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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9월의 카탈루니아 광장. 이맘때면 늘 사람들로 북적이던 곳이다.
▲ 카탈루니아 광장 2020년 9월의 카탈루니아 광장. 이맘때면 늘 사람들로 북적이던 곳이다.
ⓒ 한소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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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수정 : 2일 오후 2시 57분]

8월 15일 광복절 집회 이후 코로나19 확진자 숫자가 크게 증가하면서, 한국에서도 거의 락다운 수준에 버금가는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가 시행되고 있다. 이를 지켜보면서, 내가 스페인에서 지난 3월에서 5월 사이 경험했던 봉쇄 상황이 떠올랐다.

올해 3월 초만 해도, 이탈리아 롬바르디 지역을 중심으로 마른 숲에 불이 붙어가는 형상으로 코로나19 감염이 번져 나갔다. 전 세계가 놀라다 못해 입을 벌리고 쳐다보던 상황이었다.

스페인 정부는 '우리는 저런 상황까지 가지 않을 것'이라고 코멘트 했지만, 실제적으로 아무런 방역조치를 취하지 않았던 시기였다. 실제로 나도 봉쇄가 선언되기 이틀 전까지 사무실로 출근을 했더랬다.

코로나19 확산에 대한 걱정도 있었지만, 동양인으로서 걱정스러운 소식도 많이 들리던 시기였다. 코로나19가 중국에서 왔다는 생각 때문에, 인종차별적 언행을 하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다는 소식은 세계 곳곳에서 들려왔다. 스페인도 예외는 아니었다.

당시 일간지 <라반가르디아>의 인터뷰에서, 바르셀로나에서 오래 산 젊은 중국계 여성이 그곳에서 나고 자란 서너 살의 중국계 조카를 데리고 편의점에 갔을 때, 가게 아주머니가 아이를 향해 '너네 나라 가서 죽어!'라고 했다는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 마음이 먹먹해지다 못해 눈물이 났던 것이 기억이 난다.

동양인으로 보이는 사람에게 이유 없이 중국인을 비하하는 말을 했다는 이야기, 횡단보도를 건너다가 동양인이 맞은 편에서 건너오는 걸 보고 스카프로 입을 가리면서 외면해 버리는 사람을 봤다는 스페인 사람의 이야기들도 접했다.

그즈음, 스페인에도 확진자가 계속 생겼는데 급기야 스페인의 확진자 증가세가 높은 속도로 치솟다가, 얼마 가지 않아 이탈리아를 앞지르는 상황까지 됐다. 확진자가 매일 수천 명 단위로 증가하기 시작하던 3월 14일 정부는 곧바로 락다운을 선언했지만, 때는 너무 늦었다. 하루 수만 명씩 새로 확진이 되다가 4월 말에 가서야 겨우 정점을 찍었다.

이론상으로는 모두 집에 머물면 감염고리도 몇 주 사이에 끊겨야 했다. 하지만 워낙 확산 규모가 컸던 데다, 여전히 일이나 다른 부득이한 이유로 움직여야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또 더러 방역수칙을 위반하는 사람들도 있다 보니 쉽게 확산세가 잡히지 않았던 것이다.

중고마켓에 '개 빌려준다'는 게시물이 늘어난 이유

홈리스라는 것은 단순히 집이 없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는 어느 작가의 글이 생각났다. 홈리스는 침대가 없고, 밥을 먹을 식탁이 없고, 잠깐 앉아 쉴 의자가 없고, 보호나 쉼이 없고, 온기가 없는 그 모든 것을 이르는 말이라는 것이었다. 

락다운이 바로 그랬다. 늘 집에만 있으라는 건 단순히 집에만 있는 것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었다. 락다운은 잠시 공원에 갈 자유, 걸어서 30분이면 가는 바다에 가 앉을 자유가 없고, 머리 위 태양을 올려다볼 자유가 없고, 선선한 바깥의 공기를 마시고, 살랑살랑 불어와 얼굴을 쓰다듬는 바람을 느낄 자유가 없다는 것이었다.

친구를 만날 자유도 없었다. 밖에서는 아무도 만날 수가 없었다. 직장을 다니다 보면 가끔 '아 며칠쯤 아무 데도 나가지 않고 집에서 뒹굴거리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데, 이때 말하는 '집에 있기'와는 차원이 달랐다. 

다행히 나는 가족과 함께 집에 있게 되어 외로움은 크게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자주 바다까지 긴 산책을 하고 돌아오곤 하던 우리들이었기에, 한 달이 넘도록 집에서 한 발자국도 뗄 수 없다는 사실은 정말 창살 없는 감옥에 갇힌 기분이 들게 했다. 락다운 기간 동안 창문 너머 보이는 하늘 위로 보고 싶은 바다와 산을 몇 번이나 그려봤는지 모르겠다. 

물론, 가족 없이 혼자 지내는 친구들의 경우는 더 지내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개와 함께 둘이서만 지내던 지인은 갈수록 락다운을 견디기 힘들어 고통을 호소하기도 했다. 개가 있으면 그나마 다행이었다. 락다운 동안 허락되었던 바깥 출입은 '부득이 출근해야 하는 직장', '장보기', '노약자 돌보기' 또는 '반려동물 산책시키기' 뿐이었기 때문이다.

너무너무 걷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중고 물건들을 파는 사이트에 '우리 개를 빌려드립니다'라는 광고가 나붙기 시작한 것이 이맘때였다. 나중에 들은 말이지만, 이 기간 동안 사람들이 새로 산 강아지들도 상당했다고 한다. 실제로 최근에 어린 강아지들과 산책 나온 사람들을 종종 보곤 했다.

가족이나 플랫메이트와 함께 사는 사람들이라고 모두 지낼 만 했던 것도 아닌 모양이었다. 24시간 붙어 있어야 하는 플랫메이트와 마음이 맞지 않아 봉쇄가 조금 풀릴 즈음 바로 짐을 싸 부모님이 계신 집으로 옮겨갔다는 지인의 이야기, 성인이 된 이후로는 오랜 기간 같이 지낼 일이 없던 부모님댁에 두어 달씩 있으니 모든 것이 불편했다는 친구의 이야기...

봉쇄기간 동안 큰 화상을 입은 막내 아이가 중환자실을 거쳐 거의 한 달을 입원해있었는데, 가족들이 아이를 보러 가는 것도 매번 쉬운 일이 아니었다는 다른 지인의 이야기도 전해 들었다.

어린아이들이 있는 집들도 걱정이었다. 한창 움직이고 다른 친구들과도 함께 놀 나이의 아이들이 한 달 넘게 집안에 갇혀 지내다 보니, 아이들의 스트레스 지수도 높았지만, 그런 아이들과 하루종일 집에서 씨름하는 부모님들의 고충도 컸다.

부모님이 집에서 '재택근무'를 해야 하는 상황이면 상황은 더 어려워졌다. 그러다 보니, 락다운이 한 달쯤 된 무렵부터는 아이들에게만이라도 산책을 조건부로 허가하자는 청원도 있었고, 기사 중에도 아이들의 건강 문제에 대한 우려의 글들이 있었다.

비단 아이들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극단적인 봉쇄가 장기간 이어지면서, 점차 건강하던 사람들이 겪게 될 정신적 육체적 문제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기사들이 늘어 갔다.

우리는 이번 위기를 다시 넘길 수 있을까
 
한국에서 사회적거리두기 2단계가 전국적으로 시행되던 지난 8월 24일 서울 중구 명동 거리에 텅빈 거리에 시민들이 마스크를 쓰고 이동하고 있다.
 한국에서 사회적거리두기 2단계가 전국적으로 시행되던 지난 8월 24일 서울 중구 명동 거리에 텅빈 거리에 시민들이 마스크를 쓰고 이동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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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문제도 큰일이었다. 스페인 정부가 락다운을 선언하자 조건부로 모든 직원을 반(半)해고 상태로 만들겠다고 하는 회사들이 많아졌다. 실제로 해고된 사람들, 아무런 수입이 없이 자영업을 하게 된 사람들에 더해, 수많은 직장인들이 반해고 상태에 놓여 정부가 일부 자금을 지원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코로나19 치료가 필요한 사람들도 많았던 만큼 거기에 들어가는 의료비를 충당해야 했던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니, 스페인이 확진자 증가세에 정점을 찍을 무렵, 안정기에 들어간 것으로 간주하고 조금씩 봉쇄 단계를 풀어간 것에는 이 같은 배경이 있었던 것이다. 일단 더 이상은 모두를 가두기 힘든 상황에 도달하기도 했고, 당장 경제적 문제가 들이닥치고 있었다.

얼마 전, 한국의 확진자가 300명대라는 뉴스가 보도된 날, 한국의 친구들 몇 명이 물었다. 스페인의 상황은 조금 나아졌는지. 그날 스페인의 확진자는 3500여 명 수준이었다. 최근 상황이 나빠지는 양상이라, 정부에서도 10명 이상의 모임을 금하는 등 다시 조치를 강화하고 있다.

사실, 봉쇄를 풀어가던 당시에도 이곳의 확진자 수는 매일 수백 명대였다. 오름세가 심상치 않으면 정부에서 지역적 봉쇄를 하기도 하며, 그렇게 오늘까지 왔다. 전문가들은 10월 중에 지역 감염이 더 커질 거라고 예상하는데, 이곳의 상황이 얼마나 더 나빠질 것인지 가늠하기가 어렵다.

한 달은커녕, 당장 한 주 뒤의 상황도 내다보기 힘든 것이 팬데믹이 가져오는 스트레스 중 하나다. 다만, 현재 스페인의 경제 상황으로 볼때 웬만큼 나빠진 정도로는 이전처럼 락다운을 하기란 매우 어려울 거라는 추측이 나온다.

9월 2일 오후 2시 기준, 스페인의 일일 확진자 수는 8115명. 지금 다시 강화된 방역 조치에 따라 사람들이 더 조심하는 효과는 이제 며칠 더 뒤에나 숫자로 나타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이번 위기를 다시 넘길 수 있을까?

백신이 나온다는 1~2년 뒤까지, 우리는 몇 번씩 고비를 넘기게 될 것이다. 9월 2일 0시 기준 한국의 일일 확진자 수는 267명. 더 지켜봐야 한다고는 하지만, 조금씩 줄어드는 추세는 참 다행스럽다. 한국이 이번 고비를 잘 넘기기를. 락다운에 이르는 일이 절대 없기를, 멀리서 되뇐다. 

태그:#코로나19, #스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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