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17 18:19최종 업데이트 20.09.17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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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G 도입 절차의 중단을 요구하고 나선 프랑스 시장들과 의원들 60여명의 의원들과 11개 시장들이 국민적 합의와 안전 문제를 확인하지 않은 채 진행하고 있는 모든 5G 관련 일정을 연구결과가 나올 때까지 유예할 것을 촉구했다. ⓒ Journal du dimanche 영상 캡처

 
프랑스가 5G 도입을 위한 본격적 절차를 앞두고 분열에 휩싸였다.  

새로운 기술의 도입으로 더 빨리지는 세상에 대한 저항은 언제나 있어왔으나 이번엔 조금 다른 양상이 전개될 전망이다. 지방선거에서 생태주의자들의 대승 이후 확인된 시민들의 급격한 변화가 전면에 나선 사람들의 어깨에 힘을 실어주기 때문이다. 이 또한 우리의 삶의 형태와 사고를 놀랍게 전환시키는 코로나 바이러스의 영향이다.  


지난 12일, 11개의 대도시(마르세이유, 리옹, 보르도 등) 시장들과 60여 명의 녹색당, 좌파정당 FI(굴종하지 않는 프랑스) 의원들은 5G 도입 절차를 유예할 것을 촉구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그들은 "그 어떤 실질적 필요성도 제기되지 않은 상태에서 정부는 프랑스가 경쟁에서 뒤처질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민주적 절차나 환경적, 보건적 영향에 대한 검토도 없이 5G 도입을 진행하려 한다 (…) 최근의 역사는 공중 보건의 영역에서 언제나 충분한 시민들의 경계심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강력히 입증해주고 있다"고 주장했다.

마크롱의 깜짝 선언과 조롱

녹색당이 압승을 거둔 지난 지방선거 이후, 코로나19 시기를 거치며 환경과 보건에 관한 뜨거운 시민적 관심을 확인한 녹색당과, 이들과 앞으로 공동전선을 펼칠 것으로 보이는 극좌정당 FI의 첫 번째 공동투쟁이기도 하다. 이들은 5G와 그것이 상징할 비대면 디지털 세상에 대해 과연 프랑스 사회의 합의가 이뤄졌는가에 대해 질문을 던지며, 2021년 초로 예정된 환경보건국가연구소의 '5G가 환경과 인간의 건강에 끼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 결과가 발표되기 전까지 모든 절차를 유예하고 국민 대토론을 진행할 것을 요구했다.

예정대로라면 9월 29일은 정부가 이동통신 업체들에게 주파수 배당을 위한 입찰을 시작하는 날이다. 그러나 6월 29일 대통령이 엘리제궁에서 맞이한 시민기후협약 속엔 "5G와 관련한 절차들을 연구 결과가 나올 때까지 보류한다"는 제안이 포함되어 있었다.

대통령은 150명의 시민들이 9개월간 모여 함께 논의하며 제안한 149개의 기후위기 관련 제안들을 3가지만 제외하고 전격 수용했고, 5G의 유예는 대통령이 제외한 3가지 중 하나가 아니었다. 마크롱이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는 상식적 대통령이었다면, 9월말로 예정된 주파수 입찰 일정은 취소되었어야 마땅했다.
 

2020년 6월 29일, 시민기후협약식 엘레제 궁에서 지방선거 다음날 열린 시민기후협약식이다. 마크롱 대통령은 이날 기후위기에 대처하는 149가지의 실천방안을 9개월 동안 만들어 제시한 150명의 시민들을 맞이하여 협약식을 가졌다. ⓒ palais Elysee


14일, 마크롱 대통령은 디지털업계 대표자들 앞에서 가진 연설에서 "프랑스는 5G시대로 가는 길을 열겠다"고 공식 선언한다. 불과 2개월 전 엘리제궁 뜰 안에서 자신이 맞이한 시민들과의 엄중한 약속은 깡그리 잊은 채. 여기서 그치지 않고, 5G 도입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Amish(현대문명을 거부하고 소박한 농경생활을 하는 미국의 종교집단)'에 비유하며 조롱하고, 5G를 둘러싼 모든 잘못된 생각들을 잘라버리겠다고 장담하기까지 했다.

마크롱의 이 같은 태도는 2030년까지 이산화탄소 배출을 40%까지 줄이기 위해 머리를 맞대며 묘안을 짜온 150명 시민들의 노력과 처음 실시된 숙의 민주주의 실험 결과를 스스로 내던진 행동이라는 비난을 피할 수 없게 만들었다.

'철도와 같은 노선이 있는 국내선 비행기 노선 폐지', '신규 공항 건설과 기존 공항의 시설 확대 금지', '기차표의 부가가치세 10%에서 5.5%로 인하' 등 일상 속에서 지켜나가야 할 기후와 환경오염 방지를 위한 나머지 조치들도, 과연 마크롱 정부가 존중하고 실천해 나갈 것인가에 당연한 의문이 제기되었다. 예정대로라면 이 모든 조항들은 9월부터 법제정 절차에 들어가야 한다.

마크롱의 깜짝 선언은 시민기후협약에 참여했던 150명 시민대표들은 물론, 곳곳에서 격한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그린피스 회원으로 이 협약 제정에 참여한 한 멤버는 "시민들을 이런저런 작업 그룹에 몰고 다니며 토론하게 하던 정부가 우리의 제안을 하나둘 지워버리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어 시민대표들은 이번 주 환경부에서 열리기로 예정되어 있던 항공기 운항, 플라스틱, 농업 관련 제안들에 대한 구체적 논의에 기업대표와 시민대표가 불균등하게 초대된 것을 지적하며 전면 보이코트 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환경부 장관과 보건부 장관도 마크롱 대통령에게 5G를 서두르지 말자는 의견을 피력한 상태다.

코로나 방역 실패와 6월 지방선거 패배 이후, 대국민 접촉을 대부분 총리에게 맡겨오던 마크롱의 화려한 컴백은 배신의 언어와 함께 시작된 셈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의 발언은 오히려 5G를 둘러싼 사회적 토론의 포문을 요란하게 열어젖히는 효과를 가져오기도 했다.

그들이 5G 시대를 거부하는 이유
 

"국회의 로빈훗" 이라는 별명을 가진 FI(France Insoumise 굴종하지 않는 프랑스)의 국회의원이자 저명한 진보 언론인, 프랑수아 뤼팡 ⓒ 위키커먼스

 
5G 논란의 최전선에 나선 사람은 FI의 의원 프랑수아 뤼팡이다. 그는 5G 도입절차의 유예와 함께 국민투표를 해법으로 제시한다.

'코로나가 강제했고, 디지털 기술의 확대가 더 확실하게 고착시킬 비대면 사회에 대해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우린 알지 못한다. 원한 적도, 선택한 적도 없는 디지털 기술이 인간의 접촉을 대신하는 세계로 강제진입 할 것인지, 인간들 사이의 접촉을 확대하는 사회로 나아갈 것인지 진지하게 토론해 보아야 한다'는 것이 그의 국민투표 제안 요지다. 투표를 앞두고 모두가 진지하게 스스로에게 묻고, 다양한 목소리를 전달하여, 어떤 미래와 어떤 삶을 우리가 원하는지에 대해 확인하고 명확히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오랫동안 테크놀로지의 진보는 인간의 진보로 여겨졌으나, 지금은 기술의 진보가 인간의 진보를 역행하는 경우들이 있음을 목격한다. 원자력발전, 플라스틱 남용, 농업에 광범위하게 동원된 화학비료들의 폐해가 그런 예이다. 과거에 공항, 터널, 고가도로의 건설 같은 건설프로젝트는 진보의 상징으로 여겨지며 어디서든 환영받았지만, 지금 그런 종류의 프로젝트는 주민들에 의해 '불필요' 한 것으로 간주되며 거부당한다. (…)

이전엔 부자들만이 아이폰 최신 모델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정작 실리콘 벨리에 있는 학교에서는 아이들에게 핸드폰을 금지한다. 머지 않아 부유층만이 인간들과 직접 마주하는 관계를 누리고, 나머지 사람들은 점점 더 오래 화면 앞에서만 인생을 보내게 될지 모른다.
 
기업들이 '경쟁력' 확보라는 이름으로 요구하는 기술의 진보를 무조건 따라가는 것이 결코 진정한 의미의 인간의 진보가 아닐 수 있음을 그는 환기한다. 5G가 보편화되면 인터넷에 연결된 기기의 70%가 감시카메라의 역할을 하게 될 수 있으며, 인류는 더 자주 사이버 공격에 시달릴 수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에너지 소비를 감축해야 하는 현시대의 가장 급박한 과제를 5G의 출현이 크게 방해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슬라보예 지젝이 말했듯 "권력이 우리에게 마련해 준 코로나바이러스의 자본주의를 그대로 수용해선 안 된다"는 생각을 뤼팡은 5G에 대한 저항을 통해 간접적으로 전하고 있다.

드론이 우리에게 음식물을 배달하고, 의사와는 비디오 화면을 보며 진료를 받는, 실리콘밸리가 우리에게 준비해 놓은 미래를 거부하기 위해 프랑스의 환경주의자들과 좌파들은 디지털의 진보에 제동을 걸었다. 이들의 도전은 성공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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