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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총리의 뒤를 잇는 차기 자민당 총재 선거를 앞두고 일본 정가가 숨가쁘게 돌아가고 있다. 의원내각제인 일본은 집권당 총재가 자동적으로 총리가 된다. 주요 후보들은 유력 파벌 수장들을 잇달아 만나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일단 자민당은 나흘간의 연휴를 앞두고 있는 9월 15일 전후에 속히 총재 선출을 마무리하고 새 내각을 출범시키려고 하는 분위기다. 그리고 총재 선거를 앞두고 후보들 간에 가장 치열한 싸움은 '당원투표'를 넣느냐 마냐는 다툼이다.

최대 승부처, 당원투표를 넣느냐 마느냐
ⓒ 고정미
 
통상 총재 선거는 소속 국회의원과 일반 당원들의 표를 합산해서 치러진다. 아베 총리가 제대로 임기를 채우고 물러났으면 당연히 당원투표를 포함한다. 문제는 임기 중에 물러났고, 당의 주류 측에서는 '비상사태'를 핑계로 당원투표를 배제할 명분이 생긴 것이다.

당 주류가 굳이 당원투표를 빼고 국회의원들만으로 선거를 치르고 싶어하는 이유는 바로 반아베 성향의 이시바 시게루 전 간사장을 의식한 것이다. 당원 투표를 넣으면 국회 내 세력은 약하지만 일반 당원들에게 인기가 높은 이시바 전 간사장이 당선될 수도 있는 아슬아슬한 국면이 전개되기 때문이다.

교도통신이 지난 주말 실시한 전국 유권자 1000여 명 대상 여론조사에서 이시바 전 간사장은 34.4%를 얻어 1위를 차지했다. 반면 최근 급부상한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14.3%, 기시다 후미오 정조회장은 7.5%에 그쳤다.

이시바 전 간사장은 당연히 "자민당은 국회의원들만의 것이 아니다"며 당원투표를 강력하게 요구하고 나섰다. 고이즈미 신지로 환경상이라는 강력한 우군도 생겼다. 역시 유력한 후보였던 그는 이번 선거에는 나가지 않고 고노 타로 국방상을 밀기로 했지만, 선거 방식에 대해선 "긴급상황이야말로 모두의 의견을 듣는 절차가 중요하다"라며 당원투표를 옹호하고 나섰다.

선거 운영의 전권을 쥐고 있는 니카이 도시히로 간사장과 주류 측은 "다음은 위기관리내각이고, 국정에 공백이 생겨선 안된다"며 당원투표를 배제한 선거방식을 9월 1일 일찌감치 결정해버리려는 태세다. 국민이 가장 지지하는 후보가 일본식 민주주의의 벽에 부딪쳐 좌절하기 직전이다.

내리 11선 세습의원... 국방·농업 등 다양한 경험
 
지난 2014년 9월 지방창생·국가전략특별구역 담당대신으로 임명된 이시바 시게루가 총리 관저에서 기자회견하고 있다.
 지난 2014년 9월 지방창생·국가전략특별구역 담당대신으로 임명된 이시바 시게루가 총리 관저에서 기자회견하고 있다.
ⓒ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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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이시바 시게루 전 자민당 간사장은 어떤 인물인가.

일본의 많은 정치인들이 그렇듯 그도 참의원 의원과 돗토리현 지사를 지낸 아버지의 지역구를 물려받은 세습 정치인이다. 1986년 최연소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후 무려 내리 11선째다.

그리고 일본 정치인 중 가장 다양한 경험을 했으며 공부를 많이 하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여러 분야에 걸쳐 많은 저서를 갖고 있기도 하다.

우선 방위상을 지낸 그는 '전력 비보유'를 명시한 평화헌법 9조 2항을 개정해 자위대를 명실상부한 군대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는가 하면, 자위대에 해병대를 만들어 오키나와 주둔 미군기지를 대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웃나라들을 자극할 핵보유는 반대한다. 농림수산상도 지낸 탓인지 농업의 국제경쟁력을 향상시켜 더많은 일본 농산물을 해외에 진출시켜야 한다면서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를 찬성하고 있다.

그러나, 아베 총리의 트레이드마크인 '아베노믹스'엔 반대해왔다. 돈을 마구 찍어내 각종 경제 지표는 올려놨지만, 국민들이 피부로 느끼는 경제상황은 개선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대신 그는 재정건전성과 지방경제의 중요성을 설파한다.

그 때문인지 아베 정권 초기에는 간사장을 맡는 등 아베와 보조를 맞춰왔으나 이후 줄곧 아베와 대립하는 길을 걸었다. 급기야 지난 2018년 총재 선거에서는 아베와 맞장을 떠 패배의 쓰라림을 맞본다. 이때도 당원 투표에서는 선전했으나 의원 표에서의 역부족이 패인이었다.

"위안부 문제, 한국이 납득할 때까지 사죄"라고 말하는 사람, 그러나...

이시바 전 간사장은 유력 후보 3인 가운데 한일관계를 개선시킬 수 있는 가장 적임자로 꼽힌다. 그가 지금까지 한국과 관련해서 취한 행동과 발언을 보면 확실히 아베 또는 다른 2명의 유력후보와는 다른 역사관을 볼 수 있다.

그는 지난 2002년 방위청 장관에 임명된 이후로는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하지 않았다. 또 2008년에는 "전장에서 산화한 사람과 이길 수 없는 전쟁에 나가라고 말한 사람은 입장이 같을 수 없다"며 야스쿠니 신사에서 A급 전범을 분사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지난 2017년 <동아일보> 인터뷰를 보면, 일본의 우경화에 대해 "전쟁 가능한 국가로 가려면 태평양전쟁에 대한 철두철미한 반성이 전제돼야 한다"고 말했다. 위안부 문제에 대해선 "(한국민들의) 납득을 얻을 때까지 계속 사죄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특히 지난해 한 강연에서는 창씨개명에 대해 "왜 한국은 '반일'인가, 만약 일본이 타국에 점령되어 '오늘부터 너는 스미스다'라고 한다면 어떻게 생각할까"라고 말했다. 한국이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에 맞서 지소미아(GSOMIA)를 종료한다고 했을 때도 자신의 블로그에 "일본이 전쟁 책임을 제대로 마주하지 않아 이런 일이 벌어졌다"며 "일본은 메이지유신 시기 한일관계에 대해 많이 배워야 한다"고 적었다.

하지만 최근 <반일종족주의>를 읽고 자신의 블로그에 "이 책은 단순한 반한-혐한책이 아닌 현재의 한국을 걱정해서 쓴 '우국의 책'"이라고 써 고개를 갸웃하게 하기도 했다.

한편, 손석희 JTBC 사장이 지난 2008년 이시바 전 간사장을 인터뷰했던 소감을 들어보면 치밀하고 간단치 않은 그의 성격을 엿볼 수 있다.

"그는 처음부터 정해진 질문 외에는 받지 않겠다고 강짜를 부렸습니다. 저도 마지못해 그러자고 했습니다. 과연 그는 비서를 시켜서, 사전에 질문을 일일이 다 확인하고, 저한테 재차 다짐까지 받고서야 겨우 자신의 사무실로 저를 불러들였습니다.

그리고는 특이하게도 인터뷰 내내 저의 얼굴을 한 번도 쳐다보지 않았습니다. 질문하는 사람 불편하게 말입니다. 즉, 자신은 미리 약속한 것만 기계적으로 대답할 뿐이지 인간적인 교감은 필요없다는 태도였지요. 저도 나중엔 부아가 돋아 준비되지 않았던 질문들을 마구 던짐으로써 나름의 복수를 하긴 했지만 말입니다." - JTBC 뉴스룸 '앵커브리핑'(2019.7.3.)


유력 후보 3인 중 누가 총리가 돼도 한일관계는 지금보다 나아질 거라고 보는 전문가들이 많다. 그러나 또한 누가 돼도 만만한 상대는 없다.

[일본총리후보 ①] 스가 요시히데 - 새총리 급부상... 아베 통치 연장?

태그:#이시바,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 #일본, #손석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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