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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해 온 인류가 봄부터 여름을 지나는 동안 전에 없던 대재앙을 겪고 있다. 전파 속도나 치사율은 말할 것도 없고 감염 확산의 가장 확실한 차단 방법인 예방 백신은 아직도 완성되지 못했다. 그러는 사이 사람들은 이전에 겪지 못한 수준으로 삶의 방식을 바꿀 것을 강요당하고 있다. 이제 소통은 하되 비대면은 표준이 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전례 없는 팬데믹에 봉착한 게 인류만은 아닌 것 같다. 거의 십몇 년 동안 성충이 되는 날만을 기다리며 한 줄기 빛도 없는 땅 속에서 유충 상태로 인고의 시간을 보내야만 하는 17년 주기매미도 팬데믹을 겪고 있다. 심지어 녀석들이 봉착한 고난은 엽기적이기까지 하다.

또 다른 팬데믹에 직면한 17년 주기매미

6월 말 건장마로 시작해서 7월을 건너 8월까지, 올해 장마는 그야말로 '길 장'(長) 자를 실감케 한다. 빤히 보이는 저 앞 동네에 해가 비치는데 내 주변엔 폭우가 내리는 등 국지성 집중 호우도 이젠 이상 기후로 보기 어려워졌다. 그만큼 여름의 풍경이 남달랐다.

장마와 국지성 호우로 인해 폭염은 고개를 내밀지 못하고 숨은 듯했고, 매미 또한 제대로 발생을 못한 건지 아니면 울음을 재촉하는 햇빛이 부족한 건지 그 맹렬함이 덜했다. 예년 같으면 7월을 지나면서 말매미와 참매미 소리가 도심을 뒤덮었을 텐데, 그러지 않은 채 여름이 지나가 버렸다.

하루 이틀 잠깐 열대야 현상이 기성을 부릴 때도 있었지만 번번이 태풍 앞에 기가 죽고 말았다. 장마시기 갓 태어난 매미의 신선개체들에게 폭우는 죽음의 문턱일 수밖에 없다. 우리들이 지금 코로나로 수난을 겪고 있듯이 이번 여름은 분명 매미에게 예년 같지 않은 수난의 계절이었을 거다.

우리 땅의 매미들이 비 때문에 힘들었다면 더 큰 수난을 겪고 있는 매미들도 있다. 우리 땅의 매미가 겪은 수난은 그래도 양반이었다. 북미에서 서식하는 17년 주기매미가 겪고 있는 팬데믹 얘기다. 뭔가에 감염되어 거의 죽었다고 할 수 있는 매미가 살아 돌아다니면서 멀쩡한 매미를 유혹해 짝짓기를 시도한다. 그러고 나면 멀쩡한 매미도 결국 같은 신세가 된다고 한다. 무슨 좀비 영화도 아니고, 이런 일이 자연계에 실제로 일어난다는 걸 믿을 수 있을까?  
 
비로 인해 부화하지 못하고 죽은 매미 유충 생태다큐멘터리 '매미, 여름 내내 무슨 일이 있었을까'(감독 박성호, 98분, 2011)
▲ 비로 인해 부화하지 못하고 죽은 매미 유충 생태다큐멘터리 "매미, 여름 내내 무슨 일이 있었을까"(감독 박성호, 98분, 2011)
ⓒ 박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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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미가 죽으면 사체는 인간처럼 화장되거나 무덤에 묻히는 게 아니므로 결국 나무에 붙어 있거나 바닥에 떨어져 나뒹굴게 된다. 죽음은 매미에게 모든 선택권을 앗아가지만 매미 사체는 누군가에겐 또 다른 선택지가 되기도 한다.

땅에 떨어지면 개미에게 분해 당하기도 하겠지만 나무 위 사체는 당연히 곰팡이에게 점령당하게 된다. 매미 사체가 개미와 곰팡이에겐 생명의 에너지가 된다. 간혹 곰팡이에게 점령당하기 전 나뭇가지에 점잖게 앉은 상태로 죽음을 맞이한 매미의 사체도 있긴 하지만 흔하지 않다. 땅에 떨어지든 나무에 매달려 있든 대부분의 매미 사체는 곰팡이나 다른 곤충들의 도움으로 자연으로 돌아간다.

그런데 어떤 못된 곰팡이에 점령당한 17년 주기매미는 죽어서 자연으로 돌아갈 권리마저 방해받는다. 살아 있는 상태에서 곰팡이 때문에 육신을 뺏기고, 그것도 모자라 몸속에 곰팡이를 싣고 다니면서 다른 매미를 현혹해서 같은 처지로 만들어 버리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 여기까지만 설명을 들어보면 공포의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인간들이 열광하는 '좀비'와 거의 유사하다.
 
푸른 곰팡이로 뒤덮인 매미 사체 생태다큐멘터리 '매미, 여름 내내 무슨 일이 있었을까'(감독 박성호, 98분, 2011) 중에서
▲ 푸른 곰팡이로 뒤덮인 매미 사체 생태다큐멘터리 "매미, 여름 내내 무슨 일이 있었을까"(감독 박성호, 98분, 2011) 중에서
ⓒ 박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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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년 매미를 좀비로 만드는 곰팡이 발견

올해 7월 국제 학술지인 '플로스 병원체(PLOS Pathogens)'에 좀비현상이 실재할 수 있음을 시사하는 논문이 실려 화제가 되고 있다. 논문의 제목은 '행동적 배신: 균류의 기생충들이 살아 있는 곤충들을 어떻게 그들의 명령을 따르도록 하는가'(Behavioral betrayal: How select fungal parasites enlist living insects to do their bidding). 한마디로 곰팡이가 곤충의 행동을 조종하는 메커니즘에 대한 연구이다.

기생 균류(菌類)인 '매소스포라(Massospora)'에 숙주인 매미 수컷이 감염되면 몸 속에 곰팡이가 생기면서 암컷의 짝짓기 행동을 흉내 내도록 조종해 포자를 퍼뜨린다는 내용이다. 정말 황당한 얘기인데, 동충하초처럼 곰팡이가 매미의 몸에서 자라고 그 곰팡이가 숙주인 매미를 조종한다는 얘기다.

매미는 일반적으로 수년 동안 땅속에서 유충으로 살다가 일제히 땅 위로 올라와 허물을 벗고 성충이 되고 수 주 동안 짝짓기를 해서 자손을 퍼뜨린다. 하지만 매소스포라에 감염되면 성충으로서의 녀석의 삶은 완전히 달라져 버린다. 동충하초는 죽은 매미의 몸을 탐하지만 매소스포라에게 매미는 숙주로서 할 일이 있기에 죽음마저 허용해 주지 않는다.

매소스포라에 매미가 감염되면 곰팡이가 생식기와 배를 먹어치우며 자라게 되고 나중에 매미 하복부엔 연필 지우개 모양으로 노란 포자로 채워진다. 매미는 그래도 죽지 않고 날아다니며 포자를 퍼뜨린다. 균류에 봉사하는, 죽어도 죽지 않는 일종의 좀비 매미가 실존하는 셈이다.
 
매소스포라라는 곰팡이에 감염된 17년 주기 매미 몸통의 아래쪽 절반이 곰팡이에 의해 사라져버린채 살아 있는 17년 주기 매미
▲ 매소스포라라는 곰팡이에 감염된 17년 주기 매미 몸통의 아래쪽 절반이 곰팡이에 의해 사라져버린채 살아 있는 17년 주기 매미
ⓒ Lovett et al.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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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 결과에 따르면 심지어 감염된 수컷이 수컷을 유혹하기 위해 암컷만이 하는 행위인 날개를 튕기기까지 한다고 한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감염된 수컷의 행동 때문에 건강한 수컷 매미들이 감염된 수컷을 암컷으로 착각하고 짝짓기를 시도하고 결국 포자에 감염되고 마는 것이다. 이런 과정을 거처 포자가 더 많은 매미에게 퍼지게 된다.

이 정도 되면 폭력적으로 정상인을 덮치고 아무 데나 물어뜯는 인간 좀비보다 훨씬 교묘하다. 대부분의 영화나 드라마에서 인간 좀비는 육안으로 식별이 가능한 경우가 많고 적어도 좀비가 되도록 인간을 유혹하지는 않으니 말이다.

처음엔 필자도 좀비 매미라고 표현하기엔 과하다고 여겼지만, 연구결과를 자세히 살펴보면서 이 대목에서 좀비 매미라는 표현이 과하지 않다는 쪽으로 생각이 바뀌었다. 연구진들은 감염된 매미를 주저 없이 '좀비 매미'라고 표현하고 있다. 

살아 있는 숙주를 조종하는 '활성숙주전염' 현상

자연계에 이렇게 전파를 위해 살아 있는 숙주를 이용하고 심지어 숙주를 균이나 바이러스의 이익에 부합하도록 조종하는 경우가 매미에게만 있는 건 아니다. 말총 벌레는 숙주인 귀뚜라미를 스스로 익사하도록 유도해, 자신이 물속에서 수명을 다할 수 있도록 한다고 한다.

이런 현상, 즉 병원균이나 바이러스 등이 성공적인 전염 혹은 전파를 위해 살아 있는 숙주를 적극적으로 전염 행위에 참여시키는 현상을 '활성 숙주 전염(Active Host Transmission)'이라고 한다. 심지어 연구자는 AHT를 병원체가 무력한 숙주의 행동을 조작하는 생물학적 인형극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AHT 형태의 기생충들은 심지어 살아 있는 숙주 내부에서 복잡한 생식구조를 개발하면 곤충의 기관이나 근육 및 외골격이 물리적으로 파괴되어 목적을 달성할 수 없기 때문에 곤충의 신체 기능을 자신의 목적달성이 가능할 수준까지만 점령한다고 한다.
 
배 부위가 사라지고 노란 곰팡이가 가득찬 17년 주기 매미 곰팡이 때문에 하반신이 사라진 상태에서도 17년 주기매미는 짝짓기를 시도한다고 한다
▲ 배 부위가 사라지고 노란 곰팡이가 가득찬 17년 주기 매미 곰팡이 때문에 하반신이 사라진 상태에서도 17년 주기매미는 짝짓기를 시도한다고 한다
ⓒ Lovett et al.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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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 매미의 경우 매소스포라는 매미의 복부가 부풀어 오르고 파괴되어 살점이 흘러내리는 경우에도 매미를 살아 움직이도록 하려고 내부 장기들의 기능은 유지시킨다고 한다. 인간 좀비의 경우 뇌가 더 이상 기능하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팔다리 등 운동신경 등이 살아 있는 것과 너무나도 흡사하다.

인간 좀비라는 것이 자연계의 실재하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생물학 관점에서 특성을 일반화하는 것은 힘들다. 좀비 매미 현상에서 매미가 자기 신체에 대한 주도권을 상실한 상태, 즉 몸은 죽은 거나 다름없는데 자신과 같은 좀비 상태를 같은 종족에게 퍼뜨린다는 점이 인간 좀비랑 아주 유사하다.

좀비 매미 현상은 심지어 요즘 좀비물들의 트렌드와도 유사하다. 최근 좀비물들이 좀비화의 원인을 대부분 바이러스 감염으로 설정하는 경우가 많은데 좀비 매미의 경우 바이러스 대신 곰팡이가 그 역할을 한다. 특이한 점은 이 매소스포라라는 균류는 일반적인 매미가 아니라 주기매미라고 하는 아주 특이한 종에게만 전염된다는 사실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블로그 '드가의 다큐멘터리 이야기', '매미, 여름 내내 무슨 일이 있었을까'와 동시에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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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료방송 채널에서 교양다큐멘터리를 주로 연출했, 1998년부터 다큐멘터리 웹진 '드가의 다큐멘터리 이야기'를 운영. 자연다큐멘터리 도시 매미에 대한 9년간의 관찰일기 '매미, 여름 내내 무슨 일이 있었을까' 2016년 공개, 동명의 논픽션 생태동화(2004,사계절출판사)도 출간. 현재 모 방송사에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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