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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2일, 밤사이 많은 비가 내린 2일 오후 경기도 안성시 일죽면 청미천 일대 농경지가 물에 잠겨 있다.
 8월 2일, 밤사이 많은 비가 내린 2일 오후 경기도 안성시 일죽면 청미천 일대 농경지가 물에 잠겨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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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여름 이상 기후는 논밭에 흔적을 남겼다. 긴 장마와 태풍에 논두렁이 무너지고, 밭고랑이 파헤쳐졌다. 농작물도 부서지거나 깨져 농토에서 썩어갔다. 이상 기후는 생명이 자라던 땅을 무덤으로 바꿔 놓았다.

세계 최대 농민조직인 비아 캄페시나(La Via Campesia)의 김정열(54) 국제조정위원의 말을 압축하면 이렇다.

김 위원은 29년 차 농민이다. 논밭을 합해 약 1만 2천 평(4만㎡) 규모의 농사를 짓고 있다. 하지만 그는 올해 농사를 완전히 망쳤다고 했다. 올여름 이상 기후가 농업에도 막대한 영향을 끼친 것이다.

농작물의 작황은 값으로 알 수 있다. 농산물유통정보(KAMIS)에 따르면, 8일 기준 배추 1포기의 소매 가격은 9783원으로 1년 전 4890원보다 2배 이상 올랐다. 사과 가격(10개)도 2만 4921원에서 3만 321원으로 5400원 뛰었다.
  
8일 기후 위기에 달라진 농업 환경의 변화에 대해 듣고자 김 위원에게 연락했다. 그는 지난 2일 환경단체가 주최한 '기후위기시대, 생존을 모색하다'란 토론회에서 이상 기후로 변해가는 농업 환경을 증언했다. 김 위원과 '왜, 기후 위기는 농업의 위기인가?'란 주제로 전화 인터뷰를 진행했다.

"모든 작물 탄저병 걸려... 자포자기 상태"
 
경상북도 상주시에서 29년째 농사를 짓고 있는 김정열(54) 비아 캄페시나 국제조정위원은 "기후 위기가 농업의 위기라는 말은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다"라고 했다.
 경상북도 상주시에서 29년째 농사를 짓고 있는 김정열(54) 비아 캄페시나 국제조정위원은 "기후 위기가 농업의 위기라는 말은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다"라고 했다.
ⓒ 김정열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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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 농사를 지었나?
"경상북도 상주시에서 29년째 농민으로 살고 있다. 1991년대 농민운동을 시작하면서 농사를 시작했다. 지금은 논밭 합해 1만 2천 평 규모의 농사를 짓고 있다. 벼농사를 주로 짓지만 900평(약 3000㎡)가량의 밭에서 고추와 양파, 생강 등도 키우고 있다."

- 올여름 기록적인 장마에 이어 태풍도 잇따라 발생했다. 농사 피해는 없는가?
"수해로 논밭이 잠긴 지역보다는 덜 하지만 장마와 태풍으로 작황이 좋지 않다. 특히 습한 날씨 때문에 병충해가 심각하다. 겨울에 추워야 벌레가 죽어 이듬해 농사가 잘되는데, 지난해 겨울이 따뜻하고 습했다. 특히 탄저병으로 인한 농산물 피해가 심각하다. 거의 모든 작물이 탄저병에 걸려 제대로 수확을 못했다.

고추 농사는 탄저병으로 '폭망'(폭삭 망하다의 준말)했다. 고추는 비가 적게 와야 잘 자라는데, 올해는 긴 장마와 태풍으로 해가 드는 날이 거의 없었다. 주위에서 농사를 짓는 사람들도 거의 수확을 못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상주의 경우 고춧값이 작년보다 50% 가량 상승했다. 지난해 건고추(마른 고추) 600g 기준 1만 2천 원 했던 고춧값이 지금은 2만 원 정도다. 게다가 태풍에 벼가 죄다 쓰러져 올가을 수확량도 예년에 비해 크게 떨어질 것 같다. 기후변화로 농업도 위기를 맞았다."
     
- 예년보다 수확량과 수익의 변화가 있는가?
"사실상 올해는 수확량과 수익을 포기한 상태다. 주변 농민들도 마찬가지다. 자포자기한 상태다. 날씨 변화로 발생한 피해라 인간의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없지 않은가."

- 정부가 2차 긴급재난지원금을 지급한다고 발표했다. 농민들에 대한 지원도 있는가?
"없다. 자영업자들에겐 2차 재난지원금을 지급한다고 하는데, 농민들에게 아무 말도 없다. 농민들이 농사를 게을리해서 피해를 봤다면, 지원금 받을 자격이 없다. 하지만 기후 변화로 엄청난 피해를 보았는데, 농민들을 지원대상에서 제외하는 게 웬 말인가."

"기후 변화로 농민만의 노하우 통하지 않게 됐다"
    
집중호우로 쓸려내려가는 고추밭
 집중호우로 쓸려내려가는 고추밭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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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후변화로 달라진 농촌 풍경이 있다면?
"생강 농사를 작게 하고 있다. 생강은 5월에 심어서 여름이 지나 10월에 수확한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여름 폭염을 견디지 못하고 죽어버렸다. 그래서 요즘은 생강 위에 차광막을 설치하는 농가가 늘고 있다. 그만큼 여름 기온이 점점 오르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무 파종 시기도 달라졌다. 상주는 무씨앗 파종을 말복 지나서 하는데 그때가 보통 8월 15일경이다. 이때 하면 발아도 잘 되고 무난히 잘 자란다. 그런데 올해는 그 무렵에 파종한 사람들은 다시 재파종을 해야 했다. 발아도 안 되었고, 발아돼 싹이 올라와도 말라 죽어버렸기 때문이다. 그 원인을 폭염으로 보고 있다. 이 시기 기온이 높아졌다는 뜻이다. 무 파종을 예년보다 1주일 정도는 늦게 해야 할 정도로 기후의 변동이 크다.

농민마다 자신만의 노하우로 농사를 짓는다. 하지만 기후 변화로 노하우가 통하지 않게 됐다. 앞으로 어떻게 농사를 지어야 할지, 어떤 작물을 심어야 할지 고민이 크다."

- 국제적인 농민단체에서 활동하고 있다. 지난 7월 14일 정부가 그린뉴딜 정책을 발표하며, 농업 분야 지원도 계획을 밝혔는데, 어떻게 평가하는가?
"웃음이 나왔다. 농촌 마을에 초고속 인터넷망을 설치하고, 스마트 물류체계를 구축하는 게 '그린뉴딜'은 아니다. 농업 분야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이기 위한 구체적인 수치와 목표가 있어야 하는데 없었다. 농산물의 생산부터 식탁까지 이산화탄소를 줄이기 위한 구체적인 정책이 나왔어야 한다. 기존의 방식이 아닌 농업의 전환을 이룰 수 있는 정책이어야 하는데, '녹색'이란 이름으로 포장된 성장 정책이었다. EU(유럽연합)의 '그린 딜'과 차이가 크다."

- EU와 한국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가장 큰 차이점은 농업 분야도 이산화탄소를 줄이기 위한 구체적인 목표가 있느냐다. EU는 오는 2030년까지 농약과 화학비료, 항생제 사용 등을 지금보다 50% 줄이겠다는 구체적인 수치가 있다. 유기농법으로 농사를 짓는 농가의 비율도 현재 6.5%에서 25%까지 유기농업화하고, 농지의 10%는 멸종위기종을 포함한 다양한 생물이 살아가는 환경이 되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EU 그린 딜의 핵심은 '농장에서 식탁까지'이다. EU는 온실가스 배출의 10.3%가 농업에서 나온다고 보고 있다. 농산물의 생산단계에서 유통과 판매 과정을 거쳐 음식물 쓰레기로 폐기되는 과정까지 따져보니 이렇다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은 농업 분야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2.9%라고 밝히고 있다. 우리 농업 분야에서 적게 배출하는 게 아니라 좁은 범위에서 이산화탄소배출량을 산출해서 그렇다."

- 왜 농민들이 기후 변화를 고려해 농사를 지어야 하나.
"기후 위기로 농사가 안되면 식량 생산이 불안전해진다. 그러면 식량 문제가 불거진다. 농민들도 먹고사는 일에 직접 피해를 본다. 그래서 이산화탄소를 줄이고 땅을 살리는 방식으로 농사도 전환되어야 한다.

정부는 농업 분야에도 탈탄소정책을 도입하고 이걸 구체적으로 어떻게 실현할지 계획을 내놔야 한다. 이게 기후위기 시대 식량문제를 해결하는 것이고, 농민들의 지속가능한 삶을 위한 길이기도 하다."

-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기후위기가 농업 위기라는 말은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 당장 눈앞에 닥친 상황이다. 그리고 (인류의) 생존이 걸린 문제다."

태그:#기후위기, #농업위기, #그린뉴딜, #탈탄소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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