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프로젝트 파워> 스틸 컷

영화 <프로젝트 파워> 스틸 컷 ⓒ 넷플릭스

 
뉴올리언스 거리에 먹으면 사람마다 다른 힘이 주어지는 알약에 대한 소문이 퍼지고, 알약을 손에 넣은 이들로 인해 각종 범죄가 폭증한다. 이에 뉴올리언스 경찰들은 범죄자들을 막기 위한 작전에 돌입하지만, 정작 그들 중 하나인 '프랭크(조셉 고든 래빗)'는 고등학생이자 중간 판매자인 '로빈(도미닉 피시백)'으로부터 구한 알약을 이용해 범인을 체포하다가 정직당한다.

한편 알약을 만들기 위한 실험의 대상자였던 전직 군인 '아트(제이미 폭스)'는 마찬가지로 실험을 위해 끌려간 딸을 구하기 위해 알약 제조 업체를 추적하다가 로빈과 프랭크를 만난다. 알약이 단지 힘을 줄 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목숨까지도 위협할 수도 있음을 깨달은 로빈, 프랭크, 아트는 약의 생산과 공급을 막기 위한 싸움에 나선다. 

2012년에 개봉한 <스노우 화이트 앤 더 헌츠맨>에서 거울은 현재는 물론 미래에 가장 아름다울 여인은 누구인지와 그 미래를 막을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알려주는 조력자로 등장한다. 단지 현실을 비추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그 대안까지 제시하는 것이다. 근래 할리우드 영화들의 역할은 이 거울과 유사하다. 그들은 여성, 유색 인종, 성 소수자 등의 관점에서 현실의 문제를 비판하고 현실의 차별을 이겨낼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한다. 

예를 들어 <블랙 팬서>는 말콤 X와 마틴 루서 킹의 대립을 연상시키는 스토리 라인을 통해 흑인 사회가 지녔던 폭력적인 사상에 대한 반성이라는 현실과 개방적 태도의 필요성이라는 미래를 담아낸 바 있다. 넷플릭스의 신작 <프로젝트 파워> 또한 흑백 차별 문제를 비추는 또 하나의 거울이 되고자 하는 영화다. 

SF 영화 혹은 슈퍼 히어로 영화같은 외양
 
 영화 <프로젝트 파워> 스틸 컷

영화 <프로젝트 파워> 스틸 컷 ⓒ 넷플릭스

 
5분 간 초능력을 주는 알약을 둘러싼 이야기가 펼쳐지는 <프로젝트 파워>의 외양은 사실 흔히 접할 수 있는 SF 영화 혹은 슈퍼 히어로 영화 같아 보인다. 다만 그럴 경우 이 작품의 완성도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영화의 상상력, 설정, 스토리텔링은 기시감으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작중 등장하는 초능력으로는 신체가 불 또는 얼음으로 변하는 것, 강철처럼 단단해지는 것, 신체가 투명해지거나 에너지를 분출하는 능력 등이 있다. 이 능력들은 5분이라는 제한 사항을 제외할 경우 이미 <엑스맨> 시리즈를 비롯한 다른 영화들에서 익히 봐왔던 설정이다. 

주인공들의 서사 역시 예측 가능하다. 아트, 로빈, 프랭크, 그리고 알약을 팔아넘기려는 갱들의 서사는 목숨을 포기할 만큼의 무한한 부성애, 친구가 된 적, 방심하는 악역과 희생하는 선역 등의 클리셰를 충실히 쫓아간다. 각각의 서사가 이어지는 짜임새는 조악한 듯 보이기도 한다. 속편을 염두에 두고 있어서인지는 몰라도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에게 가능한 한 내러티브를 부여하려다 보니 전체 플롯은 비대해지고, 소화불량에 걸린 듯 매끄럽게 이해되지 않는다.   

그러나 <프로젝트 파워>의 공간적 배경이나 인물들이 처해 있는 상황이 어떻게 구성되었는지 살펴보면, 이 영화가 장르적 재미보다도 현실을 비추는 데 관심이 많은 작품이라는 점이 분명해진다. 예를 들어 영화의 공간적 배경인 뉴올리언스는 19세기에 노예제에 기반을 둔 사탕수수 플랜테이션을 토대로 성장한 도시로, 지금까지도 시내 구성원 중 다수는 흑인이 차지하고 있다. 덕분에 뉴올리언스는 흑인 문화의 상징인 재즈와 힙합의 본고장이다. 하지만 동시에 허리케인 '카트리나' 당시 게토화 된 흑인 거주지역을 볼 수 있었던 것처럼 극심한 인종차별이 존재하는 도시이기도 하다. 미국 내 흑인 사회의 명과 암이 공존하는 공간인 것이다. 

이에 더해 주인공의 삶은 미국 내 흑인들의 일반화된 현실을 재현했다고 볼 수 있다. 어머니와 함께 사는 고등학생 로빈은, 학교 생활에 쉽게 적응하지 못하며 밤에는 약을 밀매하는 중간 관리인이다. 그녀는 약을 취급하는 갱스터와 직간접적으로 관련이 있으며 위험 상황이 생겼을 때 친분이 있는 경찰보다도 갱스터에게 먼저 도움을 청한다. 이는 불공평한 법 집행으로 인해 흑인들의 높은 범죄율이 만들어낸 문제를 보여준다. 범죄로 인해 불안정한 가정 안에서 생활하다 보니 많은 흑인 청소년이 상대적으로 제대로 된 교육의 기회를 누리지 못하고, 그로 인해 갱스터에 가입하는 등 범죄로 빠져들 확률이 높아지면서 악순환의 고리가 이어진다.  

미국 사회 구조적 문제 드러낸 작품
 
 영화 <프로젝트 파워> 스틸 컷

영화 <프로젝트 파워> 스틸 컷 ⓒ 넷플릭스


그러나 <프로젝트 파워>가 흑인 사회의 문제를 고발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가장 중요한 장치는 무엇보다도 5분간 초능력을 주는 알약이다. 작중 약에 대한 묘사는 다음과 같다. 정해진 양만 조심스럽게 이용할 경우 사용자에게 적합한 능력을 주지만, 복용량이 과다해지면 그 부작용 때문에 심한 경우 목숨을 잃을 수 있다. 이 약의 사용은 불법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필요에 따라 사용하며, 공급 업체는 약의 사용을 합법화시키기 위해서 갖은 수를 쓴다. 약을 판매하고 유통시키는 사람들은 대다수가 흑인이지만, 그 이익은 백인 사업가에게 돌아간다. 여기까지만 보더라도 작중 초능력을 주는 약은 크랙(crack)과 대마초에 대한 비유임이 자명하다. 

흡입한 이후 5분에서 10분 사이 급격하게 고양감을 느꼈다가 즉시 우울감에 빠져들게 하는 크랙은 코카인의 일종인 마약으로 미국의 흑인 사회에 암적인 존재였다. 1990년대부터 퍼져 나간 크랙 코카인은 값이 싸고 중독성이 강한만큼 백인들에 비해 경제적으로 어려운 흑인들이 많이 사용했다. 그 결과 흑인의 진학률과 소득은 감소하고, 조금씩 주류 사회에 편입되던 흑인 사회는 괴멸적인 피해를 입었다. 이는 작중 로빈이 학교에 적응하지 못한 채 돈을 벌기 위해 알약 판매에 뛰어들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한편 1980년대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시절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했던 미국에선 마약 소지에 대한 형량 기준은 인종에 따라 다르게 적용되는 모순을 보이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영화 내용 중 알약 개발을 위한 실험에 참여했던 피해자인 아트가 알약을 소지할 때 무조건적으로 체포되는 것과 달리 경찰인데도 알약을 사용한 프랭크는 적당히 문책받는 데서 그친다.  

이에 더해 작중 알약은 마약 시장에서조차 인종차별이 일어나고 있는 세태를 비판하는 장치이기도 하다. 알약의 유통과 사용을 합법화하기 위해 애쓰는 백인 자본가들은 대마초가 합법화된 이후로 대마초 판매점을 운영하는 소유주의 약 81%가 백인인 상황을 일깨운다. 지난 세월 대마초를 판매하고 유통시켜온 사람들은 흑인을 비롯한 유색인종이었지만 정작 이를 산업화시켜서 이익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은 결국 백인이라는 구조적 문제를 드러내는 것이다. 

더 나아가 <프로젝트 파워>는 더 나은 미래의 가능성도 보여준다. 영화의 결말은 알약을 복용하는 것이 흑인들의 상황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대안이 될 수는 없다고 지적하며 두 가지 해결책을 제시한다. 하나는 경찰로 대변되는 사법 체계의 변화다. 프랭크는 자신이 몸담았던 경찰 내부의 부패와 문제를 고발하기로 결정한다. 이는 아트를 체포하는 과정에서 알 수 있듯 흑인들에게 불평등한 법 집행 관행을 없애고, 알약 제조 조직과 경찰 간부 간의 카르텔을 청산하는 등 구조적이고 관습적인 모순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다.

다른 하나는 로빈의 랩이다. 뛰어난 랩 실력을 지닌 로빈에게 아트는 앨범을 내보라고 권하면서 그 랩이 가난과 차별로부터 그녀를 구할 진정한 힘이 될 거라고 말한다. 이는 로빈이라는 한 명의 개인에게만 해당하는 해결책이 아니기도 한데, 힙합과 랩은 농구처럼 단순히 개인의 재능이 아니라 흑인 문화의 상징이며 흑인들에게 몇 안 되는 계층 이동의 사다리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가상의 알약에 마약으로 인해 파괴된 흑인 사회와 차별과 범죄와 대물림되는 악순환의 고리를 투영하면서 <프로젝트 파워>는 악순환에서 벗어나는 방안까지 제시하는 데 성공하고, 완성도가 남기는 아쉬움을 뒤로한 채 현실을 비추는 거울로서의 역할은 충실히 이행한다. 
덧붙이는 글 개인 브런치(https://brunch.co.kr/@potter1113)에 게재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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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읽는 하루, KinoDAY의 공간입니다. 서울대학교에서 종교학과 정치경제철학을 공부했고, 지금은 영화와 드라마를 보고, 읽고,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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