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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례가 없는 재난 속에서도 명절은 온다. 명절 즈음이면 어김없이 따라붙던 '민족의 대이동'이 올해는 예외다. 움직이고 모이면 위험하기 때문이다. 1년에 두 번 있는 가족상봉이 역병의 창궐로 무산된, 바야흐로 2020년 추석이다.  

평범한 시민이라면 1년에 두 번은 어떻게든 만나는 가족이지만, 의도치 않게 가족관계의 끈을 놓고 홈리스가 된 분들이 있다. '홈리스'는 광범위한 개념으로 주거취약계층에 있는 모든 사람을 말한다. 따라서 쪽방, 고시원, 여관, 여인숙, 시설 등에서 사는 사람도 포함된다. 그분들에게 역병과 함께 온 이번 명절은 어떻게 다를까. 다가올 추위는 어떻게 대비하고 있을까. 문득 궁금해서 길을 나섰다. 

서울역 13번 출구 앞에는 '드림씨티'라는 교회가 있다. 이곳은 노숙인을 위한 교회로 알려져 있다. 가을의 길목에 들어서니 해가 짧아졌다. 슬슬 어둠이 드리우는 서울역은 퇴근을 서두르는 시민들의 종종걸음으로 분주하다. 

드림씨티 대표인 우연식 목사님께 언질을 하고 교회를 찾았다. 17일 오후 7시, 저녁식사를 마치고 3층 숙소에서 쉬고 있는 분 중 세 분을 2층 휴게실에서 만났다. 
  
"홀로 지낸 지 10년, 남이나 마찬가지..."
  
드림씨티 2층에서 인터뷰하고 있는 우연식 목사(왼쪽)와 A씨
 드림씨티 2층에서 인터뷰하고 있는 우연식 목사(왼쪽)와 A씨
ⓒ 문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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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년생이에요. 오전 9시에 이곳에 와서 오후 6시쯤 집에 가요. 집이라고 해봤자 제 집은 아니고, 지인이 외국에 있는 동안 임시로 사는 곳이에요. 수입이 없으니 전기세를 못 내서 전기가 끊긴 지 오래됐고, 겨울에는 보일러를 안 트니까 냉방 상태로 지내요. 이렇게 지낸 지 벌써 10년이 됐어요.  

형제들이 있지만, 연락 안 한 지 오래돼서 남이나 마찬가지예요. 외롭긴 하지만 혼자 오랫동안 지내다 보니 이제는 습관이 돼서 잘 모르겠어요. 돈이 좀 있으면 집을 옮기고 정상적인 생활을 하고 싶죠. 그런데 제가 주민등록이 말소되어서 일을 못 하고 있어요. 주민등록을 살리려면 밀린 벌금을 내야 하는데 돈이 없으니 벌금을 못 내서 주민등록을 못 살렸어요. 혈압이 높아서 약을 먹고 있어요. 노숙인을 위한 무료 진료소가 있어요. 거기서 약 타서 먹어요."


오랜 시간 가족과 떨어져 지내다 보니 명절이 와도 무감각하다는 말은 진심이 아닐 것이다. 다른 곳도 아니고, 서울역 근처의 시설을 이용하는 분이면 명절 분위기가 더 피부로 와닿을 텐데 말이다. 연휴가 되면 거리가 한산하고 차도 많이 안 다닌다. 선물꾸러미를 들고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을 보면 가족들이 그리운 것은 당연한 마음일 터, 티를 내지 않을 뿐이다.

'드림씨티'의 우연식 목사는 한국의 구제선교기관에서 미국으로 파송돼 2005년부터 2010년까지 노숙인 사역을 하며 전도사로 일했다. 그 일이 계기가 되어 드림씨티를 만들었다. 지금은 코로나19 때문에 주일 예배를 못 드리지만 코로나19가 아니었을 때는 30평 공간에서 100여 명의 노숙인들이 예배를 드렸다. 이곳의 특징은 헌금을 받지 않는다는 점이고 교회의 성장은 중요하게 생각지 않는다는 것이다. 

드림씨티를 이용하는 방법은 두 가지다. 오전에 와서 오후에 나가는 방법과 숙식을 하며 계속 지내는 방법이다. 숙식하는 사람은 드림씨티의 회원이 되어야 한다. 회원의 조건은 술을 먹지 말아야 하고, 결핵 검사를 받아야 하며, 신분을 증명할 수 있는 증명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비회원은 1층을 이용하고 회원은 2, 3층을 이용할 수 있다. 2층은 간단히 식사를 할 수 있는 주방이 있고, 휴게공간으로 사용한다. 3층은 숙박공간이며 칸막이로 나뉘어 있고 1인용 매트리스가  깔려 있다. 

"가족 생각이 많이 났습니다"
 
허리수술을 한 후 후유증이 심해 일을 하지 못하는 B씨가 양갱 케이스를 접고 있다. 하루빨리 직장을 잡고 집을 구해 떳떳하게 사는 모습을 형에게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허리수술을 한 후 후유증이 심해 일을 하지 못하는 B씨가 양갱 케이스를 접고 있다. 하루빨리 직장을 잡고 집을 구해 떳떳하게 사는 모습을 형에게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 문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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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씨티에서 수년째 숙식하며 생활하고 있는 40대 남성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여기 온 지 7년 정도 돼요. 어머니,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셨어요. 형제는 삼형제고, 큰형이 저를 보살펴 주셨어요.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인연이 끊어졌어요. 사연이 있기는 한데 밝히기는 좀 그래요. 여러 가지 문제도 있었고. 처음에 이곳에 왔을 때는 가족 생각이 많이 났어요. 지금은 그렇지 않아요. 오래 있다 보니까 잊어버리게 돼요.

10년 전에 허리 디스크 수술을 했어요. 후유증이 있어서 몸이 좋지 않아요. 여기서 부업으로 양갱 담는 상자를 접고 있어요. 아침부터 저녁까지 1천 개 정도 접어요. 그러면 1만 5천 원 받아요. 부업해서 번 돈을 목사님께 맡기면 10% 이자를 쳐 줘요. 고마운 분이에요. 목사님이 잘해주셔서 여기서 나가고 싶다는 생각은 아직 없어요. 아무런 기반도 없이 나가서 살 생각을 하면 앞이 캄캄해요.

하지만 이곳에 계속 있을 수는 없죠. 아직 젊으니까 어떻게든 기반을 만들어서 나가야죠. 드림씨티는 교회지만 예배드리는 것을 강요하지 않아요. 코로나19가 빨리 지나갔으면 좋겠어요. 가끔 밖에 나가서 바람도 쐬고 했는데 요즘은 나갈 수가 없어서 너무 답답해요."


가족이 그립지만 만날 수 없다. 눈치가 보여서 연락하기도 쉽지 않다. 겉으로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하지만 얼마나 보고 싶을까. 하필 코로나19까지 겹쳐 답답한 실내를 벗어나 맑은 공기를 마시는 일도 쉽지 않다. 명절이 무슨 소용인가. 목사님이 아무리 잘해주신다 한들 가족만 할까. 혼자만의 공간에서 자유를 만끽하고 싶은 마음이 왜 없겠나.

"가족과 연락하며 지내지만 갈 수 없어"
  
드림씨티의 휴게공간. 회원이 되면 이곳을 이용할 수 있다. 회비는 없지만 오랜 노숙생활로 약속과 규칙에 익숙하지 않은 아저씨들은 쉽사리 회원되기를 택하지 않는다.
 드림씨티의 휴게공간. 회원이 되면 이곳을 이용할 수 있다. 회비는 없지만 오랜 노숙생활로 약속과 규칙에 익숙하지 않은 아저씨들은 쉽사리 회원되기를 택하지 않는다.
ⓒ 문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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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3층 숙소에서 다른 한 분이 내려오셨다. 아직 오후 8시가 안 돼 잠들기엔 이른 시각이지만, 쉬는 시간을 방해한 것 같아 미안했다.  

"저는 인천에서 태어났어요. 20대 초반에 친구와 사업을 계획했는데 친구가 사업자금을 가지고 도망가는 바람에 인생이 꼬였어요. 그래도 잘살아 보려고 했는데 마음먹은 대로 안 됐죠. 저도 모르게 노숙의 길로 빠졌어요. 24살 때부터 노숙을 했어요. 제가 지금 37살이니까  11년 동안 노숙을 한 거죠. 인천에서 노숙하다가 작년에 여기 왔어요. 여기 오면서부터 술도 안 먹고 담배도 끊었어요. 드림씨티의 회원이 되는 조건이 술 안 먹는 거니까요(웃음). 

2019년 12월에 나갔다가 올해 7월에 다시 들어왔어요. 밖에 나가서 혼자 살다 보니 우울증이 왔어요. 안 되겠다 싶어서 다시 들어온 거예요. 인천에 있을 때 노숙인 시설을 많이 옮겨 다녔어요. 종교시설은 입소자들에게 요구하는 게 많아요. 밥 한 끼 먹으려고 한 시간 동안 기도를 해야 한다든가, 밤잠 재워주면서 새벽기도에 무조건 참석하라든가 하는. 설교 시간도 길고요. 근데 드림씨티는 교회인데도 예배를 강요하지 않아요. 식사 시간이 정해져 있지만, 그때 안 먹으면 라면 끓여 먹으면 돼요. 먹고 나서 잘 치우면 돼요.  

저에게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은 직장을 잡는 일이에요. 우울증이 아직 다 안 나아서 당장 일하긴 힘들지만요. 코로나 때문에 밖에 나가지 못하니까 답답하긴 해요. 조금 더 몸과 마음을 추스르고 직장도 잡고 집도 구하고 정상적으로 살고 싶어요. 그때가 오면 결혼해서 가족 꾸리고 살고 싶어요. 

명절이 오면 가족 생각이 나죠. 그런데 지금은 말 못 할 사정이 있어서 부모님도 못 만나고 있어요. 가끔 연락은 해요. 명절이라고 특별한 것은 없어요. 후원하는 분들이 떡, 과일 등의 음식 보내오면 다 같이 나눠 먹고 하루를 보내는 거죠. 하루빨리 이 생활에서 벗어나고 싶어요."


삼십대 중반의 앳돼 보이는 청년의 아픈 과거 이야기를 듣자니 콧등이 시큰해졌다. 어느 누구도 인생이 꼬일 거라고는 예상하며 살지 않는다. 가끔 생기는 돌발변수가 발목을 잡는 게 문제다. 되돌리기엔 너무 멀리 와버린 걸까. 노숙이라는 '늪'에 빠져 배고픔에 시달린 청년은 우울증까지 겪어야 했다. 다시 살아보려고 안간힘을 내 드림씨티에 왔다. 그 앞에 놓인 역병이 원망스럽기만 하다. 
  
재난은 가난한 사람에게 더 가혹하다
   
서울역에서 노숙하는 아저씨들은 짐둘곳이 마땅치 않다. 드림씨티는 아저씨들의 짐을 잠시 보관해준다.
 서울역에서 노숙하는 아저씨들은 짐둘곳이 마땅치 않다. 드림씨티는 아저씨들의 짐을 잠시 보관해준다.
ⓒ 문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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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식 목사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내가 귀한 만큼 남도 귀하다, 상대방을 존중해야 나도 존중받는다'이다. 다른 건 몰라도 이 원칙을 꼭 지켜줄 것을 당부하며 쉼이 필요한 노숙인들과 함께하고 있다. 

"코로나19 때문에 3월부터 예배를 안 드리고 있어요. 정부 지원을 받는 노숙인 일시보호 시설은 위기대응 서비스를 해요. 임시 잠자리를 제공하고 아침이 되면 내보내죠. 저희는 그렇게 하지 않아요. 우울증이 있는 사람이나 마음에 상처가 있는 사람들에게 뭔가를 강요하면 더 힘들 수 있어요. 아프지 않은 분들에게 아무런 강요도 안 하는 것은 게으름을 유발할 수 있지만요. 장단점이 있다고 봐요. 

이곳은 교회지만 노숙인센터처럼 운영해요. 보통의 교회는 일주일에 한 번 주일 예배 볼 때만 쓰고 나머지 6일은 사용하지 않아요. 비싼 임대료 주고 건물을 빌렸는데 하루만 쓰면 아깝잖아요. 그래서 노숙인을 위한 공간으로 쓰고 있어요.

우리는 예배에 참석하시는 분이 거의 아저씨(홈리스)들이니까 헌금을 받지 않아요. 보통 노숙인 사역을 한다고 하면 먹고 자는 것만 생각하는데 저희는 그것뿐만 아니라, 이발도 해주고, 치약, 칫솔, 면도기도 주고, 지하에는 물건 보관해주는 곳도 있어요. 노숙인 시설도 아닌데 이런 서비스를 하는 것을 보고 신기하다고 생각하죠. 덕분에 후원해 주시는 분들이 생기고. 저는 그저 감사할 따름이에요. 

코로나19가 퍼지니까 급식이 끊겼어요. 저희는 회원이 아닌 분들께는 아침마다 빵을 드렸어요. 급식은 드림씨티 옆에 있는 서울시가 운영하는 '따스한채움터'에서 했고요. 지금은 자원봉사자들이 무섭다고 안 와요. 무료진료도 못 하고, 이발 서비스도 반으로 줄었고, 모든 서비스가 끊긴 상태예요. 그러니 안 그래도 외로운 분들이 얼마나 외롭겠어요. 추석이면 사람들이 찾아오고 선물도 주고 그랬는데."


재난은 가난한 사람에게 더 가혹하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한 날이다. 역병이 돌기 전 이맘때의 서울역 아저씨들은 한껏 들뜬 분위기였는데. 아직 본격적인 추위가 닥치기 전이라 삼삼오오 모여서 막걸리를 마시고 계실 텐데. 오늘은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이번 추석은 어디서 어떻게 보내고 계실까? 

태그:#코로나19, #노숙인, #서울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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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받고 소외된 사람들에게 관심이 있다. 인터뷰집, <사랑하고 있기 때문에>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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