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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 전화를 놓쳤네요. 어찌 지내세요? 저는 가정보육으로... 샘은 제 생각하셨나요?"
"많이 생각했지요. 어떻게 샘을 잊겠어요. 아기만 챙기지 마시고 샘도 건강 잘 지키시고...^^"

"아... 약간 울컥했어요. 육퇴 하고 방금 톡 읽었는데 밤이라 그런가 갬성이 터지네요. ㅠㅋ 궁금하고 보고 싶네요."
"저도 그래요. 용기를 낼 시간이 되었나 싶은데 코로나가... ^^"

"저 만나는데 무슨 용기가 필요해요.ㅋㅋ 그치만 코로나 뚫고 만나는 건 용기가 필요한 일이니 조심했다가 만나요. 저 복직하기 전에 꼭!"


2년 만의 연락이었다. 문득 생각나 전화를 걸었고 통화가 안 되었는데, 두 시간 정도 지나 톡이 와 있었다. 잠깐 주고받는 톡 대화가 순식간에 그때 그 시간으로 우리를 데려다 주었다. 재치 있는 입담이 살아있던 선생님. 누구에게나 배려심 넘치고 먼저 다가가고 따뜻한 말을 잘 건네던 이였다.

어렵게 임신하고 아이를 낳고 육아휴직 들어가는 것까지 지켜보았던 터라 시간이 아무리 흘렀어도 할 얘기가 넘치는 관계였다. 그런데도 먼저 연락하는 것은 용기가 필요했다. 무슨 용기까지, 라는 그 말이 맞기도 했고 틀리기도 했다. 그 용기는 나를 위한 용기였다. 

어떤 용기가 필요했더라. 우선 잘 살아야 했다. 힘들다 어렵다 지루하다 무기력해진다, 는 등의 말들은 분위기로도 드러내고 싶지 않았다. 즐거워야 했고 에너지가 넘치는 삶을 살고 있어야 했다. 그렇게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새로운 도약까지는 아니어도 활력이 넘쳐야 했다. 주어진 넘치는 시간은 의미가 없으면 안 될 것 같았다. 시간이 흘렀으니 그간 했던 일의 성과도 있어야 할 것 같았고 만족감도 자연스레 드러났으면 했다.

바쁘고 촘촘했던 그때만큼 지금의 일상도 촘촘해야 할 것 같았다. 함께 지낼 때는 막역하고 가까운 이라고 생각했는데도 조금이라도 초라하게 보이기는 싫었다. 금방 만나겠다고 생각했던 시간은 재는 것이 많아 훌쩍 지나버렸다. 

삶은 늘 빈틈이 있어서 조금, 아니 조금 더 허술한 모습을 보이려면 만남의 용기가 필요했다. 그 말이 톡 대화 중에 나왔고 그걸 그 선생님은 가볍게 받고 코로나 상황에서의 용기라는 의미로 이해했다. 

뒤늦게 평생학습을 공부하다 보니 평생학습의 많은 이론가들이 내 나이 때를 규정하는 말들을 접할 수 있었다. 레빈슨(Levinson)에 따르면 성인 중기 절정기라고 명명하며 야망과 목표를 실현하는 시기라고 했고, 에릭슨(Erikson)에 따르면 성인 후기로 통합감이 필요한 시기라고 했다. 

이 말을 들으니 더 깝깝했다. 성인 중기의 절정기, 말부터 높은 고개를 넘는 느낌에다 야망, 목표 등의 말이 더해지니 어지러웠다. 물론 레빈슨은 성인 남성을 대상으로 놓긴 했다. 에릭슨의 말은 조금 편했다. 통합감이 필요하다는, 대척점에 있는 말이 절망감이었다. 절망감을 이기기 위한 통합감, 공감이 되었다.
 
 윌리엄 새들러, <서드 에이지, 마흔 이후 30년>
 윌리엄 새들러, <서드 에이지, 마흔 이후 30년>
ⓒ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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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새들러의 <서드 에이지, 마흔 이후 30년>에서는 조금 결이 달랐다. 사회학자들이 말하는 "연령 기준은 생물학적인 사실이 아니라 문화적인 사실이다"라고 그는 말했다.
 
연령 기준은 우리가 제3의 연령기에 도달하기 전에 마음속 깊이 새겨진다. 불과 25년 전만 해도 인생의 전성기를 남녀 공히 20대 초반에서 40대 후반이라고 믿었다. 50세 이후는 쇠퇴기로 접어드는 기점, 그러니까 더 적은 것을 바라고 차선의 것으로 만족하기 시작하는 기점으로 인식되었다. 그리고 대다수의 사람들에게는 지금도 사실이다.(윌리엄 새들러, <서드 에이지, 마흔 이후 30년>)

50세 이후의 쇠퇴기라는 문화적 인식 때문에 나는 방어적이고 수동적이며 내부 지향적으로 바뀌는 것 같았다. 뿐만아니라 몸도 마음도 그에 따라 움직였다. 30대에 혹은 40대라면 절대 하지 못했을 생각들을 하고 자기 검열을 시도한다.

거기에 단호함은 더 확고해지고. 내가 생각한 것들이 맞다고 여기고 나의 조심성의 근거를 의심하지 않는다. 때문에 사람을 만나는 것이 어렵고 친밀했던 사람들과의 만남도 쉽게 시도하지 못했다. 

나이가 무려 50이 훌쩍 넘어버린 사람이 이전 친구들, 것도 세대가 다른 친구와의 관계를 이어가는 것은 두렵다. 타인과의 친밀한 관계가 더 필요한 지점인데, 오히려 피한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생각했던 문화적 틀이 나를 가둔다.

다가 올 긴 겨울을 대비하려고만 한다. 그 대비가 완벽하게 갖춰진 채로 마무리지어져야 사람도 만날 수 있을 것 같고 스스로도 당당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관계 이어가기는 시도조차 못한 채로 결국 끊어지고 만다. 준비된 상태가 될 때까지 참고 노력만 하다 끝나 관계가 이렇게 정리되어 버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도 생긴다.
 
나이가 무려 50이나 되었다는 것은 많은 사람들에게 노화라는 긴 겨울에 대비해서 인생에 판자를 둘러쳐야 할 때라는 의미로 다가온다. 심리학자 엘렌 랭거는 사람들이 나이가 드는 과정을 쇠퇴로 느끼는 이유 중 하나가 "나이가 들면 정신적, 사회적으로 적응력이 떨어진다."고 '배웠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종종 젊었을 미리 굳어져버린 노화에 대한 때 이른 인식은 2차 성장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된다. 따라서 연령 기준은 행동과 발달을 동결시키고 정체시키는 역할을 한다.(윌리엄 새들러, <서드 에이지, 마흔 이후 30년>)

새들러는 마흔 이후의 30년을 인생의 보너스라고 말했지만, 나에게 그 보너스는 10년 이상은 느끼지 못한 채로, 그 이후는 짐처럼 느껴졌다. 이미 마흔을 넘고 쉰을 넘은 지 오래, 마흔 이전처럼 살아가면 된다는 생각은 긴 시간을 건너뛰어 연결해야 했다. 그러니 보너스는 이미 절반은 삭감되었고 남은 보너스는 스스로를 걸림돌로 생각하며 지났고 스스로를 정체시키는 시간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또 한 가지는 마흔 이전의 삶에 '나'는 없었던 것 같다. 있는 자리, 속한 집단에 자연스럽게 물드는 것. 그것이 오직 하나의 목표였던 것 같다. 집단이, 자리가 곧 나였다. 학창 시절 이후를 그렇게 살아왔으니 속한 집단이 없는 나, 그럴듯한 자리가 없는 나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었다. 이제는 자리는 없고 오롯이 '나'만 존재하는 세상에 나의 삶이 던져졌다. 

새들러는 죽음을 맞이하는 노년이 되기 전까지 지속적 성장을 하라고 말한다. 중년의 정체성을 세우고 일과 여가활동의 조화, 타인에 대한 배려만큼이나 자신을 배려하는 법을 배우기를 권한다. 진지한 성찰과 과감한 실행, 현실주의와 낙관주의의 조화, 개인의 자유와 타인과의 친밀한 조화도 필요하다고 요구한다. 

그의 말에 따르면, 잘하는 부분도 있다. 혼란스럽지만 지금 나이의 정체성을 고민하고 있고, 일을 하려고 노력한다. 타인을 배려하려고 노력하고 날마다 현실을 직면한다. 반면, 여가는 숙제처럼 하는 걷기와 글을 쓰기 위해 가끔 차로 다녀오는 나들이가 전부다. 타인에 대한 이해보다 나에 대한 관대함은 많이 부족한 것 같고 지나친 낙관론은 경계한다. 타인과의 친밀한 조화는 내게 꼭 필요하지만 용기가 필요하다. 

여전히 나는 살아가고 있는데, 중년 이후의 삶은 선명하게 금이 그어졌다. 이제부터 다시 시작, 이라고 외치는 구호가 이전의 삶을 '리셋'한다. 걸음마를 잃어버린 아이가 되고, 자연스러운 관계가 불편해지는 사람이 되어버린 것 같다. 이전과 다름없는 나인데 이전의 기억은 지워져 친밀했던 사람들과의 관계도 어색해지고 만다. 

어젯밤 톡을 마무리한 지점에서 다시 상황을 복기한다. 나는 사람이 좋다. 좋은 사람을 많이 만나고 싶다. 이전에 좋았던 사람들과의 관계를 계속 이어가고 싶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는데, 그것도 좋은 사람을 만나는데 무슨 용기가 필요할까. 함께했던 그때의 내가 지금의 나인데, 새로운 내 모습이 왜 필요할까. 

오래된 동료 선생님과의 만남에 급한 대로 코로나가 핑계가 되어주었다. 코로나가 잠잠해지는 동안, 조금 더 나를 배려하는 용기를 내야 할 것 같다. 타인과의 친밀한 조화를 기대하고 따뜻했던 만남의 기억을 회복해야 할 것 같다. 언젠가 코로나가 잦아들 것이다. 그때가 되면, 두 번도 고민하지 않고 만나러 가야겠다. 내가 좋아했던 사람들, 만나고 싶은 사람들을 만나러.

서드 에이지, 마흔 이후 30년 - 마흔 이후 인생의 2차 성장을 위한 6가지 원칙

윌리엄 새들러 지음, 김경숙 옮김, 사이(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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