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사진보기
▲  광복회를 비방하고 있는 매일신보 1918년 10월 16일 신문. "반도의 인심을 요란하게 움직인"이라는 표현이 눈길을 끈다. 이 표현은 당시 광복회의 활동이 대단했다는 사실을 잘 말해준다. (박상진기념사업회 <광복회 100주년 자료집>에서 재촬영)
ⓒ 박상진기념사업회	관련사진보기

 
제 6차 교육과정 국정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는 1915년 8월 25일 대구 달성토성에서 결성된 한 독립운동 결사체를 소개하면서 "1910년대 항일 결사 중에서 가장 활발한 활동을 전개한 단체는 대한광복회였다"라고 기술했다.

그런가 하면, 한국학중앙연구원이 펴낸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광복회는 1910년대 독립전쟁을 실현하기 위해 국내에서 조직된 단체로, 1910년대 국내 독립운동의 공백을 메우고 민족 역량이 3 · 1운동으로 계승될 수 있는 기반을 제공했다"라고 기술했다.

《국사 교과서》의 기술은 재삼 따져볼 필요도 없는 과학적 문장이다. 궁금하게 느껴지는 표현이 전혀 없다. 말 그대로 대한광복회가 1910년대의 항일 결사들 중에서 가장 활발하게 독립운동을 펼쳤다는 뜻이다.

하지만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설명을 읽는 순간 의문이 발생한다. 《국사 교과서》는 단체 이름을 '대한광복회'라 했는데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그와 달리 '광복회'라 부르고 있다. 같은 단체를 이렇게 역사에 다른 이름으로 기록해서는 안 된다. 어째서 이런 일이 발생한 것일까?

광복회와 대한광복회

1915년 8월 25일 창립 당시 이 독립운동단체의 이름은 광복회였다. 군자금을 모으기 위해 부호들에게 발송한 포고문도 광복회 명의로 보냈고, 친일파 장승원 등을 처단한 후 현장에 사형 선고문을 남길 때에도 거사 주체를 광복회라 밝혔다. 1945년 9월 19일 서울 견지동 111번지에 사무실을 낸 우재룡 등 광복회 활동 생존 지사들이 왕년의 동지들을 모으기 위해 배포한 문서의 제목도 〈배일 운동의 원조 광복회의 재현 - 생존한 동지는 본부로 오라〉였다.

해방 이후 광복회를 재건하려던 노력은 얼마 가지 못하고 물거품이 되었다. 미군정과 친일파들에게 가로막힌 탓이었다. 미군정은 재건 광복회의 활동을 불법 정치 운동으로 규정하여 제재했고, 독립 조국에서도 여전히 현실 권력을 장악한 친일파들은 독립지사들의 활동이 자신들의 이익 추구에 걸림돌이 될까 싶어 온갖 수단을 동원해 재건 광복회를 방해했다. 결국 재건 광복회는 활동을 개시한 지 반 년밖에 안 된 1946년 3월 해체당하고 말았다.
 

큰사진보기
▲  박상진 의사와 김한종 의사(광복회 충청도 지부장) 사형 집행 사실을 보도하고 있는 매일신보 1921년 8월 13일 신문(박상진기념사업회 <광복회 100주년 자료집 게재 사진 재촬영)
ⓒ 박상진기념사업회	관련사진보기

 
그 후 1964년 광복 구락부라는 단체가 탄생했다. 광복 구락부는 1965년 사단법인 광복회로 발전했다. 이 광복회는 서거 독립지사의 후손과 생존 지사를 회원으로 하는 국가 지원 보훈단체였다.

이때부터 1910년대 독립운동단체 광복회와 사단법인 광복회를 두고 혼동이 빚어졌다. "광복회"라 하면 어느 광복회를 지칭하는지 알 수 없는 상황이 벌어졌다. 그러다가 마침내 1910년대 독립운동단체를 "대한광복회"로 바꾸어서 부르게 되었다.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낸 꼴이었다.

광복회라는 이름을 밝히려 한 노력들

2007년 이성우의 박사논문 〈광복회 연구〉가 발표되었다. 2015년 8월 22일 울산에서 '광복회 창립 100주년 기념 학술대회'가 열렸다. 2018년 8월 25일 광복회 창립 주년을 기리는 최초의 행사 '광복회 창립 103주년 기념식'이 대구 달성토성에서 열렸다.

국가보훈처도 2009년 1월 우재룡을 '이 달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면서 그의 공적 중 하나로 "1915년 대구에서 '광복회'를 조직하고 지휘장으로 활동했다"를 들었다. '광복회'로 표기한 것은 1910년대 최고의 독립운동단체가 대한광복회가 아니라 그냥 광복회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그 이후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전히 사단법인 광복회를 "광복회", 1910년대 독립운동단체 광복회를 "대한광복회"라고 부르고 있다. 심지어 국정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조차 광복회를 "대한광복회"로 기술하는 사단이 일어났다. '1910년대 항일 결사 중에서 가장 활발한 활동을 전개한 독립운동 단체'가 제 이름마저 잃어버렸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큰사진보기
▲  울산 박상진 생가 사랑채 인구 왼쪽에 세워져 있는 박상진 기념비
ⓒ 정만진	관련사진보기

  
광복회 총사령 박상진도 잊힌 인물

광복회 총사령 박상진은 1884년 12월 7일 울산에서 태어났다. 의병대장 허위의 제자가 되어 학문적 토양을 쌓았고, 23세(1907년)부터 26세(1910년)까지 양정의숙에서 법률과 경제를 공부했다. 이때 독립운동가 백산 안희제와 함께 재학했는데, 두 사람은 '양정 창학 100주년 기념사업회'가 선정한 '양정 21인'에 나란히 선정되었다.

박상진은 1910년 우리나라 최초로 실시된 판사 시험에 합격하였다. 그러나 스승 허위가 서대문형무소 최초 순국자가 되어 세상을 떠나는 일을 겪고는 판사로 재직해본들 일제의 앞잡이 노릇을 하게 될 뿐이라고 판단, 평양 법원 발령을 거부하고 1911년 독립운동을 위해 만주로 갔다.

제 1회 판사 시험 합격! 발령 거부! 독립운동 투신! 이 일만 해도 박상진은 교과서에 올라 후대 청소년들의 준거인물이 되어 마땅할 것이다. 그렇지만 그의 이름을 아는 국민이 거의 없다. 이 또한 안타까운 일이다.

국내에서 군자금을 조달하는 역할 자원

박상진은 만주에서 허겸 · 손일민 · 김대락 · 이상룡 · 김동삼 등의 지사들과 독립투쟁 방략을 모색한 후 1912년 귀국했다. 당시 그는 '독립을 하려면 군대를 양성해서 일제와 싸워야 한다. 만주에 군사학교를 설치해야 한다. 누군가가 국내에서 군자금을 모아서 보내주어야 한다. 내가 그 일을 해야겠다'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군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대구 약전골목 북쪽 끝 지점에 물류 회사 상덕태상회(尙德泰商會)를 설립했다. 

그러던 중 1915년 8월 25일 대구 앞산 안일암에서 결성된 조선국권회복단과 경북 영주 풍기의 광복단을 주축으로 하는 광복회를 창립했다. 광복회는 창립을 주도한 박상진이 총사령, 우재룡이 지휘장, 채기중이 경상도 지부장을 맡았고, 각 도마다 지부를 두었다. 특히 만주에도 길림 사령부를 설치하여 초대 사령관으로 이진룡을 임명했다. 이진룡이 일제에 피체된 뒤에는 김좌진이 2대 사령관을 맡았다.
 

큰사진보기
▲  박상진 생가 거실에 걸려 있는 박상진 의사 초상
ⓒ 정만진	관련사진보기

 
비밀 · 폭동 · 암살 · 명령을 4대 실천강령으로 표방한 광복회는 군사 전쟁을 목표로 하는 혁명적 독립운동단체를 지향했다. 일본이 국제적으로 고립되는 시점에 맞춰 일제히 봉기함으로써 독립을 쟁취하려는 계획을 가지고 움직였다. 당연히 만주의 신흥학교 등과 연대하여 독립군 양성에 힘썼고, 우재룡이 영주 권영목과 함께 만주로 가서 김좌진에게 군자금 7만 원(현 시세 33억 9천만 원)을 전하기도 했다.

광복회 2대 만주 지부장으로 김좌진 임명
 
광복회는 군자금 조달에 협조하지 않는 친일파 부호들을 응징하기도 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1917년 11월 관찰사를 지낸 경북 칠곡군 부호 장승원과 1918년 1월 충남 아산군 도고면 면장 박용하를 처단한 일이었다.

그러나 박용하 처단 과정에서 광복회 조직이 일제에 드러났고, 박상진도 1918년 2월 1일 피체되었다. 그는 대구형무소에 갇혀 있던 중 1921년 8월 11일 사형 집행으로 순국했다.

올해 8월 11일은 박상진 지사 순국 99주년 기일이다. 내년이면 100주년이다. 아마 내년에도 박상진 지사와 1910년대 최고의 독립운동단체 광복회에 대해서 "안다!"고 말할 수 있는 국민은 별로 늘어나지 않을 것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