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2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20 KBO리그 SK-LG 경기. SK 선발 박종훈이 역투하고 있다.

지난달 22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20 KBO리그 SK-LG 경기. SK 선발 박종훈이 역투하고 있다. ⓒ 연합뉴스

 
SK가 순위 경쟁으로 갈 길이 바쁜 키움의 덜미를 잡고 4연패에서 탈출했다.

박경완 감독대행이 이끄는 SK 와이번스는 3일 인천 SK 행복드림구장에서 열린 2020 신한은행 SOL KBO리그 키움 히어로즈와의 홈경기에서 홈런 1방을 포함해 장단 13안타를 터트리며 9-3으로 승리했다. 최하위 한화 이글스에게 반 경기 차이로 추격을 허용했던 SK는 이날 한화가 롯데 자이언츠에게 0-10으로 완패하며 한화와의 승차를 1.5경기로 벌리고 한숨을 돌렸다(41승1무83패).

SK는 1-1로 맞선 5회 1타점 2루타를 때린 최지훈이 결승타의 주인공이 된 가운데 유격수 박성한이 3안타, 김경호, 제이미 로맥, 오준혁이 나란히 멀티히트를 기록하며 공격을 이끌었다. 마운드에서는 올 시즌 SK 선발진에서 처음으로 두 자리 승수를 올린 투수가 탄생했다. 작년 시즌 8승에 그쳤다가 올해 다시 커리어 세 번째 두 자리 승수를 기록한 SK의 잠수함 투수 박종훈이 그 주인공이다.

1990년대까지 낯설지 않았던 잠수함 선발 투수들

지금이야 잠수함 투수들이 대부분 불펜에서 활약하고 있고 잠수함 선발 투수는 최원준(두산 베어스)과 한현희(키움) 등 손에 꼽을 수 있을 만큼 적다. 하지만 KBO리그 출범 초기만 해도 한 팀에 한 명 이상의 잠수함 선발 투수가 있었을 정도로 잠수함 선발투수는 지금처럼 부족하지 않았다. 실제로 선발 투수로 활약하며 통산 60승 이상을 따낸 잠수함 투수가 7~8명에 달할 정도.

KBO리그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업적을 쌓은 잠수함 투수는 역시 올 시즌 kt 위즈를 창단 첫 포스트시즌으로 이끌기 위해 매 경기 총력전을 펼치고 있는 이강철 감독이다. 1989년 해태 타이거즈에서 현역 생활을 시작한 이강철 감독은 데뷔하자마자 4년 연속 15승 이상을 기록하는 등 1998년까지 무려 10년 연속 두 자리 승수를 기록했다. 이강철 감독이 현역시절 기록한 통산 152승은 KBO리그 역대 최다승 3위 기록으로 남아 있다.

한국시리즈에서 OB 베어스, 롯데 자이언츠, 해태, LG 트윈스 등에게 번번이 덜미를 잡히던 '영원한 2인자' 시절의 삼성 라이온즈를 응원했던 팬이라면 '원조 라이언킹' 박충식을 잊지 못한다. 1993년 한국시리즈 3차전에서 문희수-선동열-송유석으로 이어지는 해태의 에이스 3인방을 상대로 15이닝 181구 완투를 한 장면은 아직도 삼성팬들에겐 진한 감동으로 남아 있다. 박충식은 2002년 KIA에서 은퇴할 때까지 통산 4번이나 두 자리 승수를 따냈다.

대구 야구팬들에게 박충식이라는 영웅이 있었다면 인천 야구팬들의 기억 속에는 박정현이라는 걸출한 잠수함 투수가 있었다. 박정현은 김성근 감독을 만난 1989년 19승10패 2세이브 평균자책점 2.15를 기록하며 '만년 약체' 태평양 돌핀스를 정규리그 3위로 이끌었다. 하지만 1992년까지 4년 연속 두 자리 승수를 기록하던 박정현은 이후 7년 동안 10승을 추가하는데 그치며 만 31세라는 비교적 이른 나이에 현역 생활을 마감했다.

1990년대 중·후반에는 쌍방울 레이더스의 돌풍을 주도한 잠수함 에이스 성영재(광주일고 감독)가 있었다. 약한 팀 전력 때문에 데뷔 후 3년 연속 두 자리 수 패배를 기록하던 성영재는 쌍방울이 정규리그 2위를 차지했던 1996년 24경기에서 3번의 완봉승을 포함해 10승 5패 2.37의 성적으로 평균자책점 4위에 올랐다. 팀 해체 직전까지 쌍방울을 지킨 성영재는 해태, KIA, LG에서 선수생활을 이어가다가 2004년을 끝으로 유니폼을 벗었다.

흔치 않은 잠수함 선발 계보 잇고 있는 '공주벌'

최근에도 '여왕벌' 정대현을 비롯해 한현희, 심창민, 우규민(이상 삼성), 오현택(롯데), 김성배 등 뛰어난 잠수함 투수들은 많이 있었고 지금도 꾸준히 등장하고 있다. 하지만 박종훈처럼 입단 초기부터 꾸준히 선발투수로 활약하며 성과를 올리고 있는 잠수함 투수는 결코 흔치 않다. LG 시절 3년 연속 10승을 기록한 우규민은 2018년부터 다시 전문 불펜투수로 변신했고 한현희는 붙박이 선발로 활약하지 못하고 선발과 불펜을 오가고 있다.

2015년 6승, 2016년 8승을 기록하며 점점 '선발투수다운' 성적을 올리기 시작한 박종훈은 풀타임 선발투수가 된 지 3년째가 된 2017년 12승 7패 4.10을 기록하며 데뷔 후 처음으로 두 자리 승수를 올렸다. 그리고 SK가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2018년에는 14승 8패 4.18로 또 한 번 생애 최고의 성적을 올렸다. 수술 후 이닝제한을 받았던 에이스 김광현(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대신 팀 내 최다승 투수로 우뚝 선 것이다.

하지만 박종훈은 작년 시즌 데뷔 후 가장 좋은 3.88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하고도 시즌 8승에 그치며 우규민 이후 잠수함 투수 3년 연속 10승 기록 달성이 좌절됐다. 특히 시즌 마지막 9번의 선발 등판에서 1승 7패 5.82로 부진했던 게 치명적이었다. 박종훈은 그 해 가을야구에서도 선발 로테이션에 포함되지 못한 채 불펜으로만 한 경기에 등판해 1이닝 무실점을 기록했다.

SK는 올 시즌 '창단 후 최악'이라도 불러도 좋을 만큼 심각한 부진에 빠져 있다. 하지만 개막 3번째 경기부터 등판한 박종훈은 SK가 124번째 경기를 치를 때까지 단 한 번도 로테이션을 거르지 않고 꾸준히 선발 한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리고 박종훈은 올 시즌 25번째 선발 등판 경기였던 3일 키움전에서 5이닝 동안 4피안타 6사사구를 기록하고도 실점을 1점으로 억제하면서 소중한 시즌 10번째 승리를 따냈다. 

통산 59승째를 수확한 박종훈은 58승의 성영재를 제치고 역대 잠수함 최다 승수 단독 10위에 올랐다. 이강철(152승)과 임창용(130승)까지는 아직 한참 멀게 느껴지지만 만29세에 불과한 박종훈의 나이를 고려하면 잠수함 다승 3위 한희민(80승)까지는 멀지 않은 시간 안에 도달할 수 있을 전망이다. 롯데의 신본기, 삼성의 김상수 등과 함께 팬서비스가 좋은 선수로 유명한 박종훈이 잠수함의 전설들을 향해 느리지만 천천히 걸음을 옮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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