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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딸은 척척 요리를 만든다.
 딸은 척척 요리를 만든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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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 먹었어?"

오후 1시 문자가 왔다. 남편이었다. 하던 일 마치고 집에 가서 밥을 먹겠다고 답했다. 톡이 울린다. "점심은?" 이번엔 딸이다. 다들 끼니를 걱정한다. 특히 요즘 들어 딸은 엄마의 끼니를 챙긴다. 아직 안 먹었다고 답하고 까르보 불닭면이 생각난다고 말했다. 도착할 시간에 맞춰 그것을 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은근히 표시했는데 찰떡같이 알아듣는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밥상 앞에서 느긋하게 음식을 기다린다. 베이컨 대신 햄을 잘라 넣고, 생크림 대신 우유를 듬뿍 넣은 까르보 불닭면이 완성됐다. 더운 날씨에 힘들었으니 천천히 먹으라고 말하고 선풍기도 돌려준다.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받는다. 가끔 누리는 호사다.

이따금 음식을 하겠다고 나서기도 한다. 주방 기구를 총동원하고 냉장고에서 재료도 다 꺼내서 뚝딱거리며 한참을 부엌을 오간다. 주로 하는 것은 스파게티, 종류별로 돌아가며 만들고 가족들을 먹이는 재미를 들인 것 같다. 한식 파인 남편만 제외한 나머지 가족들은 모두 딸의 스파게티를 잘 먹는다. 남편이 없는 시간에 우리는 그렇게 딸의 요리를 맛본다. 들어가야 할 것이 골고루 들어가서 맛이 없을 수 없다. 없으면 없는 대로 하는 나와는 다르게 정석대로 요리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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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감자 가격이 어때?"

어떤 날은 뜬금없이 감자의 가격 변동을 묻는다. 2kg에 4~5000원 정도, 감자 가격이 괜찮다고 하니 감자를 가지고 새로 생각해 둔 메뉴가 있다고 한다. 감자 피자란다. 그것을 해주겠다고 당당하게 말한다.

며칠 후 딸은 부엌에서 음식을 만든다. 한참을 뚝딱거린다. 모양도 크기도 다르게 채를 썰고는 물에 담가 감자의 전분기를 뺀다. 기름을 두른 팬에 물기를 뺀 감자채를 넓게 펼쳐 얹는다. 거기에 소금 후추 간을 정당히 하고 감자의 색이 투명해질 때까지 약불에 굽는 것처럼 익힌다. 

적당히 익으면 달걀을 풀어 그 위에 덮어주고 재료를 뒤집어서 익힌 후 그 위에 피자 소스를 듬뿍 바른다. 적당한 토핑 거리를 고민하다 마땅한 것이 없으니 그냥 치즈만 왕창 덮는다. 프라이팬 뚜껑을 덮고 치즈가 흐물흐물해질 때까지 기다리니 감자 피자가 완성되었다.

말은 간단하지만 시간은 꽤 걸렸다. 열심히 하지만 요리에 재능이 있는 것은 아니다. 힘들게 만든 음식이라는 것을 알기에 들인 시간만큼 의식을 갖춰 먹어야 할 것 같은데, 기다리다 지친 손길들의 움직임이 바빠진다. 순식간에 음식은 사라졌고 맛의 평가는 간단했다.

"괜찮다, 먹을 만했다, 잘 먹었다." 가족들의 간단한 인사도 딸은 좋아한다. 과하지 않은 말투에 길들여져 이만해도 칭찬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먹방에서 하는 것 같은 디테일한 묘사가 없는 담백하고 건조한 평가지만 모두 만족했다는 것을 알고 있고 음식을 준비한 스스로에게도 만족한다. 

나는 살림이 버거웠다 

딸을 보며 지난날의 나를 돌아본다. 아무것도 할 줄 모르고 한 결혼. 혼수로 준비한 요리책을 꼼꼼히 보며 가족을 위한 집밥을 만들었다. 가끔은 특별한 음식도 하고 싶어 특별한 양념도 이것저것 샀지만 주재료와 맞지 않았던 선택은 한 번의 실습으로 끝나고 한 귀퉁이에 있다 버려지기도 했다.

음식을 하면 긴장하며 가족의 반응을 기다렸고, 오랜 시간 준비한 음식은 잠깐만에 없어졌다. 분명 뿌듯한 마음이었는데, 과정은 힘들었고 결과는 허무했다. 매 끼니를 책임감으로 만드는 음식 만들기는 많이 버거웠다.

고백하자면 나는 부단한 노력을 통해 겨우 살림이 익숙해진 사람이다. 아무것도 할  줄 모르던 사람이 배우고 노력해서 그나마 지금 정도의 살림을 해내고 있다. 그간의 힘들었던 시간은 어느새 잊고 결과만으로 나름 프로 주부인 양 뿌듯해하기도 한다. 

요즈음 신혼부부들은 서로의 역할을 바꾸기도 하는 것 같다. 부부가 같이 직장에 다니니 음식 만들기 좋아하는 남편이 저녁 준비를 하기도 하고, 일찍 퇴근하는 사람이 음식을 만들거나 요일을 정해 번갈아 가며 만들기도 한다고 들었다. 나의 신혼시절과는 많이 달라진 세태다.

​그럼에도 여전히 남자가 음식을 하면 가사를 잘 도와주는 다정한 남편이라고 말하고, 여자가 음식을 잘하지 못하면 바깥일 하는 사람이 잘 먹지 못해 어떡하냐는 걱정을 듣는다고 한다. 남자는 바깥일을 하는 사람이라는 가부장 시대의 사고가 아직도 이어지고 있어서 부부 모두가 바깥일을 해도 집안에서의 일은 주부의 영역이라고 역할을 나누고 구분 짓는다. 가사를 잘 못하는 여자도 있는데, 평가는 혹독하게 돌아온다.

50쌍의 부부를 집중 인터뷰하며 12년에 걸쳐 주부의 가사노동에 대해 연구한 알리 러셀 혹실드는 <돈 잘 버는 여자, 밥 잘하는 남자(The Second Shift)>에서 '모성보호와 자녀양육을 위한 사회적 배려와 제도적 뒷받침이 매우 부족한 우리 사회에서 일하는 엄마들이 취할 수 있는 선택지는 별로 없다'라고 말한다. '육아나 집안일에 참여하지 않는 대부분의 남자들은 자신의 아버지와 자신을 비교하며 집안에서 남자의 역할을 소극적으로 피력한다'고도 말한다. 

남편과 결혼하고 20년 정도는 일과 가사를 병행했다. 남편이 가부장적 사고를 강하게 내세우는 사람이 아니었음에도 나는 사회가 부여한 역할에 대한 마음의 부담을 한순간도 덜어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나이가 든 지금은 남편이 오히려 가사에 더 적극적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남편의 가사를 마냥 편하게 즐기지는 못한다.

더구나 요즈음 젊은이들은 직업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결혼 자체를 생각하지 않는다. 바깥일이 있는 사람들이 만나 집안일을 어떻게 해결해 나갈 것인가가 결혼하는 사람들의 큰 과제가 되기도 한다. 인터넷에는 '가사 분담 꿀팁'이라고 올라온 것도, '가사 분담 현명하게 하는 법'에 대한 지혜를 나누는 것도 많다. 또한 가사 분담으로 인한 문제가 이혼 사유가 될 수도 있다고 하니 가사 분담이 중요한 문제로 인식되고 있다는 뜻일 것이다. 

딸이 결혼할 나이가 되니 나의 지난 시간의 불편했던 상황을 딸은 이어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언젠가는 딸도 가정을 이루고 나름의 방식으로 살림을 할 것이라 생각한다. 그럼에도 딸의 음식 만들기는 천천히 조금씩 즐겁게 진행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갖는다. 매 끼니를 가족을 챙기기 위한 부담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원해서 했으면 좋겠다. 되도록 잘 갖춰진 주방에서 한다면 더 좋을 것 같다.

맛은 아주 훌륭하지는 않아도 스트레스가 아니었으면. 적당히 먹을 만하고 괜찮은 맛을 내는 것으로 족했으면 싶다. 부엌에서의 삶도 다른 곳에서의 삶과 균등하게 '1/n'로 나눠지길. 매일을 부엌 일에 매달리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깜짝 놀라 반길 만큼 아주 가끔 음식을 만들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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