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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총리가 지난 28일 건강 악화를 이유로 돌연 사퇴를 선언하자, 후임 총리 인선을 둘러싸고 일본 정가가 들썩이고 있다. 가장 유력한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 이시바 시게루 전 간사장, 기시다 후미오 자민당 정조회장 등 3인을 차례로 알아본다.[편집자말]
ⓒ 고정미
 
지난 8월 28일 오후 2시께 공영방송 NHK가 속보로 "아베 총리가 사임 의사를 굳혔다"는 소식을 전한 직후, 주요 후보 3명의 모습을 보자.

맨 먼저, 바로 전날까지도 "하루 두 번씩 뵙지만 아무 이상 없다"며 총리 사임설을 극구 부인하던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오전 정례 기자회견을 연 뒤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이시바 시게루 전 간사장은 기다렸다는 듯 이날만 모두 6개의 TV방송 프로그램에 잇따라 출연해 "출마하지 않으면 내게 기대하는 여론에 대해 무책임한 일"이라며 출전 의지를 분명히 했다.

그럼 당시만 해도 이시바 전 간사장의 유일한 라이벌로 꼽혔던 기시다 후미오 자민당 정조회장은 어떻게 했을까? 그에게도 TV 출연 요청은 쇄도했지만, 답은 '아무 데도 나가지 않았다'이다. 대신 자신의 파벌 의원들을 집합시켰다.

당장 판은 벌어졌고 한시라도 빨리 자신의 존재를 세상에 알리고 싶었을 텐데, 그는 왜 이리 태연했을까?

원만한 성격에 철저한 순종파... 아베를 그렇게 밀어줬는데

스가 관방장관이 출마 의사를 밝히기 전까지만 해도 일본 언론들은 대부분 아베 총리의 후계자로 기시다 정조회장을 꼽았다. 아베 총리가 사석에서 그를 후계자로 언급한 적이 있는 데다, 원만한 성격에 한 번도 아베 총리 가는 길에 반기를 든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언론은 아베 총리가 사임을 발표한 직후 기시다 회장이 '선양'(禪讓, 임금의 자리를 물려줌) 받는 형태로 수상직을 이을 것이라는 전망까지 내놨다. 즉, 자신이 수장으로 있는 파벌 고치카이(宏池會, 46명)의 표에 아베 총리가 이끄는 호소다파(細田派, 98명)와 아소 다로 부총리가 이끄는 아소파(麻生派, 54명)의 지원을 얻어 어렵지 않게 새 총리로 등극할 수 있을 것으로 본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총리가 갑자기 그만뒀다고 호들갑을 떨 필요가 없지 않았을까.

그러나 그런 꿈은 스가 장관이 출마 의사를 밝히면서 물안개처럼 사라지고 있다. 당 사무를 장악하고 있고 자신의 파벌 니카이파(二階派, 46명)를 가진 니카이 도시히로 간사장을 찾아갔으나 이미 뜨뜻미지근한 반응을 보였고, 아베 총리 역시 확답을 해주지 않았다. 아베 정권과 연속성을 갖고 1년 임기를 맡길 인물로 스가 장관을 밀기로 입을 맞춘 듯한 대응이다.

불과 2년 전인 2018년 가을 총재 선거에서 출마를 포기하면서까지 아베 총리의 3선을 밀어준 기시다 회장으로서는 배신감으로 땅을 칠 노릇이다.

처세술의 달인인가, 기회주의자인가
 
차기 일본총리 유력 후보로 꼽히고 있는 기시다 후미오 자민당 정조회장
 차기 일본총리 유력 후보로 꼽히고 있는 기시다 후미오 자민당 정조회장
ⓒ EPA=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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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시다 후미오 정조회장은 라이벌인 이시바 시게루 전 간사장과 비슷한 배경을 가지고 비슷한 경로를 거쳐 정치인이 됐다. 아버지의 지역구를 이어받은 이시바 전 간사장처럼 기시다 회장도 중의원 의원과 중소기업청 장관을 거친 아버지의 지역구를 이어받아 후쿠시마에서 1993년 중의원 의원으로 첫 당선된다. 아베 총리와 같은 해에 의원이 된 것이다.

그러나 비슷한 것은 딱 거기까지다. 이시바 전 간사장이 국방·농업·지방 등 다방면으로 관심을 갖고 공격적인 정치 경력을 쌓은 반면, 기시다 회장은 아베 2차 정권 들어서 장기간 외무상을 거친 것 외엔 특별히 눈에 띄는 경력이 보이지 않는다.

이시바 전 간사장은 정권 초기 간사장을 맡아 잠깐 아베 총리와 손발을 맞춰온 것을 제외하고 줄곧 쓴소리를 하거나 총재 자리를 두고 겨루는 등 대립각을 세워왔다. 그러나 기시다 회장은 늘 아베 곁에 서서 '순종'했다. 

일본을 대표하는 소장파 정치학자인 나카지마 다케시 도쿄공업대학 교수가 차기 총리후보들의 면면을 분석한 책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기시다는 그때그때 권력자의 입맛에 맞춰 요령 있게 충돌을 피해온 정치인이다. 확실한 비전을 제시하지 않음으로써 적을 만들지 않으며 유력한 지위를 손에 넣어온 순응형으로, 좋게 말하면 견실하고 냉정한 인물이다. 그러나 이 나라를 어떤 방향으로 이끌어갈지 알 수 없고 무엇을 하고 싶은지도 명료하지 않은 정치인이다. - <일본의 내일>, 2019, 최근 한국어판 출간
 
이 책은 그에 대해 "무던한 말을 하는 데 천재"라며 아베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대한 그의 발언을 예로 들었다.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쳐 시대에 맞서 싸운 분들에 대한 경의를 표한다는 의미에서는 지지합니다. 그러나 총리가 참배할지 여부는 날짜를 포함하여 참배의 형태 그리고 환경 정비 등 더욱 세심한 배려가 필요했다고는 생각합니다." - 2006년 8월 25일

총리의 참배를 반대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찬성하지도 않는 애매한 답변으로, 좋게 말하면 처세술이 좋은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기회주의자인 것이다. 나카지마 교수는 "기시다에게 필요한 것은 권력자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기 생각을 제시하는 용기와 지성"이라고 조언하기도 한다.

이런 하나마나한 발언이 대중으로부터 멀어지게 하고 이시바 전 간사장에 비해 한참 지지도가 낮게 나오는 원인일 것이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무상이 지난 2015년 12월 28일 오후 서울 외교부 청사에서 위안부 문제 해결 방안과 관련한 회담을 시작하기 전 사진촬영을 하고 있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무상이 지난 2015년 12월 28일 오후 서울 외교부 청사에서 위안부 문제 해결 방안과 관련한 회담을 시작하기 전 사진촬영을 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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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지에 몰린 두 라이벌, 다음 선택은?

한국과의 인연은 지난 2015년 당시 외무상으로서 한일위안부협상을 이끌었다는 것이다. 윤병세 당시 외교부장관과 함께 합의문을 발표하던 장면은 눈에 선하다. 그러나 공식적인 발언 외 특별히 기억에 남는 행동이나 발언은 남는 게 없다.

다만 그는 1일 오후 출마 선언 기자회견에서 "지금의 한일관계는 매우 유감"이라며 "양국이 국민의 감정을 냉정하게 하고, 대화하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날 오전 자민당 총무회는 결국 당원투표 없이 국회의원 394명과 도·도·부·현(일본의 광역지자체단위) 대표 141명만 참여하는 '약식선거'를 치르기로 했다. 이렇게 되면, 당원들 인기는 높지만 의원들의 지지가 약한 이시바 전 간사장은 당선될 가능성이 거의 없게 된다. 반면 이미 당내 파벌 의원 60%의 지지를 확보한 것으로 알려진 스가 장관은 따논 당상이나 마찬가지다.

언제나처럼 다음 기회를 위해 대세에 다시 순응할 것인가. 아니면 언론보도처럼 이시바 전 간사장과 모종의 공동전선을 펼칠 것인가. 기시다의 선택이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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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기시다 후미오, #기시다, #아베, #이시바, #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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