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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 중반을 지나며 고향에 대해 다시 생각해봅니다. 내가 살던 서울을 답사하며 얻은 성찰과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보려 합니다.[편집자말]
[이전기사] 전광훈 측의 매입 시도... 하마터면 내 고향이 더럽혀질 뻔

나는 '도시인에게 고향의 의미는 무엇인지' 탐구하기 위해 어릴 때 살던 곳들을 조사하고, 답사하고, 기록하는 중이다.

그 첫 번째 지역은 수유리다. 난 태어나 초등학교 1학년 겨울방학까지, 그러니까 1966년부터 1974년 초까지 수유리에서 살았다. 수유리에서도 정확히 어디서 살았는지 기억하지 못하지만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주민등록표 초본'에는 한 개인이 주민이라고 등록했던 곳의 주소가 모두 나오기 때문이다.

그런데 서류에 기록된 주소는 수유동이 아니라 쌍문동이었다. 내 기억에 우리 가족은 분명 수유리에 살았었다. 집 근처 정류장에 서던 시내버스에도 수유리라 적혀 있었고 시내에서 택시를 타도 수유리로 가자고 했었다. 그런데 쌍문동이라니,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결과였다.

혹시 내 기억이 잘못된 걸까. 난 서류에 적힌 쌍문동 주소로 인터넷 지도를 검색해 보았다. 주소도 중요하지만 내가 살던 동네를 찾는 게 먼저였으니까. 하지만 그 주소로 검색되는 곳은 없었다. 다만 서류의 주소와 비슷한 지번은 있었다.

그곳은 땅이 아니라 하천이었다. 우이천 한켠 물가에 자리한 좁은 기슭이었다. 그럴 리 없었다. 우리 집은 분명 땅 위에 있었는데.

답답한 마음에 직접 가보기로 했다. 원래 수유리 답사를 계획했었지만 그건 정확한 주소를 알고 찾아가는 거였다. 그러나 주소는커녕 동네 위치도 모르고 나서는 마음은 처음 가보는 산을 지도도 없이 오르는 심정이었다.

공교육도 거부하는 학생들을 품어준 학교

먼저 기준점을 잡아보았다. 그나마 확실한 위치부터 찾아가서 옛 기억을 더듬어 보기로 한 것이다. 첫 기준점은 내가 1학년 때 그러니까 1973년에 다닌 초등학교다.
 
한신국민학교 옛 간판 수유동에 있었던 힌신국민학교 옛 교정의 간판. 지금 이 자리에는 교회와 빌라가 들어섰다.
▲ 한신국민학교 옛 간판 수유동에 있었던 힌신국민학교 옛 교정의 간판. 지금 이 자리에는 교회와 빌라가 들어섰다.
ⓒ 한신초등학교 졸업 앨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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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신국민학교 옛 교정 수유동에 있던 한신국민학교 전경. 지금은 쌍문동으로 옮겨갔다.
▲ 한신국민학교 옛 교정 수유동에 있던 한신국민학교 전경. 지금은 쌍문동으로 옮겨갔다.
ⓒ 한신초등학교 졸업 앨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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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신초등학교, 정확히는 '한국신학대학교 병설 국민학교'를 다녔다. 우리 학교는 1969년에 어떤 사명을 띠고 설립됐다. 당시 지금의 서초구 한 지역에 있던 음성나환자촌(한센병이 완치된 사람들과 그 가족들이 살던 마을) 어린이들, 일명 미감아(未感兒, 병 따위에 아직 감염되지 아니한 아이. 특히 한센병 부모에게서 태어나 병에 걸리지 않은 아이를 일컬음)들과 일반 어린이들을 함께 교육하기 위한 학교로 세워졌다.

설립 목적에서 보듯 한신초등학교는 의무교육에서조차 외면받는 어린이들에게 평등한 교육의 기회를 주기 위해 설립됐다. 한센병에서 완치된 사람들의 자녀들은 한센병에 걸리지도 않았고 건강에도 아무 이상 없었지만 '미감아'라 불리며 차별당했다. 심지어 한센병에 옮을까 우려한 인근 초등학교에서 받아주지 않는 사태가 벌어지자 한신대학교가 나서 아예 학교를 새로 세우게 된 것이다. 이 이야기는 다른 글에서 자세히 소개할 예정이다.

아무튼, 한신초등학교 설립은 한국신학대학교의 성향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한국신학대학교, 현재 한신대학교의 기반이 되는 교단이 '한국기독교장로회총회'인데 우리나라 기독교 교단 중 그나마 진보로 알려진 교단이다. 최근 일부 보수 기독교 교단들이 전광훈에는 입 다물고 '대면 예배'만을 외칠 때 한국기독교장로회총회 측은 "전광훈을 교계에서 추방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비록 1학년만 다녔지만 소중한 추억이 있는 한신초등학교는 지금 그 자리에 없다. 학교 재단을 1982년에 정의여고를 소유한 '삼산학원'이 인수했고 학교 건물도 1985년에 도봉구 쌍문동으로 옮겨갔기 때문이다.
 
한신 빌라 옛 한신국민학교 자리에 들어섰다.
▲ 한신 빌라 옛 한신국민학교 자리에 들어섰다.
ⓒ 강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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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한신초등학교 자리 우이신설선 경전철 '화계역' 네거리에 있다. 옛 한신초 자리에는 교회와 빌라가 들어섰다. 삼양로가 곧게 뻗었는데 내가 학교 다니던 시절에는 없었다.
▲ 예전 한신초등학교 자리 우이신설선 경전철 "화계역" 네거리에 있다. 옛 한신초 자리에는 교회와 빌라가 들어섰다. 삼양로가 곧게 뻗었는데 내가 학교 다니던 시절에는 없었다.
ⓒ 강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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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우이신설선' 경전철 '화계역' 건너편 '송암교회' 자리에 한신초등학교가 있었다. 그 교회 자료를 보니 한신대와 관련한 역사가 많았다. 혹시 한신초등학교와 관련한 이야기도 있나 자세히 살펴봤지만 찾을 수 없었다. 교회 옆 골목에 오래된 빌라 단지가 보였고 입구에는 '한신빌라'라고 쓰여 있었다. 그나마 그 자리에 한신국민학교가 있었다는 걸 알 수 있었던 유일한 흔적이었다.

나는 옛 한신초등학교 자리에서 스쿨버스 노선을 따라 걸었다. 당시 차를 탈 기회가 별로 없었던 나는 스쿨버스 타는 게 큰 즐거움이었다. 덕분에 노선이 얼핏 기억난다. 그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어쩌면 기억이 더 떠오를까도 싶었다. 내가 학교 다닐 때는 없었던 곧게 뻗은 '삼양로' 대신 1973년 항공사진에 찍힌 구불구불한 구(舊)도로를 확인하며 걸었다.  
 
1973년 한신초등학교 인근 항공사진 1973년 당시 노란선으로 그린 삼양로는 없었고, 빨간선으로 그린 도로가 간선 도로 역할을 했다.
▲ 1973년 한신초등학교 인근 항공사진 1973년 당시 노란선으로 그린 삼양로는 없었고, 빨간선으로 그린 도로가 간선 도로 역할을 했다.
ⓒ 서울특별시 항공사진 서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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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길 따라 '국립 4·19 민주묘지역' 네거리까지 걸었다. 스쿨버스가 그 근처에서 방향을 크게 꺾었다는 게 떠올랐다. 주위를 살피니 근처에 사선으로 꺾인 이면 도로가 보였다. '노해로23길'이다. 도로 폭이며 동네 분위기가 왠지 눈에 익었다. 스쿨버스가 그 길로 다녔었을까. 확실을 기하기 위해 두 번째 기준점도 찾아보기로 했다.

어릴 적 동네 답사에서 내가 수확한 것

두 번째 기준점은 내가 1972년에 다닌 '동원유치원'이다. 유치원생인 내가 집에서 걸어 얼마 걸리지 않았던 곳에 있었다. 하지만 그곳은 오래전에 없어졌는지 인터넷에 아무 흔적도 없었다. 다만 기억나는 건 어느 교회와 함께 있었다는 거다. 어머니가 그 교회에 다녔고 난 교회와 함께 있던 유치원에 다닌 거였다. 유치원 졸업앨범에도 교회 이름이 희미하게 찍힌 사진이 있다.
  
동원유치원 전경 내가 다닌 유치원은 어느 교회와 함께 마주보고 있었다. 유치원 건물보다 긴 건물이었다.
▲ 동원유치원 전경 내가 다닌 유치원은 어느 교회와 함께 마주보고 있었다. 유치원 건물보다 긴 건물이었다.
ⓒ 동원유치원 졸업 앨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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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원유치원 입구에 걸린 교회 간판 정문 기둥의 아치형 간판을 보면 교회라고 쓰인게 보인다.
▲ 동원유치원 입구에 걸린 교회 간판 정문 기둥의 아치형 간판을 보면 교회라고 쓰인게 보인다.
ⓒ 동원유치원 졸업 앨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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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수유동에서 50년 넘은 교회를 검색해 보았다. 그중 '수유동교회'와 '우이중앙교회'가 노해로23길 근처에 있었다. 하지만 두 교회 자료에 유치원 관련한 기록은 없었다. 직접 찾아가 물어보았지만 내가 만난 직원들은 잘 모른다고 했다. 그 교회에 다닌 지 오래된 교인을 연결해줄 수 있을까도 요청했지만 부담스러워했다. 

다만 두 교회 역사에서 어머니에게 들었던, 하지만 잊고 있던 이야기가 떠오른 건 큰 소득이었다. '실명의용촌', 6.25 때 눈을 다쳐 실명한 제대 군인들이 모여 살던 곳이 수유리에 있었다. 그리고 이 두 교회와 관련이 있다. 지금은 세상에서 잊힌 이야기라서 이 또한 별도의 글로 자세히 소개할 예정이다.

두 교회 중 '우이중앙교회' 주변이 왠지 낯익었다. 내가 유치원 다닐 때 유치원 건물과 교회 건물이 마주 보고 있었던 게 기억났다. 당시 항공사진과 비교해 보았다. 현재 우이중앙교회 위치가 찍힌 1972년 항공사진에 주변 주택들 모양과 비교되는 마주 보는 길쭉한 모습의 두 건물이 있었다. 두 건물 중 하나가 내가 다닌 동원유치원이 확실했다.
   
1972년 우이중앙교회 인근 항공사진 현재의 우이중앙교회 위치를 1972년에 찍은 항공사진. 주변 주택들 모습과 비교되는 노란 원 안의 두 건물이 보인다. 왼쪽 작은 건물이 동원유치원으로 예상된다. 중앙의 하얀 원 안에 내가 살던 집이 있을 것이다.
▲ 1972년 우이중앙교회 인근 항공사진 현재의 우이중앙교회 위치를 1972년에 찍은 항공사진. 주변 주택들 모습과 비교되는 노란 원 안의 두 건물이 보인다. 왼쪽 작은 건물이 동원유치원으로 예상된다. 중앙의 하얀 원 안에 내가 살던 집이 있을 것이다.
ⓒ 서울특별시 항공사진 서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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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몇 달 내가 살던 여러 곳을 조사하고 찾아다닌 이유는 그 집들과 동네들이 어떻게 변했는지 궁금해서다. 자료를 찾으면 찾을수록 답사를 하면 할수록 전에 보이지 않던 것들이 새로 보이기 시작했다. 반면 사라지고, 변하고, 잊힌 모습도 너무 많아 아쉬웠다. 그래서 캐고, 담고, 기록하기 시작한 거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도 어쩌면 매일 지나치던 건물과 간판과 길들이 언젠가는 그리워질지 모른다. 그러니 지금 주변을 한번 돌아보면 어떨까. 그리고 틈날 때마다 사진이든 메모든 기록해 두는 거다. 그 언젠가 지금을 떠올리는 귀한 자료가 될지도 모르니까.

이번에 나의 옛 학교와 유치원을 답사한 소득이 있었다. 스쿨버스가 지나간 노해로23길과 우이중앙교회 사이 골목 중 어딘가에 내가 살던 집이 있을 거라는 거다. 골목들 주소를 보니 강북구 수유동이다. 도봉구 쌍문동이 아니었다. 나의 옛집 찾기가 퍼즐 조각 맞추는 느낌이 드는 건 왜일까.

(* 다음 편에 계속)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강대호 시민기자의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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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 중반을 지나며 고향에 대해 다시 생각해봅니다. 내가 나고 자란 서울을 답사하며 얻은 성찰과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보고 있습니다. 40년 넘게 살던 아파트를 떠나 산 아래 옥상집에 사는 경험과 동화 공부를 하는 이야기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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