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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이 지난 2017년 5월 2일 강원도 춘천 오항리 일대에서 발굴한 유해를 고(故) 명한협 일병(현 계급 일병)으로 신원 확인했다고 26일 밝혔다. 고 명한협 일병의 신원확인은 2000년 4월 유해발굴을 위한 첫 삽을 뜬 후 153번째이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이 지난 2017년 5월 2일 강원도 춘천 오항리 일대에서 발굴한 유해를 고(故) 명한협 일병(현 계급 일병)으로 신원 확인했다고 26일 밝혔다. 고 명한협 일병의 신원확인은 2000년 4월 유해발굴을 위한 첫 삽을 뜬 후 153번째이다.
ⓒ 국방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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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은 지난 2017년 5월 2일 강원도 춘천 오항리 일대에서 발굴된 한국전 전사자 유해의 신원이 고 명한협 일병으로 확인됐다고 26일 밝혔다. 지난 2000년 4월 전사자 유해 발굴이 시작된 이후 153번째 신원 확인이다.

국방부에 따르면, 고 명한협 일병은 부산 육군 훈련소로 입대 후 국군 제6사단 소속(추정)으로 한국전쟁에 참전했다가 가평·화천 진격전에서 전사했다.

1951년 5월 22일부터 30일까지 벌어졌던 가평·화천 진격전은 6사단이 중공군 제187, 188, 189사단의 공격을 막아내고 화천까지 진격했던 전투였다. 이 전투에서 6사단 2연대는 사흘 동안 중공군의 공격을 막아냈고, 중공군을 가평 북방으로 격퇴시켰다.

이후 6사단은 중공군을 추격하며 가평과 춘천을 거쳐 화천 발전소까지 60㎞가량 진출해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 고 명 일병은 1951년 6월 20일 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고 명 일병은 1925년 8월 경남 사천시 이홀동 일대에서 6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고인은 아내 이분악씨를 만나 가정을 꾸리고 외아들 갑원 씨를 낳았다. 26살이 되던 해인 1951년 2월경 입대했다가 불과 4개월 만에 전사했다.

고인은 전사한 지 66년이 지나서야 대퇴부, 팔 윗부분의 유해 몇 점만 발굴됐으나 신원을 확인할 유품은 한 점도 발견되지 않았다. 지난 2010년 아들 갑원씨가 아버지 유해를 찾고자 DNA시료 채취에 응한 후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은 발굴된 유해에서 채취한 DNA 시료와 보관 중인 DNA 시료를 대조 분석해 이들의 부자관계를 최종 확인했다.

고인의 아내는 평생 남편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다가 1993년 세상을 떠났다. 아들 갑원씨는 "아버지가 돌아오시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기에 포기하고 살았는데 찾게 되어 정말 기쁘면서도, 믿기지 않아 덤덤한 마음"이라며 "빨리 아버님을 만나고 싶다"고 말했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은 유가족과 협의해 귀환 행사와 안장식을 치르고 유해를 국립현충원에 안장할 예정이다.

국방부는 "6·25 전사자 신원확인을 위해 유가족 유전자 시료채취를 확대할 수 있는 다양한 방안을 모색해 마지막 한 분까지 가족의 품으로 돌려 보내드릴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며 "국민 여러분의 적극적인 참여를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전사자 유가족 시료채취 관련 문의는 1577-5625로 전화하면 안내받을 수 있다.

태그:#한국전 전사자, #고 명한협 일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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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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