸는 방식이 된 것 같아요. 뭘 먹고, 뭘 입고,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문제인데 그거에 대한 방법을 제시하는 거죠."

[슬인생 #2] 인문학이 사라진 시대, 인문사회 전문 책방 '풀무질'
 
폐업 위기에 놓인 '풀무질'을 계승해서 새로 리모델링한 모습
 폐업 위기에 놓인 "풀무질"을 계승해서 새로 리모델링한 모습
ⓒ 김지아

관련사진보기


- 풀무질을 인수한 지 1년 정도 됐네요. 운영은 잘 되고 있나요?
"잘 안 돼요. 일단 한국의 경우 도서정가제라는 게 있는데 대형 서점은 할인이나 적립 혜택이 있잖아요. 대형 서점보다 책을 비싸게 사 오는 작은 책방은 할인이나 적립을 하면 남는 게 없어요. 그렇다고 할인을 안 하면 경쟁력이 떨어지니까 굉장히 어려운 문제죠. 그래서 최근에는 후원 회원제를 도입하려고 해요. 회원들에게만큼은 할인해 주는 방향을 생각하고 있어요."

- 풀무질은 과거에 민주화 운동을 하던 학생들의 이론적 해방구였죠. 지금의 풀무질은 어떤 역할을 하고 있나요?
​"첫째는 사상적 해방구, 둘째는 인문학적 대안공간입니다. 여러 사상을 통해서 세상을 바꾸자는 취지로 만들어진 해방공간이에요. 지금은 페미니즘, 동물권, 기후 위기와 관련한 다양한 논의들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인문학적 대안공간이라는 것은 대학을 대신하자는 거예요. 요즘엔 대학에서 인문사회를 중점적으로 가르치지 않아요. 국가 경제에 인문학이 무슨 도움이 되느냐고 하는데 굉장히 근시안적인 생각이에요. 여전히 우리에겐 인문학적 대안공간이 필요하고 그런 의미에서 풀무질의 역할은 한결같다고 생각합니다. 시대는 달라졌더라도."

[슬인생 #3] 어서 와, 조선 록은 처음이지? 밴드 '양반들'

- 밴드 '양반들' 리더로도 활동 중인데요. 대중적인 밴드는 아닌 것 같아요.
​"원래는 '전범선과 양반들'로 활동을 시작했어요. 민주화를 위해서 제 이름을 빼고 새롭게 '양반들'로 명칭을 바꿨습니다. 최근에는 멤버들 의견을 반영해서 팝적인 음반을 냈는데 너무 뻔하니까 또 재미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다시 조선 록을 하겠다고 돌아왔습니다. 일단 재밌잖아요. 무대에서 한복 입고 상투 트는 게 저한테는 자연스럽거든요."

- ​이름부터 무척 독특한데요, 조선 록의 매력이 뭔가요?
"조선 록은 사실 자아실현이에요. 제가 진짜 하고 싶은 거고 나만 할 수 있는 거니까요. 대체 가능한 것들은 재미가 없잖아요. 처음 상투를 틀고 나왔을 때부터 조선스러운 사이키델릭 록을 하고 싶었어요. 반응도 좋았고요. 물론 돈은 안 되지만 저는 편한 것보다 재밌는 걸 하고 싶기 때문에. 공연이나 밴드에 대한 욕망도 크고 음악을 통해서 하나의 공동체를 실현하고 싶어요. 곧 10월에 공연도 잡혀 있고 새로운 드러머도 합류해서 이제부터는 진짜 조선 록을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도 앞으로의 활동이 기대돼요." 
 
▲ 밴드 양반들 (The Yangbans) 프로필 사진
 ▲ 밴드 양반들 (The Yangbans) 프로필 사진
ⓒ 닥터심슨컴퍼니

관련사진보기


- 음악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전달하고 싶은 게 있다면요?
​"'자유, 사랑, 평화' 그것밖에 없어요. 추상적이지만 대중음악에서 이런 걸 논하는 게 많지 않아요. 록은 자연, 자유, 사랑, 평화처럼 자아를 초월하는 것에 대한 음악이라고 생각하고 그런 가치를 전달하고 싶습니다. 페스티벌에서 연주하면서 자연과 관중, 아티스트, 우주가 하나가 되는 음악이 록의 목적인 거죠. 저항이나 사랑과 같은 혁명적인 요소가 있어야 해요. 그런 면에서 제가 동양에서 사이키델릭 록을 한다는 게 더 자연스럽고 재밌게 느껴져요."

[슬인생 #4] 본캐의 무궁무진함, 오방가는 인간 전범선

- 현재 진행 중인 사업 외에도 계획하고 있는 프로젝트가 있나요?
"최근에는 '소락재(@sorakjae)'라고 춘천에서 코리빙 스페이스 사업을 시작했어요. 옛날 모텔 건물을 개조해서 만든 건데 지금은 인테리어 공사 중이고 올가을에 개업할 예정입니다. 한 달 살기 개념으로 12명이 모여서 함께 살면서 책도 읽고 휴양을 하는 인문여관이에요. 이미 1층은 생활 자전거 허브같이 카페처럼 되어 있고 입주민은 가을쯤 모집할 예정입니다. 춘천에서 같이 등산하고, 배 타고, 요가도 하고 다양한 활동을 할 건데 굉장히 재밌는 프로젝트가 될 거예요. 기대해 주세요."

​- 다양한 활동을 하는데 지치지는 않나요?
"사람들이 많이 물어보기도 해요. 근데 저는 번아웃이 온 적이 없어요. 물론 가끔 불안하긴 하지만 사실 해결하지 못할 문제는 없다고 생각하니까요. 망하면 어때요. 죽진 않잖아요. 내가 하겠다고 시작한 거니까 책임지고 해야죠. 자유롭고 싶어서 하는 일이에요. 저 나름대로 소신을 가지고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지속 가능한 삶을 유지하는 게 제 삶의 방식입니다."

-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사는 게 대단하다고 느껴져요. 문화예술가로서 앞으로의 범선님이 기대됩니다.
"보통은 안정된 직장에서 적당히 행복한 삶을 살길 바라는데 저는 그렇게 살면 불행할 것 같았어요. 예술 하는 사람들이 그렇잖아요. 불안을 선택했지만 지금은 행복합니다. 제가 하는 거에 자신이 있으니까요. 앞으로 책도 열심히 쓰고 음반 많이 내고, 글 쓰고 노래하는 양반으로 살아갈 거예요. 물론 저처럼 살라고 말할 순 없지만 최선책은 없다고 생각해요. 주어진 선택지에서 차악을 고르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태그:#문화예술가, #전범선, #양반들
댓글8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60,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