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한 편의 적절한 과금 방식은 무엇일까. 이 짧은 질문엔 ipTV와 OTT 플랫폼의 쏠림 현상이 한국영화산업 전반을 흔들고 있다는 위기의식이 담겨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극장 관객 수가 전년도 대비 70%(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 기준)나 감소하면서 이런 위기감은 더욱 커지는 모양새다.

서울 동작구 아트나인에서 28일 오후 열린 '2020 한국영화산업 긴급진단 토론회'에 참석한 영화계 각 분야 담당자들 또한 그런 위기의식을 강조했다. 제작, 배급, 극장, 유통 등 평소엔 상황과 이슈에 따라 각자 입장이 달랐던 이들이 현재 상황을 심각하게 인지하면서 양보와 배려가 필요한 때라고 한목소리를 냈다.

영화진흥위원회 자체 분석 결과 작품 개봉 편수 자체는 줄진 않았지만, 코로나19 상황 등으로 극장 매출 감소가 컸고, 작품의 제작 지연으로 인한 비용 증가, 신규 투자의 취소와 중단, 해외 및 국내 로케이션 촬영 불가 등의 피해가 있었다. 1월부터 9월까지 실질적인 피해 금액만 329억 원, 예상 피해액까지 더하면 천문학적인 규모가 되는 상황이다. 
 
 2020 한국영화산업 긴급진단 토론회 현장 사진.

2020 한국영화산업 긴급진단 토론회 현장 사진. ⓒ 영화수입배급사협회

 

드라마와 예능 프로, 영화가 같은 가격? "제작비 자체가 다른데..."

이런 상황을 악화시키고 있는 핵심 요인을 두고 이날 토론회 참석자들은 ipTV와 넷플릭스 같은 OTT 플랫폼이 채택하고 있는 정액결제(Svod) 방식을 우선 꼽았다. 영화수입배급사 JNC 미디어그룹 최광래 대표는 "국내에서 상영되는 영화들이 (부가판권시장에서) 정당한 가격을 받고 있는지 의문"이라며 "통상적으로 OTT 업체나 넷플릭스에서 시행하는 홀드백(극장 개봉 영화가 스크린에서 ipTV나 OTT 등 다른 플랫폼으로 넘어가기까지 걸리는 시간)을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최 대표는 "통상 6주에서 8주가 지나면 ipTV나 넷플릭스에서 영화를 볼 수 있는데 해외 직배사 영화들은 12개월의 홀드백이 있고, 심지어 모든 직배사 영화가 아닌 선별적으로만 ipTV나 OTT에서 볼 수 있다"며 "(한국영화나 국내 업체가 수입한 영화의 경우) 6주만 기다리면 건당 결제(Tvod)를 하지 않고 볼 수 있기에 그만큼 국내 영화산업이 위축되는 것"이라 주장했다.   

일반적으로 ipTV에선 극장 개봉 영화를 틀 경우 건당 결제 방식을 채택했다가 일정 기간 이후 무료가 된다. 그 기간이 해외 대형 배급사 영화에 비해 터무니없이 짧다는 게 최 대표의 분석이었다. 

앞서 수입배급사협회(아래 수배협)는 두 차례에 걸쳐 왓챠와 웨이브 등 국내 OTT 사를 대상으로 극장 상영영화를 정액제 방식으로만 소화해서 수익 정산이 비합리적으로 되는 것, 주먹구구식 정산 방식 등을 이유로 영화 공급 중단 입장문을 밝힌 바 있다. 최 대표의 주장 또한 그 연장선이었다. 

반론도 있었다. ipTV 업체 홈초이스의 강문경 차장은 "Svod 매출이 Tvod 매출에 위협이 된다는 최 대표님 주장에 공감하지만 서비스할 때 여러 가지를 비교한 결과 적정한 홀드백 기간이 6주에서 8주였다"며 "가격 정책 면에서 무작정 올리거나 홀드백을 늘린다고 개선되는 건 아니고 치밀하게 분석하면서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저작권자가 itTV나 ott에 콘텐츠를 공급할 때 가격 자체를 정할 수 없는 게 문제라는 지적도 있었다. 판권대행사인 한국영화디지털유통협회 김정석 대표는 "미국은 각사에서 가격을 책정해 제공할 수 있는데 한국에선 저작권자가 가격을 정하는 시장 자체가 형성이 안 돼 있다"며 "한국영화든 수입영화든 공급의 기준을 마련해야 하고, OTT 업체나 ipTV 업체들도 영화 투자나 마케팅에 함께 하는 사례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영화 제작비와 동일하지 않은 드라마와 예능 등이 OTT 월정액 서비스와 같이 편성이 되니 문제"라며 "시청자 입장에선 돈을 내고 본다고 생각하는 것이니 만큼 (홀드백 보단) 결국 정산의 문제라고 생각한다"는 생각을 밝혔다. 

제작사나 극장 사업자는 더욱 강한 위기 의식을 드러냈다. CGV 조성진 전략지원담당은 "우리도 기업이라 올해까지 살아남을 자금은 있는데 내년도 올해 같은 상황이라면 생존이 어렵지 않나 싶다"며 최근 극장 가격을 올리고 일부 영업점을 닫은 이유를 전했다. 또한 그는 "(극장 매출이 전체 영화산업수익의 80%를 차지하는 만큼) 극장에 손님이 오게 하는 장치들이 필요한데 문화체육관광부와 영화진흥위원회, 그리고 관계자들이 참여해서 논의할 테이블이 필요하다"며 "영화가 꾸준히 개봉하고 돌아갈 구조가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제작 및 배급사인 리틀빅픽쳐스의 권지원 대표는 부율 조정을 주장했다. 극장과 배급사의 수익 배분율을 조정해 창작자와 콘텐츠 공급자의 활성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논리였다. 권 대표는 최근 <사냥의 시간>을 넷플릭스에 독점 공급 계약하며 극장용 한국영화가 OTT로 넘어가는 사례를 남기기도 했다.  

"관점 바꿔 생각할 때"

권 대표는 "넷플릭스와 계약하며 회사의 위기를 모면한 감이 있지만 사실 허탈감이 컸다. 제작비와 약간의 이익은 남겼지만 모든 권리가 넘어갔고 부가수익을 기대할 수 없게 됐기 때문"이라며 "지금 상황에선 자금 순환이 되지 않고 재투자가 안 되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이걸 끊어줘야 하는데 제작사에다가만 영화를 개봉하라 강요할 수 없고 결국 배급사와 극장 수익 배분율을 7대3 정도(현재는 서울 55:45, 지역 5:5)로 하면 개봉할 만할 것"이라 말했다.

리얼라이즈 픽쳐스의 원동연 대표 또한 힘을 실었다. "어떤 제작자가 자기 영화를 극장에 안 걸고 싶겠나. 규모가 큰 곳은 좀 기다릴 수 있겠지만 대부분은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걸 수는 없을 것"이라며 "부율을 조정하거나 마케팅 비용을 같이 분담하는 건 어떨까. 그리고 노동자 인권도 중요하지만 노동자와 사용자가 합의한 것까지 국가가 개입하는 건 그렇다. 영화산업을 예외 규정으로 둬서 (제작비 절감을 위해) 단기간 내에 촬영을 끝낼 수 있게 영진위에서 (문체부에) 건의했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이정세 메가박스 영화사업본부장 또한 "최근 4년 사이 여러 이유로 제작비는 급증했다. 코로나 19가 없었더라도 분명 상당한 문제가 발생했을 상황"이라며 "각 분야에서 서로 양보하고 배려하며 해결해 나가지 않으면 감당할 수 없을 정도가 될 것"이라 운을 뗐다. 

이 본부장은 "올해 손해가 750억 원인데 지난 3년 간 벌어놓은 걸 다 까먹은 수준이다. 영화를 극장에 개봉해야 사람이 올 텐데 너도나도 미루고 있다"며 "차라리 주사위를 던져 개봉 순서를 정해야 하나 싶다. 경쟁은 잠시 미루고 같이 살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부율 조정 문제에 조성진 담당은 "제작사와 배급사가 영화를 개봉하는 요소엔 부율 말고도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라며 "부율 조정을 논의하기엔 지난한 과정이 있어 보인다. 극장과 배급사가 모여 꾸준히 논의하고, 민관 합동으로 개봉을 활성화할 방법을 찾아보자"고 제안했다.

BA엔터테인먼트 장원석 대표는 "전통적으로 극장이 미움을 많이 받는 것 같은데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의 문제다"라며 "지금은 위기를 넘어 붕괴까지 가게 생겼다. <테넷>이 개봉을 강했했지만 망했다. 곧 CGV 극장의 30%가 사라지는데 한국영화계가 붕괴 직전이라 생각한다. 관점을 바꿔 생각해야 할 때"라고 주장했다.

이같은 영화인들 호소에 영진위 김현수 정책사업본부장은 "지난 9월 포스트 코로나19 영화 정책 추진단을 모집했고, 기획위원회에서 각 영화단체와 회사에 오시라 전달드렸다"며 "지난 20년간 문체부나 영진위 정책 방향이 극장에서 보는 영화를 만들고 소비하는 데에 있었는데 극장만을 위한 건 아니어야 한다는 의식이 있다. 내년 4월경에 정책 아젠다를 낼 것"이라 말했다. 토론회에서 강조된 홀드백 조정과 부율 조정에 대해 김 본부장은 "결국 업계에서 조정해야 할 것인데, 업계분들과 영진위가 합의 테이블을 만들어 진행될 수 있게 노력하겠다"고 답했다.
한국영화 넷플릭스 뮬란 할리우드 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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