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29 18:02최종 업데이트 20.09.30 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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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5월 6일 오하이오에서 열린 공화당 대선 주자 첫 TV토론회. 10명의 후보 중 정중앙에 선 도널드 트럼프 후보는 진행자가 가볍게 던진 첫 질문에 혼자 손을 번쩍 들었다.

"난, 경선 결과에 대한 승복을 약속할 수 없습니다."


첫 토론에 나선 대통령 후보자들에게 결과 승복을 묻는 당연한 질문에 트럼프 혼자 뜻밖의 대답을 한 것. 아홉 명의 후보들과 진행자 모두 당황한 빛이 역력했지만 객석에선 박장대소가 쏟아졌다. 그리고 2시간의 TV 토론은 트럼프의 원맨쇼로 진행됐다. 백악관을 배경으로 하는 엄청난 스케일의 리얼리티 쇼의 시작을 알리는 순간이었다. 

2015년 대선 출마 선언 때 트럼프는 말했다.

"나는 많은 놀라운 거래를 성사시켰습니다. 일찍이 어린 시절부터 사업을 시작한 나는 지금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사업망을 구축했습니다. 난 내 성공이 정말 자랑스럽습니다." 

시즌 14까지 이어진 리얼리티 TV쇼에서 성실하지 않은 지원자들을 가차 없이 '해고'하던 자수성가한 사업가 트럼프. 그에게 손뼉 치던 미국 국민들은 "성공한 사업가"를 대통령으로 선택한다. 그들은 부자가 되고 싶은 욕망을 투표로 실현하고자 했다. 

국가가 수익사업이었던 대통령?

9월 27일 일요일 <뉴욕타임스>(NYT)가 폭탄급 뉴스를 터뜨렸다. 베일에 가려졌던 트럼프 대통령의 세금 내역을 공개해 보도한 것. 억만장자라 자랑하던 트럼프가 최근 2년간 낸 세금은 겨우 $1500, 우리 돈 170만 원밖에 되지 않았다. 더 놀라운 건 그 전 10년간 한 푼의 세금도 내지 않았다는 것이다. 카지노 사업을 벌이던 2000년대 말엔 큰 손실을 입었다며 오히려 7200만 달러를 환급받았고 이로 인해 국세청 조사를 받는 중이었다. 

백악관 선임고문인 자신의 딸 회사에 컨설팅 비용 명목으로 거액의 비용을 지급한 사실도 포착됐다. 세금을 내지 않으려고 헤어와 분장 같은 개인 지출을 회사 비용으로 처리하는 등 탈세 혐의도 드러났다. 그동안 내세웠던 성공한 사업가, 억만장자란 타이틀 뒤에 4년 안에 상환해야 하는 개인 부채만 3억 달러가 넘는 초라한 장부가 있었던 것이다. 

그의 가장 큰 수입원 중 하나는 "넌 해고야"란 말을 유행시킨 NBC TV <어프렌티스> 라이선스 계약이었지만 그마저도 바닥이 드러나는 중이었다. 가족을 임원으로 회사에 등록하고 투자 목적의 부동산을 은퇴용으로 등재하는 등 다양한 탈세 방법도 사용하고 있었다. 

가장 큰 문제는 대통령 취임 후에도 사업에 손을 대고 있었다는 것. 자신이 소유한 휴양지에서 대규모 행사를 유치하거나 경호원들과 스태프들을 묵게 해 수익을 낸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거기에 독재자라 불리는 지도자가 있는 터키나 필리핀 같은 나라들과 한 거래도 드러났다. NYT는 플로리다에 있는 트럼프 리조트와 워싱턴에 있는 트럼프 호텔 등에서 경제단체와 복음주의 기독교협회들의 행사가 증가한 자료를 제시했다. 

4년 전 선거 때 유출된 세금 신고서 금액을 포함해 이번에 공개된 자료까지 하면 트럼프는 총 20억 달러의 손실을 입고 있는 초라한 사업가였던 것이다. 

TV쇼가 만든 '자수성가 사업가'

CNN은 NYT가 공개한 '트럼프 회사'에 대한 핵심사항을 9가지로 분류했다.  

- 트럼프는 수년간 연방 소득세를 전혀 또는 거의 내지 않았다.
- 그의 많은 사업체들은 엄청난 손실을 입고 있다. 
- 뉴욕의 트럼프 타워가 그의 주요 돈벌이다.
- 워싱턴 D.C. 트럼프 호텔은 큰 손해가 나고 있다. 
- TRUMP 브랜드 사업은 그의 사업에서 가장 성공한 부분이다. 
- '어프렌티스' TV 시리즈는 트럼프에게 돈과 명성을 줬다.
- 대통령이 된 후 외국과의 거래로 돈을 벌었다. 
- 트럼프 수입 중 일부는 모호한 '컨설팅 비용'에서 비롯됐다. 
- 트럼프 조직은 '500개 이상 법인'에 걸쳐 있다. 
 

도널드 트럼프가 출연한 NBC 리얼리티쇼 어프렌티스 ⓒ NBC

 
리얼리티 TV 쇼로 큰 인기를 얻었지만 실제 사업 능력은 형편 없어 거의 모든 사업에서 엄청난 손실을 입은 상태. 여러 수법을 동원해 탈세하던 와중에 대통령이 됐고, 대통령이 되어서도 사업에 손을 놓지 않았다는 것. 수백 개의 사업체를 통한 세금 탈루 특종을 한 NYT는 TV 쇼 <어프렌티스>에서 보여준 성공한 사업가의 모습은 훌륭한 "연기"였다고 결론짓는다. 

"난 다른 사람들처럼 세액 공제를 받을 자격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수백만 달러의 세금을 냈습니다." 

NYT 보도 다음 날 트럼프는 트윗에서 자신은 성실한 납세자였다고 강조했다. 그는 자신의 자산이 빚보다 훨씬 많고 대통령 월급도 받지 않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워싱턴 포스트>는 트럼프 대통령이 2016년 대선 토론회에서 연방소득세를 내지 않은 것에 대해 "똑똑하다"라고 자랑한 것을 상기시킨다. 트럼프 대통령은 다른 대선 후보들과 달리 자신의 세금 신고서 공개를 거부해 왔다. 오랜 기간 트럼프 대통령의 해결사 역할을 했던 마이클 코헨 변호사도 NYT의 보도를 인정했다.  

"그의 가장 큰 두려움은... 엄청난 세금 청구서와 사기에 대한 벌금입니다. 세금 사기로 그는 끝장날 겁니다." 

감옥이냐 재선이냐의 기로

"글쎄... 어떻게 될지 지켜보자고..."

지난 13일 백악관 브리핑 룸, 11월 대선에서 패배할 경우 평화적 정권 교체를 약속하겠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트럼프 대통령은 말을 얼버무렸다. 그리고 되물었다.

"모두 (문제가 있는 걸) 알잖아..."

트럼프 대통령이 계속해서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우편 투표다. 2016년 미국 대선에선 유권자의 1/4이 우편 투표를 했다. 올해는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영향으로 더 많은 사람이 우편으로 자신의 표를 발송할 예정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누군가의 거실에서 수천 명의 사람들이 앉아 투표 용지에 서명한다'라고 말하며 자신의 지지자에게 우편 투표와 기표소 투표를 두 번씩 할 것을 권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우편 투표에 대한 대통령의 이런 불신이 '선거 결과 불복'으로 이어지리라는 우려가 나온다. 미리 선거 불복에 대한 논거를 마련하고 있다는 것이다.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대법관 사망 후 바로 새 대법관을 선정한 것도 같은 차원이란 분석이다. 11월 대선의 표차가 크지 않을 때 대법원의 힘을 빌릴 수 있다는 계산인 것이다. 2000년 대선 당시 플로리다에서 부시와 고어가 537표 차로 각축전을 벌일 때 재검표를 중지시킨 대법원의 판결처럼 말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이 마크 밀리 합동참모의장과 귓속말을 주고받고 있다. ⓒ AFP=연합

 
트럼프 대통령은 25일 버지니아에서 그를 보러 온 군중들에게 얘기했다. 

"우리는 그들이 나라를 속임수로 위태롭게 하도록 놔두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은 우리나라를 파괴할 것이고 우리는 내버려 둘 수 없습니다... 민주당은 앞으로 일어날 일을 우리보다 잘 알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분위기 탓에 CNN의 애널리스트 존 블레이크는 '모두를 놀라게 할 선거 시나리오'란 글에서 무장한 흑인과 무장한 백인 우월주의자들의 충돌을 가장 두려운 시나리오라 적었다.

민주주의 본산이라 생각했던 미국의 11월 대선은 쿠데타와 선거 불복과 거리 총격전 같은 종말론적 단어들로 뒤섞여 있다. 국세청의 감사를 받는 빚 많은 대통령은 혐오와 불신의 단어로 지지자들을 긴장하게 하고 있다. 무장봉기, 선거 불복, 쿠데타 같은 말들이 불꽃을 튀기고 있다. 선거를 앞두고 미국에서 이런 말을 들을 줄은 정말 꿈에도 생각 못했다. 미국 대선은 지금 이렇게 치러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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