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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격 수업을 끝내고 노트북, 헤드셋, 교과서를 바리바리 싸들고 언제까지 이래야 되나 하며 학생부실로 들어서니, 학생부 선생님 한 분이 학교폭력이 발생했다고 했다. 난 습관적으로 큰 한숨을 쉬고 물었다.

"그래요, 또 A중에서 전화 왔어요?"
"아니요, B고에서 공문으로 보내왔어요."
"B고에서요? 그럼 우리 애가 피해자겠네요?"
"그렇긴 한데 좀 복잡해요."


B고에서 보내온 학교폭력 사안 조사서를 보니, 우리 중학교에 다니는 동생이 괴롭힘을 당하자, B고에 다니는 오빠가 동생을 괴롭힌 A중 아이 △△와 다른 중학교에 다니는 아이 뺨을 때려 경찰에 신고, 접수된 건이었다. 선생님이 왜 복잡하다고 하는지 이해가 되었다.

먼저 아이에게 전화해서 사실관계를 묻고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 학교에 오라고 했다. 그리고 아이 어머니에게 전화를 했다. 어머니는 피해자 어머니이면서 가해자의 어머니이기도 해서 마음이 복잡하다고 하셨다. 그저 모두 사과하고 원만히 끝났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오후 3시가 넘어서 원격 수업을 모두 마치고 우리 학교에 다니는 ○○를 불렀다. ○○이가 당시에 함께 있었던 친구 한 명과 같이 왔다.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으니 △△이와 그동안 있었던 일을 차분히 이야기했다. 그리고 △△이와는 앞으로 모른 체하고 지내기로 했다고 했다.

"그럼 △△이 용서하는 거니?"

○○이는 "아니요, 오빠가 처벌을 받으면 저도 △△이가 저 괴롭힌 것을 학교폭력으로 신고할 거예요. 저 때문에 오빠가 경찰에 끌려갔는데..."라며 울먹였다.

"○○아, 일이 이렇게 된 건 네 탓이 아니야. 동생이 괴롭힘을 당하는데 오빠가 어떻게 가만히 있니?"
"그래도 오빠가 경찰한테... 끌려가고, 학교에서 처벌도..."

"그건 너 때문이 아니라, 오빠가 잘못된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기 때문이야. 아직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오빠도 이번 일을 통해 폭력으로 문제를 해결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배워야 해. 잘 해결될 거야.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말고... 그리고 선생님이 이 일을 안 이상 네가 신고 안 해도 학교폭력 사안으로 처리할 거야."


학교폭력에 해결책이 보이지 않을 때는
 
학교 폭력을 다룬 JTBC 드라마 '아름다운 세상'
 학교 폭력을 다룬 JTBC 드라마 "아름다운 세상"
ⓒ 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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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돌려보내고 정해진 절차에 따라 교감, 교장선생님에게 보고를 하고 교육청에 학교 폭력 사안 접수 보고 공문을 보냈다. 그리고 관련 학교에 조사 요청 공문을 보내고 A중 학교폭력 담당 선생님과 통화를 했다. 선생님은 △△이가 여러 친구가 보는 데서 선배에게 맞은 것에 대해 부모님이 화가 많이 나셨고, 그냥 넘어갈 수는 없다고 하셨다고 했다. 해결이 쉽지 않겠구나 싶었다.

다행히 뺨을 맞은 다른 중학교 아이는 자기도 ○○이에게 욕하고 위협한 잘못을 했으니, 서로 용서하고 아는 체 안 하고 지내기를 원한다고 했다. 한쪽이라도 원만한 해결의 가능성이 보여 다행이었다.

이후 몇 차례의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서로 사과하고 아는 체 안 하기로, 또 발생하면 그때는 바로 교육청 학교폭력 대책 심의위원회에 바로 넘기기로 약속하는 선에서 학교장 자체 종결 처리하기로 하였다. 학교폭력 전담기구를 열기 전 ○○이를 다시 불렀다.

"○○아, 학교장 자체 종결이 뭔 소린지 아니?"
"네. 없던 일로 한다는 거잖아요."

"꼭 그런 건 아닌데... 아무튼 이번에 △△이가 널 괴롭힌 것에 대해 용서하고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미라고 생각하면 돼. 물론 또 괴롭히면 그때는 다시 신고해도 돼. 그런데 너 △△이와 모른 체하고 지내기로 했잖아 그게 가능할까?"
"모르겠어요. 걔 친구가 제 친구들이고..."
"선생님도 그래서 걱정이다. 네 어머니나 △△이 어머니도 모두 다시 이런 일이 생기면 그때는 더 일절 용서하지 않겠다고 하셨거든..."


○○이에게 혹시 △△이가 또 괴롭히면 바로 이야기하라고 신신당부를 하고 돌려보냈다. 어제 학교폭력 전담기구를 열어 학교장 자체 종결처리를 해서 이번 학교폭력 건은 마무리 지었다.

학교폭력 건을 비교적 원만히 처리했는데도 마음이 개운하지 않았다. 아이들이나 부모 모두 서로 엮이지 말고 아는 체 않기로 했지만, 아이들 친구 관계나 아이들이 가는 곳이 뻔한 지역임을 감안할 때 그건 불가능해 보였다. 문제를 해결한 것이 아니라 가능하지 않은 조건으로 그냥 넘겼을 뿐이라는 생각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학교폭력이 일어날 것 같은 불안감을 떨칠 수가 없었다. 만일 또 학교폭력이 일어난다면 그때는 화해와 용서는 없고 서로 간의 불신과 미움 그리고 처벌뿐일 것 같아 걱정됐다.

학교폭력을 보다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선 아이들의 관계를 회복시켜야 하는데... 어떻게 회복시킨단 말인가? 솔직히 잘 모르겠다.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일하다 보면 학교폭력을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땜빵'만 할 뿐이라는 자괴감이 들 때도 있다. 특히 이번 건처럼 타학교와 연결된 건의 경우는 더 그렇다.

참고할 만한 자료를 찾아 읽어보고, 상담 선생님과 이야기해 봐도 딱히 해결책은 보이지 않는다. 핑계를 대고 싶진 않지만, 현실적 한계를 인정하지 않을 수도 없다. 그렇다고 현실만을 탓하고 있기엔 아이들은 너무 아름답고 중요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한참을 무력감에 허우적대다 난 어려운 문제에 집착해 일을 망치기보다는 내가 당장 할 수 있는 일부터 하기로 했다. 아이들 이야기 '오래 듣기'. 지치지 않고 오래 듣다 보면 아이들이 마음을 열어주지 않을까? 그러다 어쩌면 관계 회복을 위한 돌파구가 보이지 않을까 싶다.

태그:#학교폭력 분투기(7), #관계 회복, #이해, #용서, #오래 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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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소재 중학교에서 근무하고 있는 교사입니다. 또 학교에 근무하며 생각하고 느낀 바를 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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