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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더유니온 인터뷰 기획 '나는 배달노동자'는 인권재단사람 정기공모사업 '2020 인권프로젝트-온'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구술작가 2명이 10대~50대 라이더 5명을 인터뷰해 정리한 글을 정기적으로 연재할 예정입니다.[편집자말]
(* 이병환씨 이야기 2편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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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쑥날쑥 수수료... "'배민' 장난질에 놀아난다 싶죠" 

보이지 않는 비용

플랫폼은 다양한 방식으로 노동자를 실험한다. 가장 최대의 이익을 낼 조건을 찾기 위해서다. 이윤을 추구하는 게 기업이니 틀린 말이 아닌 것처럼 들린다. 아니다. 틀렸다. 플랫폼이 AI를 통해 움직이는 건 '사람'이다. 인간다운 조건 속에서 노동해야 하는 사람이다. 플랫폼은 사용자와 노동자라는 이름을 온갖 현란한 말들로 바꿔치기하면서 그들이 마땅히 져야 할 의무를 슬그머니 노동자와 고객에게 떠밀었다.

"앱이 6번 정도 바뀐 거 같아요. 그럴 때마다 우리는 일에 타격이 있죠. 예전에는 시스템이 고장 나서 2~3시간 일 못 한 적도 많았고, 콜 안 보여서 못한 적도 많았고. 그거 다 보상해주지 않아요. 그런 일이 반복되고 짜증 나면 라이더들이 스스로 떠나는 경우도 많고. 회사는 앱을 개발하면 자기 자산이 되는 거잖아요. 안 좋은 거 보완하는 과정을 자기네들이 감당해야지 왜 우리가 하냐고요. 자기들 말대로면 우린 개인사업자잖아요."

배민은 라이더가 자율적으로 콜을 선택할 수 있는 시스템에서 AI가 배차를 넣어주는 방식으로 전환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악화된 것 중 하나가 라이더와 손님과의 관계다.

"라이더는 욕받이예요. 내가 잘했든 못했든 나는 욕을 먹어요. 왜냐면 손님은 고객센터에 통화가 안 되니까 배달 간 사람한테 뭐라고 한다고요. 내가 거기서 화가 나서 손님이랑 붙잖아요? 계약해지예요. 손님이 잘못했어도. 회사는 고객 소리를 먼저 들어요. 우리 얘기는 듣지도 않고 일단은 고객한테 사과하라는 식이에요.

한번은 고객이 음식을 주문했는데 콜이 늦게 빠져서 음식이 늦은 적이 있어요. 근데 저는 이 오더 잡고 음식점에서 픽업해서 배달하는데 5분밖에 안 걸린 거예요. 그 손님 입장에서는 한 시간이 넘었으니까 화가 난 거죠. 그럴 때 쌍욕 듣는 일이 많아요. 음식을 집어 던지는 경우도 있고. 하물며 그때 나는 손님한테 아무 말도 안 했어요.

늦었으니까 그냥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하고 왔는데도 그 손님이 고객센터에 내가 욕을 하고 겁을 줬다고 말한 거예요. 사무실에서 들어오라고 하더라고요. 그나마 다행인 거는 제가 이런 일을 대비해서 음성녹음을 했던 게 있었어요. 이게 없었으면 졸지에 내가 욕한 놈이 되는 거예요. 이런 경우로 해지된 애들도 있어요.

웃긴 거는 배민이 AI를 쓰면서 라이더들은 이 콜이 얼마나 오래된 건지 모르게 됐어요. 옛날에 우리가 스스로 찍는 콜들은 찍어보면 얼마 됐는지가 보였거든요. 오래된 콜이면 그걸 먼저 처리하고 갈 수도 있거든요. 1분이라도 빨리.

예전에는 안 좋은 콜이 오래 떠다니면 관제에서 라이더에게 연락해서 빼야 했어요. 예전에는 회사에 그런 콜만 처리하는 직원들이 별도로 있었거든요. 그 사람들이 하던, 아니면 방향 맞는 라이더에게 연락해서 양해를 구하는 식이었는데, 이제 그거 하기 귀찮으니까 프로그램에다가 몰래 쑤셔 넣는 거죠. 편하니까. 예전에서 관제에서 사람이 컨트롤을 했다면 이제 그 인건비가 줄었죠.

더 웃긴 게 요즘엔 배민에 GPS 시스템이 있잖아요. 고객한테 라이더가 움직이는 게 실시간으로 보인단 말이에요. AI 배차는 주는 대로 움직이잖아요. 배달 순서를 정해놨어요. 내가 마음대로 갈 수 있으면 늦은 콜 먼저 처리하는 게 정상인데, 이게 꼴번이 되는 거예요. 주문한 지 오래된 고객은 더 열 받는 거야. 물건을 가지고 돌아다니면서 온다는 거지. 라이더 위치를 노출하는 의미가 없어요."


몸이 무너질 때
 
이병환 조합원.
 이병환 조합원.
ⓒ 라이더유니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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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환은 올해로 마흔넷이다. 배달대행 일을 시작하면서, 가족과 떨어져 강남 쪽에 방을 얻어 혼자 생활하고 있다. 40대 중반이 되면서 그에게 또 다른 고민이 생겼다.

"작년하고 올해하고 몸 상태가 달라요. 작년까지는 12시간씩 일해도 견딜 만 했거든요. 아침에 일어날 때 다리가 좀 아프긴 했지만, 일하면 풀렸어요. 올해 딱 접어들면서는 체력이 안 받쳐줘요. 이 피로가 계속 누적돼요. 정신도 몽롱하고. 요즘 같은 여름에는 더.

작년까지만 해도 6층~7층 정도는 제가 엘리베이터 안 탔거든요. 엘리베이터가 1층에 있다면 몰라도 꼭대기 층이나 중간 층에 있으면 걸어가는 게 더 빨랐어요. 근데 요즘은 3층도 엘리베이터 타고 싶은 거예요. 무릎이 너무 아파가지고. 하루 12시간 근무하고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면 다리가 부어 있어요. 항상. 너무 아파요."


요즘은 새벽에 깨는 일이 잦아졌다. 두통 때문이다.

"신경 쓰면 찌르듯이 아프더라고요. 병원에선 단순 두통이라고 해요. 스트레스성이라고. 우리는 헬멧을 쓰니까 척추에 원인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헬멧이 한 2킬로 정도 해요. 이걸 쓰고만 있어도 힘든데 바람을 맞으면서 버텨야 하잖아요. 근육이 긴장되니까 머리가 아픈 거죠. 약을 달고 살아요. 이게 산업재해로 들어가는 건지 안 들어가는 건지 모르겠더라고요."

체력은 떨어졌지만, 근무 조건은 더 나빠졌다. 작년과 비교해 올해 주행거리가 배로 늘었다.

"왜냐면 배민이 좀 이상한 시스템을 만들어놨거든요. 예전에는 배달 거리가 가까웠어요. 콜 올라오는 걸 보고 가까운 것만 잡아서 움직였으니까. 요즘에는 그런 걸 못 하게 만들어놨어요. '배민 커넥터'라는 걸 만들어서 근거리는 우선 배차를 줘버렸어요. '라이더스'는 기본적으로 1.5km 이상 되는 콜만 보여요. 제 운행 거리가 요즘에는 10시간 기준 잡으면 평균적으로 200km 이상 타요. 많은 날은 300km 이상 되더라고요."

서울시청에서 부산시청까지 자동차로 395km다. 200km는 상당한 거리다. 같은 거리라도 고속도로를 쭉 달리는 것과 복잡한 도로를 따라 달리며 수시로 멈추고 출발하기를 반복하는 것은 피로도의 차이가 있다.

"운전에만 집중하는 게 아니에요. 오더 잡는 데도 집중해야 되고. 배달 시간, 도로 상황, 사각지대나 여러 가지 위험 상황 등 모든 걸 신경을 쓰면서 가야 돼요. 눈도 이 일 하면서 많이 나빠진 거예요."

몸이 밑천인데 몸을 혹사하는 방식으로 일한다. 피로한 몸을 돌볼 시간조차 없다.

"일 끝나면 피곤하니까 자기 바빠요. 그냥 자고 일하고 자고 일하고 반복이에요."

이병환은 묻고 싶다. 체력이 쇠하는 게 그저 내 나이 탓만일까. 그 말이 누군가의 책임을 지워버리고 있지는 않은가.

앞으로 계속 떨어질 체력과 속도를 만회하려면 일을 길게 하는 수밖에 없다. 노동은 더 가혹해질 것이다. 그마저도 눈이 나쁜 이병환에겐 쉬운 선택지가 아니다. 어두워지면 시야가 흐려지기 때문이다. 더 큰 위험을 안고 일해야 한다. 길게 일할 수 없다면 수입은 줄어들 것이다. 불안은 복합적으로 커진다.

"전 원래 직업군인이 되고 싶었어요. 어릴 때 우연히 시내에 가다가 군인들끼리 싸움이 붙은 걸 봤어요. 이쪽은 셋이고 저쪽은 여덟아홉 명 되는데, 세 명 쪽이 이기더라고(웃음). 물어봤더니 해병대래요. 군복도 멋있었어요. 우와. 나도 해병대를 가야겠다. 어렸을 때부터 운동도 조금 했으니까 자신 있게 지원했죠. 8주 훈련을 받는데, 훈련받기 전에 2.0이던 눈이 훈련 끝나고 나니까 0.5로 확 떨어진 거예요. 이유는 모르겠어요. 그래서 재검사를 받고 육군으로 간 거예요. 그때부터 틀어졌죠.

그 뒤에는 딱히 꿈이랄 게 없었어요. 가정이 그렇게 부유하지 않아서 돈을 목표로 달렸어요. 먹고 사는 거에 지장이 없는 삶만 생각했죠. 그렇다고 뭐 엄청난 부자가 되겠다는 생각도 가져본 적 없어요. 그냥 남들한테 손 안 벌리고 사는 정도?

지금은 꿈을 갖기 애매해요. 수입도 불규칙하고 위험을 안고 살잖아요. 오늘 멀쩡하다가도 다음날 재수 없어서 사고 나면 불안해지고, 계획이 틀어지고. 오늘 하루 안전해야 다음이 있으니까, 그냥 그 '하루'가 꿈인 거예요. 하루만 안전하자. 하루만 안전하게, 내가 벌고 싶은 만큼만 벌자."


이병환은 전업 라이더가 된 뒤 제대로 여행을 해본 기억이 없다.

"보통 배민이 주말에 일을 시켰어요. 주말이 바쁘니까. 계약서상에도 주말 포함 6일을 쓰도록 유도했죠. 나는 월차나 연차가 없잖아요. 내가 일주일 여행을 가자고 치면, 그 전달 하루도 안 쉬고 일을 해야 돼요. 어디 멀리 놀러 가는 게 솔직히 겁이 났죠. 일주일 놀고 그다음에 그만큼 일이 없으면 어떡해요? 알 수가 없잖아요."

한동안 여행이라는 걸 못 가다가 작년에 딱 한 번 갔다. 어릴 때 키워준 할머니의 초상을 치러야 했다. 아이에게 며칠 시골 구경을 시켜주는 것으로 여행을 대신했다. 무료하고, 남들 보기엔 쓸데없어 보이는 일을 하는 시간 속에서 인간은 지나온 삶을 되돌아보고 자기다운 세계를 쌓아 올린다. 주변 사람들의 얼굴을 응시하는 시간 없이 사람 곁에 관계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이병환 역시 자신이 무엇을 빼앗긴 채 사는지 잘 알고 있다.

"어떡해요. 방법이 없어요. 가끔 못 참겠으면 어쩌다가 집에서 혼자 소주 한 병 먹고 그냥 자버리기도 하고. 아니면은 가끔 한강 공원이나 가서 바람 한번 쐬고 오고. 그게 다인 거예요.

적어도 큰 회사에서는 틀을 갖춰주면 라이더들이 사람다운 삶을 살 수 있어요. 우리도 소처럼 일만 안 하고 다른 사람들처럼 햇빛 보면서 바람도 쐴 수 있잖아요. 회사의 모든 시스템이 오늘 하루 내일 하루가 다 다르기 때문에 우리는 거기에 흘러 다닐 수밖에 없는 거예요. 국가에서 나서줘야 해요. 법이 없으면 움직이지 않아요. 회사는."


똑같이 만원을 벌더라도
 
올해 2월 배민 본사 앞에서 열린 집회에서 발언하는 이병환 조합원.
 올해 2월 배민 본사 앞에서 열린 집회에서 발언하는 이병환 조합원.
ⓒ 라이더유니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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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민라이더스의 부당노동행위에 목소리를 높이는 이병환에게 누군가는 이렇게 물었다.

"그 위험한 일을 왜 해요? 그만두면 되지."

세상 물정 모르는 질문이다. 타인의 삶을 상상해보려 하지 않는 무례한 말이다. 이병환은 이런 질문 앞에 늘 기가 막혔다.

"그럼 우리가 어디 가서 어떻게 돈을 벌어요? 이 나이 먹고. 하물며 젊은 애들도 실업자가 널렸는데. 그렇다고 다른 배달 대행에 가면 어차피 배민을 똑같이 따라 해요. 그러니까 이제는 배민을 바꾸면서 일하고 싶은 거예요. 우리는 물러날 데가 없잖아요. 내가 혼자 사는 것도 아니고, 가정 있고 생계를 꾸려가야 되는데. 어느 한순간이라도 흔들려 버리면 다른 걸 하려고 해도 할 수가 없잖아요."

이병환은 막다른 곳에서 등을 돌려 세상을 바꾸기로 했다. 배민에게 상처 입었지만, 그 상처를 돌려주기 위해 싸우려는 것은 아니었다.

"내가 돈을 버는 곳이기 때문에 애정이 있어요. 내가 여기서 그동안 해왔던 게 있으니까. 그러니까 서로 조금씩 양보하면서 가자 이거예요."

이병환은 배민이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부터 일했다. 배민의 역사를 함께 한 사람이라는 자부심이 있다. 애사심이라 부를 수도 있지만, 동료애와 책임감이 더 맞을 것이다. 먹고사는 문제만큼 함께 사는 문제도 중요했다.

"저랑 비슷하게 들어온 라이더는 이제 4명 남았어요. 이 4명이 움직여서 중심 잡고 목소리 내고 있는데, 이 사람들마저 빠져버리면 배민은 더 안 좋게 바뀔 뿐이겠죠. 앞으로 더 나설 사람도 없어요. 새로 온 사람은 그냥 이게 당연한가 보다 하고 일하고. 뭔가 적응할 때쯤 되면 늦은 거예요. 이미 길들어서. 나는 불합리한 걸 바꾸면서 일하고 싶다는 거예요. 똑같이 만원을 벌더라도. 회사가 저렇게 막무가내로 하는 걸 보고 싶지 않아요. 이제는."

거대 플랫폼 회사를 바꾼다? 달걀로 바위 치는 격임을 이병환도 안다. 그러나 못 할 일이 아니라고 믿는다. 혼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회사를 바꾸려면 무엇을 바꾸어야 하는지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

"나라에서 구체적인 법적 제도를 만들어주지 않으니까 회사는 그걸 교묘하게 피해 가서 이용한 거뿐이에요. 법적으로 걸릴 게 없으니까. 우리가 노동법 테두리 안에 있으면 플랫폼 회사는 쉽게 갑질 못해요. 우리 노동자들을 속이지 않고 막대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저희가 법의 사각지대에 있다 보니까, 회사들이 이걸 악용하는 거예요. 교묘하게 계약서 써가지고. 그 많은 법에 우리가 설 수 있는 자리가 없어요. 그러니 그 회사들은 이걸 이용할 수밖에 없는 거죠. 쓰고 버리고 쓰고 버리고, 소모품처럼."


플랫폼은 노동자들이 사람이라는 사실을 그들의 '혁신' 속에서 지웠다. 그것이 플랫폼이 승승장구한 비결이자, 플랫폼의 약점이다. 사람을 완벽히 통제한다는 건 불가능하다고, 사람의 역사가 말한다. 기계가 사람이 되는 일은 가능할지 몰라도, 사람이 기계가 될 수는 없다. 사람 이병환은 '내일'을 모르더라도 결코 소모품으로만 살 수 없었다.

호황을 말하는 목소리 속에서

"딱 하나 바라는 게 있다면, 귀농해서 사는 거. 산과 바다가 걸친 데에 작은 집을 짓고 그 앞에 내가 서 있는 거죠. 가끔 잠 안 올 때 티브이 프로그램 보면 그런 데가 많이 나오더라고요. 너무 부럽죠. 그렇게 여행 다니는 연예인들도 부럽고. 나는 언제쯤 저렇게 살까 싶기도 하고. 그런 풍경 속에 있다면... 하... 그냥... 편하겠죠. 먼 산 보고. 자유롭고. 공기도 좋고."

올여름 폭우가 잦았던 7월, 이병환은 거의 집에 있었다. 악천후는 모든 라이더에게 위험하지만, 이병환처럼 안경을 쓰는 사람들은 시야 확보가 특히 어렵다. 게다가 비 오는 날 미끄러져 다리를 심하게 다친 뒤로는 사고의 기억도 밀려온다.

"생활비가 빵꾸 많이 났죠. 내가 벌든 못 벌든 매달 나가는 돈은 정해져 있으니까. 아이 앞으로 들어가는 돈이랑 이거저거 합치면 하면 한 300은 무조건 집으로 들어가야 되는데. 이거 메꾸려면 몇 달 걸리겠죠."

코로나19 확산으로 배달 대행 산업은 호황을 맞았다고들 말한다. 산업은 호황일지 모르나 그것은 배달라이더 이병환의 호황은 아니다. 이병환은 묻고 싶다. 고액 수입을 올리는 극소수의 라이더를 간판으로 사람들을 불러모으는 플랫폼 기업은 왜 대다수 라이더의 삶에 대해선 침묵하는가. 그 이야기는, 누구에게 유리한 이야기인가.

태그:#라이더유니온, #기획인터뷰, #배달, #라이더, #배달의민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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