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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의사협회 주도 집단휴진 셋째 날인 8월 28일 오전 서울 서초구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에서 의료진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있다.
 대한의사협회 주도 집단휴진 셋째 날인 8월 28일 오전 서울 서초구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에서 의료진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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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사의 면허권 행사, 국민건강 보호를 전제로 이뤄져야 한다

'면허'라는 것은 일반인에게 금지된 활동을 국가가 특정 조건을 갖춘 사람에게만 배타적으로 허가해 부여한 권한을 말한다. 면허는 특정 행위에 대한 권한을 부여함은 물론 특정 행위를 보다 안전하고 효과적으로 행할 수 있게 국가가 보호하게 한다. 이처럼 국가가 특정인에게 면허를 주는 이유는 특정 분야에서 국민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의사면허는 국민건강 보호를 목적으로 의사라는 특정인만이 의료라는 행위를 행할 수 있는 권한을 특별히 허가(부여)한 것이다. 동시에 의사가 의료행위를 효과적으로 행할 수 있도록 의료행위에 대한 간섭 배제, 의료인과 시설의 보호, 의료기재 압류 금지, 의료 기구나 약품 등 우선공급은 물론 무면허 의료행위의 단속과 처벌 등 보호와 지원을 하기도 한다.

국민건강 보호를 위한 의료행위의 독점권을 부여받고 이에 대한 보호를 받는 상황에서 국민건강에 악영향을 미치는 면허권의 행사나 활용은 어떤 명분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혹시 국민건강 보호를 위한 면허권 행사를 방해하거나 훼손하는 사건이 발생하더라도 면허자인 의사는 당시 상황에서 국민건강에 위협을 가하지 않는 범위에서 행동하는 것이 면허권에 대한 의무다.

현재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의대 정원 증원, 공공의대 설립, 첩약 급여화, 원격의료 등은 의사의 면허권인 의료행위의 본질을 방해하거나 훼손하는 사항이라고 보긴 어렵다. 오히려 국민의 시·공간적 의료접근성을 개선하기 위한 방안이라고 생각한다. 첩약 급여화는 의사보다는 비용을 부담하는 국민이 의견을 개진해야 할 사안이라고 본다.

이처럼 의사들이 네 가지 사항에 반대하면서 의료 현장을 떠나는 행위는 어떤 논리로도 정당화할 수도, 될 수도 없다. 의료현장 이탈은 면허라는 특권의 의미와 본질을 망각하고 이를 악용해 특권을 부여한 국민과 정부를 겁박하는 행위다. 의대생들이 면허시험을 거부하는 집단행위 또한 마찬가지다. 그런 생각을 가진 의대생이라면 면허를 취득하지 않는 것이 국민건강에 도움이 될 것 같다. 전공의와 전임들이 의료현장으로 복귀해야 할 당위다. 현장에서 합당한 논리와 대안으로 주장을 관철함이 마땅하다.

정책의 필요충분조건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지난  7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을 방문, 전공의 집단휴진에 따른 응급실 등 필수진료분야 운영 상황을 점검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는 모습.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지난 7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을 방문, 전공의 집단휴진에 따른 응급실 등 필수진료분야 운영 상황을 점검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는 모습.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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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들의 집단휴진이 발생한 주된 쟁점은 의대 정원 증원과 공공의대 설립이다. 의사 수를 늘리고 공공의대를 설립하는 명분은 의사 수의 절대적 증원보다는 지역과 지역별 불균형 해소에 있다.

의사 정원 증원과 공공의대 설립 모두 의대 신입생을 대상으로 한다. 그 효과는 학부를 기준으로 하면 10년 후, 의학전문대학원을 활용한다면 8년 후에 나타난다. 8년 내지 10년 동안은 현재의 불균형 문제를 그대로 안고 가겠다는 것인가? 더불어 정원을 늘리고 공공의대를 설립하면 불균형 문제가 모두 해결될 것인가? 10년 동안만 정원을 늘려서 4000명을 양성하면 그 이후 지속성도 보장될 것인가?

의사 수를 늘리고 공공의료를 강화해야 하는 정책은 현 정권뿐 아니라 기존 정권에서도 제시됐다. 특히 공공의료의 강화를 빌미로 특정 지역에 의대를 유치하려는 정치권의 시도도 있었다. 매번 의사단체의 반발과 정치권의 반목으로 무산됐다.

현실을 고려한 보건의료 틀 내에서 접근하지 않은 상황에서 정치권의 지역이기주의까지 개입해 의사 수 확충 정책의 실현성과 신뢰성은 떨어졌다.

의사와 정부, 현상과 현실을 외면하지 말아야
 
지난 19일 오후 서울 중구 코리아나호텔에서 열린 보건복지부-대한의사협회 긴급 간담회에서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최대집 대한의사협회장과 코로나19 예방을 위해 주먹인사를 하고 있다.
 지난 19일 오후 서울 중구 코리아나호텔에서 열린 보건복지부-대한의사협회 긴급 간담회에서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최대집 대한의사협회장과 코로나19 예방을 위해 주먹인사를 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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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인력을 중심으로 한 보건의료자원은 의사도, 정부도, 모두 알고 있는 문제다. 가장 근본적으로는 우리 현실에서 적정 의사 수가 몇 명인지에 대한 합리적인 추계도 합의된 수치도 없다. 정부가 정례적으로 의사를 비롯한 보건의료 관련 인력을 추계하지만 연구자에 따라 방법과 결과가 상이해 이해관계 당사들과 논란과 갈등만 유발해왔다. 그 결과 정부는 '의사가 부족하다'고 하고, 의사단체는 '의사가 부족하지 않다'고 한다. 논리적인 '적정 의사 수'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지방의 의사 확충을 위해 지방에 의과대학을 설립하는 것이 효과적인가? 1990년대에 설립된 지방의 의과대학에는 해당 지역 출신이 얼마나 입학했을까? 지금 정확한 수치를 제시하지 못하지만 대부분 수능성적이 높은 수도권 출신이 차지하고 있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그렇다면 지방 의대 출신이 면허 취득 후 해당 지역에서 근무하는가? 졸업 후 전공의 수련부터 수도권으로 집중한다는 사실 또한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심지어 일부 의대는 본과 내지 3, 4학년 실습 등의 교육을 수도권의 부속병원에서 공공연하게 실시해 수도권 대학이 돼 버렸다. 그래도 아무런 조치없이 지방에 의과대학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정치권에서 말이다.

현재 거론 중인 '의대 정원'도 눈여겨 볼 사항이다. 1990년대 설립된 의대는 입학정원이 40명 정도로 묶여 있다. 이에 반해 기존 의대는 대부분 100명 이상의 정원을 유지하고 있다. 일부 의대는 편입이나 정원 외 등의 방법으로 학생 수를 늘리는 방법을 활용하고 있다. 40명으로는 의대 교육의 경제성이나 효과성을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의사 수를 늘리기 위해 의대를 신설해야 하는가? 공공의대보다는 정원이 40명인 기존 의대나 국립의대에 특별 정원을 늘려 주는 방법을 택하면 안 되는가?

의사들은 면허 취득 후 거의 전공의 과정을 거친다. 인턴 이후 전문의 자격을 위한 레지던트 과정을 거친다. 국가 보건의료체계에서 일반의와 전문의의 비중 또는 수는 어느 정도가 적정할까? 이에 대해서도 정부는 물론 의사단체인 의사협회 심지어 전문진료과학회 등에도 '적정 전문의 수'는 없다. 

진료과별 전문의 자격을 위한 전공의 수는 지원자 수와 수련병원의 수련 능력에 의해서 결정된다. 소위 수입이 높은 인기과로 전공의가 몰리는 현상이 발생하는 이유다. 수련병원은 전공의 확보를 위해 지도전문의의 수적 확보 등 필요 이상의 경쟁을 하기 마련이라 수도권 대형병원 중심의 전공의 독식 현상이 발생한다.

전문의 자격을 취득한 의사들은 독자적으로 의료현장에 나선다. 병원에 취업하는 봉직의와 의원을 운영하는 개업의가 대부분이다. 일부는 연구기관, 공공기관이나 회사 등에도 취업하지만 그 수는 소수다. 의사들이 의료현장을 선택하는 기준은 경제적인 것이 우선일 수밖에 없다. 이 결과 봉직의는 수도권의 대형병원을, 개업의는 수도권을 비롯한 대도시의 인구밀집 지역을 선호하는 것은 당연하다. 지방병원이 의사 구하기 어렵고, 농어촌 지역의 의료기관이 부족한 이유다.

정부·의사단체, 현실을 고려한 기본 틀 마련하면서 단계적 접근을
 
지난 8월 7일,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 정책에 반대하며 24시간 집단 휴진에 들어갔었던 인턴·레지던트 등 전공의들이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공원 앞에서 단체행동 집회를 열었을 당시 모습.
 지난 8월 7일,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 정책에 반대하며 24시간 집단 휴진에 들어갔었던 인턴·레지던트 등 전공의들이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공원 앞에서 단체행동 집회를 열었을 당시 모습.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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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근본인 적정 의사 수가 없으니, 의대의 적정 정원도 없고, 일반의와 전문의 적정 비중은 물론 진료과별 적정 수도 없는다. 이 상황에서 의사들에 대한 지역별·직역별 유인책도 없다. 정부와 의사단체는 아전인수격 주장만 계속해왔다.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갈등만 증폭되는 것은 당연하다.

기본 틀을 마련하면서 해결 가능한 사항부터 단계적으로 접근하는 방안이 필요하다. 기본 틀을 마련하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할 수 있다. 그렇다고 당면한 문제를 틀이 마련되기까지 마냥 기다릴 수는 없다.

우선 '적정 의사 수'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절대적인 수치 이전에 과부족과 지역별·직역별 편중이라는 현실에 상호 동의가 필요하다. 이러한 동의가 진행된 후에는 의사 수의 절대적인 과부족 이전에 지역별·직역별 과부족과 해소방안에 대한 논의가 가능할 것이다. 과부족 해소방안을 근간으로 한 적정 의사 수의 논의는 보다 수월할 수 있다.

의사단체는 지역별 불균형 해소방안으로 일부 의사들의 반발이나 불만을 해소할 수 있어야 한다. 인구 수와 밀도를 감안한 지역별 총원제, 단골의사제로 환자 수 제한이나 의사 과밀 지역에 대한 건강보험 의사 정년제 등은 지역별 불균형 해소를 위한 제도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동시에 상대적으로 인구 수가 적고 밀도가 소밀한 지역의 의사에게는 수가 가산이나 운영비 지원 등 경제적 지원도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

전문의 숫자의 적정화는 의료현장에서 전문의 수요를 줄이는 방안을 우선으로 전공의 정원을 조정할 필요가 있다. 장기적으로 의원의 정비가 필요하다. 병상이 부족하지 않은 지역의 유병상 의원을 최소화할 필요가 있다. 전문의의 의원 운영을 줄이는 것이다. 동시에 전문과목을 표방하는 전문의 의원은 2차진료기관으로 해 일반의 등 1차진료기관의 의뢰에 의해 보험진료 하게 하는 방안이 있다. 결국 전문의는 병원급과 전문의원에서 2차진료를 담당하게 해 전문의 수요를 조정하는 것이다.

이러한 기본방향이나 원칙 그리고 이를 토대로 한 구체 사항에 대해서는 다른 의견이 있을 수 있다. 특히 의료계 내에서 각자가 처한 상황에 따라 세대, 지역, 직역 그리고 의료기관 간 이해가 얽히기 때문이다.

변화에는 저항이 따르기 마련이다. 저항에 대해서는 정부와 의료 관련 단체가 합당한 대안을 마련해 설득하고 유인하는 지도력을 발휘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과정과 노력이 없다면 국민건강은 도외시 되고 과거와 같은 갈등과 혼란은 지속 반복될 것이다.

정부와 의료계의 긍정적이고 전향적인 태도 변화와 노력을 기대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이평수씨는 2020년 1학기 차의과학대학교 보건의료산업과에서 강의를 하는 등, 보건의료계에 종사해왔습니다.


태그:#의사파업, #의사 수, #의료정책, #의사면허, #면허자 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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