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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인해 언택트 시대의 상징인 택배 산업이 급속히 성장하고 있다. 그러나 성장만큼 늘어난 업무량으로 인해 올해만 12명의 택배 노동자가 심장 및 뇌혈관 질환 등으로 사망했다. 소위 '과로사'이다. 

우리나라 노동자의 평균 노동시간은 2017년 기준 연간 2024시간으로 OECD 국가들 가운데 멕시코 다음으로 길었다. OECD 36개 국가의 연간 평균 노동시간은 1746시간으로 우리나라 노동자들은 OECD 회원국 노동자들보다 연간 278시간을 더 일한다. 1일 노동시간인 8시간으로 나누면 35일을 더 일한다고 볼 수 있다.

장시간 노동은 과로사(심장 및 뇌혈관 질환)에 주요한 원인이다. 주당 노동시간이 60시간 이상에서 심근경색 위험이 2배 이상 증가(95% 신뢰구간 1.1-3.5)하고, 월간 휴일이 2일 이하인 경우 심근경색 위험이 2.9배 증가(95% 신뢰구간 1.3-6.5)하며, 1일 노동시간이 11시간 이상인 경우 심근경색 위험이 2.9배 이상 증가(95% 신뢰구간 1.4-6.3)한다고 한다. 

'하루 13시간에서 15시간 근무를 하고, 쉬는 시간은 20분 남짓이고 그것도 트럭 안에서 때운 식사 시간을 포함한 시간'으로 일하다 사망한 택배 노동자, 분류 작업에만 하루 평균 5~6시간을 소비하고 하루 400건 이상의 물량을 배송하기 위해 평균 15시간 동안 근무를 이어갔다 사망한 택배 노동자. 이들의 사망 원인은 모두 장시간 노동에 의한 과로사다.

과로사의 원인, 장시간 노동 〈 심야노동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 위원회가 19일 오전 서울 중구 한진택배 본사 앞에서 최근 심야택배배송을 마치고 자택에서 사망한 김아무개씨 관련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 위원회가 19일 오전 서울 중구 한진택배 본사 앞에서 최근 심야택배배송을 마치고 자택에서 사망한 김아무개씨 관련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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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과로사의 원인으로 장시간 노동보다 더 위험하고, 더 잘 알려진 것이 있다. 바로 심야노동이다. 심야노동은 수면장애를 유발하고, 생체리듬을 파괴해 부주의한 행동, 안전사고를 일으킨다. 뿐만 아니라 오랜 기간의 심야노동은 소화기 질환과 심장질환(과로사)을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혈압이나 심장의 박동수는 하루 주기의 생물학적 리듬을 따른다. 따라서 심야노동으로 인한 생체 리듬의 교란이 심혈관계질환의 발생과 악화에 영향을 미친다. 심야노동을 하는 노동자에게 있어서 하루 주기 생물학적 리듬의 파괴는 자율신경계의 기능상 변화를 일으킨다. 

자동차업종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한 국내 연구에서 야간근무가 주간근무에 비해 작업 중(야간시간대) 부교감신경 기능이 더 항진되어 있고 교감신경 기능은 덜 항진된 반면, 수면 중(주간시간대) 부교감신경 기능은 덜 항진되어 있고 교감신경 기능은 더 항진되는 자율신경계 기능의 교란이 발생함을 발표하였다.

또한 심야노동은 직무 스트레스를 증가시킴으로써 심혈관계질환 발생의 위험을 증가시킨다. 2003년에 실시된 한국인 직무 스트레스 측정 도구의 개발 및 표준화 연구에서 심야 노동을 하지 않는 노동자에 비해서 심야 노동을 하는 노동자들의 직무 스트레스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경북 칠곡에서 택배 물류센터에서 일하던 20대 노동자가 사망했다. 부검 결과 사인은 '원인 불명 내인성 급사'로 나왔다. 야간 분류작업을 하루 8시간씩 주 5일 일했고, 코로나19로 대구 지역 택배 물량이 급증한 뒤엔 1시간가량 연장 근무를 하는 날이 잦았다. 

사망 당일도 저녁 7시부터 새벽 4시까지 근무를 하였다. 매일 마감 시간에 쫓겨야 했던 고된 업무에 75kg이었던 몸무게는 60kg으로 줄었고, 하룻밤 밤샘 근무에 만보계에는 무려 5만 보가 찍혔다. 술담배를 하지 않는, 태권도 3단의 건강한 청년이 이렇게 사망했다.

이 노동자가 일한 회사에서는 '최근 3개월간 고인의 주당 평균 근무시간은 약 44시간이었다', '직원의 근로 강도가 높아지지 않도록 관리한다'라며 과로사가 아닌 것으로 주장하는데 이는 매우 잘못된 생각이다. 

이 노동자는 장시간노동보다도 더 위험한 심야노동을 했으며, 심야노동은 일반적으로 편안한 노동을 의미하는데 고인은 매우 힘든 노동을 하였다. 그런 야간노동을 1년 4개월 이상 연속적으로 했다. 특히 마스크까지 쓰고 일해서 더욱 힘들다고 호소했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뇌혈관질병 또는 심장질병(과로사)의 인정기준은 다음과 같다.
 
2) 발병 전 12주 동안 1주 평균 업무시간이 52시간을 초과하는 경우에는 업무시간이 길어질수록 업무와 질병과의 관련성이 증가하는 것으로 평가한다. 특히,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업무를 수행하는 경우(업무부담 가중요인)에는 업무와 질병과의 관련성이 강하다고 평가한다.
① 근무일정 예측이 어려운 업무
② 교대제 업무(심야 노동)
③ 휴일이 부족한 업무
④ 유해한 작업환경 (한랭, 온도변화, 소음)에 노출되는 업무
⑤ 육체적 강도가 높은 업무
⑥ 시차가 큰 출장이 잦은 업무
⑦ 정신적 긴장이 큰 업무

3) 발병 전 12주 동안 업무시간이 1주 평균 52시간을 초과하지 않는 경우라도 2항의 업무부담 가중요인에 복합적으로 노출되는 업무의 경우에는 업무와 질병과의 관련성이 증가한다.

라. 오후 10시부터 익일 6시 사이의 야간근무의 경우에는 주간근무의 30%를 가산(휴게시간은 제외)하여 업무시간을 산출한다.
 

우리나라의 산업재해 인정기준을 보더라도 이 노동자의 사망은 심야 노동과 업무상 긴장도 및 육체적 강도가 높은 업무 등 업무부담 가중요인에 복합적으로 노출되고, 업무시간이 주간근무의 30%를 가산하는 수준으로 평가되는 야간 근무를 하여, 업무와 질병과의 관련성이 강하게 인정되는 과로사로 사망한 것이다.

※추신 : 자정까지 주문을 하면 다음 날 새벽에 물품을 받는 이른바 '총알배송'은 사망노동자가 일했던 사업장을 비롯하여 많은 사업체서 시행하고 있고 시행할 예정이다. 사업주에게 부탁한다. 총알배송을 멈춰 달라. 총알배송은 노동자를 죽이는 배송이다. 정부와 정치권에도 부탁드린다. 총알배송을 금지하는 법안 만들어 달라. 더 이상의 택배 노동자 사망을 막는 길이다. 국민들은 주문 후 하루가 지나서 도착하는 배송도 노동자의 안전이 확보된다면 언제든 기다려 줄 수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임상혁 시민기자는 녹색병원 원장입니다.


태그:#택배노동자, #과로사, #심야노동, #총알배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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