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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망피해자 고 이철구 일병(왼쪽)의 복무 당시 사진.
 군사망피해자 고 이철구 일병(왼쪽)의 복무 당시 사진.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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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군에서 사망한 고 이철구 일병의 사망사유에는 상급자의 폭언, 모욕, 부당대우가 기록으로 남았다.
 2006년 군에서 사망한 고 이철구 일병의 사망사유에는 상급자의 폭언, 모욕, 부당대우가 기록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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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5월 입대한 고 이철구 일병(1985년생, 사망 당시 22세)은 그해 말부터 부사관 지원을 준비했다. 방송국 PD를 꿈꿨던 그였지만 집안 형편이 어려워진데다 아버지가 심장 수술을 앞두게 되자 직업군인이 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그랬던 이 일병이 2006년 4월 26일 부대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직업군인으로 진로를 바꾸면서까지 가족을 생각했던 그가 왜 이런 선택을 한 것일까.

당시 헌병대 조사에 따르면, 이 일병은 부사관 지원을 위해 2005년 12월, 2006년 2월 두 차례 김아무개 준위와 면담했다. 하지만 김 준위는 "멍청해 보이니까 지원해도 힘들다. 부사관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다. 추천해줄 수 없다. 멍청한 놈이 지휘자가 되면 유사시에는 자기도 죽고 부하도 죽인다"는 말을 이 일병에게 쏟아냈다.

폭언과 모욕주기는 면담 때만 있었던 일이 아니었다. 당시 조사에서 다른 병사들은 김 준위가 이 일병에게 아래와 같은 말을 했다고 증언했다.

"애비도 없는 XX 어디서 그런 것을 배워 처먹었냐."
"덜 떨어진 XX 네가 뭘 아냐."
"너 같은 새끼 먹여 살려줄 돈은 국가에서 내 주지 않아."
"네가 부사관이 되면 너는 네 밑에 병사 7명은 죽일 XX야."
"넌 쓸데 없는 XX니까 조그만 구멍가게나 하나 해서 먹고 살아라."


이렇듯 김 준위의 폭언은 다른 병사들이 보는 곳에서 이뤄졌다. 뿐만 아니라 김 준위는 이 일병의 부사관 추천 요청을 깔아뭉갠 것은 물론, 전기기기 기능사 자격증이 있는 그를 정비업무에서 배제해 취사지원을 보내기도 했다.

부사관 추천 업무를 담당한 박아무개 상사는 실제로 이 일병의 부사관 지원 서류를 상급부대에 전달하지 않았다. 이로 인해 이 일병은 두 차례나 부사관 시험 응시 기회(2006-4기, 2006-5기)를 놓쳤다.

"사람 죽었는데 감봉이 전부"
  
군사망피해자 고 이철구 일병의 이야기를 어머니 임승민씨는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군사망피해자 고 이철구 일병의 이야기를 어머니 임승민씨는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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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일병 사후, 김 준위와 박 상사에겐 '감봉 3개월' 처분이 내려졌다. 형사 절차는 진행되지 않았고 내부 징계로 사안이 마무리된 것이다.

지난 5일 이 일병의 부모를 서울의 한 편의점에서 만났다. 편의점을 운영하는 아버지는 매일 오전 6시~오후 11시 편의점에서 업무를 보고 있다. 최근 무릎을 수술한 어머니는 거동이 어려운 상황이었다. 당시를 떠올리는 것조차 매우 힘든 듯, 두 사람은 눈물을 흘리며 분통을 터뜨렸다.

"어떻게 사람이 사람에게 그런 짓을 합니까. 짐승도 학대하면 안 되잖아요. 걔한테 무슨 죄가 있다고 그렇게 인간으로서 할 수 없는 짓을 합니까. 사고 후 그 사람들한테 한 번도 용서를 빈단 말을 듣지 못했어요. 전화 한 통 없었습니다. 얼굴이 어떻게 생긴지도 모르고 그저 문서에 적힌 이름 석 자만 알 뿐이죠." - 어머니 임승민(68)씨

"누구 하나 제대로 벌을 안 받았어요. 정신이 없어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에서 시간이 지나버렸는데, 어떻게 사람이 죽었는데 징계로 끝납니까. 있을 수 없는 일 아닌가요." - 아버지 이현규(71)씨

그렇게 한을 품고 세월을 이어오던 부모는 2019년 길을 걷다 우연히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아래 위원회)' 현수막을 보게 됐다.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고 피해·명예회복을 위해 활동한다"는 내용이었다.

"아들이 PD를 꿈꿨거든요. 고등학교 때도 3년 내내 방송반에서 활동할 정도로 매우 활발했어요. 군대에도 잘 적응한 것 같았어요. 약간 왜소한 편이었는데 휴가 나올 때 보면 몸도 정말 좋아졌거든요. 들어갈 때도 '잘 다녀오겠다'며 씩씩하게 말했고요. 휴가 때 부대 동료들 챙겨준다며 생필품 같은 것도 사가곤 했어요. 그랬던 아이가 오죽했으면 그런 선택을 했겠어요." - 어머니 임승민씨

부모는 "사인을 분명하게 밝혀 아들의 명예를 회복해달라"며 2019년 7월 위원회에 진정서를 넣었다. 위원회는 1년 여 조사 끝에 "망인은 군 복무 중 상급자의 지속적인 모욕·폭언과 부당한 대우 및 부대관리 소홀로 인해 자해 사망한 것으로 인정된다"라며 "국방부장관에게 망인의 사망 구분에 관한 사항을 순직으로 재심사할 것을 요청한다"고 판단했다.

이 사건을 담당한 김을룡 조사관은 "이 일병은 지속적인 모욕, 폭언 및 부당한 대우를 당했고, 부사관 지원 추천을 거절당했을 뿐만 아니라 소속부대 담당자의 직무 태만으로 인해 부사관 시험에 응시하지 못했다"라며 "아버지의 병원비 부담을 덜고 자신의 미래를 준비하는 방법으로 부사관 지원을 준비했던 이 일병으로선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이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위원회의 이러한 결정으로 현재 국방부의 최종 심사가 진행되고 있다. 위원회 요청에 따라 순직 처분이 내려지면 이 일병과 유족은 이에 맞는 예우를 받을 수 있다.

"아들에게 '네 탓 아니다' 증명해주고 싶어"
  
군사망피해자 고 이철구 일병의 이야기를 어머니 임승민씨는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군사망피해자 고 이철구 일병의 이야기를 어머니 임승민씨는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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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는 아들을 잃은 후 14년 동안 죄책감에 시달려 왔다. 가해자가 있음에도 아들의 죽음이 마치 자신들의 탓인 것만 같았다.

"모든 게 제 잘못이죠. 아들은 부모 잘못 만난 죄밖에 없어요. 저는 아들이 직업군인이 된다고 했을 때 '왜 힘든 일을 택하냐'며 반대했었거든요. 근데 어려운 집안 형편에 제 수술까지 생각하며 부사관이 되려고 한 것 아니에요. 그 생각만 하면..." - 아버지 이현규씨

"국방부에서 순직으로 인정해준다면, 그땐 아들에게 진 마음의 빚을 조금은 갚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아들이 죽어버린 지금 우리가 무얼 해줄 수 있겠어요. '네 탓이 아니다'라는 걸 증명해주고 싶은 마음뿐이잖아요." - 어머니 임승민씨

부모는 비슷한 처지에 있는 이들을 위해 국가가 나서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2012년 국방부 전공사상자처리훈령과 2015년 군인사법이 개정되면서 군인의 자해사망 원인이 구타, 가혹행위 등에 따른 것이면 순직 처분이 가능한 상황이다.

하지만 많은 유족들이 이러한 점을 인지하지 못해 피해·명예회복을 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위원회에 따르면 창군 이래 군에서 약 23만 명이 사망했고 이 중 15만 7000여 명이 전사자, 7만 4000여 명이 비전사자로 분류돼 있다. 이러한 비전사자 7만 4000여 명 중 3만 9000여 명은 현재도 '비순직자'로 남아 있는데 이들 중 상당수가 변사자(1만 7000여 명), 자해사망자(1만 2000여 명), 병사자(3200여 명)이다. 비순직자 중 상당수가 사고 당시와 달리 현재는 순직 처분을 받을수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위원회가 2018년 8월 출범한 후 지난 5월까지 접수된 진정은 1100여 건에 불과하다. 진정 접수 기한은 9월 13일까지라 한 달 정도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다.

"우리처럼 우연히 현수막을 보고 진정을 넣는 것이 아니라, 나라에서 먼저 나서줬으면 좋겠어요. 가족을 잃은 일이기 때문에 내 손으로 전화 한 통 넣는 것도 정말 힘든 일이거든요. 이렇게 인터뷰를 앞두고도 눈물이 나서 잠 한 숨도 못 잤어요. 나라에서 의무로 데려갔으니까 죽었을 때도 먼저 나서 책임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 어머니 임승민씨
 
군사망피해자 고 이철구 일병의 어린시절 사진을 들고 있는 아버지 이현규씨와 어머니 임승민씨.
 군사망피해자 고 이철구 일병의 어린시절 사진을 들고 있는 아버지 이현규씨와 어머니 임승민씨.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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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 #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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