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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3인 녀석이 학원 선생님한테 온 전화를 받는 모양인데 살며시 방문을 닫는다.
 고3인 녀석이 학원 선생님한테 온 전화를 받는 모양인데 살며시 방문을 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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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때'가 되었다는 느낌이 훅 들었다. 아들이 정신적으로 엄마의 울타리를 벗어나는 '때' 말이다. 고3인 녀석이 학원 선생님한테 온 전화를 받는 모양인데 살며시 방문을 닫는다. 마치, 아들 일이라면 뭐든지 알고 있으려는 나의 레이더망을 벗어나려는 듯이 말이다.

"아, 이런 상황!" 뭔가 기시감이 들었다. 그 옛날 부모님 모르게 대학 선배들과 조용히 문을 닫고 최대한 들키지 않게 목소리 낮춰 통화하던 내 모습과 자연스레 겹쳐졌다. 동시에, 내 일상의 모든 의사결정에서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하던 부모님의 역할이 나의 대학생활 시작을 기점으로 자의 반 타의 반 조금씩 줄고 있음을 감지했던 딱 그 '때' 같았다. 

아들은 아직 대입 전이지만, 벌써 부모 이외의 타인이 그의 삶에 등장한 것이다. 영화를 전공하겠다는 아들은, 당연히 영화에 문외한인 엄마보다 전공자로서 경력 많은 영화 입시학원 선생님의 한 마디 한 마디에 무게를 둘 수밖에 없다.

그렇게 나의 울타리를 벗어나는 거라고, 성장하는 자연스러운 과정이라고 생각하면 반갑기도 할 터지만, 한편으로는 자식의 인생에서 줄어드는 내 위상에 솔직히 내심 허전해지는 것 또한 사실이다. 아, 이런 식으로 조금씩 조금씩 세상 물정 모르며 걱정 가득한 잔소리만 늘어놓는 짐스러운 엄마가 되어가는 게 아닌가 하는 섣부른 염려에 벌써부터 스스로가 짠해진다. 

마음을 다독여도 영 허전했던지, 통화를 끝내고 저녁 먹으러 나온 아들에게 무슨 용건이었는지 꼬치꼬치 캐물었다. 역시나 귀찮은 듯 건성건성 대답하는 녀석에게 서운한 마음이 들며, 아들의 인생에서 엄마를 빼버리면 나쁜 일이 일어난다고 공연히 겁주고 싶었나 보다. 남의 말에 잘못 귀 기울여 꿈꿨던 미래가 깨지고 전혀 다른 삶의 궤적을 걷게 된 주변 사례들을 장황하게 소환했으니 말이다. 

친구 잘 못 사귀어 다른 일에 빠져 학업을 못 마친 일화라든가, 감당 안 되는 빚을 지기 시작해 결국 온 가족들까지 심각한 경제적 타격을 준 일화 등등 그런 것 말이다. 수습하지 못할 선을 넘기 전에 늘 엄마와 상의해 주길 바란다고 자못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도 어느 정도는 네가 알아서 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살면서 힘들고 어려운 일은 어떻게든 겪기 마련인데, 그런 일을 겪어봐야 인내심도 길러지고, 책임도 져보며 사람이 진짜로 성장하는 법이니 굳이 엄마에게 일일이 다 상의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이다. 엄마도 젊어서 부모님 몰래 많은 일을 겪었다고, 그때 경험들이야말로 지금의 나를 만든 초석이었다고.

아들의 삶에서 밀려나서 허전해지는 속내를 들키지 않으려고 쿨한 엄마인 양 그럴듯하게 포장했다. 어쩌라는 건지, 고개를 기우뚱거리는 아들을 보니 무슨 말인지 이해나 했으려나 모르겠다. 

부모의 품을 떠나 비로소 알게 된 것들
 
 사람들 속에서 닥쳐오는 문제들을 스스로 해결해가며 알게 된 것들이 많았다.
 사람들 속에서 닥쳐오는 문제들을 스스로 해결해가며 알게 된 것들이 많았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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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면 그 옛날 나도 부모님 모르게 참 많은 일들을 몰래 감행했더랬다. 과제를 핑계 대고, 밤늦도록 술자리에서 내가 옳네, 네가 옳네 따지며 열 올리다가 뻗어버려 친구 하숙집에 실려간 적이 두어 번 있었다. 읽지도 않는 교재를 사야 한다며 몇 번이고 용돈을 타냈던 일도 물론 즐비했고, 가을이면 동아리 축제 준비하느라 하루도 빠짐없이 외출하면서 도서관에 공부하러 간다고 핑계를 댔다. 이미 내 일과의 중요 협의자는 부모님이 아니라 대학 동창과 선배들이었다. 

그러던 어느 해 여름엔, 익산으로 5박 6일 일정으로 타 대학 민요동아리와 연합 전수를 가야 했다. 아버지가 아시면 당연히 허락은커녕 노발대발할 일이었기에 타 지역에 사는 단짝 친구네 집에 놀러 간다는 핑계를 댔다. 길을 나설 때만 해도 완벽한 모의라고 자부했건만, 웬걸 땀 흘리며 전수관에서 목청 높이던 3일 차 어슴푸레 저녁나절, 마을에 울려 퍼지던 마을 이장님 방송 목소리가 아직도 귀에 쟁쟁하다.

"전수관에 있는 이지애 학생은 지금 바로 이장님 댁으로 오시기 바랍니다. 대전에서 아버지가 전화하셨습니다."

그때는 핸드폰이 없던 시절이라 집전화로 연락을 해야 했는데, 무심코 집 책상 위에 끄적였던 이장님 댁 전화번호를 아버지가 놓치지 않으셨던 거다.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불호령에 나의 안위를 걱정하는 선후배를 뒤로하고 홀로 먼저 귀가하게 된 걸로 마무리가 되었지만, 그렇다고 그 후에는 조신하게 아버지 말씀대로 공무원 시험 준비나 했느냐 하면, 그렇지 않았다. 아버지는 어떻게든 단속하려 들었지만 나는 이리저리 잘도 핑계를 만들어 여전히 사람들과 어울렸고, 사방팔방 돌아다녔다. 

그렇게 사람들 속에서 닥쳐오는 문제들을 스스로 해결해가며 알게 된 것들이 많았다. 인간관계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했던 적은 태어나서 처음이었던 것 같고, 대학 동아리가 별거겠냐만 나름 조직의 앞날도 걱정해보았다. 축제나 행사를 치러내며 내 역량도 시험해봤고, 사회에서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도 계속해서 탐색했다. 

지금 돌아봐도 생의 그 어느 때보다 바빴고, 고민했고, 치열했던 때가 20대 초반이었다. 안전하게 품어주던 부모의 품을 벗어나 홀로 부딪치고, 깨지고, 시나브로 단단해지며 더 큰 세상으로 나아갈 준비를 했던 것 같다. 

이제 시간이 흘러, 어느덧 갓 스무 살이 된 아들이 진정한 자신을 찾아가는 그 시작점에 와 있다. 정말 세월이 어찌 이리 흘렀는지 격세지감이다. 동시에 곧 펼쳐질 아들의 20대는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기도 하고, 세파에 시달려 너무 아프면 어쩌나 걱정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아무리 걱정된다 해도 그 핑계로 사사건건 미주알고주알 챙겨주고 간섭하며 아들이 나의 꼭두각시가 되어 주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아들이 때론 경솔하게 실수를 자초할 것 같아 보여도, 어떤 일을 도모할 때 뭔가 사리에 맞는 깔끔한 설명을 덧붙이지 못해도 그저 뒤에서 묵묵히 기다려 보려 한다. 거의 30년 전, 부모님이 나의 뻔한 핑계들과 변명들을 대강 아시면서도 넘어가 준 덕분에 내가 마음껏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채우며 자랄 수 있었듯이 말이다. 

옛날 일을 돌이켜가며, 아들의 인생에서 밀려나기 시작한 공허함을 가까스로 달래보려 애쓰고 있는데, 이번엔 또 딸이 나선다. 친구랑 한강을 가야겠는데, 야경을 봐야 하니 밤에 좀 늦게 집에 오겠다나 뭐라나. 딸의 귀가시간은 특별한 일이 없다면 해질 때까지이다. 요즘 해가 7시 30분쯤 지니 늦어도 8시까지는 귀가해야 하는데, 요 녀석이 고등학생이 되더니 점점 귀가시간을 늦추려고 난리이다.

그나저나 지금 코로나로 전 국민이 외출 금지인데 가긴 어딜 가느냐고, 나중에 가라고 아무리 설득을 해도 소용이 없다. 벌써 머리 빗고, 옷 입고 나갈 채비를 마친다. 아무래도 이 녀석은 큰 녀석보다 그 '때'가 더 빨리 올 것 같은 불안한 예감이 든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기자의 개인 브런치에도 함께 실립니다.


태그:#성장, #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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