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포스터.

영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포스터. ⓒ CJ 엔터테인먼트

 
일본 도쿄의 어느 저택에서 청부살인 미션을 끝낸 암살자 '인남(황정민)'. 그는 이 미션을 끝으로 은퇴하려고 하지만, 태국에서 자신과 연관된 충격적인 납치 및 살인사건이 발생했다는 소식을 접한다. 이에 그는 곧장 방콕으로 향하고 조력자 '유이(박정민)'를 만나 사건을 파헤치기 시작한다. 한편 자신의 형이 인남에게 암살당한 것을 알게 된 '레이(이정재)'는 인남의 주변인들을 하나둘 제거하면서 무자비한 복수를 시작하고, 마지막으로 인남을 죽이기 위해 태국으로 향한다.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는 기본적으로 액션을 보는 맛이 살아있는 영화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우선 맨몸 격투는 물론 카레이싱, 검투술과 총격전까지 다양한 액션이 108분의 러닝타임 내에 빼곡히 녹아 있어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또한 타격감을 극대화하는 연출은 관객의 주의를 사로잡는다.

인물들이 때리고 맞을 때 쇼트를 잘게 나눠 카메라 앵글을 순간적으로 바꾸고, 슬로 모션을 이용해 재생 속도를 달리하며, 카메라의 줌을 순간적으로 바꾸는 등의 연출을 통해 영화는 액션이 체감되는 정도를 최대한으로 끌어올린다. 마치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에서 배트맨의 역동적인 액션을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이와 더불어 영화의 액션이 인남과 레이, 두 캐릭터와 그들의 감정선, 그리고 스토리까지 충실하게 전달한다는 점 역시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의 몰입도가 높은 이유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스틸컷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스틸컷 ⓒ CJ 엔터테인먼트


일단 영화는 액션이 벌어지는 배경의 빛을 활용해 두 인물의 정체성을 시각적으로 제시한다. 인남은 거듭된 청부살인 미션을 수행하면서 삶의 목적을 잃은 상태다. 그는 덮이지 않은 커튼 사이로 유일한 빛이 들어오는 어두운 방에서 마지막 미션을 완료한 후, 그 틈 사이의 빛에 기대고 빛을 바라보며 잠시 휴식을 취하면서 등장한다. 마치 어둠에서 벗어날 한 줄기 구원을 기다리는 것처럼. 이러한 첫 등장 이후 영화는 파나마에서의 여생과 새롭게 지켜야 할 인물이라는 살아야 하는 이유를 인남에게 하나씩 알려주면서 그의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풀어나간다. 
  
한편 레이의 액션은 방콕에서 처음 등장하는데, 이 장면은 그가 엄청난 에너지와 광기의 소유자라는 사실을 관객들에게 효과적으로 각인시킨다. 그는 문이 닫힌 창고에서 현지 조폭들을 마주하는데, 이때 영화는 레이의 뒤 구멍 난 벽을 통과해 쏟아지는 빛을 통해 위압적인 분위기를 조성한다. 인남을 비롯해 적과 목표를 잡고야 말겠다는 그의 집념,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맹수와 같은 사나움과 광기가 온전히 전달되는 것이다. 사실 영화는 초반부에 단지 몇몇 대사와 짧은 장면들을 통해 그가 형제애가 강하고 피를 갈구하는 킬러라고 소개할 뿐, 그의 진정한 성격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렇기에 레이의 첫 액션씬은 그가 맹렬한 격정의 소유자라는 점을 확실하게 제시하는 시각적 충격이나 다름없다.

또한 액션이 펼쳐지는 장소는 두 인물의 감정선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도구로 기능한다. 인남이 등장하는 액션은 주로 좁은 공간에서 이루어진다. 자신이 속했던 조직이 버려지고 사랑했던 사람을 지켜주지 못하는 등 나날이 피폐해지는 삶에 점점 옥죄이는 그의 상황이 배경에 녹아든 셈이다. 이는 엘리베이터, 복도, 계단 등에서 펼쳐지는 그의 처절한 액션이 다른 액션 영화에서도 흔히 등장하는 것임에도 유독 뜨겁고 인상적인 이유다.

반면 레이의 액션은 도로 위처럼 상대적으로 넓은 공간에서 펼쳐진다. 그래야만 복수의 이유도 까먹은 채 그저 복수 그 자체에 집착하고 상대방이 고통받는 것을 즐기는 그의 광기가 제한 없이 분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더해 영화는 두 인물의 공간을 일시적으로 바꾸면서 긴장감 가득한 분위기를 조성하기도 한다. 레이는 좁은 복도, 인남은 보다 넓은 방에서 철창을 사이에 두고 마주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이때 호피무늬 옷을 입은 레이와 정장을 입은 인남의 대치는 마치 오로지 먹잇감을 잡기 위해 달려드는 맹수와 살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인간의 대결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더 나아가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는 액션 시퀀스의 시작 장면을 이용해 리암 니슨의 <테이큰>과 원빈의 <아저씨>를 연상시키는 중심 스토리를 단적인 이미지로 제시한다. 인남과 레이의 싸움은 정반대 방향에서 서로를 향해 돌진하던 두 사람이 충돌할 때 시작한다. 이러한 장면들은 주변 사람들을 보호하려는 인남과 인남이 죽인 형의 복수를 하려는 레이가 펼치는 추격전을 단 하나의 프레임 안에 함축시키는 연출이다.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스틸컷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스틸컷 ⓒ CJ 엔터테인먼트

 
예를 들어 좁은 복도의 양끝에서 처음으로 마주 본 인남과 레이는 이내 각자 칼을 집어 들고 맞부딪힌다. 더 나아가 둘은 차를 탄 상태에서 정면으로 총을 난사하거나 아예 맨몸으로 달려와 차의 앞 창문을 뚫어버리기까지 한다. 이러한 액션 시퀀스의 시작은 이 영화가 시종일관 긴장감을 유지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직선적인 두 인물의 충돌에서 만들어지는 폭발력이 결말로 나아갈 수 있는 동력으로 거듭 작용하기 때문이다.

다만 역동적이고 박진감 넘치는 액션을 자랑하는 것과 별개로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는 그 액션을 구성하는 다른 일원들을 다루는 데 있어서 미흡함을 보인다. 예를 들어 인남이 지키려던 사람들이나 갑작스럽게 그를 돕게 된 유이는 온갖 고초를 겪는다. 하지만 영화는 그 충격과 스트레스를 이들이 어떻게 극복하는지에 대해서는 별다른 묘사를 하지 않는다. 그나마 인남이 다른 이들에게 마음의 문을 열고 선의를 베푸는 최소한의 과정만을 보여줄 뿐이다. 그 결과 달콤씁쓸한 해피 엔딩은 과연 남은 이들이 진정으로 행복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을 남긴다.

이는 영화의 초점이 오로지 투탑 주인공인 인남과 레이에게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제목인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는 마태오 복음 6장의 구절로,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이를 용서하듯이 우리의 잘못을 용서하시고 우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라는 주기도문의 마지막 구절이기도 하다. 기도문의 내용은 작중 인남의 행적, 그리고 영화의 내용과도 완벽하게 들어맞는다. 하지만 여기에 집중하다보니 피해자를 이해와 공감 없이 도구적으로 다뤘고, 엔딩마저 공허해졌다는 느낌을 받는다.

흥미롭게도 이러한 감수성의 부족은 영화를 보는 동안에 크게 부각되지 않는다. 영화가 곳곳에서 절제의 미덕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영화는 특정 액션신을 보여준 후에 두 인물이 어떻게 그 상황을 벗어났는지를 보여주지 않은 채 곧장 다음 장면으로 넘어간다. 상당히 직선적인 전개다. 잔인한 장면을 보여줄 때도 해당 이미지를 관객의 상상력에 맡기면서 역으로 처절함과 두려움을 극대화한다. 인물들의 감정이 과잉되는 지점도 없다. 그러다 보니 피해자에 대한 감수성 역시 영화 전개를 위해 최소화되었다고 받아들일 수 있다.

물론 이는 흥행을 고려해 연령 등급을 조절하는 과정에서 몇몇 장면이 삭제된 것과도 관련이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것은 이러한 절제미가 공간, 조명, 촬영과 편집 등을 효과적으로 활용한 세련된 액션에 더해지면서 감수성의 부족이라는 단점도 적절히 감추는 데 성공했다는 점이다. 그 결과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는 액션이 단지 눈요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스토리부터 캐릭터까지 영화의 모든 것을 표현할 수 있는 도구임을 증명해낸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원종빈 시민기자의 개인 브런치(https://brunch.co.kr/@potter1113)에 게재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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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읽는 하루, KinoDAY의 공간입니다. 서울대학교에서 종교학과 정치경제철학을 공부했고, 지금은 영화와 드라마를 보고, 읽고,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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