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일본 총리관저앞에서 일본학술회의 회원 임명 거부에 항의하는 시민들.
 일본 총리관저앞에서 일본학술회의 회원 임명 거부에 항의하는 시민들.
ⓒ 아사히신문 캡처

관련사진보기

  
[기사 보강 : 5일 오후 6시 23분]

지난달 출범한 일본의 스가 요시히데 정권이 때아닌 '학문의 전쟁'을 벌이고 있다. 최근 일본학술회의 새 회원 6명의 임명을 스가 총리가 뚜렷한 이유도 없이 거부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일본학술회의가 추천한 인사의 임명을 총리가 거부한 사례가 없기 때문에 학계와 정치권에서는 '학문에 대한 탄압'으로 규정하고 강력 반발하고 있다.

"명백한 위법행위, 총리가 해명해야" 단단히 벼르는 야당

일본 제1야당인 입헌민주당 에다노 유키오 대표는 5일 임명 거부에 대해 "명확한 위법행위"라고 규정짓고, "이렇게 큰일을 저질러놓고 무책임하게 도망가지는 않을 것으로 기대한다"며 "스가 총리가 국회에 나와 경위를 설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입헌민주당, 공산당, 국민민주당, 사민당 등 일본 야4당도 같은날 오는 7일부터 열리는 중의원(하원) 회의에 가토 요시노부 관방장관을 출석시켜 질의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여당 자민당도 "관심이 매우 많은 사안이므로, 책임있는 답변을 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며 야당의 요구에 응할 것을 검토하고 있다.

학계의 반발은 더욱 거세다. 일본학술회의는 '학문의 자유'에 대한 침해로 간주한 뒤 내각부에 "추천한 후보자들이 임명되지 않은 이유를 설명하고, 임명되지 않은 후보들은 신속히 임명할 것"을 요청하는 메일을 보냈다.

연구자 약 4천명이 소속된 일본과학자회의는 "연구자의 위기는 일본의 장래를 위태롭게 할 수 있다"며 "정부의 개입을 철회하라"는 담화를 발표했다. 사립대학 교원 등으로 구성된 '일본사대교련중앙집행위원회'도 "학술회의는 결코 권력자의 것이 아니다"고 비판하는 성명을 냈다.

지난 3일 총리 관저 앞에서는 학계인사와 시민 수백명이 참가하는 항의 시위가 벌어지기도 했다. 시위를 조직한 고하라 다카하루 와세대대 교수는 "학문의 미래에 관한 문제"라며 "학자인 우리들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며 항의했다.

진보계 언론들도 가세했다. 특히 아사히신문은 3일자 '학술회의 인사는 학문의 자유를 위협하는 폭거'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인사를 통해서 관료사회를 억압해온 전 정권의 수법은 '손타쿠(알아서 기기)'를 만연케 했다"며 "그 화살이 이제 연구자들에게도 향해져오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 신문은 또 이날 오전 스가 총리가 시내 식당에서 기자들을 불러 연 비공개 간담회에 참석하지 않고 정식 기자회견을 요청하는 등 정부 대응에 불만을 표하기도 했다.

'학자들의 국회'... 추천 회원 거부된 사례 없어
  
기자회견에서 답하고 있는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
 기자회견에서 답하고 있는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2차대전 당시 과학이 전쟁에 협력한 것을 반성하기 위한 목적으로 1949년 설립된 일본학술회의는 '학자들의 국회'라고 불릴 만큼 일본 학계를 대표하는 모임이다.

이 모임은 모두 210명의 저명한 학자들로 구성되는데 임기는 6년이며, 3년에 한번씩 회원 절반을 교체한다.

회의는 지난 8월 31일 회원의 절반에 해당하는 105명의 새 회원 명부를 총리실에 제출했다. 그런데 다음달 28일 정부로부터 통보받은 임명자 명단에 이중 6명의 이름이 빠져있었던 것.

지금까지 회의가 추천한 인사가 임명되지 못한 것은 처음이다. 법률상 임명권자는 총리이지만, 학문의 자유를 인정하는 선에서 회의의 추천권을 그대로 임명해왔기 때문이다.

회의는 즉각 이의를 제기했지만 정부로부터는 "임명하지 않는 이유는 말할 수 없다"는 답변만 나왔다. 정부대변인 가토 가츠노부 관방장관도 "회원의 인사를 통해 일정한 감독권을 행사하는 것은 법률상 가능하며, '곧바로' 학문의 자유 침해로 이어지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임명 탈락자 대부분 정부정책 반대해온 인물

정부는 임명 거부의 이유를 설명하지 않고 있지만, 탈락자 명단을 보면 대부분 정부 정책에 반대하거나 이의를 제기해온 사람들이다.

대표적으로 마쓰미야 다카아키 리쓰메이칸대 교수(형사법학)는 국회에 나가 '공모죄는 필요없다'고 말했으며, 오자와 류이치 도쿄지케이카이 의대 교수도 역시 국회에서 안보관련법안에 대해 '국가존립위기 사태의 정의가 애매하다'며 반대했다.

다른 4명의 교수들도 모두 아베 정권이 추진했던 안보법제나 공모죄 신설에 반대의견을 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5일 발표된 일본 방송 JNN의 여론조사에서 스가 내각 지지율이 70.7%로 고공행진을 계속하고 있는 가운데, 스가 총리가 일본학술회의 새 회원 6명의 임명을 거부한 데 대해서는 51%가 '타당하지 않다'고 답했다.

관방장관 시절 입맛에 맞지 않는 관료를 인사를 통해 철저히 배제해 '손타쿠'라는 말까지 만들어낸 스가 총리가 '학문과의 전쟁'에서 새로운 시험대에 섰다.

태그:#일본학술회의, #스가총리, #스가정권, #학문, #학문의자유
댓글3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