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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트 초코, 하와이언 피자, 고수... 호와 불호가 극명하게 갈리는 음식들입니다. 남들은 이해 못하지만, 내겐 '극호'인 독특한 음식들을 애정을 듬뿍 담아 소개합니다.    [편집자말]
 참가자미 뼈로 우린 담백한 미역국 모습
 담백한 미역국 모습
ⓒ 한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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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저녁 날씨가 제법 쌀쌀하다. 며칠 전, 나는 별생각 없이 블라우스에 카디건 하나만 걸친 채 아침 일찍 출근하려고 나섰다가 옷 속을 파고드는 찬바람을 맞닥뜨리고 당황했다.

가을이라고, 단풍 구경도 마음껏 못했는데 세월 가는 건 왜 이렇게 금방인 건지 조금 억울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뭐가 그리 바쁘다고 계절 변하는 것도 모르고 산 건지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나도 모르게 "어휴, 추워" 소리가 절로 나오는데, 자연스레 뜨끈한 국물이 생각났다.

라면조차 1인분 이상 끓이지 못하는 자타공인 요알못(요리를 알지 못하는)인 내게도 요즘처럼 찬바람 불기 시작할 때, 자신 있게 내놓을 수 있는 단 하나의 메뉴가 있다. 바로, 미역국이다. 아니 그건 너무 평범한 것 아니냐고? 천만의 말씀, 나의 '미역국' 안에는 먹어도 먹어도 허기진 가난한 자취생의 속을 뜨뜻하게 데워줄 특별한 비결이 있으니 주목하시라.

몇 년 전에 나는 함께 일하던 동료 강사에게 내 방식대로 미역국 끓이는 법을 소개했다가 비웃음을 당한 적이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미역국 하면 흔히들 소고기를 넣고 끓인 것을 떠올리기 마련이고, 지역에 따라 홍합이나 새우를 넣는 정도만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도 아니면 별다른 재료 없이 미역만을 푹 우려내서 바다 내음을 가득 담은, 미역 본연의 담백한 맛으로 승부를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동료에게 미역국에 소고기나 홍합, 새우가 아닌 통조림 참치를 넣어 볼 것을 진지하게 권유했다. 그러자 그녀는 대번에 웃음을 터뜨렸다.

"에이, 그게 말이 돼?"

요리깨나 할 줄 안다는 팔 년 차 베테랑 주부인 그녀는 통조림 참치를 넣은 미역국이란 여태껏 듣지도 보지도 못했다며 미심쩍은 눈초리로 나를 보았다. 민트 초코를 사랑한다는 가수 아이유가 민트 초코의 매력을 모르는 사람들을 향해 "안 됐다!" 발언을 했을 때, 이런 기분이었을까?

참치 통조림 하나로 이런 맛을 내다니 
 
 참치.
 참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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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순전히 그녀처럼 '참치 미역국'의 매력을 모르는 사람들이 아무도 없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다음과 같이 레시피를 소개하고자 한다.

레시피라 해봤자 특별한 것은 없다. 우선 불린 미역을 적당한 크기로 자르고 참기름으로 달달 볶다가 물을 붓고 끓인다. 그리고 거기에 다진 마늘을 넣고, 국간장으로 간을 한 다음, 기름기를 쫙 뺀 통조림 참치 적당량을 넣어주면 끝이다.

재료값을 통틀어도 만원이 채 들지 않는다. 게다가 소고기를 넣고 끓인 것 못지않게 포만감이 있고, 맛도 좋다. 참치 살코기의 기름지고 짭조름한 맛과 미역에서 우러난 깊은 국물의 조화가 제법 잘 어울리기 때문이다.

내가 이 미역국에 처음 빠진 것은 이십 대 초반에 영화 <실미도>를 보고 난 다음이었다. 그 영화에서는 북파 작전을 위해 열악한 환경에서 특수 훈련을 받는 군인들이 나오는데 그중 누군가 (너무 오래전 기억이라 확실하지는 않다) 훈련에 지쳐 고달픈 몸으로 고향을 그리워하면서 이런 대사를 읊는다.

"아! 엄마가 끓여준 미역국에 흰밥 말아서 김치랑 먹고 싶다."

나는 그 대사가 왜 그렇게 마음에 와닿았는지 모르겠다. 대학을 다니며 한 달에 18만 원짜리 반지하 방에서 자취를 하던 때였다. 그즈음 나는 이른 저녁부터 새벽까지 학교 앞 호프집에서 서빙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일을 마치고 텅 빈 집에 들어오면 침대에 누워 그 대사를 혼자 따라 해보곤 했다. 머릿속에 엄마가 끓여준 미역국에 흰밥을 말아 김치랑 먹는 상상을 하면서 말이다.

그러던 어느 날, 상상만으로는 도무지 허한 마음을 달랠 수 없던 나는 처음으로 미역국 끓이기에 도전했다. 물론 가난한 자취생 형편이었기에 소고기는 엄두도 못 내고 고민 끝에 참치를 넣었다. 영화 속 대사처럼 흰밥을 그 국에 말아서 허겁지겁 퍼먹는데 정말 눈물이 날 만큼 맛있었다.

바람 찬 날엔, 어김없이 참치 미역국을 끓입니다 
 
 소고기 미역국.
 소고기 미역국. 이제 엄마는 마트에서 제일 좋은 미역을 사다가 보란 듯이 큼직한 소고기를 듬뿍 넣고 끓여 주실 것이 분명하다.
ⓒ 한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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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참치를 넣은 미역국은 내가 어릴 적 엄마가 자주 끓여주시던 방식을 더듬어 재현해본 것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엄마는 이제 더는 참치를 넣은 미역국을 끓이지 않으신다. 아마 내가 미역국이 먹고 싶다고 하면 마트에서 제일 좋은 미역을 사다가 보란 듯이 큼직한 소고기를 듬뿍 넣고 끓여 주실 것이 분명하다.

생각해보면 통조림 참치를 넣고 끓인 미역국이 밥상에 자주 오르던 시절엔 우리 집 형편이 그리 좋지 못했던 것 같다. 어린 자식을 아침 안 먹여 학교에 보내면 하늘 무너지는 줄 알았던 엄마는 없는 형편에도 아침마다 갖은 솜씨를 부려서 정성껏 밥상을 차리곤 하셨다.

철없는 딸의 입맛에는 엄마 솜씨로 한 모든 음식이 맛났지만, 이왕이면 더 좋은 것들을 해주고 싶으셨던 엄마의 속은 적잖이 상하셨던 모양이다. 그래서 집안 형편이 나아지면서 참치를 넣은 미역국은 엄마의 밥상에서 자연스레 퇴출되었을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나는 오늘같이 바람이 찬 날엔 어김없이 참치 통조림을 넣고 끓인 뜨끈한 미역국이 생각난다. 거기에 흰밥을 말아서, 훌훌 넘기면 고된 하루 동안 쌓인 스트레스가 사르르 풀릴 것만 같다. 물론 잘 익은 배추 김치를 곁들일 수 있다면 금상첨화겠지.

그래서 오늘 저녁 밥상에는 소고기 말고, 통조림 참치를 넣은 미역국을 추천하고 싶다. 참치와 미역이라니, 둘이 진짜 어울릴까? 망설일 필요는 없다. 한 번 맛보면 누구나 푹 빠지게 될 것이 틀림없다. 

무엇보다 주머니 사정 여의치 않은 가난한 청춘들에게 강추하는 메뉴다. 요즘처럼 몸도 마음도 헛헛할 때, 뜨끈한 국물만큼 위로가 되어주는 것이 또 어디 있을까? 사는 게 팍팍할 때는 일단 뱃속부터 든든히 채우고 보자. 뱃속이 든든해야 마음에 여유가 생기고, 그래야 기죽지 않고 씩씩하게 후일을 도모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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