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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에 청소년기를 보낸 90년대생들은 참 바빴습니다. 학교에선 PMP에 담아놓은 '인소'과 팬픽을 몰래 읽으며 운명적 사랑을 꿈꿨고, 칙칙한 체리 몰딩에 둘러싸인 현실의 방 대신 싸이월드 미니홈피 꾸미기에 열중했습니다. 그 시절, '좋아요 반사'와 '일촌 파도타기'는 하루의 중요한 일과였지요. 엄마는 질색했지만, '얼짱'을 따라 샤기컷을 하고 열심히 돈을 모아 브랜드 옷을 사보기도 했습니다. 돌이켜보면 웃음이 나기도 하지만, 소중하고 낭만적이었던 그 시절을 '추억팔이' 해봅니다.[편집자말]
스마트폰이 없는 유년기를 보낸 마지막 세대, 2002 한일 월드컵을 기억하는 마지막 세대. 흔히 '세기말'이라 불리는 1990년대 후반에 태어나 지금은 20대 초중반이 된 세대에 관한 이야기다. 이들은 어릴 때부터 디지털 환경에서 자란 디지털 네이티브 (디지털 원주민)이라 불리는 Z세대의 시작이 되는 세대이기도 하다.

하지만 스마트폰의 보급과 SNS의 활성화는 10대 초중반에 경험해, 그 이전까지 학교나 아파트 놀이터, 문구점에 삼삼오오 모이곤 했던 아날로그의 기억을 동시에 품고 있는 세대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1997년에 태어난 나는, 같은 Z세대라고 해도 스마트폰과 유튜브를 이미 유년기나 유아기 때부터 접한 2000년대 중후반 출생자와는 약간의 이질감을 느낀다. 스마트폰이 없는 일상을 경험한 세대와 그렇지 않은 세대.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우리 일상엔 참 많은 것들이 바뀌었다.

우리들의 '만남의 광장'이었던 문구점 
 
초등학교 1·2학년이 등교 개학한 27일 오후 부산 동구 수정초등학교 앞 한 문구점.
 초등학교 1·2학년이 등교 개학한 27일 오후 부산 동구 수정초등학교 앞 한 문구점.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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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말에 태어난 초등학생들의 '핫 플레이스'는 문구점이었다. 2000년대 초반에도 컴퓨터의 사용과 보급은 이미 일상이 되어 컴퓨터가 집마다 한 대씩 있는 게 당연하다시피 했지만, 디지털과 아날로그 경계에 있던 시대인 만큼 디지털적인 요소와 아날로그적인 놀이 수단과 혼재했다.

지금이야 언제 어디서나 인터넷을 휴대하며 게임도 할 수 있는 '스마트폰'이라는 완벽한 대체재가 있지만, 그 당시엔 상황이 달랐다. 휴대전화의 보급률이 높지 않았던 데다, 초등학교 저학년 학생이 이를 들고 다닌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아이들 사이에선 언제나 아날로그적인 놀이 수단이 유행했고, 그 중심에는 문구점이 있었다.

지금이야 대형 팬시점이나 다이소에 밀려 소규모 문구점의 수가 많이 줄었지만, 15여 년 전만 해도 학교 앞이나 아이들이 많이 오가는 동네 골목에는 언제나 소규모 문구점이 있었다.
 
동명의 만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유희왕' 카드도 당시 유행했던 놀이 도구 중 하나였다.
 동명의 만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유희왕" 카드도 당시 유행했던 놀이 도구 중 하나였다.
ⓒ wiki comm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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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던 서울 노원구 상계동 빌라촌 한가운데에는 몇백 년 된 은행나무와 함께 '은행문구'라는 곳이 있었는데, 그곳엔 언제나 게임 '메이플스토리' 캐릭터가 그려진 딱지치기를 하기 위해 모인 아이들로 인산인해였다. 어떻게 보면 여러 초등학교에 다니는 동네 아이들이 모이는 만남의 광장 역할을 했던 셈이다. 

당시 아이들 사이에선 얼마나 높은 레벨의 딱지를 쟁취하는가도 중요했지만, 결국 양보다 질이긴 했다. 메이플스토리 딱지를 얼마나 많이 가지고 있느냐가 더 중요했다. 아이들은 항상 딱지를 뭉치로 가지고 다녔는데,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딱지를 많이 가지고 있다는 것은 실력이 좋다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이는 곧 교내 아이들 사이에서 알아준다는 얘기며, 이들에게 어느 정도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얘기였다. 그 당시 아이들의 사회가 그렇듯, 얼마나 싸움을 잘하는가로 또래들 사이에 서열을 나눴는데 사실 싸움의 정도와 딱지치기 실력은 비례하다시피 했다.

포켓몬 딱지, 무지개 스프링, 맥주 사탕... '라떼의' 물건들  
 
사진은 18일 서울의 한 초등학교 앞 문구점.
 사진은 18일 서울의 한 초등학교 앞 문구점.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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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외에도 포켓몬 고무 딱지나 매미 자석, 무지개 스프링 같은 여러 장난감이 유행했고, 그 중심에도 언제나 문구점이 있었다. 추가로 빨대 모양의 아폴로나, 트위스트, 페인트·맥주 사탕, 쫀디기 같은 '불량식품'도 언제나 아이들 손에 들려 있었다.

실제로 일부 상품 중에서는 바코드가 없는 것도 꽤 있었고, 2012년엔 초반 한 대통령 후보가 불량식품을 4대악으로 지정하면서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시대가 바뀌고 유행의 흐름에 따라 사람들이 더 이상 찾지 않는 놀이수단은 추억 속에 남거나 잊혀 간다. 더불어 요즘에는 유치원생들도 스마트폰 속 세상에 집중하고,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유행으로 언택트 시대가 다가왔다.

얼굴을 직접 맞대기보단 어느 정도 거리를 유지하는 문화로 흐름이 가속화되고 있는데, 핸드폰도 없던 초등학생들이 자연스레 모이던 아고라, 그 시절의 문구점이야말로 '내 동년배들은~' 이나 '나 때는~' 하면서 운을 뗄 수 있는 추억 속의 장소가 아닐까 싶다. 

태그:#90년대생의 추억을 조명하다, #문구점, #놀이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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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을 마음에 품고 현실을 바라봅니다. 열아홉 살의 인도와 스무 살의 세계일주를 지나 여전히 표류 중에 있습니다. 대학 대신 여행을 택한 20대의 현실적인 여행 에세이 <우리는 수평선상에 놓인 수직일 뿐이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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